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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3장 강해 3원시복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4-01 00:00:00
조회수 : 3,721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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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강해 원시 복음

말씀 창세기 31-창세기 324

요절 창세기 3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에덴 동산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순종으로 낙원을 상실하고 비극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범죄를 징벌하십니다. 인간은 저주를 받았고 영원히 고통하는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땅도 식물도 동물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죄로 인하여 사단이 인간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모든 징벌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셨습니다. 이 구원의 계획을 원시 복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하여 비극적인 역사를 더욱 큰 기쁨의 역사로 바꾸어 주십니다. 지금도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여 슬픈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슬픈 일을 통하여 더 큰 기쁨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중적인 사단)

 

1a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어느 날 에덴동산에서 뱀이 여자를 찾아왔습니다. 당시에 뱀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옛뱀이 마귀요 사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주적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 마귀 사단입니다. 계시록에 사단은 뿔달린 모습을 하고 있으나 그런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사단은 거짓되게도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옵니다. 항상 우리를 사랑하는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으로, 형제 자매의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광명한 사도의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사단은 나를 위해줄 것처럼 말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거짓된 사단에게 속기 쉽습니다. 뱀은 하나님이 만드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자였습니다. 그는 가장 간사하고 지혜로운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의심을 심음)

 

1b를 보십시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은 간교하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을 심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을 떠나게 하여 인간을 죽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사랑하셔서 선악과를 주셨습니다. 인간은 선악과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천국은 바로 이와 같이 왕되신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학생회 소감 모임에서 한 목동은 우리 유비에프 교회가 천국과 같다고 말을 했습니다. 다른 목동의 친구는 그 목동이 좋아보여서 그 목동과 사귀자며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여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을 심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만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사탄은 모든 나무를 먹지 말라고 하느냐고 일반화하여 물었습니다. 사탄은 신앙 생활하면 모든 자유를 빼앗기는 것처럼 거짓말을 합니다. 신앙은 예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인데 신앙생활이 무엇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신앙 생활하면 담배도 피우지 못하고, 술도 먹지 못하고, 연애도 못하고,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말을 합니다. 이들은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달콤한 기쁨을 모르고 겉 모습만 보고 말을 합니다. 이렇게 율법적인 생각이 들면 신앙생활이 피곤해집니다. 답답해집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이 범생이나 꽁생원들이나 하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말씀으로 사탄을 대적함)

 

이런 사단의 말을 들을 때 여자는 창세기 216,17절 말씀으로 대적해야 했습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말씀에 기초하여 사단을 대적하면 사단은 맥없이 물러갑니다. 예수님도 사단의 시험을 받을 때 단지 기록된 말씀으로 사단의 공격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단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여자는 사단의 말을 들었습니다. 여자는 사단의 말을 듣고 사단이 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여자)

 

2,3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여자가 사단의 말을 들었을 때 마음에 불신이 들어왔습니다. 여자가 대답한 말 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사라지고 은근한 불평이 들어있습니다. 여자는 에덴동산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습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각종 나무의 실과를 임의로 먹으라 하였으나 여자는 각종’ ‘임의로라는 단어를 뺐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만 먹지 말라고 했는데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 실과까지도 먹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먹지만 말라고 했는데 여자는 만지지 말라는 말까지 했다고 첨가했습니다. 이렇게 사단의 말을 듣고 사단이 주는 생각을 하면 탐심이 들어오고 하나님께 감사가 사라집니다.

 

(절대성을 상실한 여자)

 

여자의 마음 속에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상대적인 생각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죽으리라말씀하셨는데 여자는 죽을까 하노라고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 절대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우리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그런데 사단은 이런 절대성을 부정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은 없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사단은 꼭 예수님을 믿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 종교 중에 아무 것이나 하나 믿는 것이 합리적이고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심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수녀들과 스님들이 함께 찬송가를 부르는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도록 합니다. 꼭 예수님만을 믿어야 하는 것은 꽉 막힌 사람처럼 생각되게 합니다. 성경은 하나의 신화처럼 생각하게 만듭니다.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적으로 생각하자 사단이 여자의 약점을 집중 공격했습니다.

 

(심판을 부정하는 사단)

 

4절을 보십시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뱀은 여자에게 지금까지와 다른 시각으로 선악과를 보게 하였습니다. 뱀은 여자에게 선악과를 먹어도 결코 죽지 않는다 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절대적으로 부정합니다. 심판을 부정하하고 지옥을 부정하면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사라집니다.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때 마음대로 죄를 짓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죽은 후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둘째 사망이 있습니다.

 

(교만을 자극하는 사단)

 

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사단은 여자가 죄를 짓는 것에 대한 용기를 심습니다. 사단은 인간에게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처럼 높아질 수 있다고 교만을 자극합니다. 인간에게 피조물의 자리를 떠나게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피조물로 살 때 자유와 생명과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사는 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지구가 태양을 떠나면 멸망이듯이 죽음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교만하게 하나님을 떠나서 살면 더 큰 자유와 기쁨이 있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사단은 인간이 한계적으로 답답하게 살도록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은 나쁘다고 말을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사람을 괴롭히느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선악과를 주셔서 우리에게 자유와 생명을 주시고자 하는 사랑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선악과가 없다면 에덴은 진정한 에덴이 아닙니다. 에덴은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므로 불행해집니다. 이처럼 사단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미워하신다는 것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런 사단의 말을 듣고 그에 근거하여 나무를 보면 모든 것이 달라져 보입니다.

 

(탐욕이 일어난 죄를 지은 인간)

 

6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여자가 사단의 말을 들으니 선악과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나무를 보니까 탐심이 생겼습니다. 물질적인 욕심도 생기고, 명예욕도 생기고, 자기를 자랑하고자 하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좋게 보이고 자유롭게 보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자신의 욕심을 마음껏 채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여자는 욕심에 이끌려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남편이 옆에 있는데 그녀는 남편과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에서 나오는 불순종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것을 싫어하고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내 뜻대로 나를 위해서 내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일시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어 살면 인간은 불안하고 두려워지고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서로 간에도 싸움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자는 자신 혼자만 선악과를 먹자 두려웠습니다. 이제는 남편도 먹게 하여 남편과 공범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남자도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아내를 사랑한 아담)

 

여자는 선악과를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악과를 주는 여자를 대적해야 합니다. 창세기 216,17절 말씀으로 여자의 뒤에 있는 사단을 보고 사단아 물러가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여자를 책망해야했습니다. 여자를 회개시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여자의 말을 더 들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보다 여자를 더 사랑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손종하였습니다. 불순종 속에는 교만과 불신과 탐심이 녹아 들어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성이 깨어지고 전 인류가 범죄하게 되었습니다.

죄는 바로 내가 하나님이 되어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내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에 대해서 탐심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하나님과의 질서가 깨어지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자의식이 생긴 인간)

 

7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죄책감이 찾아왔습니다. 인간은 전에 발가벗었으나 부끄러운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범죄하자 눈이 밝아져 부끄러워졌습니다. 인간은 최초로 무화과 잎을 엮어 옷을 해 입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자의식이 들어 왔습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인간에게 악을 행하는 또 다른 자아가 생겼습니다. 죄의 본성이 생겼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가식적이고 위선적이 되었습니다.

 

(무의미해진 인간)

 

8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날이 서늘한 저녁에 하나님이 그곳에 저벅저벅 걸어오셨습니다. 아담아! 어디 있느냐 찾으셨습니다. 범죄 전에는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죄를 은폐하고자 하는 거짓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죄가 들어오자 사단이 마음 속에 들어왔습니다. 사단이 인간과 함께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단은 죄를 지은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떠나 숨게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무의미 허무에 시달립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사람들은 무화과나무를 찾아 숨습니다. 게임의 무화과나무, 술의 무화과나무, 일의 무화과나무, 공부의 무화과나무를 찾아서 숨게 됩니다.

 

(아담을 찾으시는 하나님)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벼락을 쳐서 인간을 죽여야 했습니다. 그들을 영원히 고통하는 불못에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아담을 찾아오셔서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으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는 아담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음성입니다. 탕자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따뜻한 음성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이해하셨습니다. 그래서 회개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가 죄를 회개하고 나오기만 하면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자 하셨습니다. 훈련을 통하여 그가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돕고자 하셨습니다.

물론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책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었을 때는 회개하는 것이 차선의 방책입니다.

성경에는 죄를 짓지 않은 노아나 욥이나 사가랴와 같은 사람들도 나오지만 죄를 지은 많은 사람도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첩을 얻었습니다. 다윗은 살인과 간음을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조상 유다는 며느리와 잠을 잤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했을 때 용서하시고 훈련하사 귀하게 쓰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회개하고 주님께 나가길 기도합니다. 아멘

 

(두려움으로 회개치 못하는 인간)

 

10절을 보십시오.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의 질문에 아담은 "제가 범죄했습니다." 한 마디 말을 해야 합니다. 인간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때 우리는 죄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눈물로 무화과 잎을 적시며 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훈련하셔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지만 아담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고백하였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벌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면 회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때에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치 않는 인간을 벌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은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서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회개치 않을지라도 곧바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번 아담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책임전가하는 아담)

 

11절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인간은 다시 한번 누가 너희 벗었음을 고하였느냐?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누가 선악과를 주어서 먹었는지 몰라서 묻는 말이 아닙니다. 아담은 내가 죽을 죄를 졌습니다 라고 한 마디만 하면 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결단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지 않도록 도우십니다.

그러나 아담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담은 나는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책임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던 여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여자를 주신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회개하지 않자 다음에 여자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뱀에게 책임 전가하는 여자)

 

12,3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은 이제 여자를 회개시킵니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네가 어짜하여 이렇게 하였느냐고 질문합니다. 여자가 잘못을 고백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에도 여자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하나님이 지으신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깨어지고 사람과 자연의 관계도 파괴되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사이가 서로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모든 동물을 저주하신 하나님)

 

14,1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회개치 않은 인간을 벌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벌하시면서도 깊은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뱀은 전에는 발로 다녔으나 이제는 배로 다닙니다. 흙에 기어다니는 개구리나 다른 파충류를 잡아먹습니다. 하나님은 뱀만 저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도 저주하셨습니다. 대표자 인간이 범죄하자 인간이 다스리는 세계가 다 저주를 받았습니다.

구한말에 대표자 이완용이 나라를 팔겠다는 도장을 찍자 아무 죄 없는 조선 사람들이 다 식민지 백성이 된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로 모든 동물이 약육강식의 비참한 세계에 살게 되었습니다. 동식물도 허무한데 굴복하고 썩어짐의 종노룻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뱀은 더욱 저주를 받아 아름다운 모습을 잃고 징그러운 모습이 되었습니다. 다리를 잃고 매일 배로 기어 다니고 흙을 먹는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피조물의 세계가 고통하게 되었습니다.

 

(가정불화의 시작)

 

16절을 보십시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뱀을 벌하신 하나님은 이어서 여자를 벌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아기를 낳는 것이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기를 잉태하고 낳는 것이 고통이요. 수고가 되었습니다. 임신할 때 전에 없던 큰 고통이 생깁니다. 여자는 남편을 지배하고자 욕망하고 남편은 여자를 다스립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주도권을 행사하려고 싸웁니다. 부부싸움이 시작됩니다. 너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사랑하던 그들이 사랑이 사라졌습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던 그들이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인간의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갈등을 통해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계기가 됩니다.

 

(땅과 식물의 저주)

 

17절을 보십시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으로 인하여 땅도 저주를 받고 식물도 저주를 받습니다.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냅니다. 예수님이 가시면류관을 쓰신 것은 저주받으신 것입니다. 대표자가 죄를 지으니 그가 다스리는 것이 다 벌을 받습니다. 이때부터 토질, 수질, 대기 오염이 시작되었습니다. 땅에는 독초와 독버섯이 생겨났습니다.

 

(가난의 시작)

 

18,19a을 보십시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냅니다. 그들이 밭의 채소를 먹어야합니다. 그들은 과거 에덴에 있는 먹기에 좋고 보기에 아름다운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얼굴에 땀이 흘려야 식량을 얻습니다. 인간에게 가난이 시작되었습니다. 눈물로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난은 인류의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된 것입니다. 평생을 먹고 살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죽음의 시작)

 

19b를 보십시오.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뿐만 아니라 인간은 죽어서 육신이 흙으로 돌아갑니다. 영혼은 하나님께로 갑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로 가서 심판을 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는 둘째 사망을 당합니다. 영원히 고통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인간은 무의미, 허무함, 슬픔, 두려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질병과 노화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심판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이런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의 삶을 연장하여 회개의 기회를 그 만큼 주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보내실 예수님을 믿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는 새로운 몸을 입게 됩니다.

 

(산자의 어미가 된 이브)

 

20절을 보십시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 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놀라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아내 이름을 죽은 자의 어미라고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은 자의 어미라고 하지 않고 산자의 어미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은 지금은 죽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다시 생명을 얻을 것을 믿었습니다. 아담이 사형선고를 받은 순간에 어떻게 생명의 소망을 가졌을까요? 아담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다는 말씀을 영접하였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후손을 통한 회복)

 

다시 한번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인간이 뱀과 원수가 된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사단인 뱀과 친구이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뱀을 저주하며 여자의 후손이 와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머리통을 박살내고 승리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도 뱀의 후손에게 발꿈치를 물리는 고통을 당합니다. 뱀의 후손은 사단의 자식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사단의 후손에게 고통을 당하지만 여자의 후손이 사단의 머리를 부수어 사단을 멸하시고 승리를 주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원시복음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 가운데 메시야가 태어나서 인간을 구원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메시야를 받을 만한 때가 되면 메시야를 보내고자 기다리십니다. 여자의 후손은 단수입니다. 하나님은 한 명의 여자의 후손이 태어나 인류를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치 않는 자에게 먼저 그리스도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메시야가 여자의 후손에서 태어난다는 말씀은 이사야를 통해서 처녀의 아들로 태어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기를 낳을 것인데 그분이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메시야는 임마누엘로 오셔서 영원토록 인간과 함께 함께 해주십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십니다. 예수님은 사단에게 발꿈치를 물려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십니다. 예수님은 사흘만에 부활하여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오신 것이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은혜가 됩니까?

 

(그리스도를 통한 저주에서 해방)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저주가 사라지게 됩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땅도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저주를 사라지게 하십니다. 아담은 불순종하였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13절에는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은 나무에 달려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저주 받은 자는 미래를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어둡게 생각합니다. 불행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아담이 받은 저주에서 해방됩니다. 조상에서 내려오는 저주를 끊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에게 주십니다. 본래 범죄하기 전 아담이 받은 복을 우리가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두려움, 수치심이 사라집니다. 예수님 안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성도 회복됩니다. 질병과 슬픔과 가난의 저주도 사라집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각종 질병에 시달립니다. 새로운 질병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질병을 담당하여 주셨습니다.

이사야 534,5절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질병을 지고 가셨습니다. 우리의 슬픔도 가져 가셨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도 가져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질병이 왔지만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가난을 가져가셨습니다. 아담의 후손은 기근에 시달립니다. 항상 먹는 문제 경제 문제에 시달립니다. 예수님은 이런 가난을 청산하셨습니다.

고린도 후서 89절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창조주로 부유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평생 머리 둘 곳도 없이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인간의 섬김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가난하게 살며 섬김을 받으신 것은 우리로 부유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기 위하여 가난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부유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함께 하심)

 

하나님이 예수 믿은 자와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순간에 사단이 우리의 속에 들어왔습니다. 사단이 우리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슬픔과 두려움과 허무와 무의미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사단은 결국은 우리를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죽은 후에 영원히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으면 우리 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기쁨을 주십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모략과 재능을 주시고,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도우십니다. 서로를 사랑하게 도우십니다. 성령이 우리의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세상이 받은 심판에 대해서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주심)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아담은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22절은 말씀하십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우리가 왜 죽게 되었습니까? 우리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첫열매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에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있으면 우리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담으로 인하여 낙원을 상실했습니다. 우리는 저주 받은 땅과 식물과 동물이 있는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장차 에덴동산에는 다시 갈 수 없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새 하늘과 새 땅에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6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는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있고 예수님께 붙어 있는 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모두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구속의 씨 예수님을 통하여 에덴동산보다 더 좋은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되었습니다. 더 좋은 새 몸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를 회복시키는 것만이 아닙니다. 실패하기 전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실패를 제거할 뿐 아니라 실패하기 전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삼손은 사자가 공격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사자를 죽이고 그 속에서 꿀을 취했습니다. 특급품 비자목 바둑판을 들어보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일급품 비자목 바둑판이 금이 갑니다. 그런데 비자목의 유연성으로 다시 바둑판이 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처음보다 더 좋은 특급품 바둑판이 됩니다. 금이 간 것이 전화위복이 되어서 더 좋게 된 것입니다. 금이 간 것은 바둑판의 유연성을 증명하는 표시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사단의 공격으로 많은 것을 잃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보다 더 좋은 삶을 살게 됩니다. 아담은 이런 복음을 믿어서 자신의 아내를 하와 곧 산자의 어미라고 지었습니다. 아담은 최초의 신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복음을 영접한 아담과 아내를 사랑하셨습니다.

 

(희생적인 사랑)

 

2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은 아담이 입고 있는 무화과 나무 잎이 곧 마를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면 수치가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최초로 짐승을 죽여서 그 가죽으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에게 따뜻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희생적이고 따뜻한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짐승을 죽여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죽여 그 가죽으로 우리를 옷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의 수치를 영원히 가려주십니다.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심)

 

22-2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였습니다. 인간은 낙원을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덴을 없애지도 않으시고 생명나무 실과를 제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룹 천사를 두어서 생명 나무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왕이요 그리스도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소원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겸손으로 서로를 존경하고 믿어주고 소망하며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경외심을 갖고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과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멘!

창세기 3장 강해 원시 복음

말씀 창세기 31-창세기 324

요절 창세기 3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

창세기 3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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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창세기] 창세기 12장 강해 2부 아브람의 초기 신앙 생활 오요한 2005-05-15
10 [창세기] 창세기 12장 강해 1부 아브람의 꿈 오요한 2005-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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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창세기] 창세기 7장 강해 홍수 침례 오요한 2005-04-18
6 [창세기] 창세기 6장 강해 구원의 방주 예수님 오요한 2005-04-16
5 [창세기] 창세기 4장 강해,, ,5장 강해 가인과 아벨 오요한 2005-04-07
4 [창세기] 창세기 3장 강해 3원시복음 오요한 2005-04-01
3 [창세기] 창세기 2장 강해 에덴 동산을 만드신 하나님 오요한 200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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