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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4장 강해 1부 만물의 찌끼가 된 바울(1-13)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10-17 00:00:00
조회수 : 3,715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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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장 강해 일부 만물의 찌끼같이 된 사도 바울

말씀 고린도전서 41-고린도전서 413

요절 고린도전서 413절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이사야는 자신의 입을 칼에 비유합니다. 사람의 말은 날카로워서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사람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남을 판단하는 말은 마음에 칼처럼 상처를 줍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판단을 받은 사람의 입장에서 상처를 받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별히 목자가 양들의 판단을 받을 때 우리는 이로 인하여 상처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목자는 이때 나를 판단하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지금 분열되어 있습니다. 바울파가 아닌 자들이 사도바울을 판단하였습니다. 아볼로파가 아닌 사람들은 아볼로를 판단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들의 판단을 받으며 자신이 어떻게 목자 생활을 했는지 간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만물의 찌끼같이 살았습니다. 이 시간 만물의 찌끼가 된 사도 바울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의 일꾼)

 

1절입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 파가 아닌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도 아니다.’ ‘말이 어눌하다.’ ‘외모가 볼품없다’ ‘자신의 병도 치료하지 못한다.’ 비난을 하였습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 파에 있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지나치게 높였습니다. 바울은 많은 능력을 행한 이 시대 최고의 하나님의 종이다,’ ‘그 편지를 보아라 얼마나 은혜가 있느냐?’ ‘그가 개척한 교회의 숫자를 보아라. 최고의 선교사다.’

이들은 둘 다 잘못한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 모두에게 자신을 하나님의 일꾼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기라고 합니다. ‘마땅히라고 하여 강조하여 말합니다. 일군은 배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협동하여 일을 합니다. 이들은 북 소리에 맞춰 순종하여 노를 젓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찮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군이므로 또한 존귀한 자들입니다. 맡은 자는 집사, 관리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율적으로 사람들을 돌보고 관리하는 자입니다. 그냥 관리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비밀을 관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복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맡은 자는 존귀한 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냥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관리자입니다. 따라서 바울을 사람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으로 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바울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바울의 말씀을 들을 때 바울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

 

2절을 보십시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비밀은 누구에게나 말하지 않습니다. 한번 말하면 천국에까지 그 비밀을 가지고 갈만한 사람에게 말합니다. 비밀이 귀할수록 더욱 신뢰하는 사람에게 맡깁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신뢰하여 복음의 비밀을 맡겼습니다. 여기서 충성은 신실함, 성실함의 뜻입니다. 이 비밀을 맡은 바울은 더욱 믿음으로 맡겨진 일을 충성스럽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섯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도 맡기고 지위도 맡기고 복음도 맡깁니다. 한 양을 맡기고 어린 자녀를 맡깁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나무에 물을 주는 것을 맡깁니다. 이는 우리를 신뢰하여 맡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맡았으면 이로 인하여 교만해지지 말고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 충성스럽게 맡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끝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자신에게 맡긴 이삭의 결혼을 끝까지 도운 것처럼 끝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더욱 큰 것을 맡길 것입니다. 주의 종은 다른 사람이 판단을 받고 자신의 일에 대해서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판단은 그들의 몫이므로 신경을 꺼야합니다. 그의 일을 맡긴 사람은 하나님이시지 사람이 아닙니다. 주의 종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해야합니다. 진실해야합니다.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바울은 양들의 판단을 받을지라도 자신의 일에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매우 작은 일)

 

34a을 보십시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사도바울은 양들의 판단을 아주 작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했습니다. 아버지처럼 이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양들에게 판단과 정죄를 받으면 목자할 맛이 나지 않을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요즘에 우리나라의 시장이나 사장들이 언론에서 비난을 받을 때 자살한 것은 그것을 너무 크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자신을 판단하는 말을 들을 때 목자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들의 판단을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 판단을 아주 작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다만 그들의 판단을 참고하였습니다. 그 판단으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나귀 이야기)

 

예전의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늙은 아버지가 나귀를 타고 어린 아들은 나귀를 끌고 갔습니다. 어느 곳을 가니 아버지가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 어린 아들을 고생시킨다고 비난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아들을 태우고 자신이 끌고 갔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이 아들은 나귀를 타고 늙은 아버지는 나귀를 끌고 가게 하는 저런 불효막심한 아들이 있냐고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나귀를 타고 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저렇게 나귀를 혹사시키는 사람들이 있느냐고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두 부자가 나귀를 이고 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우스꽝스럽게 됩니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말을 너무 무시하면 독불장군이 됩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판단을 지극히 작은 것으로 여기고 참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책하지 않음)

 

바울은 자신도 자신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판단을 받으면 그것에 기초하여 자신을 자책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나는 키도 적고 말도 못하고 목자의 자격이 없어.’ 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을 자책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양심대로 최선을 다하여 살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 안에서 사랑했고 자신을 존중히 여겼습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높은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높은 자존감을 가져야 우리가 다른 사람도 존중히 여길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를 판단하실 주님)

 

4b,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바울이 자신의 최선을 다했다고 자기 의에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우리를 판단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책하지 말아야합니다. 교만하지도 말아야합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분이 오시면 각 사람이 믿음으로 행한 것을 따라서 상을 주시고 칭찬을 하실 것입니다.

목자는 자신을 판단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맡은 일을 할 때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면 넘어집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충성을 하는데 왜 목자님이 알아주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들면 충성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내가 양들을 위해서 이렇게 희생했는데 왜 양들이 나의 진심을 몰라주는가 생각하면 양들을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기 쉽습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실망하면 방종하기 쉽습니다. 감정을 따라서 마음대로 살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판단과 칭찬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의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헌신과 희생을 아시고 반드시 상을 주실 것입니다.

 

(화목의 본)

 

6a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아주 귀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로 본을 보였습니다. 함께 한 사역자와 화목하는 본을 보였습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본을 보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화목하게 지내는 본을 보이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물론 바울도 바나바와 다투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후에는 바나바와 화목하는 본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부부간에 자녀들에게 화목하게 지내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목자들끼지 화목하게 지내는 본을 보이고 다른 교회와 화목하게 지내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화목한 본을 보이고 사랑할 때 성령께서 친히 일을 하실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먹지말라)

 

6b를 보십시오.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 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남을 판단하는 자는 교만한 자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기록한 말씀 밖을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배워서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기록된 말씀은 구약의 말씀을 말합니다.

잠언 1812절에는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성경에는 곳곳에 겸손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눈을 뜨고 찾아보아도 교만하라고 가르치는 말씀은 없습니다. 우리는 구약의 말씀을 기억하며 겸손해야합니다.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할 때 서로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가 겸손할 때 하나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이를 먹고 직분을 맡을수록 더욱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더욱 겸손해야합니다. 겸손히 서로 동역해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구별하지 말것)

 

7,8절을 보십시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 노릇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 노릇하기를 원하노라."

 

고린도 성도들은 스스로를 구별하였습니다. 자신들의 목자를 자랑했습니다. 아볼로파는 성경 지식을 자랑했고 바울 파는 편지를 잘 쓰는 목자임을 자랑했고 베드로파는 우리가 진짜 열두사도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배부르고 부요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왕이 된 것처럼 행했습니다.

그러면 자신을 구별하여 왕이 되면 다른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종이 되고 신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특별히 구별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공동체에서 자신을 구별하여 따로 놀지 말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공동체 속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자신을 종으로 낮추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높여야 합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 그래야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이 받은 것입니다. 그들이 자랑하려면 하나님을 자랑해야합니다.

 

(구경거리)

 

9-11절을 보십시오.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의 삶과 대조하여 바울의 삶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강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잘난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정반대였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처럼 미말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죽음의 위협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들이 핍박을 받을 때면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구경을 하였습니다. 이런 때는 바울은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지혜가 있었지만 사람들과 따지지 않고 속아 주어서 미련한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도이지만 권력을 가지지 못한 약한 자같이 되었습니다. 그는 존귀한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가장 낮는 신분인 종처럼 비천하게 살았습니다. 바울은 주님 안에서 부유하고 넉넉하지만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 없이 살았습니다. 바울은 좋은 가문에서 자라고 로마 시민권이 있었고 좋은 교육을 받아서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그리스도를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낮아져서 참아야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참고 견뎠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이해하고 사랑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매를 맞아서 복음이 전파된다면 매를 맞았습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과 고난을 참여하기를 원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도이지만 겸손하였습니다.

 

(머리 둘 곳이 없으신 예수님)

 

바울이 이렇게 산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비천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평생 머리 둘 곳도 없이 사셨습니다. 마침내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온전히 드렸습니다. 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존귀하고 강하고 아름답고 부유하고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복을 받되 넘치게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소유했으니 큰 소리 치며 살아야 합니까? 왕이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종 취급하며 살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우리도 따라서 가야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섬겨야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부활의 생명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만물의 찌끼가 된 바울)

 

12,13절을 보십시오.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삶에서 실천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수고하여 손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도와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욕을 먹을 때 오히려 그들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핍박을 당할 때는 참았습니다. 비방을 당할 때는 그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은 화장실의 변기를 말합니다. 그곳에 사람은 더러운 똥오줌을 눕니다. 만물의 찌끼는 쓰레기 통을 말합니다. 그곳에 온갖 찌꺼기를 다 놓습니다.

이는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비방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비방을 받을 때 이들을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향하여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에 대한 판단은 하나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고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여김 받으며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과 하나님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과 인간이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배워서 겸손과 고난의 종이 될 때 하나님은 우리 모임을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비방의 표적)

 

우리에게는 판단할 일도 있고 싸울 일도 있습니다. 판단을 하기도 하고 판단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가야 합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십니다.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는데 누가 싸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 된 교회를 통하여 성령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 모임이 서로 판단하지 말고 만물의 찌끼같이 되어 섬기는 가운데 하나되는 가정과 교회를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4장 강해 일부 만물의 찌끼같이 된 사도 바울

말씀 고린도전서 41-고린도전서 413

요절 고린도전서 413절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고린도전서 4장 강해 일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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