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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가복음 14장 강해 삼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8-05-13 00:00:00
조회수 : 82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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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4장 강해 삼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말씀 마가복음 14장 27-마가복음 14장 42
요절 마가복음 14장 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신앙생활에는 패배하는 사람과 승리하는 사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과 베드로가 대조적으로 나옵니다. 베드로는 패배하는 신앙생활을 했고 예수님은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베드로처럼 패배하는 사람이 있고 예수님처럼 승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실제 신앙 생활에서 실패하고 승리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뒤에서 하는 기도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기도를 드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패배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승리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통해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양과 같은 제자들)

27,2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의견의 갈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 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스가랴 13장 7절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이 목자를 치리니 양이 흩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목자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의지하고 따르던 제자들은 양처럼 다 흩어집니다. 인간은 양과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양처럼 목자 없이는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런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양과 같은 우리가 사자와 같이 강하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침을 당하지만 사흘만에 살아나십니다.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그곳에서 양과 같은 제자들을 다시 모으시고 목자로 키우실 것입니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경고하심)



29-31절을 보십니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그러나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버릴 뿐 아니라 닭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힘있게 자신이 예수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버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모든 제자들도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왜 이런 서로의 의견 차이가 나는 것입니까?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양과 같이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의 육신이 연약하고 그의 자아가 연약함을 아셨습니다. 그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자신도 육신을 가진 자신의 연약함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통해서 일하는 사단이 강한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려움 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함을 모릅니다. 그는 큰 소리치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연약함을 깊이 알아야합니다. 인간이 양과 같이 무력한 존재임을 알아야합니다. 사단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가를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아야 하고 사단이 강한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더 강한 것을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을 미리 아십니다. 당신의 십자가도 아십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자신의 연약함을 이기고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예수님은 죽으신 후에 부활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서 제자들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연약하지만 더 완전하시고 강하신 에수님을 알 때 승리의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심히 슬퍼하신 예수님)

32-33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채찍에 맞으시며 못 박히시고 창에 찔리시며 발가벗겨진 채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높이 들려 사람들에게 모욕과 수치를 받을 것을 아셨습니다. 여섯 시간 동안 고통이 지속될 것을 아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짐을 지시고 대신 죽으셔야 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의 고통을 받아야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갈 것을 아셨습니다. 이를 아신 예수님은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습니다.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속된 말로 예수님은 죽는 소리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고 한숨을 푹푹 쉬셨습니다. 예수님은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가는 스트레스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스트레스는 압박을 주는 환경에서 부담을 느끼거나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좁은 공간에서 답답함을 느낄 때와 같은 물리적인 환경에서 오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인격을 무시하며 무례하게 대하거나 명령조로 시키거나 지나치게 요구할 때 찾아옵니다. 군대나 직장과 같은 조직 사회에서 무의미한 규칙에 시달리거나 시간에 쫓겨서 일을 할 때 오기도합니다. 빚쟁이들이 온다든지 양들이 어렵다든지 직장을 잃거나 가까운 사람이 떠나거나 죽었을 때도 스트레스를 느낍니다. 백 목자님은 직장을 그만 두고 영업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 이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내적으로는 우리가 외국에 갔을 때 받는 문화적 충격이나 신세대와 구세대 사이에서 오는 세대적 충격에서 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스트레스는 잠을 자지 못하거나 과중한 스케즐에 쫓길 때 오기도 합니다. 성적이 떨아지거나 일을 잘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비방을 들은 후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도 스트레스가 옵니다. 마음에 스스로 가지고 있는 율법을 지키지 못할 때 오기도합니다. ‘모 아니면 도다’라고 생각하여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이 받습니다. 주로 A형 혈액형을 가진 사람이나 완벽주의자 일벌레들이 스트레스를 많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도 교회를 위해서 항상 눌리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 이도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입니다. 저도 직장을 옮기며 문제 있는 양들을 도우며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놀라게 되고 놀라면 신경계가 흥분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빨라집니다. 다음에는 자극에 대해서 저항합니다. 적응하려고 노력했는데도 적응이 잘 안 되면 자포자기하거나 마음이 우울해집니다. 스트레스로 신경을 많이 쓰면 소화기 장애가 일어나 소화가 되지 않고 위염이나 위궤양에 걸릴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장의 기능이 저하되어 변비가 생기거나 설사가 나기도 합니다. 긴장하여 떨림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손발이 차가워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두통 고혈압 당뇨병 관상동맥에서 여드름 가려움증까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암도 스트레스에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사람들은 잠을 자거나 술을 퍼마시거나 오락에 빠지거나 현실을 도피하여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기도하신 예수님)

34,35절을 보십시오.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첫째 예수님은 자신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라는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겟세마네는 기름을 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기름을 짜는 것과 같은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께로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십자가의 스트레스를 극복할 힘을 얻고자 했습니다. 마음에 슬픔과 두려움을 극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얻고자 하셨습니다.

(기도를 부탁하신 예수님)

둘째 예수님은 자신이 기도할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기도부탁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는 하신 말씀은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수제자 세 명을 기도처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다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 자신을 위하여 기도부탁을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연약함을 보여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연약함을 보여주지 않고 강한 체하는 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연약함을 보이시고 겸손히 어린 제자들에게 기도요청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더욱 힘이 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어린 제자들이라도 예수님의 기도에 동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스르 왕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여인이 해산할 날이 임박했으나 해산할 힘이 없는 여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앗스르왕은 초강대국이었고 이스라엘은 미약한 나라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이때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 받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산헤립의 편지를 갖다 놓고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 보시옵소서.” 그리고 사람을 주의 종 이사야에게 보내 기도요청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진정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길은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고 기도부탁을 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복종의 자세로 하는 기도)

35-36절을 보십시오.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은 겸손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엎드리어 기도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임금 앞에 나아간 신하의 모습과 같습니다. 신하가 왕권에 복종한다는 표시로 땅에 엎드리듯이 예수님은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표시로 납짝 엎드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지라도 자신의 뜻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고자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신뢰함으로 드리는 기도)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심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아바는 우리 나라 아빠와 같이 아버지에 대한 애칭입니다. 예수님은 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듯이 사랑스럽게 하나님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께 하나님은 사랑스런 아버지였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마음에 많은 번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광풍을 만났을 때 예수님의 사랑을 불신했습니다. 우리는 시련을 만나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불신이 생깁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혀 의심치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신뢰함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로 나가야 합니다.

(마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기도)

둘째 예수님은 솔직히 자신의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심히 놀라시고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십자가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기도하였습니다. 기도는 이렇게 솔직해야 합니다. 기도는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심에서 나오는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심정을 그대로 하나님께 쏟아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세상을 떠나고 싶습니다. 두렵습니다. 죽이고 싶도록 미워집니다. 너무 힘이 듭니다. 제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아, 미치겠습니다.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사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듭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진실한 기도에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는 기도한 후에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나의 소원을 부인하는 기도)

셋째 예수님은 자신의 소원을 부인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심정을 주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을 하나님께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십자가를 옮겨달라고 떼를 써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나의 원대로하지 마옵소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웠습니다. 여기서 나의 원은 살고 싶은 생존의 욕구입니다. 예수님은 살고 싶은 욕구를 부인했습니다. 생존의 욕구는 인간에게 가장 절실하고 가장 간절한 욕구입니다. 기도는 육신의 소원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육의 소원이 있습니다. 안일의 소원도 있고 명예심의 소원도 있고 물질적인 소원도 있습니다. 이런 욕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이런 소원이 하나님의 소원을 방해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이런 인간적이고 육적인 소원을 죽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생존의 욕구까지도 포기할 때 우리는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생존의 욕구까지 포기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면 어떤 것이든지 다 포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포기 하고 맡길 때 우리는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능력도 포기해야합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

넷째 예수님은 마침내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순종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아담으로부터 오는 불순종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거스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순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기도의 영적투쟁이 필요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얻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육신을 쳐서 하나님께 복종시켜야 합니다. 예수님은 순종하시되 죽기까지 순종하고자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면 죽는 것까지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죽는 것까지 순종하는 것은 다른 모든 것도 다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절대 순종입니다. 죽기까지 순종하는 사람은 직장, 결혼, 이사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순종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가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까지 순종함으로 그 믿음이 진실된 것을 증명했습니다. 우리는 양들의 믿음을 돕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순종하기까지 도와야 합니다. 순종하기까지 돕는 것은 어렵습니다. 특히 신세대들은 순종을 모르고 자라서 순종을 돕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순종하기까지 도와야 온전한 믿음, 살아있는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기도)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억지로 인상을 쓰면서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에서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영접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기쁨으로 확신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은 로마 사람들의 힘에 밀려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가룟유다가 배신을 해서 죽는 것도 아니요. 유대인들의 시기심에 의해서 죽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예수님은 원수들을 충분히 물리칠 힘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자원하여 순종함으로 자신의 힘을 쓰지 않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예수님은 주도적으로 십자가를 지고자 결단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십자가가 있습니다. 학과 공부의 십자가, 직장의 십자가 그리고 양들을 감당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말씀공부, 새벽기도하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십자가 앞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안 지고자 인상을 씁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이를 감당하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기쁨으로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경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7-9절은 말씀하십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은 여호와를 하나님 아버지로 높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이라도 순종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경외심으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심한 통곡과 눈물로 순종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한다면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기도하는 동안 제자들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사단의 시험을 이기는 기도)

37-38절을 보십시오.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이 말씀은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을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사단이 시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우리보다 간교합니다.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단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힘과 지혜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힘과 지혜를 주셔서 사단을 이길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육신의 연약함을 이기는 기도)

둘째 우리의 육신이 약하고 악하기 때문에 기도해야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죄의 소욕에 약합니다. 육신은 끊임없이 식욕 안일욕, 생존욕, 명예욕, 인간적인 정욕에 시달립니다. 우리의 힘으로 이런 사단의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육신의 소욕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에 영접하기까지 하는 기도)

39을 보십시오.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다른 복음서에 보면 세 번이나 기도했다고 나옵니다. 얼굴에 땀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한마디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다 들으신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다 아신다고 기도조차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단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얼마나 연약한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 기도를 배운 사람이지 실제적으로 기도를 배우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사단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연약한 육신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기도하자마자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기도의 응답을 주시고자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데 사단이 천사가 오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계속하여 21일 동안 기도하자 사단의 방해를 이기고 천사가 오고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사단이 하나님의 뜻을 방해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기까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사단과 싸움에서 승리의 확신을 얻기까지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은 자의 패배)

40-42절을 보십시오.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저희가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세 번째 오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 부탁하셨지만 제자들은 잠만 잤습니다. 성만찬에서 떡을 먹고 소화시키는 것이 힘이 들었고 마신 포도주에 취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지 않자 그들은 십자가 앞에서 처절히 패배합니다.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모두 도망갑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결국은 싸움은 기도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자다가 자신의 힘과 의지로 싸우고자 합니다. 그러다가 처절하게 패배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에 체포당하시기 위해서 담대히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로 두려움을 극복하셨습니다.

(겟세마네 기도)

결론적으로 우리가 사단을 이기고 연약한 육신을 이기는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할 수 있는 비밀이 무엇입니까? 진정한 승리의 삶은 사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배워서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가복음 14장 강해 삼부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말씀 마가복음 14장 27-마가복음 14장 42
요절 마가복음 14장 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가복음 14장 강해 삼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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