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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후서 8장 강해 일부 헌금의 본이 되신 예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02-27 00:00:00
조회수 : 3,93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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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8장 강해 헌금의 본이 되신 예수님
말씀 고린도후서 8장 1-고린도후서 8장 9
요절 고린도후서 8장 9

고린도 성도들이 헌금하는 것이 다른 사람을 격동시켜 마게도냐 교회에서도 넘치도록 헌금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고린도 성도들은 그 헌금을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헌금의 본이 되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은혜로하는 헌금)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형제들에게 마게도냐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합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헌금을 드릴 수 있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9장에만 은혜라는 말이 6번 반복됩니다. 우리는 헌금은 주님께 드리는 헌신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헌금은 헌신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헌금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헌금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헌금은 은혜 속에서 헌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헤를 주셔야 헌금할 수 있습니다. 물질을 주셔야 헌금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줄 수 있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주지 못하고 죽으면 우리의 소지품 중에서 남은 것은 다 불태워버립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주셔야 헌금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는 선한 일을 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우리가 죽을 때는 좋은 일을 한 것만 남습니다 인색한 마음은 저주 받은 마음입니다. 베푸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헤입니다. 기회를 주셔야 헌금할 수 있습니다. 아무 때나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주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주면 감사합니다. 부유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주어도 감사한 줄 모릅니다. 병이 들어야 찾아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랑하는 기회, 기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 기회를 얻은 것은 선물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내가 그를 돕는 동안 내가 은혜를 받습니다. 그는 누구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돕지 않았습니다. 은헤를 받은 마음으로 도왔습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헌금역사는 가장 모범적인 헌금입니다. 이들 가운데 하나님 역사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줍니다. 바울은 마게도냐의 은혜를 알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철학자는 아는 만큼 느낀다고 합니다. 은혜를 알아야 은혜입니다. 식물인간은 아무리 은혜를 베풀어주어도 은혜를 모릅니다. 그래서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식물인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모릅니다. 은혜를 모를 뿐 아니라 불평불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을 사랑하기가 어렵습니다.

(기쁨으로 자원하여 하는 헌금)

2절을 보십시오.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마게도냐 성도들은 풍성한 연보를 드렸습니다. 연보는 구제나 선교를 위해서 드리는 특별 헌금입니다. 모금이라고 해도 됩니다. 우리는 그들의 연보를 통하여 어떤 연보가 진정한 연보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렸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넘치는 기쁨으로 드렸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먼저 나의 마음에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기쁨이 있어야 헌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원하여 드렸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간절히 구하여 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강요에 의해서 드리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심 속에서 드리지 않았습니다. 부조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한 것을 생각해서 합니다. 결혼식을 하는 이유도 내가 부조한 것을 받으려고 합니다. 헌금은 이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자원하여 자발적으로 드려야합니다. 자유함 가운데 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성도를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사랑했기 때문에 기쁨으로 자원하여 드렸습니다. 예수님이 기쁨으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은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외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이 추위 속에서 기쁨으로 고생하며 일할 수 있는 것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이 있었습니다.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이 있으면 근심 ,걱정으로 심령이 어두워지고 불평, 불만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옵니다. 무엇보다 자기 중심적이 되어 베풀기보다 도움을 받고자 합니다. 결국 먹고 사는 문제에 매여 믿음마저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마게도냐 교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순수한 믿음으로 성장했습니다. 시련 중에 있는 자들을 깊이 이해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시련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가난하게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기쁨으로 넘치도록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극심한 가난이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하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imf 때 구제헌금이 20프로가 다 나왔다고 합니다. 날씨가 추워야 모듬이 더 많이 나온다고 합니다. 거지가 동냥할 때 대문이 있는 집은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문이 없는 가난한 집이 도와준다고 합니다. 마게도냐 사람은 극심한 가난한 사람을 도와 주게 되었습니다.

(힘에 지나도록 하는 헌금)

3절을 보십시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마게도냐 성도들은 힘에 지나도록 드렸습니다. 그들이 극한 가난 속에서 풍성한 연보를 드리는 것은 힘에 지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적당히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생활비 전부를 드린 과부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향유를 부은 마리아처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임한 구속의 은혜가 너무 크고 놀라와 힘에 지나도록 드렸습니다. 내가 남아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먹는 것을 포기하면서 다른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마게도냐 성도들은 힘에 지나도록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자신이 준비한 헌금에 곱하기 이를 하여 드리라고하였습니다. 내가 필요한 것을 넘어서 드려야 진정한 연보입니다. 교회건축에 헌금을 하기 위해서 직장에 다니고 헌금을 다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분이 있습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

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들은 먼저 자신을 드리고 물질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하 우리의 마음과 몸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로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한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첫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 표시로 물질을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을 드리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예물을 기쁘시게 받으십니다. 리빙스톤은 말씀을 통하여 큰 은혜를 받고 물질을 드리고 싶은데 주님께드릴 물질이 없었습니다. 이때 리빙스톤은 헌금바구니에 올라가서 “주님 드릴 것은 제 몸 밖에 없어 제 몸을 드립니다.” 기도했다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를 받으시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귀히 쓰셨습니다. 아벨과 가인이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제물만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말합니다.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는 헌금)

6-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마게도냐 교회의 모범적인 헌신의 역사를 설명한 바울은 계속하여 고린도 성도들에게 헌금을 하도록 권면합니다. 바울은 그들이 드리는 헌금의 의미가 무엇이며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권면합니다. 당시에 고린도 성도들은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사랑하는 모든 일에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질문제에서 만큼은 풍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디도를 통하여 연보를 약정하고 드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멈추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은 좋은 것 같지만 실생활에서는 희생하기를 싫어했습니다. 이때 그들은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아 주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면 헌금도 믿음이나 말이나 지식과 같은 위치에서 투쟁해야 합니다. 다른 것은 잘하는 데 헌금만큼은 인색한 사람은 무엇인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물질은 신앙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의 일부입니다. 예수님은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마6:21) 존웨슬리는 “나는 너의 돈주머니가 회개하기 전까지는 너의 회개를 믿지 않는 다고 하였습니다 .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안다면 헌금도 풍성하게 드려야 합니다.

(자신을 헌금하신 예수님)

9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헤를 알게 합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돕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은혜는 모든 은혜의 원형이요 원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에서 모든 은혜가 흘러 나옵니다. 예수님은 헌금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모든 권리와 특권을 포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최고의 영광을 누리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비천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시되 가장 비천한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머리 둘 곳 없이 사글세 방도 없이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큰 자기 비하요, 자기희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얼마든지 권리와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 그 권리와 특권을 온전히 포기하시고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헌금으로 드리셨습니다. 여기에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권리와 특권을 포기하지 않고 누리려 한다면 결코 은혜를 끼칠 수 없습니다. 슈바이쳐가 인류에게 은혜를 끼칠수 있었던 것은 학문의 자유, 경제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포기하고 아프리카에 갔기 때문입니다. 유사무엘 선교사님은 내과 전문의로서 우간다에 선교사로 갔습니다. 그는 본국에서 얼마든지 특권과 권리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이즈가 만연한 우간다에 가서 주사바늘로 찔려 에이즈도 걸릴 위험도 있었습니다. 결핵에 걸려 171cm키에 몸무게가 51kg까지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고난을 받으며 복음역사를 섬긴 것은 모든 권리를 포기하신 예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모세가 위대한 것은 출애굽 역사를 섬겼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애굽의 왕자로서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모든 권리와 특권을 포기하고 노예백성과 함께 고난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존경받는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권리와 특권을 포기하고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은 이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 우리가 쓸수 있는 돈을 쓰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와 가난한 자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권리를 포기하고 오셔서 섬김 받고자 아니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섬김 받기에 합당치 않은 자들이 섬김 받고자 하기 때문에 은혜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사람에게 섬김 받을 수 있지만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섬기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도망간 그들에게 파티를 열어주셨습니다. 친히 주방 아줌마가 되셔서 음식을 만들고 섬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은 위해서 창에 찔리셨고 못에 박히셨습니다. 우리의 죄악으로 침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예수님 은혜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죄와 허물로 저주받을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이 모든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는 내면이 변화되고 현실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부유하게 살 수 있습니다. 건강하고 힘있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은혜를 주신 목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나만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 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는 항상 그 은혜를 주실 뿐 아니라 받은 바 은혜를 적극적으로 나누어 주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의 근원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나만 은혜를 누리고 은혜를 나누어 주지 않는 다면 死海 같이 어느새 은혜가 메말라 버리고 쓸모없이 되고 말것입니다. 죽은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받은 바 은혜를 적극적으로 나누어 주는 생활을 살면 생명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고린도 성도들이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이유는 예수님의 은혜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강해 헌금의 본이 되신 예수님
말씀 고린도후서 8장 1-고린도후서 8장 9
요절 고린도후서 8장 9
고린도후서 8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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