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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갈라디아서 5장 강해 일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10-01 00:00:00
조회수 : 4,651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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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5장 강해 일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말씀 갈라디아서 5장 1-갈라디아서 5장 14절
요절 갈라디아서 5장 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갈라디아서는 자유의 헌장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구원을 받는데서는 율법의 무용론을 말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려야합니다. 크리스찬들은 할례를 받는데서 안식일을 지키는데서 자유를 얻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는데서 자유를 누립니다. 이런 모든 것은 구원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잘못하면 방종이 됩니다. 나는 자유를 누리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고 가르칩니다. 사랑 안에서 율법을 지키라고 합니다.

(자유를 주셨으니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셔서 죄의 값을 치러주시므로 죄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부활하셔서 사망 권세를 이기심으로 사망권세에서 자유를 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특히 사람들과 율법에서 자유했음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진리 되신 예수님을 알 때 우리는 참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얻었으면 자유를 지켜야합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굳건히 서서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합니다.
도스토에프스키의 카리마조프카의 형제들 중의 대심판관에 보면 재림하신 예수님을 심판합니다. 소설 속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자유를 주었지만 사람들은 방탕과 사치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너무 인간을 모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유를 주셨지만 서구에 얼마나 음란문화와 불법이 판을 치고 있습니까? 행위로 구원 받지않는 것이라고 하니 사람들은 마음대로 결혼하고 마음대로 이혼합니다. 각종 비리를 행하고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주일날 한번 회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각종 부정을 행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은헤를 주니 은혜가 죄악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은 인간은 자유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자유 대신 채찍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허랑방탕하게 사는 자에게 다시 율법주의가 찾아와서 그들을 노예로 삼아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굳게 서서 율법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합니다.

(율법주의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자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을 위해서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가 여러분에게 아무런 이익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강조합니다. 할례를 받는 사람은 율법 전체를 지킬 의무를 지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관계가 끊어졌고 은총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들은 구원받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허랑방탕하게 사는 것을 보고 율법주의가 찾아옵니다. 이들은 율법을 행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보라 믿음으로 사는 자들이 형편없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그들은 할례를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을 할례만 할뿐 아니라 다른 율법을 갖고 옵니다. 그들은 구약이 금한 돼지고기도 먹지 말아야하고 안식일도 철저히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요즘의 율법주의도 행위를 강조합니다. 주일에배를 절대적으로 지켜야 구원을 받고 십일조를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점점 더 많은 율법을 가지고 옵니다. 새벽기도도 해야 구원받는다고 하고 금식도 해야 구원받는다고 합니다. 가톨릭이 이런 점에서 타락하였습니다. 예전에 가톨릭은 우리가 고해성사를 해야 구원을 받고 면죄부를 사야 구원을 받는다고까지 하였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만으로 족하지 않고 그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주로 인용하는 말씀은 마태복음 7장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주여주여하는 자마다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영지주의 믿음을 경계하는 것이지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율법주의는 다른 모든 종교의 공통점입니다. 이슬람교나 유교나 불교는 모두 고행하며 율법을 지켜야 구원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자의 문제는 그렇게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면 율법을 다 지켜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결국 자유를 빼앗기게 되고 율법의 종이 됩니다. 예수님이 주신 자유와 은혜를 빼앗기게 됩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할례를 받았다든지 받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믿음을 갖고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완전히 바른 관계를 맺을 소망을 기다려야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예언을 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해야합니다.
요셉은 성령이 주시는 지도자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노예로 살기도하고 죄수로 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이 주시는 꿈을 꾸면서 참자유를 누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 가운데 자유의 율법을 지켜야합니다. 더 나가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자유롭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하는 일은 부담이 아닌 행복을 줍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율법을 지켜야합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서 14년 머슴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십사 년은 단 며칠 같았습니다. 그는 참자유를 누렸습니다. 우리가 자유를 잃고 부담을 느낄 때는 사랑을 잃었을 때입니다. 사랑을 잃으면 모든 것이 부담이 됩니다. 우리는 힘써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갈라디아 성도들이 전에는 그렇게도 믿음의 경주를 잘 달리고 있었는데 누가 그들을 가로막아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였습니까? 그들을 부르신 예수님이 그렇게 꾀었을 리는 없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의 신앙을 방해하는 율법주의자들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자유를 빼앗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믿음의 경주를 율법주의자들이 와서 방해하였습니다.
1회 올림픽 때부터 줄곧 약40km 정도의 코스를 달리던 선수들에게 갑자기 4회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약 2km의 덤이 더 붙었다는 통보가 왔습니다.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께서 윈저궁에서 출발을 보고 싶다고 하고 꼬마 메리 공주가 왕립 유치원에서 보고 싶다고 하면서 42.195km로 거리가 정해져 버렸습니다. 도란도 피에트리(Dorando Pietri) 23세의 이탈리아 청년은 39km 지점에서 열심히 달려서 40km를 충분히 일등하였습니다. 그러나 평상시 40킬로미터로 연습을 하여서 새로 더해진 2.195km는 지금껏 뛴 40km보다 몇배는 길어보였습니다. 그는 피로와 탈수 현상이 겹치면서 늘어지고 정신은 혼미하여졌습니다. 화이트 시티 스타디움에 도란도가 들어서자 7만5천의 관중이 일제히 환호합니다만 도란도는 트랙을 거꾸로 돌아 걸어갔습니다. 심판위원이 바른 방향을 손으로 가르쳐주자 멍하니 보던 도란도는 방향을 바꾸어 가다 골인 지점을 270m를 남기고 쓰러집니다. 관중들은 도란도를 도우라고 외치고, 급히 심판위원들이 몰려나와 도란도를 부축하여 골인지점까지 데려갑니다. 가는 동안에 네 번을 더 넘어졌지만 그때마다 계속 일으켜 세워서 우승을 합니다. 그러나 자력으로 완주하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금메달을 빼앗깁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살다가 이처럼 행위로 살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끝까지 은혜와 믿음의 신앙에 굳게 서야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덩이에 퍼집니다.)

9절을 보십시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율법주의자들은 적은 누룩과 같은 자입니다. 누룩은 적은 것이지만 빵 전체를 부풀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주의자들은 교회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까지 다 할례를 하고 행위로 살라고 도왔습니다. 악은 무서운 것입니다. 마치 잡초와 같습니다. 우리가 돌보지 않아도 잡초는 잘 자랍니다. 우리가 뽑아내도 어느 사이에 자랍니다. 그러므로 악은 뿌리 채 뽑아내야합니다. 고향 사람이라고 동문이라고 이단의 세력과 가까이 하다보면 우리도 물들어버립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주안에서 믿어줍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갈라디아 성도들과 함께 주님을 믿는 바울은 성도들이 다른 율법적인 생각을 품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또 성도들의 마음을 교란시키는 자는 그가 누구든지 간에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것을 주안에서 확신하고 믿어주었습니다. 주안에서 확신한다는 말은 바울의 인간관을 보여줍니다. 주님 밖에서는 믿을 수 없지만 주안에서 믿어줄 수 있습니다. 그들을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안에서 믿어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양들이나 자녀들을 볼 때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믿어줄 수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그들을 믿어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믿어주었지만 요동하게 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고합니다. 이들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할례를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전하였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핍박하는 자들입니다.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핍박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들과 타협지 않고 분명히 그들을 거절합니다.

(스스로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만일 바울이 여전히 할례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면 왜 바울이 지금까지 유대인에게 박해를 받겠습니까? 바울이 아직도 할례를 전하고 있다면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가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할례를 주장하여 성도들을 선동하는 자들은 그 지체를 아예 잘라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표피를 베어버리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자는 스스로 회개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을 쫓아내야합니다. 여기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단호해야합니다.

(사랑으로 종노릇해야합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성도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여러분의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서로 물어뜯고 삼키고 하면 피차 멸망할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유를 얻었으니 이제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합니다. 육체의 죄악된 소원을 따라서 살고자 합니다. 안일하고 방탕하게 지냅니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이들은 다시 죄의 종이 됩니다.
1945년 우리는 일제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유를 얻었다고 산에서 마음대로 벌목을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 아름드리나무가 많았는데 그때 우리나라 산이 민둥산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이렇게 방종하다 보면 다시 율법주의의 종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이제 자유를 얻었으니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전에 귀뚫은 종을 배웠죠? 자유를 주었으나 스스로 자유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인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자유를 반납하고 평생 종이 되는 종입니다. 주인 곁에 있는 것이 더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주님께 반납하고 주님의 종이 되어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를 사랑하며 종이 되어 섬겨야합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며 살면 정말 자유롭습니다. 종이 되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자신을 무시해도 자유롭습니다. 종이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종이 되어야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멍에를 메야 자유를 지속적으로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9,30절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멍에를 메면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멍에를 메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물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연이 연줄에 매였을 때 자유를 얻습니다. 우리가 결혼하면 한 사람에게 매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멍에를 메야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종이 되어야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서로를 종노릇하며 섬기며 살아야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서로 사랑의 종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나 서로 물고 뜯으면 피차 망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강해 일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말씀 갈라디아서 5장 1-갈라디아서 5장 14절
요절 갈라디아서 5장 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
갈라디아서 5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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