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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로마서 8장 강해1 일부 성령을 따르는 사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3 00:00:00
조회수 : 3,104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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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 강해 일부. 성령을 따르는 사람

로마서 81-로마서 817

요절 로마서 85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로마서 8장은 개인신앙 생활의 마지막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개인신앙 생활에서 이제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은 성령을 따르는 생활입니다. 성령을 따르는 생활은 성령이 주체가 되어 앞서 가고, 성령의 뒤를 따르는 사람이요. 성령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요. 성령의 대세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성령을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하는 삶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따르는 삶을 산 사람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죄와 율법과 사망에서 자유를 얻고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시간 성령을 따르는 생활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도피성 예수님)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1)

 

구약에 보면 도피성이 나옵니다. 도피성에 있는 사람은 정죄하지 못합니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그에게 복수하지 못합니다. 도피성에 있는 제사장이 그를 보호하여 줍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누구도 결코 우리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현장에서 간음죄를 범한 여자에게 예수님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정죄를 받으시고 우리를 정죄하는 모든 자가 우리를 떠나게 하십니다. 사단도 우리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사단이 정죄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내세우면 됩니다. 나도 나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죄의 세력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킹제임스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There is therefore now no condemnation to them which are in Christ Jesus, who walk not after the flesh, but after the Spirit.” 육신을 따르지 않고 영을 따라서 행하는 우리에게는 다시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육신의 소원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원을 따라서 살아갈 때 죄를 이길 수 있고 은혜 속에서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성령)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2)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문제는 우리의 육신이 연약한 것에 있음을 배웠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이 우리 마음의 법보다 더 힘이 세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해결책은 예수님을 의지하는 데 있음도 배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보다 율법을 더 잘 지킬 수 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보다 더욱 힘이 셉니다. 죄와 사망을 이기는 길은 바로 성령을 충만히 받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누구에게 주십니까? 우리가 언제 성령님을 받았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주인으로 영접했을 때 성령님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8장에 보면 성령님을 여러 가지로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의 영, 하나님의 영, 양자의 영, 혹은 그리스도 자신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제 우리가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우리의 주요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높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분을 로마 황제보다, 집의 아버지보다, 자녀들보다 그리고 학교 교수나 총장보다 대통령보다 돈보다 자존심보다 명예보다 예수님을 더 높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자신보다, 돈보다, 애인보다, 양보다 더 사랑해야 합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경외하고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죄의 법보다 더 강한 성령의 법을 주십니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법이 우리를 지배하게 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십니다. 바울은 죄와 성령에 대해서 법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법은 강제적이고 힘이 있습니다. 법은 우리를 지배합니다. 지금까지는 죄와 사망의 법이 우리를 지배하였습니다. 죄가 우리보다 힘이 있어서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는 반복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에는 사망권세가 우리를 지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의 법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성령께서 새로운 생명이 되어서 우리를 온전히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보다 더 힘이 셉니다. 성령의 법은 죄의 법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주된 일은 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많은 은사는 부수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멸하는 성령의 능력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육신의 죄를 심판하신 하나님)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3)

 

율법은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여 율법을 다 지키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연약한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셔서 연약한 육신을 극복하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려면 반드시 우리의 죄 문제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죄를 심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속죄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죄의 값을 다 갚아 주시고 죄의 세력을 멸하셨습니다. 우리 죄악된 옛사람을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위해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는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죄와 율법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영을 따르는 생활)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4)

 

성령을 받은 우리는 이제 성령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 생명이 있습니다.

죄를 행하는 육신의 생명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마음 곧 나의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받은 새로운 생명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일하십니다. 성령께서 분명히 우리 안에 살아서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소원과 힘을 주십니다. 죄가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일하듯이 성령님께서도 우리에게 소원을 두십니다. 이제는 성령님이 주시는 소원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성령을 따라서 사는 사람은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율법을 다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었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율법에서 자유케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성령님이 주시는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성령이 도우시는 힘을 따라서 십계명을 지키게 됩니다. 점점 성화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을 따르는 자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하나님 편에서 생각)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5)

 

성령님을 따르는 자는 성령의 일을 생각합니다. 성령을 삶의 중심으로 삼는 자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생각은 마음을 쓴다는 말입니다. 생각의 경향성을 세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프레임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48절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위의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을 쓰는 것은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고 해석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생각에 나의 생각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로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성령을 소멸시키지 않고 근심시키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행전 1322)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다윗은 그의 중심이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분노하는 일에 분노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에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사울이 죽었을 때 그는 슬퍼하였습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사울이 죽었을 때 기뻐해야 했지만 그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여 슬퍼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성령의 생각을 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모든 뜻을 이루어 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만류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심하게 책망했습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예수님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은 사단이라고 하였습니다. 인본주의 생각은 사단의 생각입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인간 예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십자가를 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하나님의 아들 편에서 생각하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신본주의자입니다.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성령을 따르는 삶은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부부가 일심동체가 되듯이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성령의 힘으로, 성령의 뜻을 따라서, 성령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성령을 따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시편 일편에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성령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매일 양식을 쓰고 소감을 쓰는 생활을 통해서 우리의 생각을 훈련해야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소경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그를 보고 누구의 죄냐 부모냐 아니면 그 사람의 죄냐를 따졌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무력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가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힘 있게 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서 살면 다윗처럼 우리를 귀히 쓰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소원을 따르면 율법의 요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영을 따르는 자는 얻는 생명과 평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6)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하느냐 영의 생각을 하느냐는 것은 결과가 다릅니다. 인본주의냐 신본주의냐는 결과가 천지 차이입니다. 육신을 따르면 결과가 사망입니다. 육신은 잠시 있다가 사라집니다. 육신은 풀과 같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결국 다 사라집니다. 육신이 주는 생각을 하면 마음에는 두려움과 허무함과 슬픔이 찾아옵니다. 지옥에 가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하면 우리의 마음에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생명과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영원한 기쁨과 평화를 주시고 영원한 행복을 주십니다.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생각을 하였을 때 생명과 평안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사람의 생각을 하였을 때 그는 번민에 시달렸습니다. 베드로사 하나님의 생각을 할 때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가룟유다가 사람의 생각을 하였을 때 자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는 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못합니다. 인간 편에서 생각하면 자신의 뜻을 고집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하나님을 슬프시게 합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슬프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물심판으로 진노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서 생각을 해야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람)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9)

 

우리가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하려면 우리 속에 성령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을 하나님의 영이라고 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영접한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만일 우리의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우리는 육신적인 사람이 아니라 영적인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제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들과 함께하십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없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이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내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예수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크리스천은 성령이 우리 마음속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을 따라서 사는 사람입니다.

 

(영과 몸의 부활)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10,11)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시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는 살아나게 됩니다. 우리의 영이 살아나게 됩니다. 슬픔과 두려움 허무와 같은 사망권세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살아나 기쁨과 평안과 자유를 누립니다.

영은 살아나도 우리의 몸도 지금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언젠가 죽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이 살아나면 우리 죽을 육신도 죽은 후에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게 도우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몸을 부활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썩지 않고 강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살아나게 하십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셩령께 빚진 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12)

 

우리는 육체에게 빚을 진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육체를 따라서 살 의무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빚을 진 자입니다. 죄사함과 사랑의 빚을 진 자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서 살 의무를 가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죄사함을 받은 후에 성령에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 이 빚은 은혜의 빚이요, 사랑의 빚입니다. 이 빚은 강압적으로 갚는 빚이 아니요. 자발적으로 갚는 빚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13)

 

우리가 성령을 따라서 사는 데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세 가지 생명이 있습니다. 육신의 생명과 성령의 생명과 나의 생명입니다. 생명은 소원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소원과 성령의 소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소원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소원을 따라서 살려면 육신의 소원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땅의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소원을 따라서 살기 위해서 육신의 소원을 죽이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생명이 죽는 것이므로 고통이 따릅니다. 우리가 고통스러워도 성령의 소원을 따라서 육신의 소원을 죽이며 살아야 합니다. 인일욕, 음욕, 물질욕, 이기심, 교만을 죽여야 합니다. 인간적인 정, 잔꾀를 죽여야 합니다. 인본주의적인 생각을 죽여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로 이런 생각을 죽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기도에서 육신의 소욕을 죽였습니다. 우리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소원을 따라서 살면 우리는 더욱 영적인 생명이 살아나게 됩니다. 생명력이 넘칩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넘쳐 납니다. 하지만 우리가 육신의 소원을 따라서 살려면 성령의 소원을 죽여야 합니다. 우리가 육체의 소원을 따라서 살면 잠시는 편하고 기쁘고 좋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죽게 됩니다. 무기력해지고 슬픔에 빠집니다. 나중에는 지옥에 갑니다. 성령의 소원을 따라서 사느냐 육체의 소원을 따라서 사느냐는 것은 죽느냐 사느냐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4)

 

누구든지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렇죠?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야 하나님의 자녀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육체의 소원을 따라서 살면 우리는 사단의 자녀요, 어둠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따라서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성령을 따라서 살면서 육신을 따라 살고 싶은 소원을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유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양자의 영을 받은 우리)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15,16)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종의 영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종과 같이 자유가 없고 자발성도 없었습니다. 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항상 원망과 불평으로 살아갑니다. 희망도 꿈도 없습니다. 종의 영은 무서워하는 영입니다. 종의 영 곧 육신의 영의 지배를 받는 자는 두렵습니다. 노예들이 주인의 눈치를 보며 살듯이 그들은 두려움의 노예가 되어 살아갑니다.

사울은 악신이 임했을 때 괴로워합니다. 음악을 듣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은 후에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성령님은 양자의 영이시고 평강의 영이 되십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서 살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지키십니다. 평강은 나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좇아 살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물 같은 잔잔한 평화가 넘쳐 나게 하십니다.

또한 양자이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심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아바는 아빠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려서 아버지를 친밀하게 아빠로 부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아빠가 육군 대장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니고 세계 최고의 갑부도 아닙니다. 이들보다 훨씬 뛰어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역사와 천지만물의 주관자이십니다. 생사화복의 주관자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사람보다 부자이시요. 어떤 사람보다 권세를 갖고 계십니다. 어떤 의사보다 훌륭한 의사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더 나아가 사람이 줄 수 없는 영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돌보아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우리의 가난이나 질병을 그냥 두시겠습니까? 우리는 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이십니까? 또한 성령은 자유의 영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자유를 주십니다.

 

(고난을 받아야 영광도 누림)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17)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후사는 상속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상속자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함께한 상속자입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상속하시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는 영광을 상속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영광스럽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서 육신을 죽이는 삶을 살면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상속자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이 받은 모든 영광을 상속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것이 다 우리의 것이 됩니다.

우리가 이런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육신을 죽이는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을 죽여야 하는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영광과 이익을 죽여야 합니다.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핍박을 받아야 합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아야 예수님과 함께 영광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을 따라서 사는 삶)

 

결론적으로 우리는 육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라고 절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게 도우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가도록 도우십니다.

예수님을 믿은 우리는 이제 성령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생각을 하고 성령님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육신을 죽이며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아멘!

로마서 8장 강해 일부. 성령을 따르는 사람

로마서 81-로마서 817

요절 로마서 85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로마서 8장 강해 일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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