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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7장 강해 2부( 7:17-40) 없는 자같이 하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11-22 00:00:00
조회수 : 3,096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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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 강해 2부 없는 자같이 하라

말씀 고린도전서 717-고린도전서 740

요절 고린도전서 729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구원, 영생. 하나님 나라,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말을 자유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크리스찬이 실생활에서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자유를 누릴 수 있는가 가르쳐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결혼과 재혼의 문제를 다르면서 마음 속에 자유함을 갖도록 돕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는 결혼을 꼭 해야 합니다. 나에게 이런 사람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대답을 보면 결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과 결혼해도 좋고, 저 사람과 결혼해도 좋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자유함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라)

 

17,18절을 보십시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본문에 보면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라고 앞과 뒤에서 반복하여 세 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할례자 곧 유대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할례자 곧 이방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유인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노예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각자는 부르신 그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각 사람은 주님께서 나누어주신 은총의 선물을 따라서 그리고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처지대로 살아가십시오" 우리의 현재 처지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그 처지 그대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처지에 불만을 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바꾸면 행복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불만은 대부분 하나님의 소원에서 온 것이 아니요. 자신의 욕심에서 온 것입니다. 우리는 처지를 바꾸려 하지 말고 욕심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영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만족할 수 있습니l.

 

(끝없는 욕심)

 

영국의 콘겔트경이 어느날 이층에서 주방으로 내려오는데 하인이 부엌에서 내게 오 파운드만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콘겔트 경은 하인에게 오 파운드를 주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진정 감사하고 행복해 할 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콘겔트경이 부엌을 나오자마자 하인은 내가 왜 십 파운드라고 하지 않았을까? 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은 탐욕은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탐욕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은혜를 영접할 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부르심의 다양성)

 

또한 우리는 서로 부르심이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있고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각자 다양성을 인정해야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사람들과 비교합니다. 이는 자신을 불행하게 하고 자신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과도 다르게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고유한 자신을 발견할 때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할례자는 할례자대로 무할례자는 무할례자대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며 공존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야 행복합니다.

 

(서로의 차이점)

 

프랑스 파리에는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118년 동안 선의의 경쟁을 벌려온 두 카페가 있습니다. 마고라는 카페와 카페 드 플로르라는 카페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장 폴 사르트르, 앙드레 지드, 헤밍웨이, 피카소들이 이 카페를 애용하였습니다. 이들에게 앞 집의 다른 카페보다 나은 점을 묻자 양쪽 모두 자신이 다니는 카페의 장점이나 다른 카페의 단점이 아닌 차이점을 말했습니다. 마고 카페의 자고 마티바 사장은 우리 카페는 보수 경향의 신문 기자들이 많이 찾고, 드 플로르 카페에는 진보 성향의 잡지 기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나눠주신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 차이점을 알고 자신의 부르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행복의 길입니다. 우리의 성별, 인종, 모국, 부모님, 교회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적성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나눠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이 주신 은총의 선물로 받아드리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

 

19절을 보십시오.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우리는 처지를 바꾸려고 하기보다 먼저 말씀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는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것도 아니지만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불신 가운데 빠져 있을 때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말씀하시고 할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할례는 남자의 성기에 표피를 잘라내는 것으로 불신의 죄악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할례는 우리의 불신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영접하여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처지를 바꾸는 것보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우리도 자신의 처지에 불만족할 수 있습니다. 처녀 총각은 정혼을 하면 아니면 결혼을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한 사람은 내가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면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은 졸업을 하면, 취업을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인은 승진을 하면 행복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처지를 바꾸는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행복합니다. 우리가 결혼해도 말씀에 순종하여 결혼하는 것 행복이요. 취업을 하더라도 말씀에 순종하여 취업을 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십계명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합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우리의 처지도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자유하라)

 

20절을 보십시오.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

 

우리가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하나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자신의 만족을 하면서 지내다 보면 발전이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한 마디 덧붙이고 있습니다. 종들은 할 수 있으면 자유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종이 되어도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자유할 수 있다면 자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좀 더 물질이 있을 때, 건강할 때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더 누릴 수 있는 쪽으로 노력해야합니다. 우리는 가난해도 질병이 걸려도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으면 부자가 되는 것이 좋고 건강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자기 발견)

 

22-24절을 보십시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유대인이라도 하나님의 백성이요.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자유자라도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람의 종이라도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자입니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자신을 발견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사람은 같은 피조물이므로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발견된 가치는 상대적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는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임박한 환난으로 자유한 삶)

 

25-26절을 보십시오.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십일월이 되어 낙엽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입니다. 잎을 버려야 겨울을 자유롭게 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좀더 고난을 덜 받기 위해서는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사도 바울은 처녀들에게 시집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지만 할 수 있으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임박할 환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네로를 통한 대환난을 계시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환난의 때에 결혼하면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고 젖을 먹여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을 부양해야 합니다. 가족을 가진 사람은 순교하기도 어렵습니다.

순교사에 보면 엄마와 자식이 함께 죽음을 당합니다. 예수님도 환난의 때에 애기 벤 자와 젖먹이는 자에게 더 고난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딸이 불에 타 죽어가며 "엄마, 얼굴이 안 보여요" 하며 웁니다. 엄마가 말을 합니다. "내 얼굴 보지 말고 주님의 얼굴 봐!" 가족이 순교 당하는 것을 보면 슬픈 일입니다. 그러므로 홀로 살다가 기쁨으로 순교당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자매들에게 고난)

 

27,28a절을 보십시오.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그러나 장가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둘째, 자매들에게 고난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매들이 시집가면 시집살이를 합니다. 요즘과 달리 예전에는 우리나라도 시집살이가 심했습니다. 예전에는 10명이 넘는 식구들의 밥을 해대야 합니다. 방아 찧고 물을 길어오고 불을 때에 합니다. 실을 뽑고 옷을 만들어야 합니다. 시간이 나면 논일도 해야 합니다. 거기에 시댁식구들과의 갈등으로 고통합니다.

옛말에 시집가면 벙어리 삼 년, 소경 삼 년, 귀머거리 삼년으로 구년을 시집에서 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여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고 종처럼 대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이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아낀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이란 아끼고 위하는 마음입니다.

 

(사랑으로 하는 것)

 

28b를 보십시오.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잘 하는가 갈등합니다. 결혼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 지 지금 유학을 가야 하는지 남아야 하는지 끊임없는 갈등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랑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다른 사람을 더 아끼고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고 교회를 더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더 사랑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든지 자유롭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마음대로 하면 됩니다.

 

(없는 것처럼 자유로운 삶)

 

29-3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사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내도 주시고 남편도 주시고 물질도 주시고 집도 주시고 직장도 학교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서 누리고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것에 너무 매입니다. 가정에 매이고 물질에 매이고 학교에 매입니다. 하나님께 매이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것에 많이 매입니다. 우리는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만 매이고 모든 것에 없는 것처럼 자유롭게 살아야 합니다. 집착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자유는 갖되 가정이나 학생이나 직장인으로 의무는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돈을 잃었다고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너무 기뻐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결혼한다고 너무 기뻐하지도 말고, 결혼을 못했다고 너무 슬퍼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적당히 슬퍼하고 적당히 기뻐해야합니다. 너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은 우스운 얘기입니다. 왜 상대방 없이는 못합니까? 상대가 없어도 예수님만 있으면 잘 살 수 있습니다.

내가 없으면 안 될 거라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직장에서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가고 교회에서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도 교만한 생각입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갑니다. 우리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집착을 당해서도 안 되고 다른 것을 집착해서도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 예수님의 재림 때에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사라진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 전서 124,25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사람들의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꽃과 같이 아름답습니다. 그 사람들이 만든 문화는 꽃과 같이 화려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것에 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원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 소망을 두고 그 분이 이루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가 7,80 살지만 잠깐입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다 죽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을 생각하며 종말론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롭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먼저 주님을 섬기는 삶)

 

32-3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 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결혼한 사람은 자연히 남편이나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동시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나 처녀나 총각은 오직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결혼한 부부들에게 여러 가지로 염려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섬기기 원합니다. 분요함이 없이 주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이는 헛갈림이 없이, 나뉨이 없이 주님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라고 말합니다.

요즘은 바쁩니다. 학교일도 해야 하고 주님의 일도 해야 하고 가정일도 해야 하고 직장일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면 마음이 나누고 염려가 생기기 쉽습니다. 우리는 이때 염려하지 말고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그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다음으로 중요한 일을 해야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

 

예수님이 마리아와 마르다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릎에 앉아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음식 만들랴, 청소하라, 말씀 들으랴, 마음이 분주하여 염려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042절입니다.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음식을 준비하지 말고 청소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말씀을 듣고 그 다음에 음식도 만들고 청소도 하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편에서 가장 좋은 것을 먼저 선택하고 한 마음으로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다음에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한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결혼해도 좋고 안 해도 좋고)

 

36-38절을 보십시오. "누가 자기의 처녀 딸에 대한 일이 이치에 합당치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마음대로 하라. 이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혼인하게 하라. 그러나 그 마음을 굳게 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처녀 딸을 머물러 두기로 마음에 작정하여도 잘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 보내는 자도 잘 하거니와 시집 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 하는 것이니라."

 

사도 바울은 처녀딸이 결혼할 수 있으면 결혼하라고 하고 그렇지 않고 혼자 두고자 하면 또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결혼하는 것도 잘하는 것이요. 결혼하지 않는 것은 더 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읽어보면 결혼을 하라는 것인지 결혼을 하지 말라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결혼을 하라,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하는 것과 결혼하지 않는 것에 자유함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사람은 결혼해도 좋고 안 해도 좋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자유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반드시 살려고 발버둥친다든지 아니면 반드시 죽으려고 자살하려는 사람은 자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생과 사에 매인 사람들입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사도 바울은 죽어도 좋고 살아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양들이나 교회를 생각 할 때 사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우리는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잠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과부는 그냥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39,40절을 보십시오.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결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자 살 수 있으면 혼자 살라고 합니다. 그냥 지내는 것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자녀를 생각해서도 과거의 남편을 생각해서도 그냥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자유한 삶)

 

바울은 결혼과 재혼의 문제를 도우며 세 가지 원칙을 갖고 말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처지에 자유를 누리라는 말입니다. 다음에는 나에게 좀더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하고, 그 다음에는 좀더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는 방향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 안에서 결혼과 재혼에서 참 자유함과 책임감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7장 강해 2부 없는 자같이 하라

말씀 고린도전서 717-고린도전서 740

요절 고린도전서 729

고린도전서 7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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