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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11장 강해 일부(11:1-16절 ) 남자와 여자의 관계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02-18 00:00:00
조회수 : 3,296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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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1장 강해 일부 남자와 여자의 관계

말씀 고린도전서 111-고린도전서 1116

요절 고린도전서 113절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교회의 분열 문제, 교회 내에서 음행 문제, 교회 안의 우상의 제물 먹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11장에서 14장까지는 교회의 질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첫 말씀으로 남자와 여자의 질서 문제를 돕고 있습니다.

이 시대 지도자들의 리더십 문제는 심각합니다. 지도자들이 과거는 인권을 유린했고 요즘은 무능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들이 과거는 폭행과 무능으로 여자를 괴롭혔고 지금은 남자들이 고개를 숙인 채 권위를 잃고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무엇일까요?

 

(나를 본받으라)

 

1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우리는 누구를 본받으라고 하든 하지 않든 누구를 본받기 마련입니다. 특별히 부모님이나 목자님을 본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본받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영이시므로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추상적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아주 구체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보다 실제적으로 사람들을 본받습니다.

이런 면에서 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이유도 우리의 본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배우는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일본의 성자하면 가가와도요이코를 말합니다. 그는 일본 천황에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불려갔습니다. 천황은 예수님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었습니다. 가가와도요이코는 예수님은 내 모습을 닮았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의 말은 매우 교만한 것 같지만 우리는 그와 같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든지 예수님이 내 모습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만큼 우리는 나를 통해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그 자세를 본받으라고 말해야합니다.

 

(말씀과 유전의 관계)

 

2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사도 바울은 자신을 기억하고 바울이 전하여 준 그대로 유전을 지킨 것에 대해서 칭찬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은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성경 말씀처럼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추상적입니다.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이 유전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정해진 법이 있고 전통이 있습니다. 이것은 목자들에 의해서 정해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새벽기도를 합니다. 술과 담배를 금합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유전입니다. 우리 유비에프는 소감 쓰는 유전, 일대일하는 유전이 있습니다. 믿음의 결혼하는 유전입니다. 이는 좋은 믿음의 유산입니다. 이런 유전을 지키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유전은 어디까지든지 말씀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이런 유전이 말씀보다 앞서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적입니다. 유전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서 언제든지 변하는 것입니다. 말씀이라는 몸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유전이라는 옷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유전을 절대시하다 말씀을 폐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서 손을 씻으라는 유전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말씀을 소홀히 여겼을 때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책망하였습니다. 부모님보다 하나님을 더 섬긴다는 고르반이라는 유전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유전을 지키되 말씀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유전을 지켜야 합니다.

 

(너울 쓰는 유전)

 

이런 상대적인 유전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너울을 쓰는 것입니다. 너울은 쓰는 유전은 우리 시대에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울을 쓰는 유전을 만들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너울을 쓰라는 유전에 주목하기보다 왜 이런 유전을 만들었는지, 이 유전의 기초가 되는 말씀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머리와 몸의 관계)

 

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바울은 연쇄법을 써서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여자가 남자를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동하시지만 순종함으로 권위를 인정해 드렸듯이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지만 순종함으로 권위를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머리와 몸의 관계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선 머리와 몸은 서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관계입니다. 머리 없는 몸은 없고, 몸이 없는 머리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자 없는 남자는 없고 남자 없는 여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남자는 여자를 인정해야 하고 여자는 남자를 인정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머리와 몸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머리와 몸이 서로 떨어지면 죽음입니다. 서로 연결되어야 생명이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자는 남자를 인정하고 여자는 남자를 인정해야 건강한 생명이 있는 가정과 교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몸과 머리는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역할이 서로 다릅니다. 머리는 주로 판단하고 추리하고 상상하는 역할을 합니다. 몸은 그런 머리의 방향을 따라갑니다. 그렇다고 머리가 몸의 상태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머리는 어디 손이 아프든지 발이 아프든지 그 모든 것의 반응을 받아들여서 결정합니다. 머리는 몸이 할 수 있는 명령을 내립니다. 머리는 몸을 위하여 결정합니다. 몸은 머리의 방향을 존중하고 따라갑니다.

마찬가지로 남자는 여자의 상태를 잘 알고 이해해야 합니다. 여자의 의견을 존중하여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 후에 방향을 주어야 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권위를 존중하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남자는 여자의 영광)

 

4-6절을 보십시오.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

 

남자는 머리에 쓰는 것이 욕된 것이요. 여자는 머리에 벗는 것이 욕된 것이요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당시 시대 배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머리를 기르지 않고 깎는 사람은 창녀나 노예였습니다. 따라서 당시에 여자가 머리를 깎는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여자는 머리를 기르는 것이 지금도 그렇지만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당시에 여자가 머리를 기르는 것은 결혼하여 여자가 남자를 머리로 삼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이 영광스럽듯이 여자가 남자를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자가 머리를 깎는 것이 부끄럽듯이 여자가 남자를 머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만약 머리가 몸이 되고 몸이 머리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 사람은 물구나무서서 머리로 걸어다니는 사람입니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는 얼마나 불편합니까마찬가지로 여자는 남자를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요. 아름다운 것이요.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이요. 부끄러운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머리로 인정하는 것은 바로 여자를 위한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몸으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남자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머리와 몸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사랑하고 순종해야합니다. 머리와 몸이 하나이듯이 여자와 남자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여자가 너울을 써야하는 이유)

 

7절을 보십시오.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너울은 여자가 눈만 내어놓고 얼굴을 온통 뒤집어쓰는 것입니다. 이는 남자가 자기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보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자는 자신의 남편만이 자신의 얼굴을 보게 하기 위해서 너울을 썼습니다. 여자는 자유롭게 남자의 얼굴을 감상할 수 있지만 남자는 자신의 아내만 보게 하였습니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매우 연약합니다. 너울은 여자를 차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자를 보호하는 것이요, 남자의 조망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너울을 쓰게 하여서 남자들이 다른 여자를 보지 못하게 하고 다른 여자에게 바람을 피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아내만을 사랑해야지 다른 여자를 보고 바람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영광은 아름다움입니다.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므로 남자는 여자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남자가 아내를 사랑할 때 여자는 아름다워집니다. 아내를 인격적으로 존중히 여겨야 여자는 행복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왕비처럼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황공주와 같이 대해 주어야 합니다. 남자는 자신의 아내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자도 자신의 남자에게만 잘 보이려고 해야지 다른 남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가정이 행복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질서)

 

8,9절을 보십시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사도바울은 창세기 말씀을 통하여 남자와 여자의 질서를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먼저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남자가 동물들의 이름을 짓고 있을 때 남자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자를 돕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돕도록 만든 것이 아니고 여자가 남자를 돕도록 만들었습니다.

 

(남자의 권위 아래 있는 여자)

 

10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위에 둘지니라.”

 

여자는 남자의 권위를 인정해야합니다. 권위라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많이 합니다. 권위를 가진 사람은 풍자나 희화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밑에 있는 사람은 권위를 끌어내리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권위를 비꼬면서 통쾌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질서를 인정하는 것이요. 질서가 있을 때 자유가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권위를 인정해야 하는 것이 많습니다.

법의 권위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법의 권위가 인정되어야 나라가 안정되고 마음 높고 살 수 있습니다. 법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나라가 혼란해지고 범죄자가 늘어납니다. 마음 놓고 거리를 다니지도 못합니다. 의사의 권위가 인정될 때 수술을 할 수 있고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의 권위가 인정될 때 나라가 안정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는 혼돈 상태에 빠지고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합니다. 이는 이라크에 권위가 무너졌을 때 끊임없는 테러로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무정부상태는 무서운 것입니다. 독재보다 무서운 것이 무정부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못된 권위라도 인정해야합니다. 시력에 맞지 않더라도 안경을 쓰는 것이 안경을 쓰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으면 아이들은 버릇이 없이 자랍니다. 옛날에 과부의 자식처럼 버릇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권위 없이 사랑만 받고 자란 자녀가 버릇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사랑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권위도 중요합니다.

이런 것을 안다면 아내들은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말이 무서운 줄 알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말을 해도 무시하는 자녀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와 같습니다. 통제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담임목사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목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말씀의 은혜를 받기 어렵습니다. 생명의 역사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어느 교회가 목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평등한 교회를 만들고자하였습니다. 말씀도 돌아가며 똑같이 전하자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 모임은 다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사단이 활개를 쳤습니다. 생명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목자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학생은 선생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어느 학생이 중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심하게 대하는 교사를 만났습니다. 그 후부터 그는 교사에 대해서 불신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학생은 성적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학교 생활은 엉망이었습니다. 이처럼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만 손해입니다.

 

(십자가의 권위)

 

남자가 자신의 권위를 남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권위를 남용하면 이로 인해 피해가 큽니다. 권세자는 권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사리사욕을 취하기 쉽습니다. 탐관오리가 나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들은 권위를 이용하여 국민을 수탈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그렇습니다. 남자들도 자신의 권위를 이용하여 여자를 종처럼 부려먹었습니다. 온갖 일을 시키고 구타를 일삼고 노름하고 오입질하고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여자들은 한이 맺혔습니다. 이런 한으로 남자의 권위를 부정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역사의 모순이 있습니다. 남자의 권위를 인정하면 남자가 권위를 남용하여 약자가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렇다고 권위를 부정하자 사회적인 혼란이 왔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합니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잘못된 권위도 인정하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였습니다. 이는 억울한 것입니다. 악과 싸우지 않으면 오히려 악을 묵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심판을 하십니다. 하나님이 권세를 주셨기 때문에 권세를 잘못 사용하면 하나님이 권세자를 친히 심판하십니다.

다윗이 위대한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사울을 대하였습니다. 사울은 악으로 인하여 다윗을 죽이고자 하였지만 다윗은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것은 다윗이 주님을 경외하듯이 악한 사울도 경외한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우리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엘리 제사장이 기도하는 것을 술 취했다고 하여도 하나님처럼 경외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사무엘도 엘리의 말에 절대 순종하였습니다. 새벽에 여러 번 반복하여 불러도 절대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엘리는 죄악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목이 부러져 죽었지만 순종한 사무엘은 귀히 쓰임 받았습니다.

 

(남편의 권위)

 

아내들은 남편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남편이 자신과 가족을 책임집니다. 가정의 질서가 생깁니다. 믿음이 없는 남편이라도 주안에서 순종해야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숙녀 전도사는 바람 피우는 남편을 인정하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때 남편이 변화되어 목사가 되었습니다. 대전의 최폴린 사모님은 남편인 최요한 목자님을 인정하고 순종하였을 때 친히 배제대에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남편이 잘못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남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불평들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섬기는 권위)

 

11,12을 보십시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남자에게서 여자가 났습니다. 그러나 남자도 여자를 통해서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도 여자를 무시하지 말고 여자도 남자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자의 권위는 권위적일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권위는 섬김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권위는 먼저 상대방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희생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책임져야 합니다. 상대방이 잘 되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권위입니다.

남자에게 권위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남자의 권위를 심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나라에서 남자들의 평균수명이 여자보다 오년정도 짧습니다. 남자들이 사건 사고가 많습니다. 이는 남자들이 권위를 잘못 행사할 때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신 것입니다.

남자들은 하나님 무서운 줄 알고 자신의 권위를 함부로 남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진 하나님을 바라보고 겸손히 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책임을 지고 가정을 이끌어야 합니다.

엘리나 사울을 심판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를 알고 남자들은 겸손해야 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은 연약한 여자들을 많이 위로해주셨습니다. 사실 인물 심포지움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머니의 영향을 받고 어머니를 존경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많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여자들을 위로하시고 상을 주신 것입니다.

 

(남자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13-1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결론적으로 남자는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바울은 남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냐? 남자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하면 반문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남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욕된 것입니다. 이는 본성이 가르치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남자의 권위를 변론하지 말라)

 

16절을 보시오.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그래도 남자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변론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다고 변론에 못을 박고 있습니다.

이 시대 성서적인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남자와 여자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역할을 인정해야 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섬기고 사랑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여자는 남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바로 서게 될 것을 믿습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11장 강해 일부 남자와 여자의 관계

말씀 고린도전서 111-고린도전서 1116

요절 고린도전서 113절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고린도전서 11장 강해 일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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