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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8장 강해 지식과 사랑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07-16 00:00:00
조회수 : 4,078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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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8장 강해 지식과 사랑

말씀 고린도전 81-고린도전서 813

요절 고린도전서 81

 

사도바울은 지금까지 교회의 분열과 음란과 결혼의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다룹니다. 당시 고린도에는 우상이 많았습니다. 자신들은 고기를 먹지 못하면서도 우상에게는 고기를 바쳤습니다. 바쳐진 고기의 일부는 태워지고 일부는 제사장이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내다가 팔았습니다. 시장에 나온 이 우상의 제물을 먹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가지고 그린도 교회에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식과 사랑의 원리에 근거하여 말합니다. 1절 말씀은 오늘 말씀의 서론이 되는 말씀입니다.

 

(지식보다 사랑을)

 

1,2절을 보십시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지식을 갖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우리가 학교에 다니고 공부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식이 우리를 더욱 자유롭고 편리하고 풍요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상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는 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러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교만은 상추잎과 같습니다. 각자가 자기 잘 낫다고 따로 놉니다. 하지만 겸손은 배추 잎과 같습니다. 서로를 감싸 안습니다. 상추잎은 한 잎에 먹을 수 있는 한 입거리입니다. 그러나 배추잎은 크게 자라며 김장을 담가 오래 오래 먹습니다.

교만은 한 마리 암탉을 두고 싸워서 이긴 수탉과 같습니다. 싸움에서 이긴 수탉은 담장에 올라가 큰 소리로 울며 자랑합니다. 하늘에 날던 독수리가 담장에 있는 수탉을 잡아 먹습니다.

교만한 사람음 패망의 선봉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말합니다. 자신만 망할 뿐 아니라 공동체도 무너지게 합니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자신도 살고 공동체를 살립니다.

우리는 지식으로 교만해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지식 위에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사랑은 나 하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도 함께 생각하고 은혜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아는 줄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은 잘한다고 생각하고 남을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남을 비난하다보면 나중에는 비난하는 사람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됩니다. 자신은 건강하다고 생각하여 소화가 안 되는 사람을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얼마 못가서 자신이 소화가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자녀가 방탕한 것을 보고 자신의 자녀들은 훌륭하다고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자신의 자녀가 탈선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면서 자신도 그렇지 않을까 조심해야 합니다. 겸손이란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한 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죄인이라는 사실도 알아야합니다. 죄인은 항상 부족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인 것을 모르고 자신이 조물주인 것처럼 아는 체 하면 우리의 성장은 멈춥니다. 우리는 지식보다 사랑을 추구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

 

4,5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먼저 우상의 제물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우상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상은 사람이 나무를 가지고 하나는 의자를 만들고 하나는 장작을 만들고 하나는 천하대장군과 같은 우상을 만든 것입니다. 우상은 사람이 돌을 가지고 하나는 집을 짓고 하나는 발로 밟는 보도 불록을 만들고 하나는 불상도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상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상은 말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는 존재입니다. 다만 그곳에 귀신이 역사하는 것뿐입니다.

제가 한 목자님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태국에서 어떤 사람이 고물 라디오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오래된 라디오를 모아놓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조문을 온 어떤 사람이 라디오가 쌓아진 곳에서 기도를 했는데 병이 나았습니다. 이것이 소문이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와서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내는 라디오에 기도하는 사람들이 라디오에 바친 것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우상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라디오가 효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효험을 보고 나니 그곳을 사람들이 숭배하고 귀신이 그곳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창조주가 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자유)

 

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만드시는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한 분이이신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만물이 예수님을 통하여 오고 우리도 예수님을 통하여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은 우리의 존재의미요. 목적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움직이십니다. 머리털 하나도 빠지게 하고 남게 하는 것을 주관하는 것은 하나님이지 우상이 아닙니다.

이런 지식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지식이 없으면 사람은 구속을 받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집을 옮기는 장소, 방향, 이사 가는 날짜, 결혼 날짜도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나무 하나 함부로 자르지 못하고 흙 한 줌을 마음대로 퍼서 나르지 못했습니다. 동티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연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자연과학이 발전한 것입니다. 어떻게 산을 뭉개고 고속도로를 낼 수 있으면 어떻게 종자를 개량하여 증산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사람의 배를 째고 수술을 할 수 있습니까? 이런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 안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지식을 갖고 자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과학이 발달할수록 질병에서 자유함을 얻고 빈곤함에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 알수록 더 그 사람을 배려해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많은 것을 알고자 하고 알아야 합니다. 자연에 대해서도 알고 사람에 대해서도 알고 돈을 버는 방법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알아야 바르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알수록 우리의 자유는 더욱 커집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자유를 얻은 것 같지만 많은 구속을 받고 있습니다. 밤에 손톱을 깍아서는 안 된다 밤에는 피리를 불지 말라고 합니다. 동양 사람들은 4자를 싫어하고 서양 사람은 6자를 싫어합니다. 태국 사람은 조상 중에 하나가 개로 환생했다고 해서 개를 숭배합니다. 그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소를 숭배하는 인도는 소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태국의 한 고개에서는 크락션을 세 번 울려야 벌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목자님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은 스님의 권고로 출입구를 불편한 방향으로 내었다고 합니다. 서울대를 나온 엘리트 사장이 문을 하나 내는 데도 두려워합니다. 심지어 인공위성을 쏘는데도 돼지 대가리를 놓고 고사를 지내는 우스운 행동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빨간 것으로 글씨를 쓰면 죽는다고 하여 빨간 것으로 글씨를 쓰지 않습니다. 밥 먹을 때 모서리에 앉거나 밥먹으며 말을 하면 복이 나간다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밤 12시가 넘어서 나가면 영혼의 그림자가 없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축구를 하는데도 징크스가 있습니다.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 약합니다. 이탈리아는 16년만다 우승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안정환 선수는 시합 전에 머리도 깍지도 않고 수염도 깎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잉글랜드는 스웨덴을 못 이긴다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펠레의 징크스도 있습니다. 펠레가 우승한다고 하면 그 나라는 조 예선에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는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이런 것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십자가 목걸이를 달고 다니든지 아니면 성경책을 차 안에 놓고 다녀야 교통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것도 미신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말씀을 알면 우리는 자유를 얻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관습과 양심의 문제)

 

7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것은 양심의 문제입니다. 양심은 습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습관은 오랜 관습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오랜 관습을 통하여 양심이 형성됩니다.

우리나라에 초기에 기독교가 들어올 때 술의 폐혜가 매우 컸습니다. 술에 중독된 사람들도 많았고 술을 먹고 가정을 결단내고 처자식을 폭행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는 교회법으로 술을 금지시켰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술을 먹으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술을 먹으면 양심에 가책을 느낍니다.

우리가 술을 먹는다고 천국에 갑니까? 못갑니까? 술을 먹는 것과 천국과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우리는 술을 먹어도 천국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회적인 분위기는 기독교인이 술을 먹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남선교회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전화해보니 술을 끊지 못해서 못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이 술 먹으며 교회 나와도 괜찮아요.’ 그 사람은 잘 말한 것입니다. 교회 다니다 보면 술을 자연히 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나도 술을 먹는데요’.

한번은 남선교회 회원들이 야유회를 갔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다 보니 술을 먹게 되고 곤드레 만드레가 되고 패싸움까지 일어났습니다. 모두가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담배를 피우며 술을 먹으며 교회에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끊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법이요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한분은 군목으로 임관했습니다. 사단장이 회식 자리에서 술을 권했습니다. 사단장이 직접 권하며 한잔만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먹지 않았습니다. 사단장은 크게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사단장은 그 후 내가 술을 권했을 때 먹지 않은 목회자는 당신 한 사람뿐이라고 군목을 인정하였습니다. 사단장은 군목에게 인생 상담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양심에 가책을 받으면 먹지 않을 수 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개고기를 먹는 것이 자유롭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 오랜 관습이 있습니다. 한국의 크리스찬은 개고기를 먹을 수 있으나 서양 크리스찬 앞에서 개고기를 먹지 않을 수도 있어야합니다.

 

(자유함과 배려)

 

8-10절을 보십시오.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이 말씀은 식물에 대해서 자유함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먹는 것에 자유함이 있어야 합니다. 물질에 대해서도 자유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먹지 않거나 돈이 조금 없어도 우리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먹어도 그것 때문에 풍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으로 인하여 풍성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만족합니다.

강한 사람은 자유함이 있으나 약자는 자유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강자는 약자도 배려를 해야 합니다. 코를 고는 사람은 자유롭게 코를 골지만 옆에서 듣는 사람은 자유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겜방에도 가고 술집에도 가고 노래방에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그로 인하여 자유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강자는 약자를 생각해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강자가 약자를 배려할 수 있는 것이지 약자가 강자를 배려할 수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육체가 약한 사람도 있고 지식이 약한 사람도 있고 의지가 약한 사람도 있고 감성이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강한 사람은 이런 약한 사람을 배려해야 합니다. 그들이 강자가 되기까지 이해하고 참고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함께 자유를 누리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은 밥을 먹는데 어린 아이가 밥을 못 먹고 젖을 먹는다고 비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가 밥을 먹을 때까지 이해하고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약자를 이해하고 믿어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 사랑이요. 복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형제)

 

11-13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우리가 배려해야 하는 약자는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를 위하여 생명의 값을 치룬 고귀한 존재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그런 약자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들을 무시하는 것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죄악입니다. 우리는 약자를 예수님을 대하듯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고기를 얼마나 먹고 싶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형제를 실족시키면 고기를 결코 먹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사랑 안에서 자유)

 

결론적으로 우리는 사물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식 안에서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자연과 사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 안에서 자유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8장 강해 지식과 사랑

말씀 고린도전 81-고린도전서 813

요절 고린도전서 81

고린도전서 8장 강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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