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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3장 강해1 1부 (3:1-9) 성숙한 공동체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10-04 00:00:00
조회수 : 3,201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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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3장 강해 일부 성숙한 공동체

말씀 고린도전서31-고린도전서 39

요절 고린도전서 37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제가 대학 다닐 때 나이는 대학생인데 데 키가 크지 않아서 어린 아이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리 학원에는 중학교 일학년 때까지 젖을 먹은 학생도 있습니다. 이렇게 나이는 들었는데 자라지 않는 사람은 자신도 그렇고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을 줍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거듭난 지 오래되었는데 행하는 것은 초신자와 같이 행동합니다. 이들도 교회와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을 줍니다. 교회에 분열의 문제를 일으킵니다. 우리는 누구나 성장해야 합니다. 육신의 성장은 어느 시기가 되면 멈추지만 영적으로는 무한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장해야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형제에 대한 책망)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사도바울은 고린도서 편지를 쓰면서 형제들아 하고 반복하여 부릅니다. 이는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같은 형제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형이 동생을 사랑하여 충고하듯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사랑으로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고 책망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책망을 듣기 싫어하고 반발합니다. 충고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충고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신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사랑하는 형제들이라고 부르며 그들을 책망합니다.

 

(어린아이같은 신앙)

 

1절에 보면 신령한 자와 육신에 속한 사람이 나옵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둘 다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거듭 닌 후에 성령님을 모신 사람입니다. 신령한 자는 성령을 따라서 사는 성숙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육신에 속한 자는 거듭났지만 육신과 자신의 생각을 따라서 사는 어린 아이가 같은 신앙을 말합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같은 자입니다.

고린도는 개척된 지 4년쯤 되었습니다. 우리 나이로 하면 다섯 살 정도로 은진이나 한나와 같은 나이입니다. 이 정도의 나이가 되면 이제 똥 오줌도 가리고 밥도 먹고 스스로 걸어다니고 말도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 정도의 나이가 되었는데도 계속하여 젖을 먹고 어리광을 부린다면 어떻겠습니까? 고린도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년이 지난 지금도 어린 아이같이 아직도 젖을 먹고 있었습니다.

 

(순종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

 

2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젖을 먹이고 밥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너무 어려서 밥을 소화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르쳤습니다. 말씀보다도 많은 예화를 중심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젖을 먹고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젖은 부드러운 음식이고 밥은 딱딱한 음식입니다. 육신의 음식도 젖과 밥이 있듯이 영적인 음식도 젖과 밥이 있습니다.

그러면 젖과 밥은 무엇입니까? 젖은 은혜의 말씀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세븐 스텝과 같은 말씀입니다. 복음서 전반부의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통해서 받는 은혜의 말씀이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므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에서 자유를 얻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마음에 성령을 충만히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직장에서 학과 공부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많이 체험합니다. 하나님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많은 은혜를 받고 우리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으면 이제 성장해서 밥을 먹어야합니다. 성령을 따라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야합니다. 성령의 소원에 순종하는 것을 배우고 희생을 배우고 헌신을 배우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목자로서 어린 양을 섬겨야합니다. 이는 마치 젖을 떼는 것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후에 예수님은 지속적으로 십자가를 가르쳤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에 대해서 들으면 알러지가 나타나고 마음에 거부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반복적으로 십자가를 가르치고 제자들이 십자가의 용사로 성장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우리도 진정 성장하기를 원하면 십자가를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십자가의 밥을 먹도록 해야 합니다.

 

(시기와 분쟁이 있는 자들)

 

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고린도 성도들이 어리다는 증거는 또 있습니다. 이들이 시기와 분쟁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가와 분쟁은 어린아이들의 특징입니다. 둘째를 낳고 나면 대부분의 첫째 아이는 둘째를 시기합니다.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고 심지어 눈에 흙을 뿌리기까지 합니다. 동생과 끊임없이 싸웁니다. 이것을 우리 말로 아시한다고 합니다. 이런 아이들끼리 있어도 서로 시기하고 싸웁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도 시기와 분쟁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함께 기뻐하지 못합니다. 당을 이뤄서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왜 이렇게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입니까? 이는 성령을 따라서 행하지 아니하고 육신과 자기를 따라서 행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따라서 행한다는 말은 자기중심으로 행한다는 말입니다. 성령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함께 기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지냅니다. 그 안에 있는 예수님과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이 같은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성령에 따라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자기 중심을 회개하고 성령을 따라 사는 가운데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사람 중심의 파벌이 있는 사람들)

 

4절을 보십시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이들은 어린아이라는 세 번째 증거는 사람을 따라서 행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낯을 가립니다. 자기들의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어울립니다. 한시라도 어머니를 떠나서는 있지도 못합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낯선 사람이라면 울고 보챕니다. 마찬가지로 어린 아이 신자들은 자신에게 말씀을 가르쳐준 목자나 같은 팀 목자나 자기에게 잘해 주는 목자나 자기와 취향이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립니다. 이들은 목자로 세우신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사람만 보고 사람 뒤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작곡가를 생각하고 건축물을 보면서 설계자를 생각하고 천지 만물의 신비로움을 보면서 그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말씀을 들으며 그 뒤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시므이를 보지 않고 그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시므이를 통하여 자신을 저주하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시므이의 저주를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주위에 있는 군인들은 시므이만 보고 그를 당장 칼로 쳐서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시므이 뒤에 있는 하나님을 본 다윗이 성숙한 사람이고 시므이만 본 군인들은 미숙한 사람들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믿고 따르는 바울과 아볼로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사역자들)

 

5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바울이나 아볼로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그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기 위해서 주신 사역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머슴들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권위를 가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의 종을 하나님처럼 바라보고 지나치게 우상시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주의 종은 주의 종 이상도 이하도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의 종을 함부로 대하고 무시해도 안 되지만 하나님처럼 너무 높이고 받들고 숭배해도 안 됩니다. 우리는 주의 종을 보면서 다만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불교의 가르침 가운데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역자는 손가락과 같은 자입니다. 우리는 손가락인 사람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이 되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역자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서로 어떻게 다릅니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6절을 보십시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사람이 하는 일은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하여 나무를 심었습니다. 아볼로는 고린도교회를 양육하여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물과 공기와 햇빛을 공급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탄소동화 작용을 하도록 환경을 마련하고 화학적 반응을 하도록 세포 각각을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나무를 심고 물준 사람을 중심으로 모이지 말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여야 합니다.

또한 사역자들은 독불장군이 아닙니다. 한 사람은 물을 주고 한 사람은 나무를 심습니다. 또 한 사람은 열매를 거둡니다. 이는 각자의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각자의 사역자는 서로의 한계를 알고 서로 합심하고 동역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합심 동역을 해야 합니다. 교회도 여려 종류의 교회가 있습니다. 여러 교회는 서로 경쟁하고 비방하고 싸우지 말고 서로 사랑하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역자의 상은 하나님께)

 

8절을 보십시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일반입니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우월이 없다는 것입니다. 심는 이가 있어야 물을 주고 가꿀 수 있고 물주는 이가 있어야 심는 이가 노력이 허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둘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역자는 하나가 되어서 서로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사역자가 일을 할 때 경계해야 할 것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며 일을 하다보면 인정해 주지 않을 때 서운해집니다. 인정을 받으면 교만해 집니다. 주님의 사역자는 사람의 칭찬을 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상급을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상급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하늘에서 별처럼 빛이 나게 하십니다. 별이 많이 있지만 별들의 밝기가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역자들이 있지만 사역자들의 하는 상급이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의 상을 기대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상주실 것을 기대하고 열심히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

 

그러면 자기중심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자들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요? 성령의 소원에 순종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는 모두 자기중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사는 것도 자기중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자기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말을 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예!라고 말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뿐아니라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

 

9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돕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시지만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일까지 하나님이 다 하시지는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하늘에서 비를 내리시고 꽃씨가 날아가서 스스로 자라게도 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적극적으로 나무를 심고 물을 주고 풀을 뽑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동역을 필요로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계 선교의 사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열심히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목자가 하나님의 동역자라는 것은 하나님이 중심이고 목자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중요한 것이지 하나님의 동역자인 목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밭)

 

교회는 하나님의 밭입니다. 밭에는 곡식이 자라고 나무가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는 새생명이 자라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를 중심으로 생명이 자라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바울의 밭도 아니고 아볼로의 밭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밭입니다. 세계의 모든 교회가 다 하나님의 밭입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모든 교회는 각자의 정체성을 갖고 하나님의 일을 섬기되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분파를 나누고 시기하고 싸우면 안 됩니다.

또한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가정이라는 말입니다. 교회에 하나님이 거하셔야 참다운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으면 사단이 거합니다. 그러면 사단의 집이 됩니다. 교회에서 서로 싸우고 나누어지면 사단의 집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사랑의 공동체를 이뤄야 합니다. 교회는 가정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처럼 가정처럼)

 

가정은 교회처럼, 교회는 가정처럼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된 공동체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는 서로의 허물과 연약함을 감당하고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 가정 안에서도 아빠나 엄마가 자식들에게 엄마가 좋으니 아빠가 좋으니 묻는 것은 유치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교회에서 바울이 좋으니 아니면 아볼로가 좋으니 이렇게 묻는 것도 유치한 것입니다. 교회는 바울이나 아볼로를 좋아하는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을 좋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만을 높이는 삶)

 

9절에서 목자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교회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세 가지 말 중에서 세 번 반복되는 말은 하나님의라는 단어입니다. 목자도 하나님의 사람이고 교회도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 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숙의 문제)

 

결론적으로 결국 하나 되는 문제는 성숙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르치고 알아도 내면이 성숙하지 않으면 또 싸웁니다. 이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성숙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성숙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야)

 

첫째는 성령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생명이 거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자라나는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자라지 않습니다. 아기를 임신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기를 낳습니까? 아기가 태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아기가 자라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거둡난 것에 대해서 분명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예수님을 살아계신 주님으로 모시고 교회에 주인을 하나님으로 모셔야 합니다.

 

(먹고 운동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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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잘 먹고 잘 운동을 해야 합니다. 한창 자랄 때는 밥맛이 꿀맛이고 돌아서면 배가 고픕니다. 그리고 열심히 뛰어 다닙니다. 마찬가지로 한창 성창하는 사람은 열심히 순종하고 전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꿀송이처럼 달콤하게 다가옵니다. 말씀을 들어도 맛이 없고 받아 먹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성장은 하되 영적인 비만에 걸린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

 

셋째는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소원을 따라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고 고난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십자가를 적극적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체험하신 그곳을 체험하고자하는 분명한 목표를 잡고 예수님을 배우기에 전력 투쟁을 해야 합니다.

 

(성숙한 교회)

 

하나님은 우리 모임을 많이 성장하게 도우셨습니다. 그러나 더 성장해야 합니다. 외적인 성장보다 내적인 성숙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힘써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가운데 우리 모임이 힘써 성숙한 모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람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을 세계적인 브랜드를 가진 모임으로 성숙하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각자가 성숙한 사람이 되어 가정 별로 요회별로 전체가 하나가 되어 화기애애한 모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3장 강해 일부 성숙한 공동체

말씀 고린도전서31-고린도전서 39

요절 고린도전서 37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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