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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가복음 8장 강해 이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03-23 00:00:00
조회수 : 5,301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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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8장 강해 이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말씀 마가복음 8장 14-마가복음 8장 21
요절 마가복음 8장 17절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예수님은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 사건을 보고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는 새로운 표적을 보여주어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탐심을 인해서 깊이 탄식하며 책망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그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떡이 없는 것으로 염려합니다. 제자들도 바리새인들과 같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염려에 빠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인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직도 깨달음이 없는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책망하시며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표적을 주시는 이유를 깨달아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떡을 잊은 제자들)

14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예수님이 칠병이어로 사천명을 먹이고 일곱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남은 떡을 가져오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 많던 떡은 다 무리들에게 주고 제자들은 떡 하나만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아까 배부르게 먹었지만 다시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한 번에 일주일치를 먹을 수 없습니다. 이틀치도 먹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밥을 아무리 배부르게 먹어도 다시 식사 때가 오면 배가 고파집니다. 사람은 계속하여 밥을 먹어야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주용할 양식이나 월용할 양식이 아닌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배가 고프자 떡을 하나밖에 가져오지 않아서 다시 떡 걱정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염려하는 문제는 떡을 안 가져왔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안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예수님은 옆에 있지만 마음에는 예수님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옆에 계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1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예수님은 혼자서 무리를 먹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오천 명, 칠천 명을 먹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 시대의 지도자로 키우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 시대의 바른 지도자로 성장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시 지도자의 악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당시 지도자와 다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계하여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은 당시의 지도자입니다. 바리새인은 종교지도자이고 헤롯은 정치지도자입니다 누룩은 영향력이나 교훈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바리새인과 헤롯의 교훈을 듣고 그들의 악영향을 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은 지도자로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첫째 바리새인의 누룩은 율법주의 신앙입니다. 바리새인은 행위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율법주의 신앙을 하고 있었습니다. 할례를 하고 십계명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율법주의 신앙은 자기의가 생기고 교만해집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너는 어찌하여 그러느냐고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그들은 예수님 일행을 항상 판단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인식일에 병을 고치는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밀이삭을 비벼먹는가 어쩌하여 손을 닦지 않고 밥을 먹는가 어쩌하여 금식하지 않는가 또한 율법주의 신앙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구제하고 금식을 합니다. 그들은 마음에 없이 형식주의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들은 속과 겉이 다른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예배도 드리고 헌금도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간음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온갖 음란한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이 하지만 속에는 돈을 사랑하였습니다. 과부의 재산을 탐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이런 바리새인의 율법주의 신앙을 경계해야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율법주의 신앙을 극복하기 위해서 은혜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사도바울처럼 다른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여도 하나님의 은혜로 해야합니다. 겸손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둘째 헤롯의 누룩은 세속주의입니다. 헤롯은 제수씨를 아내로 취하는 음란한 자였습니다. 로마에 빌붙어 권력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세금을 많이 거두어 부를 축적하고자 하였습니다. 헤롯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추구하는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돈과 명예에 괘락에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이런데 있지 말고 거룩함에 있고 하나님 나라에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세속주의의 악영향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바리새인의 율법주의와 헤롯의 세속주의를 경계해야합니다. 제자들의 마음에도 바리새인과 헤롯과 같은 죄악된 본성이 있습니다. 제자들도 얼마든지 바리새인과 헤롯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기독교 역사를 보면 사제들이 이런 것을 주의하지 않았을 때 그 후대에 그들과 똑같은 죄를 범하였습니다. 중세의 카톨릭은 형식화되고 세속화되었습니다. 그들은 겉은 거룩하였지만 속은 &#50026었습니다. 온갖 음란의 죄가 가득하였습니다. 진실되게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는 개혁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들은 돈을 밝히고 쾌락을 밝히고 명예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들은 면죄부를 팔아서 돈을 벌고자 하였습니다.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도 기독교가 형식화되고 세속화 되면서 많은 욕을 얻어먹습니다. 우리도 이들처럼 타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항상 조심해야합니다.

(떡에만 관심이 있는 제자들)

1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자 누룩을 빵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이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인 후에 떡을 가져오신 않은 것을 책망하는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 빵이 없어도 바리새인이나 헤롯이 주는 떡(누룩)은 먹지 말라는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떡에만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에 있는 대로 듣습니다. 결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줄로 생각합니다. 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성경도 돈버는 법으로 읽습니다. 성공이나 번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성공이나 번영을 도와주는 예수님으로 생각합니다. 축복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성경은 복주시는 책이라고 말합니다. 경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최고경영자로 생각합니다.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에수님을 교육가로 생각합니다.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성경을 문학책으로 이해합니다. 제자들은 관심이 하나님 나라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관심이 있다면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는 말씀을 그들의 죄악된 영향력을 주의하라는 말씀으로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떡에 있었습니다. 먹고 사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셔도 떡을 중심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떡이 없는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그들도 바리새인의 악영향을 받아 불신에 빠졌습니다. 헤롯의 악영향을 받아 돈을 사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호되게 책망했습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17-1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이 둔하고 영적인 눈이 감겨지고 영적인 귀가 막힌 것을 책망했습니다. 예수님은 동시다발적으로 그들을 사정없이 책망하였습니다. 그들의 귀와 눈과 기억력과 깨달음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렇게 책망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의 문제가 탐심이라면 제자들의 문제는 불신에서 오는 염려입니다. 제자들은 직장과 가정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제자들은 직장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저축한 돈이 없었습니다. 자녀를 양육할 돈이 없었습니다. 노후 보장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항상 옆에 있었지만 그들이 돈이 없다는 것으로 항상 염려하였습니다. 그들도 탐심으로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실망하고 나서 제자들을 이 시대의 새 가죽부대로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바리새인들과 달라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떡이 없어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할 수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참떡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떡을 주시는 예수님만 있다면 떡이 없어도 떡 걱정이 없습니다. 제자들이 염려하는 것은 마치 이건희 아들 이재용이 삼성을 물려받았으면서도 먹을 것을 걱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이재용씨가 이렇게 염려하면 정신 이상이 없는지 생각해보아야합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그들의 떡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떡만 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영혼의 양식도 되어주십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참떡으로 주십니다. 예수님이 있으면 우리는 영육 간에 만족합니다. 그들은 이제는 떡 문제로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고민해야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관심을 가져야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입니다. 어떤 가난한 가운데도 하나님나라를 누리는 것입니다. 죽어서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에 가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 시킬 것인가 걱정해야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

17-18절을 다시 보십시오.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지 못하느냐" 우리는 제자들이 바보같다고 판단할 수만은 없습니다. 제자들이 염려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지만 제자들에게 때로는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지만 제자들을 때로는 굶기기도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사랑하여 믿음을 훈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제자들 편에서는 그로 인하여 예수님을 불신하고 염려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능력은 있지만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안 주시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훈련하시기 위해서 안 주시는 것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지만 때로는 이스라엘을 굶주리게 하시고 때로는 목마르게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진정 사랑하여 훈련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만 때로 학점 문제, 직장 문제, 결혼문제, 물질문제, 자녀 문제, 양들의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신데 우리에게 왜 이런 문제를 주시는 것일까요?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자신의 독생자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원에 있는 살구나무조차도 아름답게 꽃피게 하시고 열매를 주렁주렁 맺히게 하십니다. 가을에 우는 여치조차도 먹여 살리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왜 이런 문제를 주시는 것일까요? 우리를 역설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의 믿음을 훈련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풍족함을 바라지만 풍족하면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기를 바라지만 아무 문제가 없으면 믿음이 타학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여러 문제로 훈련하십니다. 우리는 여러 문제를 통하여 우리를 훈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아야합니다. 그러면 염려를 그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내면의 변화에 힘을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하느냐)

19-21절을 보십시오.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은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느냐" 물어 보셨습니다. 제자들은 제창이라도 하듯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열둘이니이다" 예수님은 다시 질문하셨습니다. "또 일곱 개를 사천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광주리를 거두었더냐" 그들은 "일곱이니이다."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물으셨습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처음과 마지막에 두 번이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첫째는 예수님이 떡 문제를 책임져 주시는 분으로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를 책임져주시는 분이심을 깨닫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떡 문제를 해결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떡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로 깨닫는다면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떡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장래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취업이나 결혼이나 노후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양들로 인하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과 함께 하사 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고 넉넉히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갖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떡을 주신 목적이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한 것임을 깨달아야합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인 후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떡을 먹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떡을 주시지 않고 내가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살과 피를 먹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고자하는 것은 떡이 아니라 마지막날 다시 살리사 하나님 나라에 보내는 것입니다. 무리들은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다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계시는데 누구에게 가겠느냐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떡을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생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자들은 아직도 하나님 나라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두 제자 외에 다른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떠났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살아있는 것이 다 표적입니다. 하나님이 그 표적을 보여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영적으로 눈 멀고 귀먹은 자들)

19-21절을 보십시오.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마가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은 사천명을 먹이시기 바로 전에 귀먹고 어눌한 자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시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습니다.(막7:34) 귀먹고 어눌한 자는 복음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은 답답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도 없고 전도할 수도 없습니다. 귀먹고 어눌한 자는 구원의 통로가 막힌 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자들은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는 복음을 들어도 복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아무리 말씀을 가르쳐도 쇠귀에경읽기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영적으로 귀먹고 어눌한 자들과 같습니다. 영적인 소경들과 같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인 자들입니다.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인 예수님이 계신데도 떡 걱정을 하는 자들입니다. 눈이 있어도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하나님 나라를 듣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보시고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결론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삶)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떡 걱정은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현실문제로 근심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갖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고 하나님 나라를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의대 역사를 위해서 기도하였는데 하나님은 의대에 한 형제가 세례를 받게 하심으로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세 명이 세례를 받게 하셨습니다. 계시록 말씀을 통하여 지옥의 끔찍함과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보게 하셨습니다. 체코에도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령의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염려를 그치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하고 감사해야합니다. 우리는 이제 먹고 사는 것을 구하기보다 하나님 나라를 구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도 더하여주실 것입니다. 아멘
마가복음 8장 강해 이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말씀 마가복음 8장 14-마가복음 8장 21
요절 마가복음 8장 17절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마가복음 8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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