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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로마서 7장 강해1 영의 새로운 것으로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3,380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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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장 강해 일부. 영의 새로운 것으로

로마서 71-로마서 76

요절 로마서 7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바울은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자유를 줍니다. 바울은 6장에서 죄에서 자유를 가르쳤습니다.

다음으로 7장에서 율법에서 자유를 가르칩니다.

8장에서는 사망에서 자유를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은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율법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연약한 육신이 방해합니다. 사단이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유혹합니다. 우리 마음에는 죄의 소욕이 있습니다. 사탄의 시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갖고 어떻게 율법을 지키며 율법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율법주의 신자에게)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1)

 

사도 바울은 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법을 아는 자는 7장에서 바울이 말씀을 전하는 대상입니다. 법을 아는 자들은 은혜로 구원받은 후에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율법을 지키고자 합니다. 항상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주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모토는 나의 힘으로’ ‘내가 사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문제는 이들이 가장 중시하는 자신이 연약하다는 데 있습니다. 육신은 연약하다 못하여 악합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신앙생활은 피곤하고 인상 쓰고 지칩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에 실패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죽기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큰소리치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사는 신앙생활은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행위로 사람을 평가합니다. 이들은 드린 헌금이나 제자양성을 한 숫자에 의해서 사람을 평가합니다. 이들은 행위에 따라서 자기 의에 빠지기도 하고 행위에 따라서 불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행위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행위가 따라옵니다. 그러나 행위가 있다고 항상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운동하러 매일 성불사 절에 갑니다. 그렇다면 내가 불심이 깊은 사람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이와 같이 믿음이 없이 하는 행위가 율법적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 주위에 모여들어서 예수님의 몸을 힘껏 밀었어도 병 나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댄 여인은 병이 나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행위를 중시하면 자연히 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사람 앞에서 살게 됩니다. 율법주의는 인본주의를 낳습니다. 이들은 사람 앞에서 살기 때문에 자연히 이중적이 되고 가식적이 됩니다. 이들은 겉은 아름답지만 속은 시체 썩는 무덤과 같습니다. 온갖 더러운 음란과 거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만 주관하는 율법)

 

이런 율법적인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어떻게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까? 율법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우리를 주관합니다. 여기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율법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을 통한 자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한 비유를 이야기합니다.

 

(율법 남편이 죽어야 얻는 아내의 자유)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2,3)

 

어떤 여자가 결혼을 했습니다. 그 남편의 이름은 김완벽이었습니다. 그는 얼짱에 몸짱이어서 외모도 빼어났습니다. 남편은 도덕적인 행위도 완벽했습니다.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김완벽은 정말 털어서 먼지 하나 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십계명을 지키고 열심히 일을 하여 돈도 잘 벌었습니다. 박연약이라는 여자는 김완벽 씨를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하여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완벽 씨는 자신만 완벽할 뿐 아니라 연약이에게도 그렇게 완벽을 요구했습니다. 새벽 기도에 일 분이라도 늦으면 안 되고 십일조도 예배도 양식 쓰기도 절대적으로 해야 하고 밥도 조금도 타면 안 되고 반찬도 짜거나 싱거우면 안 되었습니다. 다른 남자를 생각만 해도 마음에 간음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살인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곧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숨이 탁탁 막혀 왔습니다. 그렇다고 이혼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혼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음행의 또 다른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자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길은 단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남편이 죽는 것이든지 아니면 자신이 죽는 것입니다.

 

(죽지 않는 율법 남편)

 

그러나 남편은 완벽하여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죽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연약이가 죽어야 하는데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기에 딜레마가 있습니다.

여기서 김완벽은 율법을 의미합니다. 박연약은 연약한 우리 신자들을 의미합니다. 연약이가 완벽 씨와 결혼한 것은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우리 신자들을 평생을 따라다니며 정죄하고 죽게 합니다. 천지는 없어져도 율법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신자인 아내가 죽어서 얻는 자유)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4)

 

아내가 율법에서 자유를 얻는 길은 남편이 죽지 않으므로 아내가 죽는 길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죽으면 율법에서 자유는 얻지만 더 이상 살지 못하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런 딜레마를 예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 6장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죽게 하였고 예수님이 죽을 때 나도 함께 죽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으므로 우리는 이제 율법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옛 남편이 아내에게 요구하는 대가를 다 들어주셨습니다. 이제는 아무것을 하지 않아도 구원을 받습니다. 십자가의 강도가 평생 죄를 짓다가 마지막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은 좋은 예입니다.

아내는 죽은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신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들어와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새 남편 예수님과의 결혼)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이제 새롭게 재혼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두 번째 남편은 정이해라는 사람입니다. 정이해는 여자의 연약함을 이해하였습니다. 여인을 이해할 뿐 아니라 힘든 것을 대신 해주었습니다. 믿어 주고 소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실수나 허물을 감당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완벽을 향하여 조금씩 성장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정이해라는 분이 바로 부활하여 살아 계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여자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이해하시고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믿음을 보십니다. 예수님은 연약이가 잘못하여 밥을 태우면 그것을 용서하시고 물을 얼마나 붓고 얼마나 불을 때야 하는지 섬세하게 다 가르쳐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성령으로 여인에게 들어와 여인에게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여인은 이제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기쁨이 넘치고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전 남편인 율법도 지금은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이제 우리에게 남편의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 남편이신 예수님을 잘 섬기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5,6)

 

전에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는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망을 위해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과 슬픔이 우리를 지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 우리는 얽어매던 율법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의 새로운 것 곧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새 영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스스로 배의 노를 저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고통스러워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노를 젓는 것은 맞지만 성령의 바람이 불어서 배를 움직이게 도우십니다. 이제 열매도 달라졌습니다. 예수님과 사는 생활은 하나님을 위하여 생명의 열매를 맺히게 되었습니다. 여인의 얼굴은 생기가 돌고 콧노래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에는 기쁨과 힘이 솟아났습니다. 죽은 후에도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7장 강해 일부. 영의 새로운 것으로

로마서 71-로마서 76

요절 로마서 7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로마서 7장 강해 일부 끝

 

 

로마서 7장 강해 이부. 예수님을 통한 율법에서 자유

로마서 77-로마서 725

요절 로마서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지금까지 사도바울은 율법에서 자유함을 받는 원리를 말하였습니다. 율법 씨에 대해서 죽고 다시 살아나 예수님과 다시 결혼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자신의 실생활을 통하여 자신이 어떻게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었는지를 간증합니다. 율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의 처절한 투쟁과 율법에서 자유를 얻는 과정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우리도 율법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이 어렵지만 반드시 자유함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줍니다.

 

(율법은 좋은 것)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7)

 

그러면 완벽씨 남편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율법은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율법이 아니었다면 탐심이 죄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탐심은 지나친 욕심입니다. 사람들은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잠자는 것을 죄로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십계명에서 탐내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서 탐심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우리 속에 깊숙이 들어 있는 죄를 깨닫게 합니다. 나는 죄로 인하여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죄를 깨달아야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을 받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룩하게 살게 됩니다.

율법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위내시경이나 MRI와 같이 우리의 질병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가 위내시경을 통해서 위암에 걸린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위암이라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사색이 되고 죽음의 공포에 시달립니다. 그러면 위내시경이 위암을 알게 하였으니 위내시경이 나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위내시경이 아니었다면 우리의 암을 수술할 수가 없고 위암이라는 것도 모르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술한 후에도 위내시경은 필요합니다. 항암치료한 후에 암세포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지 검사하는 것이 바로 위내시경입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할수록 우리의 죄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합니다. 과거에는 죄로 인식하지 못한 것까지도 죄로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통하여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하여 더욱 성장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율법을 통하여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나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좋은 것입니다.

 

(죄가 나쁜 것)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8)

 

율법이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죄가 문제입니다. 내시경이 문제가 아니라 위암이 문제인 것입니다. 죄가 계명을 이용하여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온 것입니다. 암세포가 우리의 위에서 자란 것이 문제입니다.

계명이 탐내지 말라하니 우리는 더 탐을 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탐내지 말라 하니 죄는 더 반항심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온갖 탐심을 이루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니 더 먹고 싶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통하여 이런 탐심의 죄가 잘못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악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율법이 없을 때는 탐심의 죄를 죄로 인식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죄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죄가 우리 속에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죄가 죽어서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율법을 통하여 느끼는 죽음의 고통)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9,10)

 

전에는 율법을 알지 못할 때는 죄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죄가 죽었습니다. 그때는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바울은 죄를 지으면서도 콧노래를 부르며 재밌게 살았습니다. 죄로 인한 심판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죄로 인한 사람들과의 갈등이 있었으나 상대방의 문제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들으니 바울 속에 탐심의 죄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죄책감으로 인하여 사망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망의 고통을 느낀 것을 나는 죽었다고 말합니다. 율법으로 죄는 살아나고 바울은 죽게 되었습니다. 내시경을 하기 전에는 암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룰루랄라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내시경을 통하여 암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잘 지키면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에서 탐심을 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탐심을 억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게 하려고 십계명을 주셨지만 우리는 그 십계명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속에 죄가 있고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볼 때 우리의 속에 있는 죄가 나쁜 놈입니다.

 

(연약한 내가 문제)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11)

 

우리는 십계명을 통하여 탐내지 말라는 것이 나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이때를 이용하여 십계명이 우리를 죽인 것처럼 우리를 속였습니다. 죄는 십계명을 이용하여 죄를 짓는 연약한 나에게 죽음의 고통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를 볼 때 죄가 문제요 죄에게 속아서 죄를 짓는 내가 문제입니다. 속이는 자도 문제이지만 속은 나도 문제입니다. 내가 연약하여 계명을 다 지키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계명은 절대 죄가 아니며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우리가 배가 아파 내시경을 하였습니다. 내시경은 암이 말기라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우리는 죽음의 고통을 느끼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암은 내시경이 우리를 죽인 것처럼 거짓말합니다.

그러나 내시경이 우리를 죽인 것은 아닙니다. 그전부터 있었던 암이 그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암이라는 것을 몰라도 암환자는 죽습니다.

우리는 이미 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그 사람은 나쁜 환경으로나 스트레스나 음식습관으로 면역력이 약하여져서 암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육신의 죄의 소욕을 극복하지 못하는 연약함이 문제입니다. 이 암이 바로 죄입니다.

천로역정에서 율법 씨는 빗자루로 먼지를 씁니다. 그러면 먼지가 일어나 숨이 막힙니다. 빗자루가 문제가 아닙니다. 빗자루는 먼지를 쓸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미 먼지가 있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먼지가 나지 않게 쓸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율법은 선한 것)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12)

 

바울은 결론적으로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우리는 율법이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이 악하다고 하면 율법을 지키는 것을 포기합니다.

마치 구()파와 같이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세월호 사건을 만듭니다.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율법을 지켜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율법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의 율법을 통하여 자신의 죄와 싸우고 점점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있습니다. 율법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으면 율법은 우리에게 진리가 됩니다.

 

(죄가 무섭다는 것을 알려주는 율법)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함이니라.”(13)

 

결론적으로 말하면 선한 율법이 나를 죽인 것입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죄가 율법을 통하여 죄로 드러난 것뿐입니다. 죄가 그 좋은 율법을 매개로 해서 나에게 죽음의 공포를 가져온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시경이 나를 죽인 것이 아닙니다. 내시경은 암이라는 것을 실로 암이라고 알려줄 뿐입니다. 내시경이 암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만천하에 드러나게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을 통하여 죄는 죄로 드러나게 되고 그 죄가 얼마나 악독한 것인지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죄를 깨달은 우리는 시색이 되어 거의 죽게 하셨습니다.

 

(연약한 육신이 문제)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14)

 

또한 아내 연약이가 연약하여 율법의 요구를 다 따라서 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육신이 연약하여 율법의 요구를 다 순종하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연악하기도 하고 악하시기도 합니다. 나의 육신이 죄 아래 팔려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에는 죄를 행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선을 행하고자 하지만 육신은 악하여 악을 행하게 됩니다. 율법은 암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는데 우리의 육신은 연약하여 암이 걸린 것이 문제입니다. 육신이 암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고 편식을 하여 암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우리의 몸에는 암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는 있지만 선을 행할 능력은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에는 죄악을 행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원치 않는 것을 행하는 나)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15-17)

 

사도 바울은 탐내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탐내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사람의 심리는 이상합니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습니다. 그에게 과거 탐심이 있었지만 탐내지 말라는 율법의 말씀을 통해서 더욱 탐심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죄악된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는 탐심을 없애고자 원했는데 결국은 여자에 대한 탐심, 먹는 것에 대한 탐심, 하나님의 역사를 잘 섬기고자 하는 탐심은 더욱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머리를 깎고 금식을 해도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머리를 벽에 짓이겨도 소용없었습니다. 백배를 하고 새벽기도를 매일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나중에는 탐심을 따라서 행하고 있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가 탐내지 않고자 원하고 원하지 않는 탐심을 행한다면 탐내지 말라는 율법의 말씀이 선한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탐심을 행하고 있는 것은 선하게 살고자 하는 바울이 아니고 악하게 살기를 바라는 바울 속에 있는 죄입니다. 결국 바울은 율법이 문제가 아니라 죄의 소원을 가진 연약한 자신이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완악한 육신이 문제)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18-20)

 

바울은 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지 깨달았습니다. 그의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육신이 전적으로 타락하여 부패해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육신이 악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선을 행하고자 원하였지만 하지는 못하였습니다.

소원 편에서 보면 성선설이 맞습니다. 그러나 행위적으로 보면 성악설이 맞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는 것을 볼 때 자신의 속에 또 다른 내가 있음을 봅니다. 그것은 바로 죄악된 자아입니다. 죄악된 자아가 그의 육신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에게는 육신의 죄악된 소원이 있었습니다.

 

(세 가지 법)

 

21-2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바울에게는 세 가지 법이 있었습니다. 탐내지 말라는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탐내지 않고자 하는 마음의 법이 있습니다.

탐내려고 하는 죄의 법이 있습니다.

마음의 법과 죄의 법이 싸웁니다. 그 싸움은 마치 권투선수가 링 위에서 타이틀 매치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이를 지켜보며 심판을 보고 있습니다. 결국 마음의 법이 죄의 법에게 실컷 얻어터지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선을 행하고자 하였지만 결국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는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신의 마음에 악한 본성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곤고한 사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24)

 

바울은 너무나 괴로워 소리쳤습니다. 바울이 왜 이렇게 처절하게 실패한 것입니까?

내가 주체가 되어 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내 뜻을 따라서 내 힘으로 나를 위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라는 말이 28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는 내가 선하게 살고자 하면 할수록 선하게 살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연약한 육신의 몸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의지하는 사람은 기도도 하고 말씀도 보고 하지만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처절하게 실패했을 때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7:25-8:2)

 

바울은 자신에 대해서 철저히 절망했을 때 예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자신을 구원해 주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의 법과 싸움을 도와주시는 예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도록 도우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속에 들어와 계시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는 네 번째 법인 생명의 성령의 법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절망의 순간에 자신의 내면에 이미 들어와 계시는 성령님을 다시 깨닫고 의지하게 됩니다. 그는 성령의 힘으로 율법을 지킬 힘을 얻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언제 구원합니까? 완전히 힘이 빠져서 죽은 사람처럼 물에 떴을 때 구원합니다. 그전에 구원하다 보면 구원하는 사람이 함께 물에 빠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야곱의 구원)

 

야곱은 메스보타미아 지방에서 네 명의 아내와 121녀를 얻어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과거 야곱이 형에서의 장자 축복을 빼앗았기 때문에 에서가 사백의 군사를 이끌고 야곱을 만나러 옵니다.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함을 느낍니다. 이런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에서에게 억대의 선물도 바칩니다. 그것도 꾀를 써서 세 번에 걸쳐서 시간차로 바칩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다 얍복 강을 건너게 하지만 자신은 강을 건너지 않습니다. 그는 말씀을 잡고 하나님께 기도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때 그는 밤이 맟도록 하나님을 붙잡고 영적인 기도의 싸움을 합니다. 그는 기도하면서도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자신의 두 발로 도망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를 아시고 그의 환도뼈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때 야곱은 한 가지 귀중한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는 마음속에 두려움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야곱은 하나님께 울며 생명의 축복을 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에게 생명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도와주십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라고 가르치십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주체였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삶의 주체로 바뀝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이제야 율법적인 신앙생활에서 성령을 따라 하는 신앙생활로 방향이 바뀝니다. 하지만 야곱은 그 후에도 또 자기를 의지하다가 자녀들에게 강간 살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는 그 후에 다시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이는 우리가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오랜 연습을 통해서 되는 것임을 보여 줍니다.

 

(영적 싸움)

 

여기서 우리는 귀중한 진리를 배웁니다.

첫째는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 은혜의 생활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태복음 517-19) 예수님은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의 지극히 작은 말씀이라도 귀히 여기고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자가 천국에서 크다고 일컬음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고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의 예수님, 성령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의 신앙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에 매여서 피곤한 생활을 합니다. 이들은 율법을 우리의 힘으로 다 지켜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영지주의자들은 율법을 너무 무시하고 모든 것을 자유롭게 살아가며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착각합니다. 은혜로 합시다.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놀자고 합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예수님이 은혜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는 척만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은혜로 율법을 철저히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도 은혜 안에서 율법을 귀히 여기고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성령을 의지하는 은혜의 신앙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십계명을 가르쳐야 합니다. 새벽기도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한계를 알고 성령을 알고 성령 안에서 율법을 지키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신자들의 도덕적이 수준이 높아집니다.

 

(의지해야 하는 예수님)

 

둘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그리스도가 되시고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의 내면에 성령의 생명의 법을 주십니다. 법은 힘입니다. 죄의 법보다 더 힘센 법을 주십니다. 연약한 나의 법을 도와주십니다. 율법을 지키게 하십니다.

주일 예배에 빠진 한 목동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갈등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마태복음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나는 그 목동을 훈련시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삼층을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법을 따라서 건축허가를 받고 올려야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해야 합니다. 나의 힘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힘으로 성령님의 힘으로 해야 합니다. 아멘!

저는 새벽기도를 30년째 하고 있습니다. 5년째까지는 이를 율법으로 했습니다. 내가 새벽기도하면 우리 모임이 부흥되고 내가 축복을 받는다는 데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새벽기도를 했고 그래서 모임이 성장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새벽기도를 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새벽기도를 포기할까도 생각했습니다. 나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는 탄식이 밀려왔습니다.

그때 은혜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새벽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우시고 새벽기도 시간에 예수님 자신을 주고자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를 통해서 구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 자신이요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말씀을 암송하며 순종하는 기도를 배웠습니다. 그때서야 새벽기도를 기쁨과 행복함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내가 절대적으로 새벽기도를 하고자 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은혜의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귀히 여기고 완전히 다 지키고자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한계를 깨닫고 은혜의 예수님, 도우시는 성령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령의 법에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아멘!

로마서 7장 강해 이부. 예수님을 통한 율법에서 자유

로마서 77-로마서 725

요절 로마서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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