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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10장 강해 2부( 14-33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10-01 00:00:00
조회수 : 4,152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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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장 강해 2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말씀 고린도전서 1014-고린도전서 1033

요절 고린도전서 1031

 

어떤 크리스찬이 러브호텔을 지었습니다. 이층에서 오층은 러브호텔이고 일층은 식당입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식당을 오층으로 올렸습니다. 그리고 여관마다 이쑤시개를 놓았습니다. 그러자 낮에도 빈방이 없었습니다. 지하에는 나이트클럽을 만들었습니다. 돈을 긁어모을 정도로 많이 벌었습니다.

하루는 사장이 나이트클럽을 가보았더니 유모차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의 눈과 귀를 밀봉하고 엄마는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사장은 이것을 하다가는 하나님께 벌 받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내가 뭐 법을 어겼나 죄를 지은 사람이 잘못이지 내가 번 돈으로 헌금도 많이 하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이런 갈등을 하다가 이 크리스찬은 호텔 건물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서 규제가 있자 호텔 나이트클럽이 대대적으로 문을 닫았습니다.

우리는 이 분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바울은 8장부터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는 지식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사를 거울 삼아서 이 문제로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바울은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대원칙을 말씀하십니다.

 

(우상숭배를 피하라)

 

14,15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나는 지혜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사랑하는 자들아 부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습니다. 우상 숭배를 피하라는 명령은 백성을 사랑하셔서 주시는 사랑의 권면입니다. 우리를 잘 되게 하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우상숭배를 하면 죽음이고 우상 숭배를 피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거울로 하여 배우는 것은 우상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십계명의 둘째 계명이기도합니다. 요셉이 정욕을 피하여 음란한 분위기에서 도망을 갔듯이 우리는 우상 숭배하는 분위기를 가까이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회식이 이차 삼차로 이어질 것 같으면 피해야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우상 숭배가 나쁘다는 것을 누구든지 알 수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면 그곳에 귀신이 일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진노하십니다. 우상은 무엇입니까?

우상은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것입니다. 성전이 우상이 되기도 하고 율법적인 행위가 우상이 되기도 하고 주의 종이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우상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우상은 눈에 보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 가운데 좋아 보이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이성이 우상이 되기 쉽습니다. 나이를 들면 물질이 우상이 되기 쉽습니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으면 가정이나 자녀가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 나이가 들면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우상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에 얽매여 자유함이 없는가 보면 됩니다. 나를 얽어매는 것이 우상입니다. 우상은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가고 우리를 노예로 만듭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밀어냅니다. 우상을 섬기면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또한 말씀보다 더 우선시하는 것도 우상입니다. 말씀은 보지 않고 신비한 체험을 따르려고 하는 것도 신비주의 우상입니다. 성경을 이성에 의해서 판단하려고 하는 것은 이성주의 우상입니다. 이런 우상에 빠지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성만찬의 의미)

 

16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사도 바울은 우상숭배를 한 후에 먹는 음식을 피하도록 경계하기 위해서 먼저 성만찬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만찬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나서 목자가 축복기도를 한 후에 성만찬을 합니다. 축복의 잔 곧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떡을 떼어 먹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예한다는 것은 나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긴밀한 영적인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고 떡을 먹으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주신 사랑을 깨닫습니다.

 

(몸을 주신 예수님)

 

어떤 동생이 수술을 하는데 형에게 신장을 이식해달고 했습니다. 형은 그렇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형이 아내와 상의하니 아내가 남편의 신장 이식을 반대했습니다. 형은 아내의 말을 듣고 동생에게 돈은 일억 원을 달라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장기를 이식할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동생은 죽었습니다. 장례식장에 형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형에게 몽둥이 찜질을 하였습니다. 당장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장기 하나 떼어주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성만찬을 하면서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참예하게 됩니다. 우리가 포도주를 마시고 떡을 뗄 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성만찬을 할 때 질병이 치료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 되는 것임)

 

17,18절을 보십시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우리는 성만찬을 할 때 하나의 떡을 떼어 먹습니다. 이스라엘에서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하나가 됨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떡을 떼어 먹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존재가 됩니다. 함께 성만찬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사랑의 공동체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찬송을 하고 말씀을 듣습니다. 헌금을 드립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교제를 합니다.

하지만 예배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교양 강좌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으며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살아계신 우리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봅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배를 가장 잘 드린 사람은 말씀에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 그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예배 때 마음 속에 성령님을 모셔들이고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예배를 가장 잘 드린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함께 드리며 한 성령 안에서 한 공동체가 됩니다.

몇 분이 멀리서 예배를 드리러 천안으로 옵니다. 서울에서도 오고 수원에서도 옵니다. 또 우리는 설이나 추석의 명절이 있어도 천안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 주위에는 많은 교회가 있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그렇게 할까요?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이나 추석이 되어서 멀리 있는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모여서 차례를 지냅니다. 이들이 멀리서 모여서 차례를 지내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의 가족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우상숭배 후에 먹는 제물에 대해서)

 

19,20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우상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의 나무나 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상을 숭배할 때 그 뒤에 귀신에게 절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귀신이 일한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면 귀신과 하나 되고 귀신이 우리 마음 속에 들어옵니다. 귀신의 지체가 됩니다. 따라서 이방인의 제사에 참예하지 말고 제사 후에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음복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추석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제사에 조상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참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사지내고 나누어 주는 술도 먹을 수 없고 음식도 나누어 먹을 수 없습니다. 다만 제사상을 물리고 나서 제사가 끝나고 나면 그 음식은 제사 음식으로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이때는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순수하게 섬길 것)

 

2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우리는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합니다. 주의 전의 상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섬기지 못합니다. 이는 혼합주의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수 신앙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귀신을 겸하여 섬기는 것은 한 아내가 두 남편을 섬기는 것이요. 한 남편이 두 아내를 섬기는 것입니다.

만약 나의 아내가 다른 남자를 또 섬기고 있다면 남편들은 화가 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양다리 걸치는 신앙에 대해서 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순수한 것을 좋아하십니다. 옷도 여러 실로 섞어서 짠 옷을 하나님은 싫어하십니다. 음식도 여러 음식을 섞어서 만든 잡탕찌개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을 깨끗하고 순수하게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만찬을 하는 사람이 귀신에게 제사지내고 그곳에서 나오는 음식을 나누어서 먹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

 

요즘 포스트모더니즘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의하면 종교들의 연합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녀와 스님들이 모여서 합창하고 석탄절에는 교회에서 환영의 프랭카드를 걸고 성탄절에는 절에서 환영 프랭카드를 거는 것을 매우 좋게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결혼 날짜를 잡는 데는 점쟁이를 찾아가고 이사 날짜는 길일을 따라서 하고 이름을 지을 때는 작명소를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샤머니즘과 혼합된 것입니다. 수능 앞두고 백일기도하는 것 주님께 나가서 회개와 믿음이 없이 복만 비는 것도 샤머니즘의 영향입니다. 무당이 신들린 것처럼 뛰어 노는 것도 샤머니즘의 영향입니다.

기독교 안에서 유교의 권위주의가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평신도를 군대의 계급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직분은 계급이 아니라 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급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유교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조상 탓하고 나아가 하나님 탓하고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불교에 전생의 죄를 지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인과응보로 보고 체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교와 혼합된 것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심리학에 기독교가 혼합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혼합주의 말고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신앙도 있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어떻게 사느냐 돈도 있어야 하지 하느냐 생각합니다. 돈이 우리의 장래를 보장해줄 것처럼 생각합니다.

롯은 하나님도 믿었지만 물질도 따라서 갔습니다. 그런 타협주의 최후는 비참합니다. 자신도 간신히 구원을 받고 딸들과 음란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요즘은 쾌락주의 시대입니다. 순결관념이 없어졌습니다. 이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혼전 순결을 지키지 않습니다. 크리스천도 이런 세상과 타협하여 음란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이나 십일조를 드리는 것에 타협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주님에게서 멀어집니다.

 

(모든 것이 자유함)

 

23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유자입니다. 과거의 죄에서 자유하고 죽음에서 자유합니다. 사람들에게서 자유하고 분노에서 자유합니다. 우리는 우리는 역경과 환난 가운데서 자유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됩니다. 우리는 자유함 가운데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세 가지 점에서 삶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유익한 것)

 

첫째는 나에게 유익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유익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담배를 피우거나 야한 동영상을 볼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습니다. 게임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나에게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덕을 세우는 것)

 

24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둘째, 덕을 세우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나에게 유익하더라도 남에게 유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이 러브호텔을 짓고 나이트 클럽을 운영해서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이는 나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자매들이 짦은 미티스커트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형제들에게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형제들이 털이 숭숭난 다리로 반바지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매들에게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의 유익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유익도 생각해야 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서)

 

25-30절에 보십시오.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사도바울은 자신의 이익과 덕의 윤리를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적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시장에는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던 것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때 우리는 이 음식을 자유롭게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금하는 것은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나서 그곳에서 먹는 음식이지 신전을 떠난 음식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곳에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또한 불신자가 누가 초청을 해서 어디에 가면 그곳에 있는 것은 묻지 말고 먹어야 합니다. 음식은 하나님께서 우리 먹으라고 만드신 것입니다.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다고 해서 그곳에 귀신의 이빨 자국이 있다든지 귀신의 침이 묻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이것이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하면 그것을 말한 자의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의 제물이라고 말한 사람이 내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을 보고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상의 제물을 먹은 것에 대해서 비방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먹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술 한 잔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내가 술을 먹는 것을 보고 시험에 든다면 먹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겜을 한 두 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겜을 하는 것을 보고 어린 양이 담력을 얻어 겜을 하고 나중에 절제를 못하여 겜 중독에 빠진다면 우리는 절대로 겜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1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우리 행동에 세 번째 원칙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지 말아야합니다. 자신을 자랑하기 위해서 살지 말아야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칭찬 받고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지 않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말아야합니다. 내가 잘 되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여호와가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공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팔팔 올림픽때 핸드볼 선수들은 우승하고 나서 전 세계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무릎은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2002월드컵때 브라질 선수들도 우승하고 나서 무릎은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이 입은 옷에도 하나님께 믿음을 고백하는 글을 썼습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서도 불평하지 말고 성령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인내로 기쁨으로 시련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불신자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원형 경기장에서 죽은 크리스천들이 찬양을 부르며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본 많은 로마인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자신을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였을 때 사도 바울이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착할 행실을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봉사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믿고 싶은 생각이 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기적이고 허랑방탕한 삶을 산다면 우리를 보고 하나님 믿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내 안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믿음으로 살 때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습니다.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32,33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원망 불평을 늘어놓아서 불신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된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목자의 근심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의 일을 하는데도 불신과 원망 불평을 하여서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광을 내고자 하면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기 쉽습니다. 이렇게 교회에 거치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레오나르드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이 갖고 계신 잔이 너무 아름답게 빛난다고 했습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물감으로 그 잔을 지웠습니다. 잔이 예수님의 영광을 가리워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좋은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워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먹고 마시는 일상적인 일 평범한 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옷을 입고 넥타이하고 머리 모양하는 것 하나 하나 하는 것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이 우리의 삶에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강해 2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말씀 고린도전서 1014-고린도전서 1033

요절 고린도전서 1031

고린도전서 10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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