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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후서 12장 강해 일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6-02-27 00:00:00
조회수 : 2,540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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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12장 강해 일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고린도후서 121-고린도후서 1210

요절 고린도후서 129

 

국민일보 한나 엄마라는 만화의 내용이 인상깊기에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자녀가 공부할 때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세요"울며 기도합니다. 시험을 볼 때는 "꼭 합격을 시켜주세요" 이제는 금식을 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사히 졸업하면 어떻게 할까요? "부모님 덕입니다.","네가 열심히 노력한 덕분이지"라고 말을 합니다.

이는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잃어버리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화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섭섭해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이 시간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겠습니다.

특히 우리는 바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두 가지 은혜를 말합니다. 먼저는 신비한 체험을 말하고 다음에 육체의 가시를 은혜로 소개합니다.

 

(바울은 부득불 자랑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바울은 자랑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아무 이로울 것이 없는 무익한 것을 잘 알았습니다. 사실 인간적 자랑은 자랑하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거짓되게 만듭니다. 또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며, 결국에는 시기와 분쟁을 일으킵니다. 인간적 자랑은 자신에게나 상대방에게 백해무익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득불 자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자랑하는 것은 인간적 자랑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환상과 계시입니다. 그 자랑도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울을 하나님의 종으로 신뢰하고 복음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바울이 사도로서 권위를 확립하고 고린도 교회로 자신을 인정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헬라문화와 복음에 능통한 바울을 택하여 그들에게 보냈다는 것을 알기 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보낸 절대적으로 큰 선물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그들의 내면에 심어집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쟁도 사라지게 됩니다.

 

(바울의 환상과 계시)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은 14년 전에 있었던 신비한 체험을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3인칭화시켜 말함으로 할 수 있으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자 합니다.

14년 전은 고린도후서의 저작 시기를 AD 55-56년으로 본다면 AD 41-42년 때의 일입니다. 이 때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고향 다소에 가서 은거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그는 낙원에 올라가서 하나님나라를 맛보는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셋째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말합니다. 첫째 하늘은 우리가 보이는 푸른 하늘입니다. 둘째 하늘은 별이 있는 세계입니다. 셋째 하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태양계가 있습니다. 은하계에는 1000억개의 항성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우주에는 1000억개의 은하계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가 끌려갔다는 것은 성령의 지배를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낙원으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계시입니다. 바울이 대낮에 예수님을 바라보는 계시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바울을 만나주시고 사로잡은 것입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싶어 보는 것은 주로 자신이 상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계시는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이끌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많은 핍박을 받습니다. 그 핍박을 이기도록 계시를 보여줍니다.

그 때 그는 몸이 승천해서 올라갔는지, 아니면 몸은 지상에 있고 영혼만 갔는지 자신은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꿈꾸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떠도 보이고 감아도 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보는 것 듣는 것 만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신다고 말합니다. 그는 낙원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신비체험을 한 후 14년 동안 침묵하였습니다. 그런 신비한 체험을 말하는 것은 바울 자신에게나 성도들에게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을 낮추고 비방하는 고린도 성도들의 신앙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그 계시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신비체험이 신앙생활이 어떤 영향력을 미치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비체험은 주님과 인격적 관계성을 갖게 하고, 사랑의 끈을 견고하게 해줍니다. 바울이 여러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성이 견고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비의 체험은 복음의 일꾼으로서 부르심에 확신을 주고, 사명을 감당하는 원동력을 줍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고 세상 욕심을 버리게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갔다 왔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나라를 갔다 왔기 때문에 그는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쳐서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고귀한 사상이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있다가 온 곳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후에 간 곳입니다. 바울은 이런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고 왔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실제적입니다.

깡통을 차고 빌어먹어도 천국을 가야한다는 저자 김상호 장로님도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였기 때문에 고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환상과 계시의 문제점)

 

5,6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바울은 영적으로 이런 신비한 환상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육체를 위하여서는 약한 것들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계시를 보았다고 인격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을 아무리 해도 죄를 짓습니다. 죄를 지을 생각은 여전합니다. 화를 내는 것도 여전합니다. 내가 신령한 경험을 하여도 약하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에 보면 바울은 자신의 약함은 그대로 있습니다.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한 후에 내가 버림 받을 수 있습니다 신비로운 체험이 있으면 신령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비적인 경험은 은사일뿐입니다. 존재를 바꾸지 않습니다. 바울이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참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보는 바와 듣는 바에 대해서 지나치게 생각할까봐 두려워하여 자랑을 그만 둡니다. 바울은 자신을 신성시할까 두려워합니다. 성도들이 영적인 환상을 지나치게 여겨지 않고자 절제합니다. 바울은 참말을 합니다. 간증하다보면 자꾸 보태어지기 쉽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꾸 간증하다보면 사실이 점점 커져 과장이 됩니다.

신비한 체험이 자나치기 쉽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사람들이 그대로 알아듣지 못합니다. 듣는 사람들은 27프로만 전달하면 성공입니다. 한 평생 사는 남편과 아내에게 이야기해도 다 못 알아듣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도 지나치게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자랑을 절제하는 이것이 덕입니다.

신비체험은 여러 가지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신비체험한 자는 개인 확신이 지나쳐서 자기의가 생겨서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방언기도하는 사람은 방언하지 못하는 사람을 판단하고 무시합니다. 신비체험을 한 사람은 말씀을 소홀히 하고 신비체험을 앞세움으로 신앙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이런 자들은 주로 산기도를 통하여 직통계시를 받고자 합니다.

건전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이런 위협 때문에 바울은 14년 동안 신비체험을 혼자 마음 깊이 간직하고 있었을 뿐 자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대개 이단들의 특징은 모두 개인적 계시와 환상을 중시합니다. "나는 입신을 하였다. 주의 음성을 들었다. 직통계시를 받았다" 말합니다. 그들은 개인적 체험을 강조하며 이를 절대시 합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이 말씀중심이 아니라 사람중심이 됩니다. 성경말씀보다 교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는가? 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말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의지하고 절대시 합니다.

박태선 씨도 50,60년대 능력을 많이 행하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환상과 계시를 너무 강조하다가 교만해져서 후에는 교주가 되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며, 사단의 종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이단들은 대부분 박태선 전도관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도 현대인의 성경을 번역한 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10월 재림의 환상을 본 자들의 체험을 믿고 따라가다가 큰 미혹에 빠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환상보다 말씀에 기초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가시를 주신 하나님)

 

7절을 보십시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해질 수 있습니다. 바울이 선교역사와 개척역사를 섬긴 것도 너무 큰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주셔서 신약성경도 집필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것으로 바울은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울을 신성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아시고 바울에게 가시를 주셨습니다. 사단의 사자를 주셨습니다. 사단이 그 속에서 일하였습니다. 가시처럼 바울을 괴롭히는 것입니다. 가시는 천막을 박는 말뚝이라고 합니다. 육체의 가시라고 한 것을 보면, 지속적인 육체의 고통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육체의 가시를 사단의 사자라고 한 것을 보면, 몸이 연약하여 생긴 단순한 육체의 질병이 아닙니다. 사단이 그를 시기하여 하나님의 허용하에 그를 괴롭히기 위해서 준 질병입니다.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가에 대해 안질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3:14,15) 안질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강렬한 부활의 빛을 본 것 때문에 눈이 상하여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안질을 사단이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간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단의 가시라고 한 것을 보면 간질이라는 말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몸에 가시를 주신 것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자고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을 보게 됩니다.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한 사람이 빠지기 쉬운 것은 영적 교만입니다. 인간적 교만은 회개의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영적 교만에 빠진 자는 돌이키기 힘이 듭니다. 이단의 교주가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에 가서 나름대로 신비의 체험을 통해 영적 교만에 빠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영적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사단으로부터 몸의 가시를 갖도록 허용해 준 것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우리가 싸워야 할 가장 큰 원수는 외적인 원수가 아니라 내적인 원수인 교만입니다. 사람이 교만하게 되면, 못쓰게 되어 버립니다. 교만은 일이 잘 안되거나 실패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잘 될 때, 성공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많이 받고, 축복을 많이 받을수록, 일이 잘 되고 성공할수록 내 안에 역사하기 쉬운 교만과 싸우며 겸손을 배우기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이 귀히 쓰신 분들은 한사람도 예외없이 겸손이 몸에 벤 자들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8-9a절을 보십시오.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바울은 몸에 가시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이 고통을 제해 주시도록 세 번 주께 간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통가운데 처하게 되면, 이런 고통을 주신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을 많이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하나님께 쓴 뿌리를 품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겸손하게 은혜를 구했습니다. "주님의 종이 이런 질병을 가지고 있으면 은혜가 안되니 제발 고쳐 주십시오. 주님께서 질병을 고쳐 주시면 더욱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몸의 가시를 제해 주시지 않고, 가시의 의미를 해석해 주셨습니다. 이를 가리켜 은혜로운 기적이라고 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는 충분하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전혀 받지 않은 것처럼 불만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은혜를 받은 것이 부족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감사할 줄 모릅니다. 불평을 늘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미 넘치도록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과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죄를 지었습니다. 죄의식으로 고통하며 신음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의식으로 두통에 시달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밤마다 가위에 눌려 편안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허무와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고통해야 했습니다. 운명주의에 시달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아무 값 없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는 거룩한 순례자의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거룩한 사명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의 은혜만 받고 아무 할 일도 없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사명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인간은 일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무엇인가? 가치있는 일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 삶의 보람과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아무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것이 행복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숙종 때 의주에서 국경 무역을 해서 거부가 된 정씨거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진귀한 새를 좋아해서 커다란 새 집을 짓고, 진귀한 새들을 모아 길러서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 새들에게 조석으로 모이를 주는 머슴이 있었습니다. 그는 조석으로 모이를 줄 때마다 한탄을 했습니다. "너희 새들은 팔자가 좋아서 잠만 자고 일도 않고서 종일토록 노래만 부르니 얼마나 행복하냐. 애고애고 내 팔자야" 이 팔자타령을 여러번 들은 주인이 어느날 머슴이 모이를 주기 위해서 새 집에 들어간 사이에 밖에서 자물쇠를 잠그고 말했습니다. "새 팔자가 되게 해 줄터이니, 그 속에서 놀고 먹으라" 그리고 조석으로 융성하게 밥상을 차려 들여 보냈습니다. 그는 마땅히 행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자 미칠 것만 같고, 이레가 지나자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한 것 같아 주인에게 죽여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 후 머슴은 노동의 고마움을 알았습니다. 불평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열심히 일하여 역시 거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명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살리는 사명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보람있고, 가치있고, 값지고, 고귀한 일거리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날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넘치도록 충분히 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때로 은혜를 전혀 안 받은 사람처럼, 은혜를 덜 받은 사람처럼 인상을 쓰고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큰 죄입니다. 우리가 힘써 해야할 일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날마다 기억하고 감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자는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너무나 큰 은혜받은 자임을 발견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명과 학원으로 눈코뜰새없이 바삐 지냈습니다. 또한 사죄의 은혜가 있습니다. 또한 전임 사역자가 되어 성경 66권 강해를 쓰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제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고난을 받는 것도 은혜입니다.)

 

둘째, 고난이 없어지는 것 뿐아니라, 고난을 받는 것도 은혜입니다. 바울이 몸의 가시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히 주님을 의지할 수 있고, 또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으므로 큰 은혜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고난이 없어져야 행복하고, 고난이 있으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은혜를 더 깊이 체험할 수 있고, 부활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요셉과 같이 고난을 통하여 인격의 연단을 받아야 하나님의 쓰실만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진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연약함을 통하여 어떤 놀라운 역사를 이루십니까? 다시 한번 9a절을 보십시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강함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을 통하여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인간이 강할 때는 자신의 강함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약할 때에 자신의 연약함을 깊이 깨닫습니다.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자신을 의지하는 자를 통하여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연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겸손, 인내,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의 믿음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25년 만에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세로 죽은 자와 방불하였고, 사라의 나이는 90세로 경수가 끊어진지 오래 되어서 아이를 낳는 것이 불가능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그 때 아들 이삭을 주셔서 당신의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철저히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40년 광야훈련을 통하여 자기가 철저히 깨어지고, 부서지고, 짓이겨져서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고 출애굽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신뢰하는 자를 쓰시지 않습니다. 자신의 무능과 무력함과 무지를 철저히 깨닫고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온전하신 지혜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를 귀하게 쓰십니다.

 

(약한 것을 자랑하는 바울)

 

9b,1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바울은 도리어 질병으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여러 약한 것을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연약한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하나님이 주신 약한 것 능욕 박해 궁핍 곤고함을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우리는 때로 약한 가시를 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의 치료를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영혼이 잘됨처럼 범사에 강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질병을 떠나게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주님이 질병을 주신 의미를 생각하고 감사해야합니다. 우리는 인간이란 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시를 통하여 겸손하게 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도우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 방법을 깨닫고 난 후부터 바울은 고난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약점을 자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강함과 지혜를 자랑하고, 부와 성공을 자랑합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약점과 실패와 가난함을 부끄러워하고 감추고자 합니다. 연약함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당하면, 슬퍼하고 힘들어 하고 부끄러워하고 어찌하든지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의미를 발견했을 때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이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실패와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런 어려움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고 부활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약한 데서 강한 사람들)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가시가 있습니다. 질병의 가시, 가난의 가시, 학과와 사업실패의 가시, 환난의 가시, 키나 외모의 부족함에서 오는 가시, 죄의 소욕의 가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가시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벗어나기만 하면, 하나님께 더욱 충성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서 벗어나고자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런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족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육신의 가시를 통하여 자기의 연약함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나타내 주십니다.

성프란시스코는 본래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서 젊은 날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큰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 중병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을 찾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병중에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 큰 일을 한 사람은 수없이 많습니다.

한국교회의 원로 목사이신 한경직, 김창인, 조용기 목사님은 모두 한 쪽 폐가 없는 분들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이들의 약한 가운데서 온전히 나타났습니다.

밀턴은 독실한 청교도인이요, 유명한 문장가였습니다. 어느날 그는 실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족한 은혜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실명한 후에 그는 더욱 위대한 문학작품 실낙원을 썼습니다.

베토벤은 천재적인 음악가입니다. 어느날 그는 귀가 멀고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음악가에게 이것은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귀먹은 후 더욱 위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9교향곡>, <피아노소나타>는 귀먹은 후 쓴 작품입니다.

단테는 이태리 플로랜스의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젊은 날 정치 지도자로 많은 활약을 하였지만 정당 싸움에서 패배하여 타향에서 유리하며 고독한 망명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그 때 그는 가난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이를 통해 천국과 지옥의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쓴 것이 유명한 신곡입니다.

영국의 청교도 존 번연은 허락없이 전도한다고 감옥에 갇혀 12년 동안 옥중 생활을 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활동적인 그분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옥중에서 환난중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세 번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깨닫고 낙망과 슬픔과 고독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12년 동안 옥중에서 신령한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와 만나는 가운데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데서 온전히 나타납니다. 기독교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환난과 핍박이 가장 심했던 카타콤 시대에 기독교는 강했고, 생명과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을 때부터 기독교는 생명력을 상실했습니다. 성베드로 성당이 지어질 때는 기독교는 가장 부패하고 무력했습니다. 성베드로 성당을 보며 한 교황이 "이제 금과 은이 없는 가난한 시대는 지났다"하자 성토마스 아퀴나스가 이제 "나사렛 예수의 으름으로 걸으라는 시대는 지났다"며 울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약한데서, 환난과 궁핍과 실패와 슬픔 속에서 온전히 나타납니다. 우리가 가진 연약함 때문에 낙오되고,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처럼 육체의 가시로 인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능력있는 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육체의 가시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을 좋은 기회입니다.

인제 ubf의 천사라 사모는 남편이 식물 인간이 되어 20년 넘게 누워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감사함으로 감당하였습니다. 그때 시부모가 변화되고 동네가 변화되었습니다. 인제 ubf가 생기고 자녀들이 변화되어 의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간호사가 되어 주님을 충성스럽게 섬기고 있습니다.

진주는 진주패라는 조개 속으로 모래알이 들어가 만들어집니다. 그 부드러운 살 속에 모래가 들어가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이 조개는 즙을 싸서 모래알을 감싸고 싸서 1-5년 동안 지속되면 마지막에는 진주가 됩니다.

이처럼 고통의 가시는 진주같은 믿음, 진주같은 은혜, 진주같은 인격을 형성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고난을 받는 것도 은혜입니다. 우리는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더욱 감사드립니다. 우리 졸업생들 한분 한분이 받은 은혜가 큽니다. 이분들이 더욱 고난을 사랑하는 가운데 승리의 학사생활 출발하기를 기도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강해 일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고린도후서 121-고린도후서 1210

요절 고린도후서 129

고린도후서 12장 강해 일부 끝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22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13장 강해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하라 오요한 2016-04-27
21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12장 강해 2부 사도의 표 오요한 2016-04-27
20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12장 강해 일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오요한 2016-02-27
19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11장 강해 2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오요한 2016-02-27
18 [고린도후서] 고고린도후서 11장 강해 일부 그리스도께 중매하는 바울 오요한 2016-02-27
17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10장 강해 주안에서 자랑하라 오요한 2011-04-29
16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9장 강해 헌금을 드리는 자세 드리는 자의 축복 오요한 2011-04-28
15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8장 강해 이부 헌금의 의미 오요한 2011-04-27
14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8장 강해 일부 헌금의 본이 되신 예수님 오요한 2011-02-27
13 [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7장 강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오요한 2011-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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