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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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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2장 강해 (2:1-16)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9-20 00:00:00
조회수 : 3,883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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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2장 강해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말씀 / 고린도전서 21-고린도전서 216

요절 / 고린도전서 24절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사도 바울은 교회의 하나 되는 길을 말씀하십니다. 그 방법으로 바울이 고린도를 개척할 때 십자가의 도만을 가르쳤다고 말했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고린도 교회가 이루어졌음을 가르칩니다.

요즘은 인터넷 정보화 시대여서 지식과 지혜의 홍수 속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찾아 헤맵니다. 학생들은 공부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이이들이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지식과 지혜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 경쟁에서 승리하게 해줍니다. 바울도 많은 세상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지식은 서로 싸우게 하고 교만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구원역사를 이루는 데는 때로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 역사를 섬길 때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의 지식을 가르치지 않고 십자가의 도만을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성령이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때 성도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어떻게 하면 성령님께서 나타나고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인간적인 지혜의 포기)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사도 바울은 많이 공부했습니다. 지혜가 있었고 아름다운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간적인 지혜로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지혜를 포기하였습니다.

메시지를 전할 때 우리는 아름다운 말과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유혹이 있을 수 있습니다.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유능함을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집니다. 메시지를 잘 전했다는 칭찬을 받고 싶습니다. 그럴 때 이곳저곳에서 얻은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짜깁기하여 최고의 메시지, 전혀 듣지 못한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고자 애를 쓰게 됩니다. 어떤 메시지는 예수님을 전하기보다 세상적인 지혜 지식으로 충만하여 세상 살아가는 데에 유용한 지식을 줍니다. 그렇게 만든 메시지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생명을 살리지 못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십자가에 못박힌 것 외에는)

 

2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개척할 때 예수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메시지를 통해서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그리스라는 것이 드러나야 합니다. 메시지를 통하여 예수님보다 사람이 청중에게 남아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없는 메시지는 진정한 생명력을 주지도 못하고 구원을 주지도 못합니다. 십자가의 메시지만이 하나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한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의 메시지는 온통 기복신앙을 중심으로 전하였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예수 안에 영광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사업에 성공합니다. 등등 이런 것만 강조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 교인들의 얼굴은 마치 썩은 음식물과 같았습니다. 서로 간에 사랑이 없었습니다.

또 다른 교회를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전하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의 성도 수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성도들은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교회가 서로 사랑하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두 교회를 비교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전하고 십자가를 사랑하는 교회가 정상적인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 외에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였습니다. 대포기입니다. 진정 귀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대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자신의 지혜를 의지한 것, 학벌을 의지한 것, 지식을 의지한 것, 건강을 의지한 것, 자본을 의지한 것, 자기 말재주를 의지한 것, 자기능력, 자기수완을 의지한 것들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자기를 높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존심, 자신의 권위를 포기하였습니다.

성령께서 일하시기 위해서는 대포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능력이 있고 인간적인 지혜가 있습니다. 목자로서 권위가 있고 연장자로서 권위가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바울의 생애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 결단을 바울에게 두 번째 각성이라고 합니다. 첫번째가 다메섹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된 것이라면 두 번째는 성령을 의지하기 위해서 인간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며 복음을 전한 고린도 전도라고 합니다. 바울이 이토록 대포기를 하고 변화되었던 배경이 3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두려워하며 심히 떤 바울)

 

3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바울은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에게 일반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돈이 없어서 두려워하고 병이 들어서 두려워하고 세상일이 잘 안 되어서 혹은 핍박이 있어서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외적인 문제로 두려워하고 약해질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돌로 쳐서 버리는 자들 앞에서도 공회에서도 총독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두려워하고 떨었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에서 지극히 약해져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에 갔을 때 그는 다른 도시에서처럼 전도하지를 못했습니다. 바울이 에덴의 아레오바고에 가서 전도하고 많은 학자들이 모인 곳에서 소리를 지르던 그때와는 달랐습니다. 그는 왜 그런지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하나님도 고린도에 있는 사도 바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담대히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왜 바울이 지금 내가 너희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바울의 입장에 서서 많은 사람들은 연구를 해봅니다. 바울이 어떤 이유에서 연약해 질 수 있었을까 추리해봅니다.

먼저 육신이 병들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갈라디아서 413절을 보면 그는 분명히 육체의 약함이 있었습니다. 역시 사람은 육체가 병들 때 마음도 약해집니다. 육체가 병들 때 우리의 생각 자체가 흔들립니다. 용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두 번째는 외모의 초라함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010절을 보면 그는 외모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키는 자그마하고 이마는 훌렁 벗어져 대머리고 눈도 나쁘고 육체적으로 변변치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바울의 외모가 신통치 않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자기를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언변이 능통치 못하였다고 합니다. 말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말에 어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린도교회의 전반적인 분위기 그 자체가 문제가 있어서 두려워한 것 같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전도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고 교회가 세워지지 않고 미래가 환하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민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런 문제 때문에 바울이 두려워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진정한 바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선교 전에 아덴선교에서 실패하였습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단 며칠만에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그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덴선교에서는 교회를 세우지 못하고 큰 핍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는 그대로 피해서 고린도로 스며들었습니다. 그 후 그는 고린도에서 깊은 회개와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가 실패하게 된 원인을 찾습니다. 그가 실패한 것은 역설적으로 바울이 너무 세상적인 지혜가 많이 전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가마리엘 문하에서 배웠습니다. 그는 대사상가요. 철학자였습니다. 아덴은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과 같은 대 사상가들이 나온 곳입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자신도 인간적인 지혜를 의지하여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자신이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철저히 실패하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기서 깊이 고민합니다. 4절을 볼 때 바울은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내려놓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떨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떨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비로소 인간적인 지혜와 능력을 의지한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대회심을 하게 됩니다. 이제 고린도에 와서 인간적인 지혜와 능력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만을 의지합니다. 그는 고린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전환점입니다. 바울은 본문에 나오는 것과 같이 "너희 가운데 있을 때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라고 진지하게 고백하고 다시 출발을 합니다.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함)

 

4절을 보십시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지혜의 권하는 말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말과 생각으로 그들을 변화시키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다만 성령이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만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 겸손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떨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겸손히 성령님께서 그들 가운데 일하시도록 기다렸습니다.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그들을 믿어주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의 목자가 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많은 성경을 보고 배우고 연구합니다. 모두가 성경선생이 되고 선교역사에 복음사역에 쓰임을 받고자 합니다. 성경지식에 해박하고 지식과 지혜가 많은 사람이 존경을 받기도 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성경 지식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모름지기 양들에게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야 성령님이 양들을 변화시켜야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나타나야합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능력에 있도록)

 

5절을 보십시오.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바울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힘에 바탕을 두고 견고히 서기를 바랐습니다. 그들이 사람의 눈치를 보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을 갖기 원했습니다. 그들이 사람 앞에서 사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신앙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따라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신앙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의 지혜에 따라 신앙 생활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능력에 따라서 신앙 생활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기초하여 신앙생활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이 바울파나 아볼로파 게바파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십자가 비밀 속에 있는 하나님 지혜)

 

6,7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세상에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얻을 수 없는 세상에서 뛰어난 지혜가 있고 지식이 있습니다. 학문은 죽을 때까지 연마해도 끝이 없습니다. 요즘에 생명 공학, 우주 공학, 전자 공학 등 지식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전할 것은 바로 이런 인간적인 지혜나 과학이 아닙니다. 철학도 아닙니다. 심리학도 아닙니다. 이런 것은 양들에게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비밀하신 예수 그리스도 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만세 전에 계획하신 복음입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는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생명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전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해야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왜 비밀입니까? 비밀한 것은 아주 귀하기 때문입니다.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 간에 동료들 간에 비밀이 있습니다. 비밀은 자기들끼리만 알자는 것입니다. 귀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알아도 되는 시시콜콜한 것은 비밀로 할 가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만 비밀리에 추진합니다.

이번에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아카보드카 감독이 내정되었습니다. 그가 확정되기까지 무수한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월드컵의 빅게임에 한 나라의 수장을 뽑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뽑아야 되기 때문에 비밀리에 추진한 것입니다. 복음도 생명을 구원하는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비밀 속에 두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지혜)

 

8-9절을 보십시오.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 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세상의 집권자들은 육에 속한 자들입니다. 인간적인 자들입니다. 합리적인 지혜를 추구하고 세상 영광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듭니다. 이상한 사람으로 여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들의 이성과 생각으로 예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박사들이라고 해서 예수님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들이 세상의 지혜로 십자가의 지혜를 알았더라면 영광스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구원 전에는 육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어둠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어리석게 보았습니다. 예수 믿는 자를 비방하고 욕하던 자였습니다. 주위에 예수 잘 믿는 자들을 훼방하던 자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귀로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만져 본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아는 지혜)

 

10,11절을 보십시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하지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십자가의 도를 알고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비밀 속에 있는 십자가의 도를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서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세밀하게 관찰하시어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사람의 사정은 사람의 영이 알듯이 하나님의 마음은 성령이 알게 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지성소의 세계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소망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우리는 이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십자가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거듭난 영혼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십자가의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고 연인들끼리 사랑을 속삭이는 것처럼 달콤하게 들립니다. 바로 성령이 깨우쳐줄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마태복음 1344절은 말씀합니다. "천국은 마치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그렇습니다. 복음은 감추어져 있어서 육의 지혜로 찾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지혜로만 알 수 있습니다.

 

(은혜의 복음을 알게 하심)

 

1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은 동격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은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복음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세상의 영으로는 은혜의 복음을 알지 못합니다. 은혜로 주었다는 것은 값없이 크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물로 주신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은혜의 복음을 깨닫게 도우십니다.

우리가 은혜의 복음을 알아야 자기 의가 사라집니다.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3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수 없느니라." 성령께서는 먼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게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깨닫게 하시며 생각나게도 하시며, 믿고 따르게 하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랑하고 깨닫는 것, 다른 사람이 말씀을 깨닫게 하는 것 모두가 전적인 성령의 역사입니다. 기도하다가도 말씀이 생각나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시며 우리를 지켜주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도 역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

 

13,14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바울은 성령으로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지혜와 재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성령의 뜻대로 담대하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령이 역사한 사람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었습니다. 신령한 복음은 신령한 성령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 못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단지 미련하게 보일 따름입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절대로 성령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세상은 성령을 받지 못하나니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주의 마음을 가진 자)

 

15-16절을 보십시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판단은 이해하고 분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분별력을 갖고 영적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누구도 거듭난 사람을 이해하거나 분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하는 것이 기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기쁨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육에 속한 자는 전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의 마음을 알 수도 없거니와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신령한 자들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고 헤아리고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을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서로 나뉘지 않고 싸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거듭났습니까? 거듭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결론-인간적인 지혜를 포기하는 길)

 

고린도 교회에 분열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고린도 교회를 개척할 때 자신의 간증을 통해서 도왔습니다. 그때 그는 인간적인 지혜를 포기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과 십자가만을 증거하였습니다. 성령님만을 의지하였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때 고린도 교회는 하나 되었습니다. 지금 고린도 교회가 하나 되는 비결도 그것에 있습니다. 인간적인 지혜를 포기해야 합니다. 자신의 지혜, 자신의 능력 자신의 자존심, 자신의 유익을 포기해야합니다. 미련하고 바보같이 되고 손해보고 무능하고 죽은 자같이 되어야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겸손한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부족하고 연약하다는 것을 알고 두렵고 떨림으로 성령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하나 되게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도 인간적인 지혜를 포기하고 성령을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 되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2장 강해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말씀 / 고린도전서 21-고린도전서 216

요절 / 고린도전서 24절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고린도전서 2장 강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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