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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로마서 4장 강해 아브라함의 믿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3,99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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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 강해 일부. 아브라함의 믿음
로마서 4장 1- 로마서 4장 12
요절 로마서 4장 3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3)

새해에 여러분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이나 들은 말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니면 “새해 부자 되세요.”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가장 많이 해야 할 말은 “새해 예수 잘 믿으세요.” 아니면 “새해 하나님을 사랑하세요.” “성령 충만 받으세요.”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 가장 큰 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왜 가장 큰 축복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복음의 핵심진리를 말했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를 들어서 이들이 믿음으로 살아서 어떤 복을 받았는지 말합니다.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 아브라함)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1,2)

사도바울은 지금까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진리를 말했습니다. 이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를 들어서 이 진리를 더욱 견고하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언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까? 그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장막생활을 시작할 때가 아닙니다. 사명의 땅에 남기 위해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소돔과 고모라 땅을 조카 롯에게 양보한 후가 아닙니다. 아니면 한 양 롯을 구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한 후도 아닙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린 후도 아닙니다. 만약에 이런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었으면 아브라함이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피해의식에 빠져서 두려워하고 있을 때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의롭다 함을 받은 것에 대해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의롭다 하신 하나님을 자랑할 뿐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아브라함)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3)

아브라함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신앙생활 출발한 지 10년쯤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구출하는 전쟁을 하고 많은 물질을 손해 봤습니다. 그돌라오멜 동맹군과 적대관계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아브람에게는 자식 하나도 없었습니다. 마음에는 피해의식과 두려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신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생겼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나는 너의 방패요. 상급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상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반문했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다메섹 엘리에셀입니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시오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주님이 자신에게 상속자를 주시지 않았다고 불평했습니다. 이제 자신의 노력으로 키운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에게 엘리에셀이 너의 상속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원한 밖으로 이끌고 나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십 년 동안 신앙생활하고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자식도 땅도 없었습니다. 돈만 쓰고 시간만 흘렀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말씀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말씀을 듣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한 분을 소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아무 축복도 받지 않은 데서 믿는 깨끗하고 순수한 믿음이었습니다. 욥이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고 건강을 잃고도 하나님을 믿은 믿음과 같이 순수한 믿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고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미 약속을 받은 것으로 여기고 가슴이 뛰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믿은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을 소유한 아브라함)

성경에는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방패요 상급을 주신다는 것을 믿었다고 나오지 않습니다. 뭇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신다는 것을 믿었다고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바로 그 약속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믿는 것과 하나님 자신을 믿는 믿음은 매우 다른 것입니다. 여호와 자신을 믿은 믿음에 아브라함의 위대성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주시겠느냐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지금 당장 아들도, 돈도, 집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보호와 상급과 소망에 관한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말씀을 주신 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믿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매우 지혜로웠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바로 하나님 자신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주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를 큰 민족으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을 보호하시고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무엇을 주시고자 하시는지 알아차렸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위대성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 안에 제자들도 있고, 돈도 있고, 건강도 다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는 승리도 있고, 영광도 있고, 명예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의 마음에 영생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믿음)

하나님을 소유한 믿음은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아니 충만하여 흘러넘칩니다. 아브라함은 당시에 자녀도 돈도 없었습니다. 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한 분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자났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하나님 한 분이 있으므로 만사 ok였습니다. 하나님 한 분이면 더 이상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박국은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믿음입니다.
다윗은 여호와가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대적 앞에서도 하나님이 상을 차려 주시니 그의 잔이 넘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가 필요하시죠? 특히 요즘은 돈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에게는 좋은 학점이 필요합니다. 직장도 필요합니다. 어떤 가정은 예쁜 딸을 낳고 싶은 가정도 있습니다. 목자님들은 좋은 제자를 키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것을 먼저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먼저 주십니다. 하나님을 소유하면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나중에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식을 달라고 할 때 하나님 자신을 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 뭇별처럼 많은 자식이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물질이 없고 대적의 공격이 있을 때도 하나님 자신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지극히 큰 상급을 주실 것이며 적을 막아 주시는 방패가 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자에게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사울에게서 쫓겨서 죽음의 위험 가운데 있을 때 방패와 산성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방패요. 산성이 되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믿음)

하나님을 믿는 것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에 일하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안에서 꿈을 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와 같이 많은 자식을 주실 소망을 심으셨습니다.
이 소망은 사백 년 후에 아니 이천 년 후에 이루어질 일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 안에서 미래의 꿈을 꾸는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사람은 살아갈 힘이 납니다. 꿈이 있어야 눈빛이 달라지고 걸음걸이가 달라집니다. 꿈이 있어야 가슴에 벅찬 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계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일관된 소망은 세계 만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꿈입니다. 세계 만민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복락하는 꿈입니다. 상함도 해됨도 없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꿈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어 통치하시는 나라를 꿈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이런 꿈을 꾸어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삶)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4,5)

일한 자는 당연히 삯을 받습니다. 일을 했는데 삯을 안 주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데모하고 고소합니다. 그런데 일을 하지도 않았는데 삯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를 은혜라고 합니다.
포도원 일꾼의 비유에 보면 한 시간만 일을 했는데도, 세 시간만 일을 했는데도 하루 품삯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은혜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내고 예배에 참석하고 양을 많이 쳐서 의롭다 함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율법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율법으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항상 피곤합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살아갑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면 자기 의가 생기고, 못하면 자기 불의에 빠집니다. 인과응보적인 생각을 하고 과거에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사는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믿음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십니다. 오히려 마음에는 불신과 의심과 교만과 정욕으로 가득한데도 회개하고 믿으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십니다. 우리는 믿고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항상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믿음도 주십니다. 때로는 고난과 환난이 와도 은혜로 사는 사람은 고난이 하나님이 주시는 떡으로 보이고, 환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물로 보입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딸 은혜가 은혜를 알지 못한다고 책망하였습니다. 그는 재수 시절에 자신은 최선을 다하여 공부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은혜에게 우리가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오는 것은 율법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은혜는 내가 하나님을 믿고 최선을 다하여 공부하면 하나님은 공부한 것보다 더 풍성히 주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나의 말을 받아들였습니다. 드디어 그는 나중에 자신의 처음 점수보다 100점이 더 나오는 놀라운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또한 임용고시도 역사과를 졸업한 사람이 영어과에 합격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였을 때 하나님은 은혜로 한 번에 합격하게 도우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천안 ubf에서 오천 선교사 파송과 백 개 지부 개척을 이루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이들이 한 지부를 개척하고 세계 선교사로 쓰임 받을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믿을 때 가능합니다.

(죄사함을 받은 다윗의 행복)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6-8)

다윗은 언제 의로 여기심을 받았습니까? 골리앗을 때려눕히고 불레셋을 이기고 승리했을 때가 아닙니다. 다윗은 연약한 육신을 이기지 못하여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간음을 하였습니다. 처음 그는 남편 우리아를 살해하여 이 죄를 은폐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종일 신음하므로 뼈가 쇠하였습니다. 주의 손이 밤낮으로 누르시자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을 인식하였습니다.
나단이 그의 죄를 책망하였을 때 그는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진실되게 시인하고 토설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셨습니다. 다윗은 이때 행복했습니다. 다윗은 죄사함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행복했습니다.
다윗이 회개하였을 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 엄청난 후폭풍이 밀려왔습니다. 자녀들이 성폭행을 하고 살인하고 반역을 하였습니다. 사울의 무리들이 자신을 비난하였습니다. 국민들도 반 이상이 다윗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셨지만 징계는 매우 가혹했습니다. 그래도 다윗은 행복하였습니다. 그 모든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마음에 아무 거짓도 없고 진실할 때 행복하였습니다. 죄 있는 자를 죄 없다 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만나고 행복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때를 주의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무할례 때에 의롭다함을 받은 아브라함)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9-11a)

유대인은 할례를 매우 중시합니다. 할례를 받아야 유대인입니다. 사도행전 초기에 유대인 신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로 심하게 유대인 성도와 다투었고 예루살렘에 가서 문의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총회가 열렸고 그곳에서 할례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결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할례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한 후에 의롭다 함을 받지 않았습니다. 할례 받기 전에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85세쯤에 하나님을 믿고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후에도 거의 13년을 믿음이 없이 헤맸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찾아오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는 불신을 회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99세 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 사실이 가르쳐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는 할례를 받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이미 의롭다 함을 받은 후에 할례를 받음으로 그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실을 다시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먼저고, 할례가 그 다음입니다. 할례가 중요하지만, 믿음이 더욱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11b,12)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에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므로 아브라함이 걸어갔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는 아브라함과 동일하게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분, 성별, 노소를 막론하고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도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는데 할례를 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성경공부를 오래하고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순종한 그 길을 따라서 우리도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할례는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믿음이 먼저고 할례는 나중입니다. 할례는 믿음의 진실함과 살아 있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내용이 중요하고 다음이 형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형식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용 없는 형식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자 헌금을 드리는 것은 믿음의 진실성을 증명할 뿐입니다.
로마서 4장 강해 일부. 아브라함의 믿음
로마서 4장 1- 로마서 4장 12
요절 로마서 4장 3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3)
로마서 4장 강해 일부 끝.

로마서 4장 강해 이부. 믿음으로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
로마서 4장 13-로마서 4장 25
요절 로마서 4장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지금까지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를 들어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의롭다 함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는 것도 믿음으로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약속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워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이 세상에도 하나님의 복을 받고 죽어서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언약)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13)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도 더욱 견고해집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온 세계와 하나님 나라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의 뭇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은 무슨 율법적인 행위를 통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약속을 받는다면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행위는 온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믿음은 갈수록 더욱 깊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아브라함을 깊이 이해하시고 믿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오래 참고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허물과 연약함을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나중에는 아브라함의 죄악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허물과 죄악을 인하여 십자가에서 목숨까지 버리셨습니다. 죽으신 후에 다시 살아나셔서 영원한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보내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굳게 하고 견고하게 해주십니다. 믿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풍성히 받을 수 있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는 약속을 폐함)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14,15)

만일에 율법에 속하여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세상의 상속자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십계명을 다 지켜야 합니다. 마음에 음욕을 품어도 안 되고 미음을 가져도 안 됩니다. 탐심을 가져도 안 됩니다. 한 번이라도 미워해도 안 됩니다. 우리는 실제 그렇게 살기가 어렵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 자들은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집니다. 율법은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게 합니다. 율법으로 살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은혜에 속한 자는 약속을 굳게 함)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16)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으로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세상의 상속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우리를 온 세계의 왕으로 삼아 주십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약속을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여 주십니다. 율법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에게뿐 아니라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진 이방인들에게도 약속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우리도 함께 받을 수 있습니다.
자, 이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됩니까? 우리가 백일 기도하면 하나님이 좋은 학점을 주시고 이백일 기도하면 축복을 주실까요? 십일조 한 번 못 냈다고 가난뱅이가 되게 하십니까? 양식말씀 쓰기를 한 번 하지 않았다고 병이 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주십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살아서 실재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높여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 회복의 꿈을 꾸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모든 축복을 우리의 믿음대로 주십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내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십일조도 내고 안식일도 지키고 기도도 하는 것입니다. 제자를 주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을 높여 드리면 하나님은 때가 되면 제자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제자를 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오직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와를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경외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는 일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을 믿은 아브라함)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17)

아브라함은 나이가 99세였고, 사라는 89세였습니다. 사라는 여자의 생리가 끊어졌고, 아브라함은 생식능력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되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는 표시로 이름을 아브라함 곧 열국의 아비로 바꾸라고 하셨습니다. 할례를 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살에 새기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습지만 99세에 이름을 열국의 아비로 바꾸고 믿음으로 노인네가 할례를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충분히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죽은 고목과 같은 자신의 몸에서 싹이 나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새 생명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으면 그 분이 죽은 자기 몸에서 새 생명을 주실 줄을 믿었습니다. 그에게 열국의 자손이 생겨날 것을 믿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죽은 이삭을 다시 살리실 부활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삭을 드리면 하나님이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부활의 예수님은 충분히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아브라함)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18)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특징을 두 가지로 말씀해 주십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현실적으로, 이성적으로 가능성이 있으면 믿고 불가능하면 믿음을 포기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고 환경을 믿는 사람입니다. 이는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믿음은 전혀 가능성이 없을지라도 오직 약속의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고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환경이나 자신의 몸의 상태에 따라서 믿음이 좌우되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볼 수 있나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창세기 15장 5) 아브라함은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부정적 현실에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은 아브라함)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19)

아브라함은 백 세가 되어 자신의 몸이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합리적으로, 경험적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환경과 조건에 믿음이 좌우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환경이나 자신을 믿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믿었습니다.
그는 약속의 말씀에 기초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 순수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능하고 지혜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주위 여건이 다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 드렸습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 드렸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은 아브라함)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20-22)

아브라함은 약속의 말씀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음이 견고해졌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 기쁨으로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자식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약속의 말씀을 기초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며 너는 복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아브라함이 약속을 의심치 않고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로 확신했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고 하나님이 뭇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약속의 말씀은 신실합니다. 약속의 말씀을 믿을 때 용기가 생깁니다. 그는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이삭도 번제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때든지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성경의 약속들을 믿자)

성경에는 많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보편적인 약속이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33)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장 25,26)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세기 15장 5)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수기 6장 24-26)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2절) 우리는 이런 약속의 말씀을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약속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집니다.

(예수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자)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23-25)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어야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현실과 자신을 보면서 불신에 빠집니다. 인간은 불신으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는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존입니다. 인간은 구제 불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해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 불신의 죄를 위하여 예수님은 십자가에 내어줌이 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부활하여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살아 계신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증명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살아 계셔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의 믿음을 도우십니다.
우리가 불신에 빠졌을 때, 우리는 나의 불신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영원한 속죄를 하신 예수님, 성령을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한계에 부딪힐 때 부활하여 영원히 살아 계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나에게 믿음을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성령님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기쁨으로 사랑할 수 있고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을 견고히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친히 도와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의롭다고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로마서 4장 강해 이부 믿음으로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
로마서 4장 13-로마서 4장 25
요절 로마서 4장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로마서 4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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