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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전서 6장 강해 (6:1-20)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11-04 00:00:00
조회수 : 2,743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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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6장 강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말씀 고린도전서 6장1 - 고린도전서 6장 20
요절 고린도전서 6장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바울은 5장부터 교회의 거룩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에 들어온 음행의 죄를 징계하도록 권면하였습니다.
6장에는 고린도 교회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로 물질 문제와 성에 관한 문제를 다릅니다. 바울은 물질과 성의 문제를 믿음으로 어떻게 해결해야하는가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세상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므로 이런 물질 문제, 성의 문제에 부딪힙니다. 현대 사회에서 물질과 성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세상 법으로 해결하려는 자들)

1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교회 안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8절에 속인다는 말이 사기를 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를 볼 때 고린도 성도들 간에는 물질 문제로 속이고 이로 인하여 서로 분쟁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이런 물질 문제를 세상 법정에 송사했습니다. 물론 주먹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당시에 재판은 공개 재판으로 많은 배심원을 세웠습니다. 보통 200명 정도의 배심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재판을 하면 요즘은 언론에 공개되듯이 당시는 고린도 모든 시내에 소문이 났습니다.
우리 사회도 현대 그룹에서 형제들이 물질 문제로 재판을 받았고, 요즘에는 두산 그룹에서 형제들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두산 그룹의 형제 중에 하나는 구속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가문의 수치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물질 문제로 교회의 형제끼리 고소하면 교회에 망신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얻어 먹습니다.
사람들은 법으로 해결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법이란 최소한의 도덕이요. 자율성을 해치는 강제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법 이전에 양심과 도덕과 상식과 관습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교통사고만 나도 법으로 해결하기보다 서로 합의를 보는 것이 서로 간에 좋습니다. 법으로 해결하려면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신적인 피해를 보게 됩니다. 특히 교회 문제는 세상 법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교회의 법으로 해결해야합니다.

(세상을 판단하는 성도들)

2,3절을 보십시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들까지도 판단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서 세상을 판단할 것입니다. 타락한 천사들도 우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현재도 세상을 판단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고 있는 것이 죄라고 판단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목자요 그들은 우리의 양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판단하고 인도하는 목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가 양에게 가서 양들의 판단을 받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재판장이요 그들은 우리의 피고들입니다. 재판장이 죄인에게 판단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지극히 작은 물질문제)

2절을 다시 보십시오.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사도바울은 물질 문제는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신자에게 지극히 큰 것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이는 영생과 영벌이 걸린 문제로 지극히 큰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예수님을 떠났는지 불신에 빠졌는지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물질 문제는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물질은 영생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돈 많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요. 돈이 없다고 지옥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을 신으로 섬기기 때문에 돈에 목숨을 겁니다. 돈을 잃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이 있어도 감사하고 돈이 없어도 감사합니다. 우리는 부요함에 처할 줄도 알고 가난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극히 작은 물질 문제를 가지고 재판을 하고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물질문제는 양보할 수 있어야합니다.

(교회에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

4,5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세상의 재판관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의한 자들입니다.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갈 자들입니다. 우리가 불쌍히 여기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 양들입니다. 이들에게 재판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이들에게 판단을 받는다는 것은 교회에 이들보다 지혜로운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판단을 받기보다 교회에서 지혜로운 자를 세워 판단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 오랜 경험이 있는 지혜로운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장로가 될 수도 있고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권위를 인정하고 이들의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판단에 순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형제와 송사하느냐)

6절을 보십시오.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우리가 송사하는 사람들은 형제입니다. 하나님 한 아버지를 모신 형제들입니다. 설령 송사를 해서 이긴다 하더라도 형제가 손해를 보고 내가 이익을 보는 것입니다. 만약 송사를 하지 않는다면 형제가 이익을 보고 내가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송사를 하든 하지 않든 이익을 보는 것도 형제요. 손해를 보는 것도 형제입니다. 형제가 이익을 보는 것이 나의 이익이요. 형제가 손해를 보는 것이 나의 손해입니다. 우리가 이를 안다면 형제가 잘 되기를 바라고 내가 손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버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누가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는 것을 중시 여기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은 형제가 싸우지 않고 화해하는 것입니다. 형제가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얼마나 아릅답습니까? 이슬과 꿀이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손해를 보는 것이 낫다)

7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여기에는 복음이 나타나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차라리 속으라고 하십니다.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불의한 자가 되었고 속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의로우시고 진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불의를 당하고 속임을 당하셨을까요? 이는 우리를 의롭고 진실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열두 영 되는 천사를 보내와서 대적자를 징벌할 수 있었습니다. 법정에서 자신의 정당함을 변호할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와 욕하는 자들을 징벌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 말도 없이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온전히 죽으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새롭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승리하셨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따지지도 않고 고소하지도 않고 피해를 보면 사람들은 바보처럼 여깁니다. 그래도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져 주고 손해를 보고 피해를 보아야 합니다. 불의한 자 죄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이 살아나고 나도 살아납니다. 이것이 복음을 생활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서로 고소하고 싸우면 내가 이기고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을 죄인으로 만듭니다. 나에게도 그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미움의 노예가 됩니다. 그것은 내가 죄에게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예수님을 생각함으로 참고 손해를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익두 이야기)

김익두 목사님이 스스로 한 간증이 있습니다. 한 번은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술을 먹은 깡패하나가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김 목사님은 바빠서 그를 앞서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고개에 올라가자 그 술먹은 깡패가 개패듯이 김목사님을 패는 것이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한참 맞고 나서 그 사람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습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네" 그 사람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자 다시 말했습니다. "내가 김익두일세. 내가 예수 안 믿었으면 자네는 오늘 여기에 묘를 쓰는 거야" 이것이 복음을 아주 잘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내가 예수 믿기 때문에 내가 손해보고 다른 사람이 이익을 보는 것입니다.

(속이는 자는 천국에 가지 못함)

8-10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여기서부터는 속이는 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사기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물질 문제를 하나님 나라와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물질 문제 때문에 불신에 빠져서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신에 빠지는 이들이 불의한 자들입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꾸고 갚지 못해서 고소를 받으면 불의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면 돈을 꿔주고 받지 못해서 불의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물질 때문에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잃고 사람을 잃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하나 더해서 물질도 잃고 사람도 잃고 예수님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최악입니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예수님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사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돈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질을 양보한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롯과 물질 문제로 다툴 때 물질을 양보하였습니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물질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얻는데 방해가 된다면 모든 물질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얻을 수 있다면 모든 물질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거라사 광인을 고치기 위해서 2000마리나 되는 돼지를 희생하셨습니다.
우리가 물질을 통하여 생명을 구원하고 사람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물질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돈을 꾸지 말아야 합니다. 꾸면 어찌하든지 갚아야 합니다. 우리는 돈을 형제에게 꾸어줄 때는 주는 마음으로 꿔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돈을 꿀 때는 없어서 꾸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돈이 더 없어질 수도 있고 더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더 가난해지면 그는 갚고자 해도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제하는 마음으로 돈을 꾸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돈을 받는다면 우리는 감사한 것입니다. 돈을 받지 못했어도 구제했으니 감사한 것입니다. 반면에 돈을 빌린 사람은 은혜의 빚을 진 것을 알아야합니다. 구제하는 것을 이용하여 형제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꾸었을 때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지체하지 말고 갚아야합니다. 이것이 은혜의 빚을 갚는 것입니다.

(영생을 빼앗기지 말 것)

11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우리도 과거에는 불의한 자들이었습니다. 음행을 하고 도적질하고 속고 속이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죄사함을 받고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님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영생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한두 푼의 물질 문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가룟유다같이 은 삼십에 예수님을 팔아서는 안됩니다. 형제 자매에게 돈을 빼앗고 사기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도적질하기보다는 돈을 주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전에 어느 목동님은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도둑 맞았습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불신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보다 물질에 소망을 두고 살았던 것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도둑에게 적선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물질을 얻든지 잃든지 우리는 그 사건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우리 교회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제재을 받아야)

12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여기서부터는 음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에 자유주의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든 것이 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육신을 자신의 원하는 대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제재를 받지 않지만 하나님께 까지 제재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를 교회와 성도에게 유익이 되고 하나님의 제재를 받으며 사용해야 합니다.

(몸은 오직 주를 위하며)

13절을 보십시오.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사람들은 배는 먹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몸은 정욕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몸과 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들이 영지주의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만 거룩하면 되고 육으로는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성적으로 방탕하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먹고 마시고 음란하게 사는 육체를 폐하십니다. 우리 몸과 영혼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혼이 주님을 위해서 있듯이 우리 몸도 주님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몸이 가는 곳에 마음이 가고 마음이 가는 곳에 몸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몸을 주를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몸의 부활)

14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우리는 영으로만 부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도 부활합니다. 우리는 그 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영광스럽고 썩지않고 강하고 아름다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우리 몸은 그 날 부활할 몸의 씨가 되는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을 거룩하게 잘 관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지체인줄 알지 못하느냐)

15-17절을 보십시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그리스도와 합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시니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경외심 없이 지성소에 가면 다 죽임을 당합니다. 성전에 대해서 경외심을 가져야합니다. 성령의 전인 우리의 몸에 대해서도 경외심을 가져야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전인 우리의 몸으로 창기와 잠을 자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에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둘이 합하여 한 몸이 될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부부가 되어 잠을 자는 것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창기와 잠을 자는 것은 창기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어떻게 창기의 몸을 만들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창기와 잠을 자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큰 죄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몸에서 떠날 것입니다. 이런 자는 영생을 잃고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이런 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게 됩니다. 당장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귀한 그리스도의 지체를 거룩하게 여겨야 합니다.

(몸은 성령의 전)

18,19절을 보십시오.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에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전 즉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으로 우리는 음행의 죄를 지어서는 안됩니다. 음행은 몸 안에 짓는 죄입니다. 음행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창기와 자면 창기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창기와 음행하는 자는 창기가 내 몸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성령이 계신 성전을 창녀가 있는 창녀촌으로 만드는 악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음행을 피해야 합니다. 음행이란 무엇입니까? 음행은 모든 성적인 욕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욕은 하나님이 주신 본능으로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음행은 하나님의 법을 떠난 성욕을 의미합니다. 성은 불처럼 고귀한 것입니다. 성에는 행복이 있고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불과 같습니다. 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죽고 재산의 피해를 입듯이 성적인 죄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고 재산을 잃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을 하나님의 손아래서 고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성의 죄는 다른 죄와 다르게 생명을 잉태하는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20절을 보십시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 몸은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산 몸입니다. 물건의 가치는 가격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드려서 산 고귀한 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 몸은 가치중립적입니다. 선을 행하면 선한 도구가 되고 악을 행하면 악한 도구가 됩니다. 이는 마치 칼이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선악이 결정되는 것과 같습니다. 집에 누가 사느냐에 따라서 좋은 집도 나쁜 집도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몸을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몸에 왕노릇하게 하여 예수님이 우리 몸을 온전히 통치하시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신 우리 몸에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서 적극적으로 우리 몸을 예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잃지 말아야)

결론적으로 물질이나 성의 문제에서 핵심은 이것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첫째로 두고 물질과 성을 정복하고 다스리고 관리할 때 이는 선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주의 육신주의 시대에 하나님을 첫째로 높이며 바른 물질과 바른 성지식을 갖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6장 강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말씀 고린도전서 6장1 - 고린도전서 6장 20
요절 고린도전서 6장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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