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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가복음 6장 강해 5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02-04 00:00:00
조회수 : 3,89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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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장 강해 5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마가복음 6장 45-마가복음 6장 56
요절 마가복음 6장 50절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캔가이어의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영혼의 창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멕시코시티의 대형 시장에 그늘진 구석에 포타나무라는 인디언 노인하나가 쭈그리고 앉아서 양파 스무줄을 팔고 있었습니다. 시카고에서 멕시코에 여행을 왔던 교수가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양파 한 줄에 십 센트, 두줄에 이십센트, 세줄에는 삼십센트라고 하였습니다. 교수가 석줄에 이십오센트하면 안 되느냐고 하였습니다. 노인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스무줄을 다 사면 얼마냐고 하니 안 판다고 하였습니다. 노인은 시장과 사람을 사랑하고 햇볕을 사랑하기 때문에 팔 수 없다고 합니다. 노인은 다 팔면 남은 시간은 뭐합니까? 내 시간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 산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돈만을 벌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 불쌍한 사람입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아야 한다는 중요한 생활 철학을 말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오병이어를 먹이는 사건을 보면서 떡만 보았습니다. 그들은 떡보다 더 중요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역풍 중에서 계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자 파도를 만났을 때 두려워하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역경 중에서 아주 중요한 예수님을 보아야 함을 배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보아야 우리의 삶 속에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큰 일 후에 기도하신 예수님)

45,4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예수님은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여 갈릴리 바다 건너편 벳새다로 먼저 가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전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들은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빴습니다. 그들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느라 피곤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쉼을 주고자 재촉하여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한척의 배를 타고 가라고 하신 후에 타고갈 배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고자 계획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 동안에 무리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내시고 나서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도 기도하시지만 일이 끝나고도 기도하십니다. 오천 명을 먹인 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강제로 왕을 삼고자 할 때 홀로 빠져 나와서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큰 역사를 이룬 후에 홀로 산에 가셔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기절정에 기도합니다. 성공할 때 기도합니다. 아름다운 장면합니다. 일이 잘 될 때가 더 위험하고 기도할 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이 어려우면 기도합니다. 일이 잘되면 기도하지 않습니다. 합격하기 전에는 기도해달라고 하다가 합격하면 기도해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결혼 전에는 기도하고 결혼 후에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공하는 날에 기도해야합니다. 큰 역사 후에는 사단의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 삼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이 시험은 유혹입니다. 예수님도 먹지 못하는 백성들을 배불리 먹게 하시고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독립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시고자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길을 가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왕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내면의 죄를 해결하는 영적인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하여 유혹을 이기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분명히 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우리나라를 잘 먹고 잘 살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때가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남다윗목자님은 자바 중급시험을 두 번째 합격하였습니다. 남다윗목자님은 지금이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돈을 왕으로 삼지 말고 예수님을 왕으로 삼을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해야합니다. 우리 교회는 새벽 5시와 저녁 9시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기도하고 하루를 마치면서 기도해야합니다. 이번 주부터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 어디서든지 저녁 9시에 하던 일을 멈추고 오분 이상 기도하는 시간을 갖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사단을 이기고 성령의 바람이 불게 할 수 있습니다.

(역풍을 만난 제자들)

47,48a절을 보십시오.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르므로” 저물자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 가운데까지 노를 저어 갔습니다. 제자들은 배를 타는 노련한 어부입니다. 그들은 자신만만하였습니다. 이 배는 스타렉스와 같이 12인승 정도 타는 작은 배 같습니다. 그들의 배가 바다 한 가운데 왔을 때 새벽 두시쯤 되었습니다. 바람이 거슬려 역풍이 불어왔습니다. 제자들은 바람을 거슬려 힘겹게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노를 젓지만 앞으로 배가 나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피곤해 있는데 더욱 피곤하였습니다. 사단은 제자들에게 물결을 보내서 제자들을 괴롭혔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곁에 있어서 제자들을 괴롭히지 못하다가 예수님이 없자 제자들에게 괴로움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살다보면 우리를 괴롭게 하는 풍랑이 있습니다. 우리는 순풍을 기대하지만 우리의 삶에 역풍이 불어옵니다. 전에는 극복할 수 있었지만 오늘은 죽을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양을 쳐도 양들이 거슬리고 변화되지 않으면 피곤합니다. 열심히 일해도 사람들이 나를 거슬리면 피곤합니다. 우리는 이주에 걸쳐서 나영 다윗 목자님이 눈물로 발표하는 수태 소감을 들었습니다. 아기영광이가 기형아 검사에서 다운증후군 고위험군으로 나온 것입니다. 다윗목자님 가정에 일어난 풍랑입니다. 나도 다운증후군을 찾아보고 놀랐습니다. 염색체가 하나 더 있는 것으로 정신도 박약하고 신체도 장애가 있습니다. 수명도 짧습니다. 이런 것을 보고 나니 이런 아이가 태어난다면 어떻게 되나하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벽마다 기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다운중후군을 없애주시고, 만약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감당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긍휼을 베푸사 피검사 결과 정상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물 위를 걸어오신 예수님)

48b를 보십시오.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예수님은 아직 홀로 뭍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뭍에 계셨지만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젓는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멀리서 제자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고 도우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고통하는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물위를 걸어서 고생하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캄캄한 밤에 바다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걸어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물을 걸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중력을 초월하십니다. 이 모습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중력을 이기고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지금은 성령을 보내사 역경에 처한 우리를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어디든지 우리를 돕고자 오십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있을 때도 감옥에 죄수로 있을 때도 하나님은 도우러 오셨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 있을 때도, 요나가 배 밑에 숨어 있을 때도 도우러 오셨습니니다. 욥이 고난당할 때도 하나님은 그 가까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노를 잘 저어갈 때는 스스로 하게 두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어려움에 처하자 예수님은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도우러오셨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내가 좋을 때는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만 내가 어려울 때는 예수님이 나를 외면하는 것처럼 거꾸로 생각합니다. 어떤 무명시인의 발자국이라는 시를 알 것입니다. 그분이 천국에 가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좋을 때는 발자국이 두 개가 찍혀 있었는데 힘들 때는 한 발자국만 찍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예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왜 내가 좋을 때는 함께 하시고 내가 힘들 때는 나를 떠나셨나요?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 발자국을 잘보아라 너의 발자국이냐 나의 발자국이냐? 자세히 보니 예수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힘들 때는 예수님이 그를 업어서 걸어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좋을 때는 예수님은 내 곁에 있지만 내가 힘들 때는 예수님이 나를 업어서 날라주십니다. 우리는 고난의 때에 나를 찾아오사 업어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힘을 내야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제자들의 배로 가지 않고 그냥 지나가려고 하였습니다. 뒤에 말씀을 참고할 때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는가 시험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고난 중에서도 예수님을 찾고 의지하는가 알고자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접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유령으로 착각한 제자들)

49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시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깜짝 놀라 소리질렀습니다. 악! 유-유령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유령으로 생각하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유령이 와서 그들을 모두 물귀신으로 만들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두운 밤에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자 사단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찼습니다. 배가 나가지 않는 것도 유령이 배를 잡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유령이 바람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유령이 가까이 와서 그들을 죽이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고난 중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으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들 가까이 계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도 실패할 때는 사단만 보이고 예수님이 안 보이십니다. 내가 고통스러우니까 예수님은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셔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사단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유령으로 보았다니 참으로 웃기는 일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때에 우리 곁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아야합니다. 시편 139편 9절에 보면 바다 끝에 가서 거하여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거하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상황이 어려우면 사단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면 맞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어려움은 사단이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잘못된 생각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을 감당할 만하니까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름 위에 태양이 있는 것을 알듯이 사단의 역사 위에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이 사단보다 더 큰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고난의 때에 우리아 함께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고 힘을 내야 합니다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서 무참히 학살당하고 쓸만한 사람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렸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여 용광로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질 소망을 보았습니다. 다니엘도 바벨론 포로 생활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절대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하면 사자 굴에 집어 넣는다고 하여도 사자굴에도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엿습니다. 다니엘의 친구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집어던진다는 말을 듣고 풀무불 속에도 계시는 하나님을 믿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삶을 돌이켜 보아도 내가 가장 힘들 때가 하나님을 가장 많이 만난 때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을 나의 내면에 깊이 심었습니다. 하나님은 예담이로 고통하는 유성 목자 가정을 함께 하시고 돌보아 주고 계십니다. 남다윗 나영 목자 가정에 시련이 있을 때 함께 하시고 도와주십니다. 힘들게 시험을 보는 학생들과 함께 하시고 힘이 되어주십니다 결혼 준비하는 승식 목자와 함께 하시고 돌봐주십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5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유령으로 알고 두려워하고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라고 하셨습니다. 물위를 걸어오신 분이 지금까지 병을 고치신 예수님, 죽은 자를 살리신 그 예수님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을 변호하시고 사랑하시는 그 예수님이십니다.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이 고난 중에 계시니 안심하라고 하십니다. 안심하라는 말은 용기를 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사랑과 능력과 근신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알면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담대할 수 있습니다. 역경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는 멀리 가고 아이들은 집에서 밤에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배가 고파 울고 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오셔서 나야, 엄마야 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삼층에 아이가 있다가 불이 나서 아이는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소방서원이 담요를 깔고 뛰어내리라고 합니다. 아무리 뛰어내리라고 하여도 뛰어내리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팔을 벌리며 나야 엄마야 하며 뛰어 내리라고 하면 아이는 뛰어내립니다. 예수님은 역풍 중에 오셔서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풍랑 속에서 제자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고자 하셨습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풍랑은 나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나의 풍랑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다가 오시고 안심하라 말씀하십니다. 멀리서도 나를 아시고 나에게 성령으로 다가오고 계십니다. 우리가 고난 속에서 내가 여기 있다고 하시는 사랑의 예수님을 알아보고 안심하고 담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에서 오는 평화)

51절을 보십시오.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배에 올라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가자 바람이 그쳤습니다. 예수님은 바람을 그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세력을 잠잠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제자들은 심히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이성을 초월하여 일하시니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으로 인하여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배에 타자 바람이 그치는 것으로 인하여 더욱 놀랐습니다. 그들을 사랑하여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인하여 더욱 놀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에게 많은 두려움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것입니다. 걱정해야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오라고 하면 가야합니다. 죽음 때문에 미리 병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을 때 두려워서 평안히 죽지 못한다고 합니다. 두려움에 벌벌 떨며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죽음 중에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현대 사회는 불안한 사회입니다. 불안에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잘못될까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이성을 가지고 한 사건에 대해서 비판하고 추리합니다. 이것을 근거로 예측을 합니다. 이렇게 되면 다음은 어떻게 된다고 예측합니다. 흉년 들면 굶어죽는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나서 다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예측 기능이 고장납니다. 나침반이 고장납니다. 지식이 더 많은 의심을 만들어냅니다. 아이큐 칠십 이하는 자살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울증이 없습니다. 공부 많이 한 사람이 두려움이 많습니다. 학벌보고 결혼해서는 안 됩니다 인격은 학벌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 그대로입니다. 지식이 많을수록 의심이 많아집니다. 재산보고 결혼해도 안 됩니다. 재산이 많다고 인격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참지식은 깨달음입니다. 이제서 생각하니 그것이 사랑이었소라는 유행가가 있습니다. 사랑을 깨달았다는 말입니다. 깨달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과 결혼해야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두려움의 반대는 평화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생각을 바꾸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사랑의 예수님을 깨닫고 믿음이 있어야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젖먹이 어린 아이들을 보면 편안합니다. 어린아이 자는 것을 보면 평안합니다. 어른은 입을 벌리고 코를 고면서 자는 것은 흉측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자는 것이 편안하고 죽는 것이 편안해야합니다. 어린 아이들의 평화는 지식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믿는 믿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사람을 알아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알아봅니다. 어머니의 냄새를 맡습니다. 어머니는 총체적으로 압니다. 이렇게 생긴 어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머리로 아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사랑의 예수님을 알고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합니다. 우리의 영적 감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지켜주시는 어머니같은 하나님을 믿어야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냄새를 맡아야합니다. 어떤 풍랑 속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음을 깨달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을 두려워함으로 두려움을 극복함)

52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마가복음 저자는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치는 것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을 보고 한 마디합니다. 제자들이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둔하여 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왜 제자들이 두려워하여였습니까? 풍랑 때문입니까? 경험을 넘어서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풍랑보다 더 크신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죽음보다 더 무서우신 부활의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풍랑 속에서 예수님을 연결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사건을 만드시는 예수님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체험한 것이 무엇이냐 보다는 누가 이것을 이루셨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사건 뒤에 예수님을 보아야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이적을 통하여 보여주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심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다는 것을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것을 요한복음에는 표적이라고 합니다. 표적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표적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진리를 드러내십니다. 영원한 진리는 한 순간의 사건에 나타냅니다. 그들은 오천명 먹인 예수님을 보고 알았다면 풍랑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메시야가 왔고 왕이신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가 왔으니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자연 만물을 주관하시는 예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니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이 둔하여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낮에 떡 떼던 일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떡은 먹었지만 예수님께 관심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이 둔하여졌다는 말은 마음이 딱딱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길가밭처럼 마음이 딱딱해졌습니다. 바로와 같이 마음이 굳어졌습니다. 우리는 어떤 가운데서도 나를 구원하시고 살과 피를 주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공황 장애라는 병이 있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뛰고 두려움이 옵니다. 이유도 없이 오분동안 숨이 막힙니다. 이십분 지나면 진정이 됩니다. 진정되면 불안 증상이 옵니다. 이런 증상이 다시 올까 불안합니다. 이런 증상이 있으므로 이것 저것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 공황장애의 치료법은 약물치료로 항우울제를 줍니다. 이것을 먹으면 계속하여 졸립니다. 다음은 행동치료가 있습니다. 공항장애자에게 더 큰 두려움에 직면하게 합니다. 깜짝 깜짝 놀라게 하면 저항력을 거지게 합니다. 큰 걱정은 작은 걱정을 해소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기면 작은 걱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부간에 싸우다가 애가 아파서 열이 사십도가 되면 애를 안고 병원에 가면서 부부싸움은 끝납니다. 큰 사건이 작은 문제를 해결합니다. 우리가 더 두려우신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는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보다 더 두려우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본 사람들)

53-56절을 보십시오.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닻을 내렸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지 못하였으나 무리들은 예수님을 병을 고치는 분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면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다니며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병든자를 침상 채 데리고 왔습니다. 아무데나 예수님이 들어가시는 시골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사람들이 많이 있는 시장에 두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오셔서 그의 옷가라도 손을 대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손만 대시면 다 나음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능력이 충만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과 접촉해야합니다. 말씀과 접촉해야 하고 성령님과 접촉해야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과 접촉하면 예수님은 능력으로 우리를 치료하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병자를 치료하시고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결론 고난 중에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자)

인디언 노인이 돈 뒤에 사람을 보았듯이 우리는 고난 뒤에 계신 예수님을 보아야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하나님 보아야 합니다. 풍랑 뒤에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곁에 와 계시다는 것을 보아야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역경 중에 계십니다. 고난을 주는 사단보다 더 크신 예수님이 그곳에 계십니다. 우리가 역경을 만날 때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역경 속에서 나다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내면에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역경을 통해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역경 후에 우리를 쓰실 더 큰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역경 중에서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가복음 6장 강해 5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마가복음 6장 45-마가복음 6장 56
요절 마가복음 6장 50절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마가복음 6장 강해 오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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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마가복음] 마가복음 8장 강해 삼부 다시 안수 하신 예수님 오요한 2011-05-28
36 [마가복음] 마가복음 8장 강해 이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오요한 2011-03-23
35 [마가복음] 마가복음 8장 강해 일부 예수님의 깊은 탄식 오요한 2011-03-23
34 [마가복음] 마가복음 7장 강해 4부 열리라 오요한 2011-02-04
33 [마가복음] 마가복음 7장 강해 삼부 부스러기 은혜라도 오요한 2011-02-04
32 [마가복음] 마가복음 7장 강해 이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 오요한 2011-02-04
31 [마가복음] 마가복음 7장 강해 일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 바리새인들 오요한 2011-02-04
30 [마가복음] 마가복음 6장 강해 5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오요한 2011-02-04
29 [마가복음] 마가복음 6장 강해 4부 광야의 잔치 오요한 2011-02-04
28 [마가복음] 마가복음 6장 강해 3부 세례요한의 죽음 오요한 2010-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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