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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12장 강해 이부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8-10 00:00:00
조회수 : 3,609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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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2장 강해 이부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

고린도전서 1212-고린도전서 1231

요절 고린도전서 1212

 

고린도 교회는 은사를 비교하고 다른 사람의 은사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분열을 만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은사가 다양하고 그 은사가 통일 되어 있음을 몸에 비유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을 인정하여 은사를 통해서 아름다운 하나의 교회를 만들어야합니다.

 

(한 몸과 여럿의 지체)

 

12절을 보십시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사도 바울은 은사를 몸의 지체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사람은 머리와 몸통과 팔다리가 있습니다. 얼굴에는 눈과 코와 귀와 입이 있습니다. 이것이 조화를 이루어서 한 몸이 됩니다. 이처럼 다양한 은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통일을 이루어 한 몸 그리스도를 이루게 됩니다. 유진 피터슨은 영성은 강물이라고 합니다. 강물은 여러 물이 모여지는 것입니다. 다양한 은사가 생수의 강이 되고 은혜의 바다가 됩니다.

 

(한 성령의 세례)

 

1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때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성령 세례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령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이루는 지체들이 되었습니다.

여러 악기는 다양한 음을 냅니다. 그 음이 모여서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음을 냅니다. 영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성은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기도와 찬양, 음식을 섬김과 차량 봉사등의 영성이 있습니다.

은사란 무엇입니까? 일반적으로 말하면 은사는 값없이 받는 선물입니다. 신학적으로는 우리가 예수님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은사는 우리가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은사를 몸에 비유하여 말합니다.

 

(은사의 다양성)

 

14절을 보십시오.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우리 몸은 하나이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 지체를 가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 예수님을 믿지만 여러 가지 은사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은사가 다양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지체는 다 다르고 똑같은 것이 없습니다. 왼손과 오른 손도 다르고 왼쪽 눈과 오른 쪽 눈이 다릅니다. 사람이 많고 은사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똑같지 않은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에디슨에게 진흙 한 덩이와 한 덩이를 더하면 얼마냐 물었습니다. 에디슨은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에디슨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에디슨을 포기하였습니다.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너는 다르기 때문에 틀렸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너는 다르기 때문에 너의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위로해 주어야합니다. 우리는 똑같아 질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나누어 주십니다. 우리는 이런 다양성을 깨달아야합니다. 다양성 속에서 나의 사명이 있고 나의 가치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은사의 개념을 철학적으로 확장하면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독특함, 상대의 장점, 공동체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많은 국가가 있고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쟁하고 정복하게 됩니다. 나의 가치와 다른 사람의 가치를 조화롭게 인정할 수 있어야합니다. 이것을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이라고 합니다.

 

(지체의식의 중요성)

 

15,16절을 보십시오.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여기서 몸은 우주적인 교회를 의미합니다. 몸은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예수 믿은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을 이루는 한 지체가 됩니다. 우리는 내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체의식을 가져야합니다. 나는 전체 몸에 속한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야합니다. 통일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각 지체는 몸에 순종해야합니다. 몸에 헌신해야합니다. 몸에 순종할 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효과적인 하나님의 백성으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부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체의 유익을 위해서 쓰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나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것이 나의 소망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을 때 나는 그리스도가 받은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가 되어 세상을 향하여 사자처럼 포효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지체는 동등하다)

 

17-20절을 보십시오.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우리는 서로 다른 지체들입니다. 우리의 지체는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지체는 다양합니다. 다 눈이 아니고 다 코가 아니고 다 귀가 아닙니다. 우리는 획일성을 추구하지 말고 다양성을 인정해야합니다.

어떤 분은 찬양의 은사는 안 주시고 말씀의 은사만 주셨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입니다. 왜 어떤 부분은 손이 되고 어떤 부분은 머리가 되고 어떤 부분은 발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뜻대로 하신 일입니다. 누구는 오래 살고 누구는 부유하고 누구는 남자가 되고 누구는 여자는 되어야 하느냐는 것은 다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나는 왜 저 사람과 같이 되지 않았느냐 불공평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는 베드로는 요한에게 저 사람은 어떻게 되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올 때 까지 그를 머물러 줄지라도 무슨 상관이냐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발가락이 기도하였습니다. 나는 왜 발가락이 되게 하셨어요? 나도 눈이 되게 해주세요. 기도했습니다. 하도 요청하여 발가락에 눈을 달아주었습니다. 발가락에 눈을 달아주어도 발가락은 양말을 신고 신을 신기 때문에 볼 수 없습니다. 발가락이 왜 나에게는 불공평합니까?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발가락에게 주어진 은사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의 은사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보람과 가치와 영광이 있습니다. 지체는 서로 동등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라고 하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존중해야합니다. 내가 볼 때는 몰라도 전체의 몸의 입장에서는 서로 동등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것이 지체의 상대성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가치를 인정해야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라)

 

21절을 보십시오. “또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지체는 서로 존중해야합니다. 눈이 손더러 너는 보지 못하니 너는 쓸 데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머리가 발더러 너는 매일 땅만 밟고 다니니 쓸 데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서로를 쓸데없다고 하는 것이 교만입니다. 우리는 너는 쓸데없다는 교만을 버리고 나는 능력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야합니다. 나의 능력을 찾고 다양성 속에 일치를 추구해야합니다. 그때 교회는 건강하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지체 균등의 원리)

 

22-24절을 보십시오.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약하게 보이는 것이 더 요긴한 것이 있습니다. 눈과 같이 약한 것이 몸에는 아주 요긴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더 아름다움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은 것은 더 아름다운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 몸에 변화를 주고 매력 포인트를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머리카락입니다.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두뇌를 꾸미지 않습니다. 머리카락을 꾸밉니다. 눈썹 손톱 머리카락을 장식합니다. 손가락 가운데 용도가 떨어지는 것에 반지를 낍니다. 지체 하나하나를 소중히 가꾸려는 본성이 있습니다. 이것을 지체 균등의 원리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연약한 자도 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서로 격려하는 삶)

 

25절을 보십시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은사가 다르다는 것 때문에 갈등을 합니다.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분쟁해서는 안 됩니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사랑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지체끼리의 사랑)

 

26,27절을 보십시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한 지체가 잘 해서 영광을 받으면 다른 지체도 영광을 받습니다. 다리가 잘해서 마라톤에 우승하면 머리에는 월계관이 쓰여집니다. 신문에는 마라톤할 때 별로 고생하지 않은 얼굴이 나옵니다. 지체는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를 돌보며 나가야 합니다. 자주 다른 교인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지체의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진정한 지체라면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통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될 때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같은 지체를 비판하지 말고 서로 사랑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들)

 

2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바울은 은사를 순서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은사는 열두 사도의 은사였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게 주신 은사입니다. 교회의 기초가 되는 은사입니다. 요즘에 와서는 교회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주신 은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존웨슬리, 마틴 루터, 칼빈, 빌브라이트,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같은 분들입니다.

다음은 선지자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여 현실에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은사입니다. 지금의 목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입니다. 모세와 같이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고 바위에서 샘물나게 하는 자입니다.

다음은 병 고치는 자입니다. 엘리사는 문둥병을 고쳤습니다. 베드로는 중풍병자를 일으키고 앉은뱅이를 일으켰습니다.

다음은 서로 돕는 자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큰 은사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돕고 마가를 도왔습니다.

다음은 다스리는 장로들입니다. 다음에는 방언하는 자들입니다.

마지막에는 방언 하는 은사, 방언 통역하는 은사입니다.

 

(나의 은사를 찾아라)

 

29-30절을 보십시오.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우리는 서로 간에 다양한 은사를 존중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의 은사를 비교하거나 시기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알맞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나는 나입니다. 나에게 주신 은사를 불일 듯 해야 합니다.

 

(더 큰 사랑의 은사)

 

31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바울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13장에서 사랑을 말합니다. 최고의 은사는 사랑의 은사입니다. 우리는 모든 은사를 은사되게 하는 사랑의 은사를 받아야합니다. 사랑의 은사는 모든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은사입니다.

 

(아름다운 교회)

 

결론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은사를 극대화 하고 다른 사람의 은사를 인정하여 하나 되는 아름다운 교회를 만들어야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강해 이부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

고린도전서 1212-고린도전서 1231

요절 고린도전서 1212

고린도전서 12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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