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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9장 강해 2부 모든 사람의 종이된 바울(9:19-27)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07-30 00:00:00
조회수 : 3,443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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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9장 강해 이부 모든 사람의 종이 된 바울

씀 고린도전서 919-고린도전서 927

요절 고린도전서 919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저는 유비에프를 처음 시작한 이사무엘 목자님과 몇 번의 편지를 주고 받은 일이 있습니다. 사무엘 선교사님은 편지를 다 쓰고 서명할 때 항상 당신의 종 이사무엘이라고 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캠퍼스 지성인의 종으로 평생을 사셨고 그를 통하여 많은 유비에프의 생명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교사님이 자신을 양들의 종으로 사신 것은 오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에게서 배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예수님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통하여 자유하는 생명을 얻었으니 우리도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8장에서부터 우상의 제물 문제를 돕고 있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우리는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으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자유를 포기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의 권위가 있으나 사도의 권위를 포기하였음을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의 권위를 포기하였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자유자이나 자유를 반납하고 종이 될 때 우리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종)

 

19절을 보십시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사도 바울은 자유인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사망에서 자유하였습니다. 율법과 사람에게서도 자유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진리 안에서 참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섬기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낮아져서 그들을 존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그는 목회자로서 돈을 지원 받을 수 있는 위치이지만 스스로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양들을 물질로 섬기면서 말씀을 주었습니다. 그는 양들을 위하여 시간을 희생하고 자신의 자존심을 희생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모든 사람의 종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여기서 얻는다는 것은 마음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을 복음 역사를 함께 섬기는 동역자로 얻기를 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많은 동역자를 얻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이 죽기에 이르렀을지라도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바울을 의해서 생명을 드렸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바울을 위해서 목이라도 내어놓는 동역자였습니다. 마가, 누가, 디모데는 바울을 따라다니면 동역하였습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됨)

 

20,21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은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방 땅 다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마음이 세계를 향하여 열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을 이해하고 유대인들의 말씀과 혈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는 유대인과 함께 있을 때는 유대인과 같이 이마에 말씀을 매고 다녔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 안식일에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하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율법 아래 있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은혜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율법주의자를 얻기 위해서 율법주의자들이 되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얼마나 행위중심이고 율법에 매여 있는가를 이해했습니다. 그들과 있을 때는 돼지고기도 먹지 않고 채소만 먹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자유롭게 일을 할 수 있지만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은혜 아래 있었으나 그리스도의 율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서로 사랑하는 율법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도의 율법, 말씀의 율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율법 없는 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자유분방하게 활동하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들이 머리에 물을 들이고 헐렁한 옷을 입어도 이해했습니다. 바울도 그들을 얻기 위해서는 때로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머리에 노란 물도 들일 수 있었습니다.

 

(물과 같은 바울)

 

22절을 보십시오.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바울은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약한 자를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연약함을 이해하고 감당하여주었습니다. 연약하여 새벽기도하지 못하는 양이나 소감을 쓰지 못하는 양들을 깊이 이해하고 감당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연약하여 우상의 제물을 먹지 못하면 그들과 함께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습니다. 이는 여러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치 물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물은 자신의 본질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둥근 그릇에 가면 둥근 모양이, 네모 난 그릇에 가면 네모난 모양이 됩니다. 그러나 물은 힘이 있어서 바위를 깨뜨리고 산을 무너뜨립니다.

 

(겸손한 바울)

 

본문에는 같이 되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교만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은 그 사람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아져야 합니다.

우리가 신입생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신입생과 같아져야합니다. 단대에 복음을 전하려면 단대생들과 같아지고 상대에 복음을 전하려면 상대생과 같아져야 하고 백석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백석대생들과 같아져야 합니다. 이것을 세속화가 아닌 상황화라고 합니다. 그 상황에 맞게 자신을 바꾸는 것입니다.

배사라 선교사님이 한국 사람에게 전도하기 위해서 움막집에 살고 재래식 화장실을 쓰고 함께 된장국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 한분만을 믿어야 구원이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 복음을 전하려면 그들과 같이 손으로 밥을 먹어야 합니다. 스리랑카에 복음을 전하려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손으로 뒷처리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부부들이 예배 때 같이 앉아서 예배 드리는 것이 좋을까요? 따로 앉아서 예배 드리는 것이 좋을까요?

처음에 사랑의 관계성이 맺어지지 않았을 때는 함께 앉아서 사랑의 교제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사랑의 관계성이 맺히고 나면 따로 앉아서 다른 사람과 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서 자신을 버리고 다른 사람과 같아져야 합니다.

성다미안이라는 신부가 있습니다. 그가 나병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전도의 열매가 맺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병환자에게 전도하기 위해서 문둥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가 정상적인 사람을 포기하고 문둥이가 되었을 때 그는 많은 문둥병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새롭게 창안해 낸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하여)

 

23절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짓이라도 하고 별짓이라도 다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을 대단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복음에 참예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배우고자 함)

 

복음에 참예한다는 말은 첫째 예수님이 하신 일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과 같은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사람들의 종이 되어서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나중에는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을 병자를 구원하기 병자가 되셨고 가난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가난한 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슬픈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 슬픈 자가 되셨고 예수님은 소외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소외된 자가 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예수님을 본받고자하였습니다.

 

(복음을 누리도록)

 

복음에 참예한다는 말은 둘째, 다른 사람도 복음을 누리게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체험한 복음을 다른 사람들도 체험하고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통하여 생명을 얻었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했을 때 병든 자들이 치료되고 가난한 자들이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우울증에 빠져서 자살하고자하는 자들이 새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 것을 보면서 그가 체험한 복음을 모든 사람들과 함께 누리고 싶었습니다.

 

(절제하는 삶)

 

24절을 보십시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여러 사람이 달리기를 하지만 금메달을 따는 사람은 하나입니다. 우리의 영적 싸움에도 금메달을 따는 자는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달리기를 하는 자는 자신의 최선을 다하여 달립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최선을 다하여 달려야 합니다.

금메달과 은메달은 천지 차이입니다. 사람들은 금메달은 기억해도 은메달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에서도 금메달을 따야합니다. 우리는 이기기 위해서 다투어야합니다. 여기서 이기기를 다툰다는 것은 이기기 위해서 경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쟁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경쟁을 하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경쟁에 의해서 빈부의 격차가 생깁니다. 공산주의는 경쟁의 부작용을 알고 경쟁을 없앴습니다. 하지만 경쟁을 없애면 사람들은 무기력해지고 성장이 없습니다. 이것이 공산주의가 망한 이유입니다.

경쟁은 복음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떤 사람에게는 열 달란트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 어떤 사람은 한 달란트를 주고 장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경쟁을 하라는 말입니다.

복음 역사도 경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더 많은 양을 치고자 경쟁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 경쟁합니다. 그들은 월계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합니다. 그러나 이는 잠시 있다가 시드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영원한 면류관을 위해서 경쟁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에 영원한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경쟁에서 이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절제합니다. 절제는 훈련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일에 절제합니다. 달리는 사람은 먹는 것도 절제해야 합니다. 자극성 있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옷 입는 것도 절제해야합니다. 자동차 키까지 다 풀어놓고 달려야 합니다. 달리다가 목덜미에서 땀이 날 때 너무 달려서는 안 됩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선수는 힘들 때면 어머니를 생각하며 뛰었다고 합니다. 황영조 선수는 40킬로를 달리기 위해서 매일 70킬로를 달렸다고 합니다. 실제 마라톤의 1,7배를 달렸습니다. 그는 오직 세계 마라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자 하는 목표로 달렸습니다. 그가 팔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그는 마라톤 지도자가 되어서 요즘 선수들에게 걱정하는 말을 합니다. “요즘 선수들은 집중력이 참 많이 부족하거든요. 우리는 오로지 한가지만을 향해 달렸지만 요즘 선수들은 자제하지 못하고 그때그때 이루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참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는 꿈을 이루기가 쉽지 않잖아요.” 우리가 한 가지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려면 여러 가지를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이들은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도 그렇게 새벽부터 밤까지 훈련합니다. 우리는 영생의 면류관을 위해서 자신을 훈련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며 기도와 말씀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분명한 목표)

 

26,2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달리기를 할 때는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운전을 할 때도 먼저 목표를 정하고 그 길을 확인하고 운전을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라는 목적과 세계선교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위해서 나가야 합니다. 세계 캠퍼스의 복음화를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백만 선교사 파송의 목표가 있고 유비에프는 십만 선교사 파송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리고 천안에는 오천 선교사 파송의 목표가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성경 육십육권 강해서를 쓴 후에 말씀대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하는 목표가 있습니다. 성경66권을 유튜브 강해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내적으로는 복음을 가장 잘 알고 전하고자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마라톤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주저앉고 싶은 마음, 절망하고 싶은 마음을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남을 가르치다가 자신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에 전도왕이 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는 항상 싸웁니다. 그는 남을 구원하지만 자신을 구원하지는 못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내면화하고 생활화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나도 구원을 받고 예수님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종이 되는 기도)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더 얻을 수 있습니까?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본 받아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낮아져야합니다. 겸손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을 섬겨야합니다. 우리는 종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합니다.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종이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많은 고통이 있고 수고가 따릅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버려야합니다. 우리가 종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겟사마네 기도원에서 기도하였듯이 기도해야합니다.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든 사람의 종이 될 때 우리는 많은 사람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9장 강해 이부 모든 사람의 종이 된 바울

말씀 고린도전서 919-고린도전서 927

요절 고린도전서 919

고린도전서 9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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