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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13장 강해 하나님의 사랑은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01-06 00:00:00
조회수 : 3,472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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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3장 강해 하나님의 사랑은-

말씀 고린도전서 131-고린도전서 1313

요절 고린도전서 134

 

오늘 말씀에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나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 나옵니다. 한자어에 아버지라는 단어가 네 가집니다. 자신의 살아있는 아버지는 엄친,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선친, 남의 살아계신 아버지는 춘부장, 남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선대인이라고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헬라어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네 가지가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사랑에는 공통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먼저 에로스는 이성적, 육체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남신 에로스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제가 에로스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알려고 검색을 해보니 19세 인증을 해야 볼 수 있었습니다. 그와 같이 에로스는 성인 남녀들이 하는 사랑입니다. 에로틱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는데 이는 성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에로스는 사춘기를 지나면서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사랑입니다. 유행가에서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대답할래요. 말할 때 사랑은 에로스의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과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은 공통점도 있지만 분명히 서로 다른 면도 있지요? 부모님이 자식을 사랑하는 사랑도 에로스의 사랑처럼 본능적인 사랑입니다. 부모님들은 아시겠지만 부모가 되면 그냥 자녀들이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그냥 마음이 끌립니다. 어머니의 경우는 더 강하지요. 하지만 이런 사랑이 남녀 간의 육체적인 사랑은 분명히 아니죠? 부모의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이 아닌 정신적인 사랑입니다.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은 스톨게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런 스톨게적인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하지만 쌍방적인 사랑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관객 천만을 돌파한 친구라는 영화를 보면 준석이와 동수의 우정이 나옵니다. 둘은 서로 다른 조직의 행동대장입니다. 서로 다른 조직에 속했기 때문에 서로 싸울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친구이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한다는 내용입니다. 마지막에는 죽은 친구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감옥에 들어간 준석이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이런 사랑은 분명히 부모의 사랑과 다른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필레오라고 합니다.

오늘 성경에서 나온 사랑은 앞에서 말한 그런 세 가지의 사랑과 구분되는 사랑입니다. 고통이 수반되고 절제가 필요한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랑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수준 높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스어로는 이런 사랑을 아가페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본문 말씀을 이성적인 사랑이나 부모나 자식 간의 사랑이나 친구들과의 사랑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사랑과 공통된 점이 있기도 하지만 그런 사랑과는 전혀 다른 사랑입니다. 오늘 말씀을 하나님의 사랑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어떤 사랑인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이 없으면 시끄럽다)

 

1절을 보십시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합니다. 사람의 방언은 외국어를 말합니다. 요즘에 영어공부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토플 토익 점수를 많이 받으면 취업에 유리합니다. 한 여학생이 단국대 법학과를 졸업하였습니다. 그분은 일 년간 외국에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토익 940점을 맞았습니다. 그분은 환경관리공단에 취업을 하였습니다. 천안 단대 법학과를 나오고 공사에 취업하는 것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일입니다.

순복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방언의 은사를 자랑합니다. 천사의 말은 아름답고 감미롭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의 좋은 소식을 전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이런 외국어 실력과 방언과 천사의 말이 울리는 꽹과리처럼 시끄러운 소리라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해롭다는 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안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요셉은 예언하는 능이 있어 칠년 후에 풍년이 들고 칠년 후에 흉년이 든다는 것을 알아 총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식이 언제 올라가고 언제 떨어지며 환율이 언제 올라가고 떨어지는지를 안다면 큰 부자가 될 것입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이병철 정주영씨 같은 분은 산을 옮길만한 큰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서산 방조제를 가면 정주영씨가 서산 간척지를 만든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다를 막는다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주영씨는 폐선(못쓰게 된 배)를 그곳에 침수시켜서 바다를 막아 간척지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믿음은 멋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큰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큰 일이 아무 가치가 없다고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유익이 없다)

 

3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요즘에 구제를 많이 합니다. 북한이나 아프리카에 구제하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특히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 사람들은 감동을 줍니다.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에서 자신을 불사르게 내어준 사신의 이야기는 감동을 줍니다.

소대원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던져 폭탄에 덮쳐 죽은 강재구 소령의 이야기는 감동을 줍니다.

천안단국대에 가면 광주는 살아있다고 외치며 분신자살한 한 학우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런 것은 감동을 줍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자신에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고 의미 있게 하고,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영어점수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업에 성공하기를 바라고 많은 양들을 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고 희생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병고치는 은사를 받아서 다른 사람을 돕기 원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여 해야 합니다. 사랑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아름답게 하고 유익하게 하고 가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오래참고)

 

4a을 보십시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을 처음으로 정의하는 것이 오래 참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래 참는다는 말은 킹제임스 성경에는 longsuffering이라고 나옵니다. 오랫동안 고통을 대신 당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오래 참으시고 온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성창하기까지 이십오 년을 오래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혈기가 없어지기까지 사십 년을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기까지 오래참고 기다리셨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예수님은 빨리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coming soon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도 오지 않으십니다. 개봉박두해놓으시고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개봉을 하지 않으십니다. 왜 그렇게 안 오실까요? 예수님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서 재림하실 것을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

한 톨의 씨는 썩기까지 오래 참습니다. 포싹 썩기까지 참습니다. 오래 참다가 중간에 포기하면 지금까지 참은 것이 소용없습니다. 끝까지 참아야 씨가 죽은 곳에서 싹이 나옵니다. 오래 참는 것은 고통을 죽기까지 참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오래 참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참으셨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온전히 죽기까지 참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겠다는 사람들의 말을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오래 참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머니는 자녀를 열 달 동안 뱃속에 넣으시고 참으십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을 때 해산의 고통을 참으십니다.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기까지 참으십니다. 요셉은 형들을 사랑하여 형들이 변화되기까지 오래 참고 고통을 대신 당하였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이성 간에도 사랑한다면 고통스러워도 결혼하기까지 육체적인 관계를 갖지 않고 참을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부부를 사랑한다면 지금의 모습을 보지 않고 변화되기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양들을 사랑한다면 변화되기까지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어야합니다.

 

(온유하며)

 

하나님은 오래 참으실 때 온유하셨습니다. 온유는 한자어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영어성경에는 kind로 친절한 마음입니다. 오래 참다가 거칠게 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혈기를 부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면서도 온유함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는 혈기가 많은 레위지파의 사람입니다. 그는 애굽 사람을 쳐서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40년간 광야 생활시키셨습니다. 모세를 온유한 자로 빚으셨습니다. 모세는 200만 백성들의 불평과 비판과 죄악을 오래참고 감당하였습니다. 가까이 있는 누나나 형의 비난도 참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모세를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보다 더 온유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시기하지 않으며)

 

4b을 보십시오.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여 배 아파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형제는 형제가 잘 되면 시기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식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잘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잘되는 것을 기뻐하고 상대방이 못되면 같이 아파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요셉의 형들은 변화된 후에 동생 베냐민을 사랑합니다. 동생에게 음식을 다섯배를 주었는데 함께 기뻐합니다. 베냐민이 옥에 긷히자 함께 슬퍼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자랑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상대방에게 명예를 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되심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리스도가 되심을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디를 가나 베드로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나는 너희의 자랑이 되고 너희는 나의 자랑이 되기를 원한다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무영의 제일과 제일장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농촌에서 일하고 아들은 도시에서 학교를 나오고 신문사 기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결혼식 날 아버지가 오자 자신의 집 머슴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은 가난하고 무식한 농부일지라도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입니다.

링컨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링컨이 국회에서 대통령 연설을 하는데 한 의원이 자신의 구두를 벗어들고 흔들며 이것이 당신의 아버지가 수선해준 구두라고 하였습니다. 구두수선공의 아들이라고 무시하였습니다. 링컨은 눈물을 흘리며 내가 아버지에게 구두 수선 일을 배웠으나 아버지의 솜씨에는 못 따라갑니다. 혹시 구두 신다가 헤어지면 가져오십시오. 제가 수선해드리겠습니다. 링컨은 구두 수선공 아버지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하였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사랑한다면 나는 너의 남편이고 아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녀는 부모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양들은 목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목자는 양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교만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교만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체이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낮추시고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람과 같이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진정한 겸손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으로 오셔서 인간을 상전처럼 받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종처럼 낮아져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피출부처럼 낮아지셔서 제자들의 식사를 섬기셨습니다.

사랑은 겸손히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기시고 보상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섬기시는 것 자체로 즐거움을 삼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섬겨주셨습니다.

 

(무례히 행치 않고)

 

5a절을 보십시오.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예의를 지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행동합니다. 예의를 지켜서 결혼하고 장례식을 치르고 추도 예배를 드립니다.

옷을 입는 것도 예의를 지킵니다. 차를 타고 내리는 것도 예의가 있습니다. 말하는 것도 예의 있게 합니다. 버스나 전차를 탈 때도 다른 사람을 배려합니다.

밥을 먹을 때도 소리내어 먹지 않습니다.

로마의 백부장은 예수님께 예의를 지켰습니다. 유대인인인 예수님이 이방인인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말씀만 해서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예의를 지키는 것은 때로는 피곤합니다. 그래도 사랑하면 예의를 지킵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예의를 지킵니다.

예의를 지키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대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대하실 때 매우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범죄한 후에 찾아오셔서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가인이 살인할 때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다윗이 범죄했을 때 비유적으로 죄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세 번이나 인격적으로 그리고 암시적으로 그가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에게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에 워킹맘이라는 드라마를 즐겨 봅니다. 연하의 남편 봉태규는 연상의 아내 염정아에 대한 예의가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봉태규는 아내가 입덧을 하여 고통할 때 술 먹고 늦게 들어옵니다. 먹고 싶다던 순대 한번 사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직장 동료인 류태준은 염정아에 대한 배려가 있고 예의가 있습니다. 염정아가 일을 하다가 피곤하여 쓰러지자 그녀를 배려해 줍니다. 편션으로 데리고 가서 푹 쉬도록 하고 토스트를 구워서 대접합니다. 염정아는 류태준의 섬김을 받으며 자신이 남편에게 이런 사랑의 백분의 일만 받았더라도 이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펑펑 웁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알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면 인격적으로 대합니다. 양들을 사랑하면 양들을 배려하여 인격적으로 대합니다. 무례하게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푸시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입니다. 먼저 자신의 유익을 구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상대방의 유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다음에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고 다음에 자신의 유익을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이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내지 아니하며)

 

사랑은 성내지 않습니다. 감정적인 분노를 부리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화를 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존심이 상했다고 화내지 않습니다. 화를 자주 내는 사람은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화쟁이는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5b에서 6절을 보십시오.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이제 하나님의 사랑은 더 높은 단계로 나갑니다. 생각까지 바뀝니다. 사랑은 일을 하는 동기를 다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사랑은 생각까지 변화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생각합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선한 것을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고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기쁨과 슬픔도 변화됩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지만 불의를 보면 분노합니다.

비누하스는 이방여인과 간음하는 자를 보았습니다. 그는 창으로 그들을 찔러서 하나님의 분노로 분노하였습니다.

레위지파는 동족들이 송아지 우상을 섬기고 회개하지 않을 때 그들에게 분노하여 칼로 쳐서 3000명을 죽였습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사랑은 진리 되신 하나님으로 기뻐하십니다. 제자들은 전도 여행을 나갔다 왔을 때 귀신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귀신이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세상적인 것으로 기쁨을 삼지 않습니다. 진리되신 하나님으로 기뻐합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고 나서 사무엘의 탄생으로 기뻐하지 않고 여호와로 기뻐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아기 예수를 잉태하고 나서 나의 영혼이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인본적인 사랑은 상대방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너는 내 기쁨이라고 말하라고 가르칩니다. 이 말은 맞는 말과 같지만 사실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너는 내 기쁨이라고 말했는데 나중에는 너는 내 슬픔이라고 말합니다. 너는 내 소망이라고 말했는데 나중에 실망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상대방 때문에 기뻐하지만 전제가 붙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상대방 때문에 기뻐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을 생각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행복해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쁨으로 들리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7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앞에서는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래참는 것은 사랑의 참는 정도를 말합니다. 죽기까지 참는 것입니다.

이제는 참는 범위를 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가룟유다는 군병들을 끌고 와서 예수님을 잡고자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칼을 빼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었습니다. 예수님은 창을 꽂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얼굴에 침뱉는 것도 참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는 것도 참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말도 참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믿으며)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사랑은 믿어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고 밥을 줍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그의 행동을 깊이 신뢰하여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허물과 실수가 많았습니다. 두 번이나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첩을 얻어 서자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어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사명을 버리고 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모든 것을 믿어주었습니다. 그를 위하여 해변에서 파티를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바라며)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사랑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에서 소망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하고 회개하지 않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죄악되지만 그들이 훈련 받으면 메시야의 나라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므로 고난 중에서도 더 큰 소망을 갖습니다.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람은 오래 참는 것으로 시작하여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에는 여러 가지 고통이 따릅니다. 사랑하면 그 모든 고통을 참을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내적 외적 고통을 참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기까지 아픔을 참아냅니다.

 

(절대적인 사랑)

 

이 말씀에 보면 모든 것이라는 단어가 네 번 반복되어 나옵니다. 모든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고난도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어떤 죄악 가운데 있더라도 하나님 안에서 상대방을 믿어 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갖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악조건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절대적입니다.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8-11절을 보십시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사람들은 예언이나 방언의 은사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돈과 명예와 쾌락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은 잠시 있다가 없어집니다.

이는 우리가 어렸을 때 말하는 것이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아이와 같다가 장성하여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은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까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때는 온전히 알리라)

 

1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지금은 구리거울로 보는 것같이 하나님을 희미하게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가면 그때에는 하나님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부분적으로 보나 천국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는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그러면 부분적인 지식은 다 사라집니다. 모든 은사는 다 사라집니다. 이 세상에서 자랑하는 것은 다 사라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없어지지 않는 한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이 제일이라)

 

13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믿어주고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보다 제일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 안에 믿음이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믿어줍니다. 사랑 안에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사랑의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

 

4-7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여기에 사랑은 대신에 예수님의 이름을 넣어서 읽어보겠습니다. 다음으로 나의 이름을 읽어서 읽어보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은 자연스럽지만 나의 이름은 약간 자연스럽지 않지요?

우리가 에수님 안에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입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예수님의 수준까지 사랑이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와 높이와 깊이를 알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13장 강해 하나님의 사랑은-

말씀 고린도전서 131-고린도전서 1313

요절 고린도전서 134

고린도전서 13장 강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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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2장 강해 이부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 오요한 2008-08-10
19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2장 강해 일부 성령의 은사들 오요한 2007-11-24
18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1장 강해 2부(17-34) 나를 기념하라 오요한 2007-02-26
17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1장 강해 일부(11:1-16절 ) 남자와 여자의 관계 오요한 2007-02-18
16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0장 강해 2부( 14-33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오요한 2006-10-01
15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10장 강해 1부(10:1-13) 역사의 거울 오요한 2006-09-24
14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9장 강해 2부 모든 사람의 종이된 바울(9:19-27) 오요한 2006-07-30
13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9장 강해 1부 바울의 자랑(9:1-18) 오요한 2006-07-24
12 [고린도전서] 고린도전서 8장 강해 지식과 사랑 오요한 2006-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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