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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후서 5장 강해 이부 하나님과 화목하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12-30 00:00:00
조회수 : 4,363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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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강해 이부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린도후서 511-고린도후서 521

요절 고린도후서 520

 

요즘 인간소외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산업의 기계화로 인간이 소외되고 인간과 인간이 바른 관계성을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 대표적인 예가 이혼가정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 소설에 이상의 날개 같은 것도 파행적인 부부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 주인공 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아내와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자신과도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그는 관계가 파괴된 단적인 예로 돈을 쓸 줄 모릅니다. 그는 돈을 벌면 화장실에 돈을 넣어 버립니다. 아니면 아내와 잠잘 때 아내에게 줍니다.

요즘도 이런 인간이 많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서로 화목하게 지낼 수 있는 길을 무엇입니까? 바울의 신앙은 이 하나님의 사랑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눈이 멀었고, 하나님의 사랑에 미쳤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켰습니까?

 

(자신을 자랑하는 바울)

 

11,12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우리는 예수님만을 전해야합니다. 메시지에 나의 신앙고백이 있어야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목자로 살 때 인격이 따라가야 합니다. 복음을 텔레비전으로 전하다보면 복음보다 사람에게 주목하게 됩니다.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은 사랑을 해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주님이 두려우신 분임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이미 어떤 사람인가 알려졌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의 양심에도 자신이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해서 바르게 알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스스로 치켜 올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고린도 교인에게 바울에 대해서 자랑할 기회를 주고자 함입니다. 목자를 자랑하는 선한 양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외모로 자랑하고 사도들의 추천서로 자랑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을 말하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성도들에게 하는 말을 순수하게 듣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다는 것은 사랑과 용기를 줍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아시므로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담대함으로 고린도 성도들이 자신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목자를 바로 알고 자랑해야 사단의 시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자천해야 복음을 전할 수 있음)

 

서양에서 인사한 후에 나이나 학교나 아이가 몇인가를 물어보지 말아야합니다. 결혼하지 못한 사람, 시집가지 못한 사람, 아기 못난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하든지 순수하게 들어야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과거나 학력을 생각하면 복음을 들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들을 때는 순수하게 들어야합니다. 다른 생각하지 않아야 은혜가 됩니다.

목자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면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말로 들으면 목자의 사적인 간증에 오해가 됩니다. 메시지에는 자신을 말하는 요소가 따릅니다. 확실한 믿음으로 말하면 아집처럼 보입니다. 절대적인 신앙이 독선주의자처럼 보입니다.

신앙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은혜 받은 것을 말하면 은혜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한 메시지보다 더 확실한 메시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멀리 하고 들으면 한 시간 내내 자기 자랑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바울은 양들에게 자천합니다. 바울 자신의 이야기는 꼭하겠다고 합니다. 고린도 교회를 율법주의자의 유혹에서 건지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주의자에게 반박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에 대해서 자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단의 시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바울은 양들에게 목자를 자랑할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교회에 대한 자랑, 목회자에 대한 자랑이 불분명하면 유혹에 빠집니다. 어떤 율법주의자가 율법을 알아야 한다고 성도들에게 말했다고 합시다. 고린도 성도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가말리엘 출신이고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분이 예수님 믿고 변화된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율법주의자들도 대항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자랑거리가 율법주의자를 대항하는데 소중한 소재로 쓰입니다.

말씀을 바로 듣는데도 내게 들려준 저분이 누구냐가 중요합니다. 그에 따라서 메시지의 질이 달라집니다. 자기의 목사를 존경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이 바로 들립니다. 교인이 말합니다. 우리 목사님은 우리를 위하여 자주 금식한다고 자랑합니다. 새벽기도 매일 인도하는 하는 것을 자랑합니다. 이런 사람이 복음을 바로 들을 수 있습니다.

 

(양들을 위해서 미친 바울)

 

13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사도 바울이 자신을 자랑하니 사람들은 바울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하여 미쳤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온전하여도 양들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올랐고, 하나님을 위해 전폭적으로 자신을 드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매 맞고, 밥을 굶으며 헌신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복음을 전하는 것을 보고 술에 취했다고 합니다. 베스도 총독도 바울에게 미쳤다고 합니다. 많이 지식이 미쳤다고 합니다.

요즘에 미친 존재감이라고 합니다. 옥한음 목사님은 광인론을 썼습니다. 12시가 되었는데 추운 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림에 미친 사람이 있습니다. 단 고스톱으로 미쳐서는 안 됩니다. 미쳐도 제대로 미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래 무엇을 가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 현재 미친 것입니다. 미친 사람을 볼 때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상식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습니다. 미친 사람은 미쳤다는 것을 모릅니다. 미친 사람은 자신이 정상이고 다른 사람이 미쳤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예수님께 미쳤습니다. 그를 위해서 얼마든지 죽을 수 있습니다. 온 생명을 쏟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오해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은 저만 잘 믿는다고 한다고 생각하기 쉽니다. 그는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제 정신차렸다는 것입니다. 윤리성 도덕성 자제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떠들고 싶어도 참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참는다고 말합니다. 말하지 않는 것이 온전합니다. 미친 것 같으나 자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훌륭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사랑하여 온전함을 찾아갑니다. 누가 그에게 미쳤다고 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어떻게 그가 이런 미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를 강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14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람이 우리를 강권하시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 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로다.”

 

그는 하나님이 나를 강권한다고 합니다. 강요한다는 말입니다. 억지로 끌고 간다고 합니다. 사랑에 미쳐산다는 것입니다. 사랑에 미친 사람이 행복한 것입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립니다. 그를 사랑하는 것만이 좋고 그를 사랑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는 그 순간에 나도 죽습니다. 그 사랑만이 나의 소망이요. 나의 힘입니다.

중국 선교회를 창설한 허드슨 테일러가 있습니다. 해외선교사 후보를 심사합니다. 왜 선교사를 가려고 하느냐고 하니 땅끝까지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지옥갈 사람을 위해서 전한다고 합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쳤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랑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사랑의 빚을 져서 사랑의 빚을 갚아야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기쁨과 감격이 폭발할 것 같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강한 의지가 작용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보답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원수 사랑하고 고난당하고 선교사로 가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위해서 미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심령에 강권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를 미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났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모두 선악 간에 심판을 받고 영벌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가난하고 질병 가운데 살았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두려움과 불안 가운데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한 분께서 우리 모두를 위하여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때문에 채찍 맞으시고 못 박히셨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께 미친 사랑입니다. 인간은 예수님 한 분 때문에 심판에서 영생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인해서 건강하고 부요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도바울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

 

특히 사도 바울에게 예수님의 사랑은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요,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히 고통 할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몸으로 친히 사도 바울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감격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도다 하였도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니라

아름다운 여자가 있습니다. 책을 하나 선물 받았습니다. 우드라는 사람이 쓴 것입니다. 책이 재미가 없습니다. 책을 버렸습니다. 어떤 모임에서 한 사람에게 첫눈에 반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우드입니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저자가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책이 너무 재미 있어 밤새 읽었습니다. 우드가 패밀리 네임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면서 그 책을 보니 좋고 함께 있는 것이 좋고 죽어도 좋은 것입니다. 나라는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미친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가장 활기 있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양들을 위해서 관제로 드려도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삶)

 

15,16절을 보십시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심은 우리는 이제는 다시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사랑하는 예수님을 위하여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받으면 우리의 인생 목적이 바뀝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 것도 달라집니다. 다른 사람을 육체를 따라서 알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 재산이 얼마나 많으냐 현재 어떤 지위에 있느냐로 보지 않습니다. 그의 중심에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것으로 바라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의 아들로 유대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바라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

 

17절을 보십시오.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피조물을 창조되었다는 말입니다. 새로운 존재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이나 똑같이 살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윤리적으로 달라진 것, 좋은 습관을 가졌다고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노아시대 사람들을 심판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자는 죽은 자입니다. 야고보서에 영혼이 없는 자는 죽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출생 성장 죽음은 신비로운 것입니다. 식물인간은 육체는 살아있는데 정신이 없습니다. 성경적으로는 영혼이 떠나면 죽은 것입니다. 영혼은 떠나고 육체만 살아있는 것을 육체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노아시대의 사람들을 심판한 것은 죽은 사람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재창조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바울에게 새로운 하나님의 형상을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리스도 사랑은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사랑 안에서 옛 사람 사울은 죽고 새사람 바울이 되었습니다. 죄악 되고 율법적인 사울은 죽고 바울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인간적인 사울은 죽고 순결하고 은혜로운 영적인 바울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사는 자가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능력 있는 사람, 사랑이 풍성한 사람, 많은 양을 치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 거룩한 사람, 양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변화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안에 거할 때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나를 위해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갑니다. 생의 본질과 목적이 바뀝니다. 심판을 향하여 가던 사람들이 하늘나라를 향하여 갑니다. 교회는 천국 대합실로 바뀝니다. 새색시를 왜 새댁 새색시라고 합니까? 지금까지 친정을 위해서 살던 사람이 이제는 시댁을 위해서 사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면 이제 모든 것이 새롭게 변합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책)

 

18,19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케 하시고, 또 우리로 하여금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니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먼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습니다. 여기서 화목은 복음의 비밀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복음을 화해의 복음, 화목케 하는 복음이라고 합니다. ‘화목은 원수 되었던 상태가 정상적인 상태로 화목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되었습니다. 구약에는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화목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사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믿으면 모든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20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권하십니다. 여기서 사신은 대사라는 뜻입니다. 사신은 라틴어로 레가투스라고 합니다. 로마는 지중해의 작은 나라입니다. 당시의 로마 본국은 원로원에서 결정하고 황제가 집행합니다. 여기는 친위대가 있고 군대는 없습니다.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여 큰 식민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세계를 지배하여 그곳에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그곳에는 황제가 직접 다스리지 못하고 황제를 대신하는 사람이 가 있습니다. 그를 사신이라고도 하고 총독이라고 합니다. 당시에 총독이 열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대사요. 총독이라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총독이 되어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총독이 다른 나라에서 통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언어 문화 풍속 종교 생활 방식이 다릅니다. 이곳에서 황제를 대신하여 다스립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를 반기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낯선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 믿는 사람 사이에서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신은 본국의 명령을 따라서 살아가야합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는 해야 하나 동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문화를 갖고 문화를 선전해야합니다.

우리 신자는 소금의 맛을 내야지 자신의 맛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세상을 개혁해야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대사에게는 왕의 영광이 있습니다. 당시에 대사는 사람들을 살리고 죽을 수 있는 생사권이 있습니다. 상당한 자율권이 있습니다. 로마 사신에 의해서 로마 황제의 이미지가 달라집니다. 우리 신자에 의해서 하나님의 이미지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처신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 대사에 의해서 복음이 전달이 좌우됩니다. 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말을 들어야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라)

 

대사가 전할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 여러 가지 문제가 많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특히 사람들과의 분쟁 문제는 하나님과 화목할 때 다 해결됩니다. 당시에 고린도 성도들은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다투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파다” “나는 게바파다” “나는 아볼보파다”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파다하며 45열 되어서 다투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목자의 사랑을 분신하고 대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 때문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항상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문제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사람들과 불화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 불화한 것이 문제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적극 권면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라

 

(인간 화목의 길)

 

요즘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성이 많이 깨져가고 있습니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인간은 기계화 되었습니다. 인간은 기계를 사용하면서 고립화, 개별화, 소외화 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요즘은 정보화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컴퓨터와 나 혼자만의 세계를 갖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컴퓨터 통신과 Internet을 통하여 서로 교제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아닌 또 다른 I.D를 사용하며 자아분열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런 것은 실생활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이 점점 깨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관계 파괴의 대표적인 예가 이혼입니다. 인간과의 사랑의 관계성이 맺히지 못하자 점점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동생활을 기피하는 것도 이런 인간관계 파괴의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사는 것보다도 혼자서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독신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인간관계 파괴를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문화에서 해결책을 찾습니다. 즉 사랑과 이해와 희생이 있는 전통문화를 회복한다면 인간관계도 회복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호소력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현대 산업화, 정보화 된 사회에서 살면서 전통적인 문화를 갖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파괴된 근본 원인은 산업화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그 근본 원인을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파괴된 데서 찾습니다. 인간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인간관계도 파괴되었습니다. 본래 아담과 화외는 서로 하나님 안에서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아담은 아내에게 너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내 뼈 중 뼈라는 사라의 고백을 했습니다. 그들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해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이에 벽이 없었고, 하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파괴되자 아담과 하와의 관계도 파괴되었습니다. 아담은 왜 범죄했느냐? 묻는 하나님의 질문에 하나님이 주셔서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그는 여자에게 자신의 책임을 전가시켰습니다. 사랑의 관계가 원망과 불평의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런 관계성 파괴는 그 후손들에게 갈수록 심각해집니다. 그 아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고, 그 후손 라멕은 사람을 죽이고 노래했습니다. 노아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강포하고 서로 관계성을 맺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람 사이에 관계성이 깨어진 근본 원인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요즘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과 불화관계가 되자 사람과의 관계성은 점점 황폐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해 살인 공장을 차려놓고 사람을 주여 불태운 지존파, 아버지를 살해한 박한상, 김성복, 올해 남편을 살해한 사건들은 그 단적인 예입니다. 요즘은 지존파를 흉내 낸 막가파가 있습니다. 막가파는 막가는 인생들로서 외제차 탄 여인의 돈을 빼앗고 사람을 생매장해 버렸습니다. 이런 사회적인 문제뿐 아니라 우리 주위에 공동생활, 가정, 교회도 인간불화 문제로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문제의 해결책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이런 인간관계의 원인을 사람과 사람사이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로 방향전환을 해야 합니다. 특히 나의 죄 문제로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조를 발견하고 깊이 회개할 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사람들과의 관계성도 회복됩니다.

 

(야곱의 화해)

 

야곱은 에서와 불화 문제로 시달렸습니다. 야곱은 에서에게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 명분을 사고, 에서를 속이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빼앗았습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서 밧단 아람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에서는 3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야곱을 죽이고자 나왔습니다. 야곱은 에서와 화해하고자 온갖 방법을 다 썼습니다. 뇌물을 보내되 3차례로 나누어 보냈습니다. 그는 암염소 200, 숫염소 20, 황소 10, 암나귀 20, 새끼나귀 10을 보냈습니다. 그의 뇌물은 현시가로 10억이 넘는 거액의 뇌물이었습니다. 그래도 그의 심히 두렵고 답답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때 이것이 하나님과 화해치 못하고 불화한 문제임을 인식했습니다. 그는 이때 단독자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빼앗고 속이는 야곱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오실 화목재물 되신 예수님의 피를 믿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했을 때 에서와의 불화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화목했을 때 살기등등한 에서의 얼굴이 하나님의 얼굴 같이 보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할 때 사람과도 화목하게 됩니다.

 

(화목의 길)

 

대부분 사람들과 불화하는 사람들은 사람들과 많이 싸웁니다. 상대방을 탓하고 환경, 조건을 탓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은 사람이나 환경,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면에 죄가 더욱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를 거라사 광인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거라사 광인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는 가족을 떠나고 회당을 떠나고 사회를 떠나서 무덤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 때문에 구속을 받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사람을 떠나도 그는 자유가 없었습니다. 욕구불만 속에서 늘 소리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짓찧으며 자학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 군대 귀신을 내어 쫓고 자신의 죄를 위해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화목했을 때 사람들과의 관계성도 회복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불화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대적이 되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화해하면 늘 마음이 편하고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셔서 도와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화목케 하는 직책을 맡았다고 말합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책)

 

18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났으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케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우리는 자신과 하나님만 화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화목케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도록 돕는 일입니다. 이는 어려운 일이나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트러불 매이커가 아니라 피스메이커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사람들이 화목하게 하도록 해야합니다. 우리가 평화롭게 하는 것은 인간적인 평화는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평화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잠시 불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평화 온전한 평화를 주어야합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죄인이 되신 것은)

 

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예수님을 우리를 위하여 죄인으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는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의로운 자신의 아들을 죄인 삼으신 것은 크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화목하게 합니다. 우리가 화목을 위해서는 의를 버리고 죄인 취급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를 많이 입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오드리 햇번은 유니세프에서 어렸을 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유니세프의 대사가 되어 일하였습니다. 그는 은혜를 입은 유니세프를 위하여 일하는 것을 당연하도 말하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은혜를 받은 대로 사신으로 화목하게 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이 시간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라.”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사이에도 화목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과 양들 사이에 화해시키는 화목케하는 직책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Amen!

고린도후서 5장 강해 이부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린도후서 517-고린도후서 521

요절 고린도후서 520

고린도후서 5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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