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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고린도후서 5장 강해 일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12-30 00:00:00
조회수 : 4,85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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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강해 일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말씀 고린도후서 51-고린도후서 510

요절 고린도후서 51

 

(미래 지향적인 삶)

 

기독교인은 미래 지향적이고 영원지향적이고 낙천적인 사람들입니다. 과거에 쫓겨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에 잘못되고 잘된 것을 가지고 다투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00년 살다가 가나안땅을 향하여 갑니다. 이제는 애굽의 삶을 잊어야합니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보고 가야합니다. 로마서 818-25절을 보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고난 가운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말합니다.

 

(우리의 장막집)

 

1절을 보십시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여기서 장막집은 우리의 육체를 의미합니다. 육체는 장막집과 같습니다. 장막집은 tent 같은 임시 처소입니다. Tent는 야영이나 훈련 중에 임시로 거하는 곳입니다. 장막은 난방, 수도시설, 침대시설이 안되었기 때문에 불편한 것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장막은 언젠가 걷어야 하는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집을 잘 지어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장막집은 무너집니다. 장막집이 무너지는 것은 죽음을 말합니다. 우리의 육신도 장막과 유사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장막은 많아야 80,90년이 되면 걷어야 합니다. 우리 육신은 장막처럼 약하고, 추하고, 욕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은 임시적입니다. 천막은 비싼 집이 아닙니다. 많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천막을 좋은 것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금은 보석이나 돌로 만들지 않습니다. 천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쉽게 쳤다가 쉽게 걷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막집과 같은 육신에 너무나 많은 것을 투자할 필요가 없습니다. 천막은 약합니다. 태풍이 불어오면 쓰러집니다. 나무가 무너져도 쓰러집니다. 몸도 약합니다. 몸의 장기도 수리하면서 삽니다. 그러다 때가 되면 내어버립니다. 이 천막은 자연히 낡아지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벗어져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육신으로 인하여 탄식했습니다. 그는 육신으로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매를 맞고 돌에 맞아서 육신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질병으로 그의 육신은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우리 몸도 사도 바울과 마찬가지입니다. 장막집과 같은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피곤하고 지칩니다. 소화불량, 두통, 요통, 치통과 같은 질병에 시달립니다. 잠만 몇 시간 못자도 힘이 없어 비틀거립니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서 눈이 아프고, 소화불량을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육신의 고통이 있을지라도 탄식만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사람은 죽으면 끝이라고 합니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무서운 사람입니다. 죽이면 끝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아무 두려움 없이 죄를 짓습니다. 죽어도 좋다고 하고 이판사판 달려듭니다 이들이 악한 죄를 많이 짓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더 좋은 소망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있었습니다. 저는 과거 한 칸짜리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 집은 위풍도 심하고 입식 부엌도 아니고 찬바람이 쌩쌩 부는 집이었습니다. 화장실은 공동 화장실인데 학생들이 오바이트를 하고, 아무데나 배설을 하여 차마 사용하기 힘든 집이었습니다. 이런 집에 살 때의 소망은 위풍 없고, 보일러가 들어오는, 따뜻한 입식 부엌,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지금 교회에 있는 기름보일러 집에서 사니 얼마나 따뜻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재는 육신의 집으로 불편한 것이 많으나,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의 육신을 벗고 하나님이 지으신 새로운 하늘나라의 좋은 집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간절히 사모하는 우리의 집)

 

2-4절을 보십시오.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하늘에 있는 처소를 덧입고자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는 오로지 새로운 집 튼튼한 집, 영원한 집에 살기를 소망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집을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처소,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이 집은 부활의 몸입니다. 부활의 몸은 영원하고 아름답고 강한 집입니다. 예수님처럼 시공을 초월한 자유로운 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재림할 때 이 영원한 집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려면 죽어야합니다. 천막이 무너져야 좋은 집에 갈 수 있습니다. 죽음을 거쳐야 하나님 나라 갈 수 있습니다. 이대로의 몸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세계는 역설적으로 죽어야 갈 수 있습니다.

죽음의 과정을 거치는데 바울은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한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장례식은 돈이 들고 과정이 복잡합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이 재림하면 죽음을 거치지 않습니다. 그러면 홀연히 변화됩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을 꿈꿉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합니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거치지 않고 주님의 재림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벗고자 함이 아니라 덧입고자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 사는 것이 싫어서 하나님 나라가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곳에 사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더 좋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가는 것을 소망합니다. 친정이 싫어서 시집가고자 하는 것은 잘못 가는 것입니다. 친정이 좋지만 신랑이 더 좋아서 시댁에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국에 있는 것이 좋지만 선교사로 가는 것이 더 좋아서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현실을 긍정하며 하나님 나라를 꿈꿉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사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을 위해서 양들을 위해서 좋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가 더 좋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두면 현재의 고난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영원지향적인 세계관)

 

우리가 비행기를 타면 도착지로 시계의 시간을 고치는 것이 좋습니다 이곳에 시간, 이곳의 일을 생각지 않습니다. 그쪽에 가서 할 일을 생각해야합니다. 떠나온 곳만 생각하지 않고 떠나갈 곳을 생각해야합니다. 이것이 안 되니까 저것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 있는 것이 좋으니 전에 있는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술담배를 끊으려면 술담배보다 더 좋은 것을 찾아가야합니다.

교회에 오는 것을 행복하게 여기면 교회에 오는 것이 쉽습니다. 교회에 가는 행복을 모르면 교회에 가는 것이 힘이 듭니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긍정을 따라서 가니 부정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괴로우니 죽어버리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지향적인 세계관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현재 지향적인 가치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면 현재를 싸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늘 나라를 보증하시는 성령님)

 

5-7절을 보십시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활하여 영생복락할 것을 보증하시기 위해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보증은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게 하십니다. 보증수표와 같습니다. 보증 수표는 돈이 아닙니다. 그러나 돈과 같이 생각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미래의 세계가 확실해지는 것입니다. 감격해지고 충만해집니다. 살든지 죽든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주 초연하게 살아갑니다. 살아서 기쁨이 되면 살고 죽어서 기쁨이 되면 죽습니다.

사도바울은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스데반은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성령으로 하나님이 주실 영생을 확신하였습니다. 영생의 소망을 갖고 사는 바울은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먼저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소심하게 살아갑니다. 원치 않게 죄와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신앙이 있을 때 담대하게 죄와 싸울 수 있었습니다. 적극적으로 고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현재 주와 따로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때로 바울은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귀에 들리는 것이 없어서 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할 것을 믿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믿음으로 살았고 보는 현실을 따라서 살지 않았습니다.

 

(주와 함께 하는 삶)

 

8-9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바울이 담대하여 원하는 것은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주님과 함께 살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복락하기를 소망하였습니다. 바울은 주님과 함께 할 날을 소망하며 현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살든지 죽든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썩어 없어질 장막같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변화되어야합니다. 바울은 그날을 사모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쪽을 더 좋아합니다. 담대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삶)

 

10절을 보십시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니

 

우리의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 부활이 있습니다. 부활한 후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영벌의 부활을 받게 됩니다. 이 때는 우리의 전 인생을 평가받는 날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심판을 믿기 때문에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옷깃을 여미며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 짓기를 두려워하며 절대 신앙으로 살아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영원히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영광의 면류관)

 

그날에 영생의 부활을 하는 자는 상급이 결정됩니다. 마치 별의 밝기가 다르듯이 우리는 각기 다른 영광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때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승리의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이 상급이 있기 때문에 주님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할 수 있습니다. 온전히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희생적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강해 일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

말씀 고린도후서 51-고린도후서 516

요절 고린도후서 520

고린도후서 5장 강해 일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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