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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4장 강해 이부 능력의 하나님 나라(14-21)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10-30 00:00:00
조회수 : 2,197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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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장 강해 이부 능력의 하나님 나라

말씀 고린도전서414-고린도전서 421

요절 고린도전서 420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 나라가 마음 속에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가 내 마음 속에 있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우리 마음 속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흘러 넘칩니다.

바울은 일장에서 사장까지 고린도 교회가 분열하는 문제를 돕고 있습니다. 오늘 분문은 그 마지막 말씀입니다. 앞서 바울은 이들에게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그런 자신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만물의 찌끼같이 된 바울을 본받을 때 그들은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 교인들이 교만하여 말 많은 자가 되지 말고 복음의 능력을 아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알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서 하나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하는 자녀에게 하는 책망)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지금까지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의 분쟁문제를 책망하였습니다. 책망을 받는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럽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책망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여 권하려고 하는 것 같이 권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 하나님의 책망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질병이나 파산이나 실패나 인간관계의 단절이 올 수 있습니다. 주의 종으로부터 책망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책망을 받을 때 하나님과 주의 종의 사랑을 확신해야 합니다. 환난과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히브리서 125절입니다.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우리는 책망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주의 징계와 책망을 가볍게 흘려듣지 말고,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너무 책망만 생각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생각해야합니다. 우리는 책망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감사해야합니다.

 

(아비 같은 사랑)

 

15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스승은 일만 명이나 많지만 아버지는 많지 않다고 말합니다. 바울 자신은 스승이 아니라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스승은 지식만 전하고 죄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아비는 자식의 죄를 책망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낳은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책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책망으로 들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스승과 어떻게 다릅니까?

 

(절대적인 사랑)

 

첫째, 아버지와 자녀는 절대적인 사랑의 관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선택에 의해서 맺어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맺어주시는 관계입니다. 잠깐 스승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관계가 아니라 하늘나라까지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입니다. 인위적으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산가족의 상봉을 하는 것을 보면 깊은 감동이 옵니다. 이들이 오랜 시간을 떨어져 있었는데도 이렇게 감격적으로 만나는 것은 그들이 절대적인 사랑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도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가운데 절대적으로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순수한 사랑)

 

둘째, 아버지와 자녀는 이해관계가 없는 순수한 사랑으로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스승은 돈을 받고 학생을 가르칩니다. 돈을 주지 않으면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끊어지는 이해타산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나 목자와 양의 관계는 돈 때문에 맺어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아들이니까 사랑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관계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아버지와 스승의 차이는 손해를 보아야 할 때를 당하면 드러납니다. 아버지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자식을 돌봅니다. 그러나 스승은 제자를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찾아서 떠나게 됩니다. 자녀가 아프면 부모는 함께 잠을 자지 못하고 간호합니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희생하는 목자입니다. 양들이 문제가 있을 때 함께 아파하고 함께 슬퍼하고 식사를 못하는 목자가 진짜 목자입니다.

죄송하지만 저도 이런 면에서 보면 한 가지 자랑이 있습니다. 양들이 불신에 빠지거나 문제가 있으면 저도 원치 않게 고통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 괴로워서 잠을 못자고 식사를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저의 의지가 아니라 저의 본능입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 힘들어 목자를 그만 두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에도 한 자매로 인하여 저의 피가 마르고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나왔습니다. 이것은 그 자매가 우리 모임을 떠나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 자매가 예수님을 떠나서 이상한 모임에 다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단 한 가지 확실한 증거입니다.

 

(해산의 수고)

 

셋째, 부모는 자녀를 해산의 수고를 감당한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 살 이하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녀는 이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를 열 달 동안 뱃속에 넣고 다니시고 해산의 수고를 하셨습니다. 똥오줌 받아내며 먹여주시고 입혀 주셨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자립하기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거듭난 것도 그냥 저절로 된 것처럼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목자의 사랑과 기도와 말씀과 수고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나를 해산의 수고를 해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부모인 것입니다.

 

(본이 되는 사람)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넷째, 아버지는 본이 되는 사람입니다. 부모는 본이 되는 사람입니다. 부모는 본받지 말라고 해도 본을 받게 마련입니다. 또 같은 피를 타고났기 때문에 본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승은 지식을 가르쳐주지만 부모는 인격을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고린도 전서 11장 일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본받았습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와 고난을 알기 위해서 죽으심을 본받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사도 바울을 본받으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이 장막 만드는 일을 하니까 그것을 하고 사도바울이 독신으로 살았으니까 독신으로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본받는 자같이 그들도 사도 바울을 본받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배우는 사람은 눈에 보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좋은 목자를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보고 그리스도를 생각합니다. 그 사람을 보면 나도 저 사람처럼 신앙 생활해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본을 보이는 사람이 진정한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본이 되는 진정한 목자가 되어야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자신의 자녀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아버지답게 살았으니 너희는 자녀답게 살라고 말합니다. 아들답게 사는 것은 아버지를 본받는 것입니다. 바울이 만물의 찌끼같이 살았으니 너희도 만물의 찌끼처럼 겸손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잘 본받고 있는 디모데를 소개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좋은 아들의 예가 되는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본이 되는 사람 디모데)

 

17절을 보십시오.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바울은 디모데를 주안에서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디모데 전서에는 참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이런 바울을 사랑하고 가장 잘 본 받는 본보기였습니다. 디모데는 그들에게 나가서 바울이 행한 일, 가르친 일을 알게 할 것입니다. 디모데가 바울을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 그 본보기를 보여 줄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배우고 디모데는 바울을 배우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제 고린도 성도들은 디모데를 배워야 합니다. 그들도 디모데처럼 바울을 배우고 예수님을 배우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배워야합니다.

 

(교만해진 성도들)

 

18절을 보십시오.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사도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의 문제를 알고도 그들에게 곧바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들에게 나가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이 곧바로 가지 않고 책망하지 않자 고린도 성도들은 교만하여졌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교만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곧바로 그들에게 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린도 성도를 아끼는 바울)

 

고린도 후서 123,24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아끼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지금 당장 나가면 그들 가운데 옳고 그름을 따져서 몇 사람을 징벌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들이 회개하기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이 곧 바로 가지 않자 사도 바울은 어리석다 바보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사도 바울은 그들을 믿음을 신뢰해 주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을 주관하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의 기쁨을 도와주고자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늦게 이루어지는 이유와 같습니다. 베드로 후서 38,9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주님은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참고 기다리십니다. 오신다고 하신 것이 언젠데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늦게 오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은 재림하지 않을 것이다. 재림은 거짓말이다. 예수님은 살아계시지 않다 무능하다 비난을 합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아직까지 재림하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한 사람이라도 지옥에 가지 않도록 아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양들이나 자녀에게 문제가 있을 때 너무 빨리 문제를 지적해 주고 해답을 주는 것이 역효과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너무 빨리 지적하면 자율적인 믿음을 해치게 됩니다. 그들은 타율적이 되어서 오히려 눈치나 보는 사람이 되고 기쁨이 사라집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발하고 고집을 피웁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 많이 하고 신뢰하고 참고 기다려줄 줄을 알아야 합니다.

 

(능력을 알아보겠노라)

 

19,20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때가 되면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나갈 것입니다. 그때 바울은 교만한 자들의 말을 알아보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능력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교만한 자는 말은 잘하지만 삶의 변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왕이시므로 권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

 

예수님이 다스리시면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이 죄사함의 능력입니다. 사단과 사망권세에서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질병과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 받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면 우리 마음 속에 사망권세가 주는 두려움과 슬픔이 없어지고 평안과 기쁨이 옵니다. 예수님이 다스리시면 죄에서 오는 죄책 불안감이 없어지고 평안이 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건강해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해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번성하고 강성하고 왕성해집니다.

크리스찬에게 다음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랑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가장 큰 능력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많은 사람이 변화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원자폭탄과 같고 수소 폭탄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이런 사랑의 능력이 나타나야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표적과 기적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사도들도 그들에게 오늘 여기서 표적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크리스찬은 말을 많이 하기 쉽습니다. 예수쟁이는 말쟁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말씀을 경외하는 삶)

 

첫째, 우리는 말씀을 높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겸손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베드로는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여 깊은 대로 가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때 많은 고기를 잡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소경이나 문둥병자는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씻고 제사장에게 보이기 위해서 갔습니다. 그때 질병이 치료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주의 종을 신뢰하고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용희 목자나 유성목자가 순종했을 때 복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사학년 팀들이 순종하여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삶)

 

둘째,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자기를 찾는 자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자에게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제와 기도를 지켜보십니디. 고넬료가 기도했을 때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나 한나가 기도하였을 때 생명의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사도행전의 성도들이 기도했을 때 감옥에 갇힌 베드로가 나왔습니다. 히스기야가 기도했을 때 15년 동안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좀더 살아 있어야 합니다. 전심으로 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친히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나에게 9년째 절대적인 기도를 감당케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고난을 본받는 삶)

 

셋째, 예수님의 고난을 본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기 위해서 죽으심을 본받아 부활에 이르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했을 때 그는 많은 복음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중국의 지하교회가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았을 때 학생회가 성장했습니다. 우리가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수치와 모욕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강물처럼 흐르기를 기도합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2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바울은 그들에게 매를 가지고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징계하기 위해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사랑과 온유의 빵을 가지고 가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사도 바울이 사랑과 온유의 빵을 가지고 갑니까? 그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고 그분 안에 거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예수님의 겸손과 고난을 배워야합니다. 그래야 바울은 사랑과 온유로 나가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도 재림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의 예수님을 맞을 수 있습니까? 우리를 칭찬하시고 상주시는 예수님을 맞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

 

요즘에 재난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파키스탄에 지진이 일어나서 4만명 정도가 죽었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조류독감의 비상이 걸렸습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몇 십만이 죽을 수 있다고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림이 가까워올수록 우리는 겸손하여 하나 되는 교회를 만들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기도할 때 하나 되게 하소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 될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상을 주실 것이나 서로 나뉘어 싸우면 예수님이 책망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우리에게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적극적으로 져야합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 자신이 바보가 되고 무능한 자가 되고 죽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겸손한 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자연히 자신의 한계를 알고 겸손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4장 강해 이부 능력의 하나님 나라

말씀 고린도전서414-고린도전서 421

요절 고린도전서 420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고린도전서 4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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