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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7장 강해 1부 (7:1-16)결혼과 이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11-22 00:00:00
조회수 : 3,020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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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 강해 결혼과 이혼

말씀 고린도전서 71 -고린도전서 716

요절 고린도전서 7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우리 인생에서 교회 외에 중요한 것이 있다면 직장과 가정일 것입니다. 우리나라 이혼율이 34%로 세계 일위입니다. 재혼율은 10%입니다. 비록 이혼하지 않았더라고 행복하지 않게 사는 가정이 많습니다. 복음적인 결혼은 어떤 것일까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모범적인 결혼을 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5장부터 고린도 교회의 음행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음행하고 회개치 않는 자는 쫓아내라고 했습니다. 6장에서는 하나님의 전인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실제적인 결혼 생활을 통하여 음행을 피하는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바른 결혼관을 갖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하는 것에 대해서)

 

1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고린도 성도들이 보낸 편지에 답장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남자는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함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고 하여 남자와 여자는 가능한 한 한 자리에 있지 않는 것이 좋다고 가르쳤습니다. 유태인들도 가능한 한 남자는 여자를 보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너울로 얼굴만 내고 가렸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보지 않고자 하여 전봇대에 이마를 많이 부딪혀 상처가 많은 사람이 거룩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자매는 처녀 때 임신을 한 사모를 보면 더럽다고 임신한 분과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지금은 결혼하여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어떤 부인은 기도원에 갔다 왔는데 밤에 남편이 가까이 하니 마귀야 물러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당의 신부처럼, 절간의 스님처럼 사는 것이 깨끗한 것이 아닌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혼을 했어도 남편과 아내는 가능한 한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 것이 거룩한 것처럼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맞는 것은 아닙니다.

 

(아내 안에서의 자유)

 

2절을 보십시오.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사도 바울은 결혼을 하라고 말합니다. 결혼은 고기가 물속에 들어가서 자유를 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첫째, 결혼은 음행이나 방탕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합니다. 사람은 성적인 욕구를 본능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참고 견뎌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 사용할 때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이 왜곡되어 음행하고 방탕하게 됩니다. 저는 정혼을 하고 나서 이제 나의 청춘은 무덤에 묻혔다고 말하여 책망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말은 맞는 말입니다. 결혼 전에는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결혼하면서부터는 모든 다른 여자로부터 관계를 끊게 됩니다. 품절남이 되는 것입니다. 결혼은 음행을 장사 지내고 아내 안에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생명의 열매를 얻는 것)

 

둘째, 결혼은 생명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백년 동안만 결혼을 하지 않고 아기를 낳지 않으면 인류는 멸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혼을 하면 사랑 속에서 생명을 낳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합니다. 결혼한 사람은 사랑 속에서 생명을 낳는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 교회에 있는 가정 중에 약간의 싸움이 있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가 가정생활하며 싸움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도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를 위해서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현재의 불화만을 보지 말고 미래의 행복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고독에서 자유)

 

셋째, 결혼은 고독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만드신 후 홀로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남자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 고독해하는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사람 자가 둘이 합쳐져서 하나가 된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다리가 둘이고 손이 둘이고 눈이 둘이고 귀가 둘인 것처럼 사람은 남자와 여자가 합해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특히 늙고 병들었을 때 함께 해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명절 때에 대학에 합격하고 취업하고 승진되었을 때 함께 기뻐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넷째, 사람은 사명을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혼자서 동물들의 이름을 짓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많은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를 총각이라고 하는 것은 총 합해도 각이 지기 때문에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담을 위해서 돕는 베필로 여자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도움을 받고 도와 주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의무를 다하라)

 

3절을 보십시오.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결혼하면 금세 행복할 것이라고 하면 착각입니다. 결혼은 죄인들의 만남이기 때문에 결혼하면 그때부터 불화가 시작됩니다. 속담에 삼 개월 사랑하고 삼년 후회하고 삼십년 원수로 지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는 남편과 아내는 각자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결혼생활을 하려면 기본적인 물질이 필요합니다. 둘이 함께든 아니면 한 사람이든 물질을 책임지는 의무를 해야 합니다. 실업자로서 물질을 책임질 수 없다면 결혼을 연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혼하면 잠자리에 대해서 자유가 없습니다. 서로 함께 잠을 자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불구자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단 서로간의 이해를 전제로 한 결혼은 가능합니다. 둘은 공통적으로 서로 사랑하는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아내는 시댁의 식구를 챙기고 남편은 장인 집을 챙길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결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결혼하고 나서 신앙을 버리는 것은 결혼을 깨는 것입니다.

 

(결혼은 자신의 자유를 50% 포기하는 것)

 

4절을 보십시오.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결혼하는 것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둘이 아니요. 하나이므로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매이는 것입니다. 결혼은 자신의 자유를 50%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에 오십 프로는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자신의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합니다. 내가 싫어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텔레비전을 볼 때 한 사람은 드라마를, 한 사람은 영화를 보기를 원한다면 한번은 드라마를 한 번을 영화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텔레비전을 보지 않기를 원한다면 텔레비전 보는 것을 절제해야합니다. 음식에서 한 사람은 조미료 넣는 음식을 좋아하고 한 사람은 조미료 없는 깔끔한 음식을 좋아한다면 적당히 조미료를 넣어야 합니다. 경상도 입맛과 전라도 입맛과 충청도 입맛이 다릅니다. 우리는 이런 다양성을 인정하고 적당히 타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대로 변화시키려고 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모든 것에서 양보와 합의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할 수는 없습니다.

 

(분방하지 말라)

 

5,6절을 보십시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

 

부부는 서로 분방하여 방을 따로 써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면 함께 있고 싶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함께 살을 맞대고 있다 보면 더욱 가까워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연약한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육체의 소욕을 절제 못합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보면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내로라하는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이 사생아를 낳은 분이 많습니다. 이는 이들이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일주일 이상 출장을 가면 반드시 부부 동반하여 가도록 한답니다. 우리 가운데 기러기 아빠나 외국에 돈 벌러 갔다 와서 서로 간에 관계가 깨어진 예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가능한 한 함께 해야 합니다.

 

(은사를 받은 자는 독신으로 지내라)

 

7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과 같이 독신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독신은 좋은 점이 많습니다. 부부의 의무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독신은 일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을 일을 하다보면 결혼을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독신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일에 전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정에 매이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만 섬기기를 원한다면 독신으로 사는 것도 좋습니다. 가정이 있으면 순교도 하기 어렵습니다. 목회자가 가정이 있으면 가정에 신경 쓰느라고 양들을 돌보기 어렵습니다. 교회에서도 목회자의 가정을 부양하다보면 선교나 구제를 소홀히 하기 쉽니다.

또한 독신으로 살면 권력이나 재산에 대한 욕심에서 자유로울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부는 좋습니다. 목회자 세습 문제에서 자유롭고, 자신 명의의 통장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먹고 마실 것 그리고 잠 잘 곳만 있으면 족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독신이요. 사도 바울도 독신입니다. 우리 유비에프를 시작하신 사라 베리 선교사님도 독신으로 한 평생 살고 계십니다. 가톨릭에서 사제는 의무적으로 독신으로 살아야합니다.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8,9절을 보십시오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그러나 독신으로 사는 데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욕을 절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독신으로 살다가 방탕하게 되어 더욱 죄를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부 가운데 스캔들이 있거나 동성애를 하다고 물의가 된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정욕 문제를 절제할 수 없는 사람은 독신으로 살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이들은 차라리 혼인하는 것 낫습니다. 독신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특별한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만이 독신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혼하지 말라)

 

10,11절을 보십시오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결혼을 하면 이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와 결혼한 것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바울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마태복음 195,6절은 말씀하십니다.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우리는 이혼해서는 절대적으로 안 됩니다.

우리는 이혼을 하더라고 다른 사람과 재혼할 수 없습니다. 재혼하려면 다시 옛날의 동역자와 합해야 합니다. 다만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이 음행하고 회개치 않아서 이혼하는 경우입니다. 예수님은 음행한 이유 외에 이혼하는 자는 간음하는 자라고 하여 배우자가 음행하는 것을 이혼의 조건으로 허락하셨습니다. 그래도 신중히 이혼해야합니다. 그가 정말 죄를 뉘우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면 영접해야합니다. 다만 회개치 않고 변화가 없고 반복되어 죄를 범할 때는 이혼이 가능합니다. 이런 경우는 이혼이 가능하고 재혼도 가능합니다. 요즘에 이혼이 오십 프로를 육박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왜 우리가 이혼을 해서는 안 되는지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왜 이혼해서는 안 될까요?

 

(한 몸이므로)

 

첫째, 우리는 한 몸이기 때문에 나눌 수 없습니다. 한 몸을 나누면 둘 다 생명을 잃습니다. 둘 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피해를 주고 양가 가족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더 나아가 그들이 교회에 다닐 경우에는 교회에 말할 수 없는 불신을 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자들은 이혼의 자도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짝지워 주셨으므로)

 

둘째, 하나님이 짝지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것은 결혼이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워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경우에만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음행한 이유 없이는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의 결혼의 중요성)

 

우리가 이혼하지 않기 위해서는 믿음의 결혼을 해야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결혼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사람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혼의 조건으로 여러 가지를 따집니다. 어떤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재산을 보고 능력을 보고 성격을 보고 집안 환경을 보고 feeling을 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모두가 지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떠나서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을 아는 것이 믿음의 기초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일하십니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주의 종들의 조언을 통해서 우리 주위의 많은 일들을 통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결혼하기 전에 하나님이 인도하셨느냐 하지 않으셨느냐 그것 하나를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바다에 갈 때는 한 번 기도하고 전쟁에 갈 때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혼하기 전에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해야합니다. 이것이 결혼 생활의 위기에서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그리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게 합니다.

 

(불신자와 사는 경우)

 

12-14절을 보십시오.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 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여기서부터는 예수님의 절대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바울의 신앙적인 권면입니다. 부부 가운데 불신자와 함께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부족하여서 불신자와 결혼했다가 믿음을 회복한 경우가 있습니다. 둘 다 불신 가운데 있다가 한 사람이 믿은 경우도 있습니다. 어쨌든 어떤 경우에도 이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경우에는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선교사로 파송되었다고 생각하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그 동역자가 예수님을 믿지 않을 경우도 있지만 그 영혼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불신자 동역자로 인해 고난을 받는다면 죄악 된 자신을 연단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도 이혼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불신자와 이혼하는 경우)

 

15,16절을 보십시오.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 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그러나 상대방이 나의 믿음을 방해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헤어지자고 합니다. 그러면 이혼이 가능하고 이때도 재혼이 가능합니다. 우리에게 결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신중을 기해야합니다. 하나님은 가능한 한 화평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신자 된 아내를 통하여 남편을 구하고 때로는 신자 된 남편을 통하여 아내를 구원하십니다. 가능한 한 이혼하지 말고 피치 못할 경우에만 기도 많이 하고 주의 종과 상담하고 나서 이혼해야합니다.

 

(결혼은 세컨 베스트)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결혼은 세컨 베스트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은 베이스 캠프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들입니다. 이는 결혼은 다른 일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요. 결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결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결혼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잃으면서까지 결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릴 경우에는 결혼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삼각형의 원리)

 

결혼을 삼각형 원리에 비유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적절한 비유라는 말에 감탄을 했습니다. 우리는 결혼의 첫 자리에 하나님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둘은 너무 가까이 하지말고 어느 정도 사이를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간에 너무 매여서는 서로 간에 피곤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간에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삼각형처럼 안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7장 강해 결혼과 이혼

말씀 고린도전서 71 -고린도전서 716

요절 고린도전서 7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고린도전서 7장 강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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