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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5장 강해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1-13)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10-30 00:00:00
조회수 : 2,797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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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5장 강해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말씀/고린도전서 51 - 고린도전서 513

요절/고린도전서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우리는 교회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이 공동체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마치 노아의 방주를 통하여 세상에 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듯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구원의 방주가 구원을 이루려면 세상의 물이 세어들어오지 않도록 방주가 잘 만들어져야합니다. 교회가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가 교회다워야 합니다. 어떤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일까요?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배우는 길입니다. 영적인 사람으로 성숙해야합니다.

사도바울은 이제 한숨을 쉬고 나서 고린도 교회에 음행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에 음행의 문제가 있으면 방주에 물이 새는 것과 같습니다. 모두가 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물이 새지 않는 방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순결한 교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아멘!

 

(아비의 아내를 취한 자)

 

1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이방인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음란입니다. 혼전에 순결을 지키지 않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젊은 청년들은 오히려 은밀히 정욕을 즐기는 것을 자랑합니다. 결혼한 후에 애인이 없는 것은 5급 장애인으로 여깁니다. 요즘에는 애인을 삼는 모든 경계가 파괴되는 현상이 있습니다. 바람난 가족이라는 영화에 보면 유부녀가 남자 고등학생과 놀아납니다. 요즘 영화에는 여선생과 남학생이 사랑을 나눕니다.

그러나 이렇게 타락한 비신자들에게도 아비의 아내와 결혼하는 것은 없습니다. 여기서 아비의 아내는 어머니입니다. 친어머니는 아니고 계모나 서모를 의미합니다. 아비의 아내와 관계를 맺는 것은 아버지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죄를 짓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열두 지파의 조상 르우벤이 이런 죄를 범하여 장자의 권리를 빼앗겼습니다.

 

(어찌하여 물리치지 않느냐)

 

2절을 보십시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사도 바울은 교회에 서모와 음행하는 자가 있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를 지적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이런 자들에 대해서 분노하고 물리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를 시기하기까지 사모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면 질투하십니다. 하나님의 시기는 지옥보다 잔인합니다.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면 질투하시고 우리가 하나님보다. 정욕을 사랑하면 질투하여 벌을 내리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한다면 우리도 이런 거룩한 하나님의 질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예를 비누하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압 백성들과 음행의 죄에 빠졌습니다. 음행에 빠진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들이 믿는 바알브올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음행하는 이들에 대해서 질투하심으로 진노하셨습니다. 두목들의 목을 태양을 향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염병을 내려서 이만 명 이상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통곡을 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이스라엘의 한 형제는 모압 여인과 팔짱을 끼고 나왔습니다. 비누하스는 이를 보고 하나님의 질투하심으로 불같이 분노하였습니다. 그는 창으로 죄악된 두 사람의 배를 뚫어서 죽였습니다. 하나님은 비누하스의 분노를 보고 이스라엘의 염병이 그치게 하였습니다. 비누하스와 그 후손을 이스라엘 가운데 제사장으로 영원히 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는 비누하스와 같이 죄에 대해서 분노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바울의 영적인 분노)

 

3-5절을 보십시오.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은 이런 자를 비누하스와 같이 분노함으로 판단하였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믿음이 연약한 것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문화적인 차이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어긴 죄에 대해서는 판단해야합니다. 바울은 주 예수님의 이름과 능력으로 이들을 교회 밖으로 출교시켜서 사단에게 내어 주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 있으면 그들은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자신과 같은 자도 용납하여 주시는 줄로 착각합니다. 죄를 짓는 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죄는 전염성이 있어 퍼져나갑니다. 그러나 그를 교회 밖으로 쫓아내면 그는 사단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 마음에는 죄책감이 찾아옵니다.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는 이를 통하여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의 육신은 멸하여 죽지만 그의 영혼은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에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를 거룩하게 지켜낼 수 있습니다.

 

(회개시키는 사랑)

 

교회가 음행한 죄인을 비누하스처럼 죽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책망하여 교회 밖으로 쫓아낼 수 있습니다. 죄악된 자를 출교시키는 것이 그 사람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그는 이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우리가 죄인을 사랑해야 하지만 죄는 미워해야 합니다. 죄에 대한 분명한 책망을 하지 않으면 그는 평생을 회개할 수 없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컨닝하는 못된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심하게 책망하셨던 담임선생의 도움으로 죄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모임에서도 지금까지 정욕의 죄악으로 음란한 몇 명을 출교시켰습니다. 이는 우리가 그들보다 더욱 의로워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죄악을 회개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임은 죄인들의 모임입니다. 하지만 회개하는 죄인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죄인이라고 회개한 죄인은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이를 애통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씻음 받아야합니다. 회개한 죄인을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하시는 것이 복음입니다.

 

(죄의 악영향력)

 

6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 교인들은 죄인들을 물리치지 않은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들이 매우 포용력이 있는 것처럼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들이 포용력이 있어서 출교시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이들을 내어 쫓지 못하는 이유는 교회의 이익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고린도 교회에서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죄인이 부자요 권력을 가진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의 주위에는 그 사람과 관계된 많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 한 사람을 쫓아내면 많은 사람이 동조하여 나가게 됩니다.

우리 학원에서도 컨닝을 하는 한 학생을 제적시켰는데 동조하여 한 명이 나갔습니다. 이들은 나가서 학원을 비방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출교를 당한 자는 나가서 교회를 비방할 것입니다. 손해 보는 것이 두려워서 출교를 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책망할 때는 어떤 희생도 각오해야 합니다. 교인 수를 늘리고 헌금을 많이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이런 죄인을 용납하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합리화합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죄가 없습니다. 지존파들은 부자들을 잡아서 죽이고 그 살을 구워먹었다고 합니다. 그들도 이해 못할 것은 없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로서 사회에서 많은 냉대를 받았습니다. 가족은 붕괴되어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에 부모를 죽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동생과 많은 비교를 당했습니다. 부모님이 욕심으로 너무 많이 요구했습니다. 그는 부모님의 요구를 많이 참고 살아서 속이 썩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을 이해한다고 해도 이런 죄인을 용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죄를 합리화할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변명할 것입니다. 정욕의 죄를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고 합리화 하게 됩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죄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죄에는 생명이 있어서 자라게 됩니다. 죄를 짓는 사람들끼지 모여서 세력을 만듭니다. 죄 없는 사람들에게 전염되어 순진한 사람들도 죄를 짓게 됩니다. 나중에는 죄를 자랑합니다. 이러면 암이 자라서 생명을 파괴하듯이 영적인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노아시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모두가 죄인이 되어 심판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용납하다보면 교회 전제가 병들어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불과 유황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암을 초기에 수술하여 제거하듯이 죄도 초기에 징계를 통해서 잘라내야 합니다.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

 

7, 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출애굽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이스라엘에서 노예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고 그들의 문화에 동화되었습니다. 이들은 심판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자를 심판하고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양을 잡아서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셨습니다.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그 집은 심판을 면제해 주십니다. 그 후에 양고기와 누룩 없는 떡을 먹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에 출애굽한 날을 기념하여 무교절(누룩없는 떡) 명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유월절부터 칠일 동안 누룩없는 떡을 먹게 하셨습니다. 칠일 동안 그날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룩을 제거한 떡을 먹어야 합니다. 만약에 누룩 있는 떡을 먹으면 아스라엘 공동체에서 쫓겨납니다. 누룩은 괴악하고 악독한 죄를 의미합니다. 누룩 없는 떡은 순전하고 진실한 삶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괴악하고 악독한 생활을 버리고 순전하고 진실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어린 양이 되어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는 장차 망할 세상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죄악을 제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짓의 죄를 회개하고 진실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죄의 축소도 선의 확대도 하지 말고 진실해야합니다. 우리는 매일 죄를 회개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항상 거룩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특히 음란과 교만을 제거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주인이 되어서 친히 일하십니다.

 

(세상 속에서의 삶)

 

9-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사도 바울이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는 것을 확대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과 탐욕이 있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과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는 말로 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만약 이런 자들과 교제하지 않는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실제로 세상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수도원과 기도원을 만들어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는 거룩함을 유지할지 모르나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거룩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거룩함을 지킨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람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회식 자리도 가시고 술자리도 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먹기를 탐하고 술 취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거룩함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이들을 죄악을 인해서 친히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속으로 가셔서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로 올라가시면서 세상에 남아 있는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도록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만 제자들이 세상의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죄악에 물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을 피해서 믿는 자들끼리만 모이기 쉽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어야 합니다. 그들의 죄로 인한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습니다.

 

(악한 자는 내어쫓으라)

 

11-13절을 보십시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우리가 이렇게 세상 죄인과는 함께 하지만 교회 안에서 회개치 않는 죄인들과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음행하고 탐람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욕을 하고 알콜 중독이 되고 토색하는 자와는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맡겨야 하지만 교인들은 공동체 안에서 판단을 하고 징계를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내어 쫓으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는 더 높은 도덕적인 수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거룩한 방주)

 

결론적으로 교회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세상은 물입니다. 구원의 방주는 물 위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물이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물이 세어서 방주 안에 들어오면 방주는 가라앉습니다. 방주가 물위에 있듯이 우리 교회는 세상 속에 있어야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피하여 산 속에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합니다.

교회는 세상 물 속에 떠 있으면서도 세상 죄악의 물이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교회의 방주에 죄악의 물이 들어와서 가라앉게 됩니다. 요즘 많은 교회에 음란 문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교회 청년들이 서로 사랑하여 육체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당연히 여깁니다. 심지어 성가대장과 반주자가 동거하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는 교회 목사님이 서로를 엮어주고자 합니다. 그들이 짝을 이루어 교회에 남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은 혼전 순결을 범하면서도 죄책감이 없습니다.

과거는 음란 문화가 세상 문화였는데 이제는 교회 문화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책망하면 교회를 비방하고 떠납니다. 이는 교회에 음란의 물이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적어도 우리 교회만큼이라도 이 문제에 대해서 분명히 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 철저해야합니다. 너무 뿌리가 크기 전에 바로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배에 구멍이 크게 나기 전에 빨리 구멍을 막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거룩한 공동체로 만들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5장 강해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말씀/고린도전서 51 - 고린도전서 513

요절/고린도전서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5장 강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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