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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가복음 6장 강해 4부 광야의 잔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02-04 00:00:00
조회수 : 3,362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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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장 강해 4부 광야의 잔치
마가복음 6장 30-마가복음 6장 44
요절 마가복음 6장 42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옛날부터 우리에게 먹는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흥부전에 읽어보면 박을 타는 모습이 나옵니다. 박을 탔더니 그 속에서 임금에게 바치는 아주 좋은 쌀 어백미와 돈이 꾸러미로 계속하여 나옵니다. 쌀을 붓고 부어도 계속하여 쌀이 나옵니다. 옛날 서민들이 너무나 배고픔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렇게 계속해서 쌀과 돈이 나오는 바가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 이런 바가지를 화수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소망은 옛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도 이런 바가지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 바로 예수님이 그런 화수분 바가지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떡 다섯개와 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끊임없이 떡과 고기가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지금도 그런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우리가 광야같은 세상에서 어떻게 잔치를 벌일 수 있는지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잠깐 쉬어라)

30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사도들은 전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들은 전도 여행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처럼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은 회개하고 거듭났습니다. 그들은 기쁨에 넘쳐서 이를 낱낱이 예수님께 보고했습니다. "예수님,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르치니 사람들이 달덩이처럼 얼굴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들은 흥분하여 침을 튀면서 말했습니다. 제자들은 마음은 기뻤지만 육신적으로는 피곤했습니다. 제자들은 배가 고팠습니다. 제자들은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서 음식 먹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피곤하고 배고픈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휴식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푹 쉬라고 하지 않으시고 잠깐만 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다음 일을 하기 위해서 잠시 휴양회를 갖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매주 우리에게 주일을 주셔서 말씀을 듣고 영육간에 쉼을 주셔서 일주일 일하게 하십니다. 우리에게 스프링 바이블캠프를 통해서 말씀을 주셔서 봄학기를 다시 힘있게 살게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즉시 배를 등대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갔습니다.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 길은 6킬로 정도 됩니다. 제자들은 사도로 부름 받은 후에 처음 있는 휴양회였습니다. 제자들은 기쁨으로 배를 저으며 건너편으로 갔습니다.

(목자를 찾는 무리들)

32,33절을 보십시오. “이에 배를 타고 따로 한적한 곳에 갈새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이 그들인 줄 안지라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 예수님 일행이 한적한 곳으로 가자 어떤 사람이 이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건너갔다는 소문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소문은 계속하여 퍼져서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습니다. 모든 고을에서 예수님이 가시는 곳으로 모여 들기 시작했습니다. 갈릴리 고을 마라톤대회가 시작된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전도 여행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을 맛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진정한 목자 예수님을 사모하였습니다. 이들이 육지로 가는 길은 16킬로 되는 거리입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배로 가는 길보다 10킬로는 먼길을 먼저 달려와 도착하였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배에서 내리자 그들은 예수님 일행을 대대적으로 환영했습니다. 요즘 대선을 하며 많은 사람이 지도자에 열광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문제인, 어떤 사람은 안철수, 어떤 사람은 홍준표에 열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 부족한 죄인들이고 언제 다시 우리에게 실망을 줄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진정한 목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열광해야합니다.

(목자 없는 불쌍한 사람들)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은 모여든 큰 무리가 모여 든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을 그들을 보시자 너무나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날 굶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 식민지 아래서 착취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병들고 귀신 들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소년 소녀 가장도 있었고 부양하는 자녀 없는 부모님도 있었습니다. 학점을 흘리고 무기 창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들의 힘든 상황을 불쌍히 여긴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긴 이유는 목자 없는 양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인도해줄 목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불구자들을 보면 불쌍합니다. 소경, 앉은뱅이, 정박아, 뇌성마비자를 보면 불쌍합니다. 남편 없는 과부, 부모 없는 고아, 자식 없는 노인네들, 아내 없는 홀아비를 보면 불쌍합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늙고 죽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합니다. 양 없는 목자도 불쌍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불쌍한 것은 목자 없는 양들입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목자가 있으면 목자가 그들을 도와 줄 것이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엄마 없는 하늘 아래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그 드라마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엄마가 없으면 주눅이 들고 부끄럽고 혼자 있고 상실감도 큽니다.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한가지 옷을 일년내 입고 펑크난 양말을 신습니다. 때가 낀 옷을 입습니다. 몸도 씻지도 않고 준비물도 없이 학교에 갑니다. 이 아이가 불쌍한 것은 먹을 것이나 입을 옷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무리들이 정말 불쌍한 것은 진정한 목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왜 불쌍합니까? 사람들은 태어나서 죄에 시달립니다. 죄로 인하여 싸우고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이혼하는 가정이 많습니다. 이혼하지 않아도 화목한 가정이 많지 않습니다. 젊은이들도 죄로 인하여 무기력하게 살아갑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뼈빠지게 고생합니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안정된 직장을 잡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러 질병에 시달립니다. 어떤 사람은 코를 고느라 숙면을 취하지 못하여 항상 졸고 어떤 사람은 허리가 아프고 어떤 사람은 어깨가 아픕니다. 직장 잡고 자녀낳고 살다가 결국은 죽어야합니다. 지난 주에도 오베드로 선교사님의 모친이 돌아가시고 또 신한나 선교사의 모친이 돌아가셨습니다. 중국에서 한국의 어린아이들이 사고로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불쌍한 것은 이런 것 때문이 아닙니다. 이들이 진정한 목자 예수님을 알지못하는 것이 불쌍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면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십니다. 해결해주시지 않을 때는 이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사 우리를 변화시켜주십니다. 우리가 진정한 목자 예수님을 알면 우리는 절대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을 가르치신 예수님)

34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사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말씀으로 그들의 갈한 영혼에 양식을 주셨습니다. 무리들은 사실상 그날 한끼도 먹지 못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실 때 그들은 육적인 배고픔보다 영적인 배고픔이 더욱 심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육적인 배고픔보다 영적인 배고픔을 더욱 심각하게 보십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육적인 굶주림보다 영적인 굶주림이 더욱 심각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말세에 영적인 기근에 시달릴 것을 예언했습니다. 아모스 시대에 기근이 있었습니다. 극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넉달 동안 몇몇 성읍에 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들 성읍에 사는 사람들은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다른 성읍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도 가물어서 그곳에서도 그들은 풍족히 물을 마시지 못했습니다. 아모스는 이런 가뭄과 기근을 보면서 미래에 임할 영적인 기근을 말씀하셨습니다. 영적 기근이 들면 젊은 남자가 다 배가 고파 피곤합니다. 요즘에 사람들은 밥을 굶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너도 나도 살을 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많은 젊은이들이 항상 피곤하고 지친 사람을 살아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해서 기근이 들은 것입니다. 말씀을 공부한다할지라도 나의 말씀으로 말씀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에게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말씀으로 받아야합니다. 말씀이 들어가면 늙은이라도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같이 힘이 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36,37a절을 보십시오.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먹게 하옵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실 때 제자들은 무리를 보내어 더치페이하자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사실상 무리들이 먹는 것보다 무리들을 보내고 자신들도 쉬고 먹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식사 시간에도 가지 않는 무리가 부담스러웠습니다. 자신들과 무리들의 먹을 것을 책임지지 않는 예수님에 대해서 짜증을 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제안을 듣고 어 시간이 이렇게 되었구나 미안하네. 그래 무리를 보내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냐 돌려 보내지 마. 내가 먹일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엉뚱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은 정말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먹을 것이 없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배고프고 피곤한 것도 아십니다. 이를 아시고 잠간 쉬라고 한 것도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피곤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엄청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도 남자만 오천명이나 되는 무리를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심정에 동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실 때 그들은 영적으로, 육적으로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돌볼 목자가 없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안정과 명예에 관심이 있었지 양들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정치지도자들은 정권욕에 사로 잡혀 있었고 음란했습니다. 양들을 돌볼 목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제 양들의 목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처럼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목자가 되어야합니다. 어머니가 어머니일 수 있는 것은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수성 경미 목자는 예성이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줍니다. 짜증을 다 받아줍니다. 최유성 한설 목자는 예담이를 사랑하여 직장도 쉬면서 돌보았습니다. 이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어떤 분이 어머니는 생선 머리만 드셔서 그것을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자신이 부모가 되어 어머니도 고기를 좋아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녀에게 고기를 주시기 위해서 자신은 머리만 드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천안과 세계 캠퍼스 양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부모의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이들을 어찌하든지 돌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우리 유비에프도 1960년대 방황하는 지성인들을 불쌍히 여기고 말씀을 가르치는데서부터 시작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안 캠퍼스 양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떡 몇 개나 있나보라)

37,38을 보십시오.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제자들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우리가 이백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대답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재빨리 계산했습니다. 대략적인 사람 수를 헤아리고 한 사람당 얼마씩의 식대가 들 것인가를 생각해서 전체의 총액을 이백데나리온으로 계산해냈습니다. 그들은 이백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일 것인가 예수님께 반문했습니다. 그들은 떡하면 돈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의 이 말 속에는 이백데나리온의 떡이 없으므로 결국은 먹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백데나리온의 돈이 없다는 것을 잘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하며 약간 신경질적이 어투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는 답은 이백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고 하셨습니다. 너무나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백데나리온의 돈을 원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떡 몇 개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나머지는 예수님이 친히 책임져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전능하신 예수님이 다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리얼 석세스 켄 셸턴가 지은 “성공한 사람들에겐 공통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법칙이 있다" 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1%의 성공 확률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잡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잠재능력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잠재능력이 아니라 전능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주시니 1%의 가능성인 떡 몇 개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가서 떡 몇 개나 있나 찾아보았습니다. 제자들은 떡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참석한 어린아이가 떡 다섯 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떡뿐 아니라 고기 두 마리까지 있었습니다. 찾고자 하면 더 많은 것이 생깁니다. 우리는 다리를 움직여 가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떡 다섯 개와 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오병이어를 예수님의 손에 바쳤습니다. 오병이어는 그들의 심정과 믿음과 순종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최선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떡 몇 개로 오천명을 먹이셨습니다. 우리는 떡 몇 개나 있나 보라는 이 말씀에 순종하여, 직장이 있는 가정은 우리 가정밖에 없을 때 이 교회를 매입하였습니다. 나는 전에 성경 66권 강해를 쓸 때는 매일 하나의 메시지를 써야해서 두시 세시에 일어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피곤한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올해들어와서 자주 피곤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도 피곤하고 낮에 교회에 와서도 자주 누워야 했습니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이가 늙어서 그런가 생각하였습니다. 올해 들어서 캠퍼스 동방에도 마음대로 갈 수 없어서 무기력함이 밀려왔습니다. 내가 이제 캠퍼스 양들을 먹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천안 캠퍼스를 먹이기 위해서 나에게 이백데나리온을 찾는 것이 아니라 떡 몇 개를 찾으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에게 떡 몇 개는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지금 두번째 삼년째 메시지를 쓰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양식 쓰는 것을 아침에 쓰지 말고 새벽기도가기 전에 쓰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알람을 새벽 네시에 맞추어놓고 벌써 3주째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신기하게 나의 피곤함을 없애주셨습니다. 지난주는 전주와 대전에 운전하며 갔다가 밤에 왔습니다. 그래도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니카 사모와 일대일로 시편을 공부하고 아들 요한이와도 야고보서를 공부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도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찾지 말고 할 수 있는 떡 몇 개를 찾아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떡 몇 개를 감사하신 예수님)

39-41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예수님은 제자들을 명해사 무리들을 오십씩 백씩 푸른 잔디위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떡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 축복하고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작다고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속에 담겨 있는 제자들의 사랑과 믿음과 순종을 축사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선을 드릴 때 주님은 그것을 축복하십니다. 제자들은 땅만 바라보았지만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들을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42-44절을 보십시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떡 다섯 개와 고기 두 마리를 감사하고 나누어주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와! 떡은 떼어도 떼어도 계속 나왔습니다. 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이 이를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아니고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엘리야도 사르밧 과부의 떡과 기름 조금을 가지고 몇 달을 먹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이루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만난 참사랑교회 정길조 목사님은 예전 갈릴리 교회를 오억에 사셨습니다. 그는 돈이 없어 하나님께 탄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손에 모래 다섯알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에게 일억은 모래 한 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오억을 주셨고 그 교회를 사셨습니다 그분 교회의 사무실에는 병에 모래를 가득담아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다면 우리가 앞집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다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두 그릇 세 그릇을 먹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집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고 숨겨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떡을 나누어 주면서 떼어 먹었습니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거두었더니 열두 광주리가 차게 거두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떡 몇 개를 찾아드리면 주님은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떡 몇 개를 찾아 드러야합니다. 떡 몇 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주위에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떡 몇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선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십일조를 드릴 수도 있고 첫열매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새벽 기도의 시간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팀의 일대일 말씀을 가르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떡 몇 개를 드리고 양들이 떡 몇 개를 드리게 도와야합니다. 과거에 한 선교사는 수양회에 백원의 등록을 했습니다. 그것이 그 선교사가 가지고 있는 전부였습니다. 그것이 끈이 되어 선교사는 수양회에 참석하고 변화되어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먹을 것을 책임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만 있다면 우리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만 계시면 예수님께서 경제문제를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의 장래를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있다면 이제는 먹을 것, 입을 것 염려를 하지 말아야합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것을 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합니다. 먼저 영의 양식을 추구하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거룩함을 추구해야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먹을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결론 생명의 떡 예수님)

결론적으로 마가복음 6장 42-24을 보십시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예수님은 광야에서 잔치를 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먹을 것을 책임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적으로 먹을 것이 주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양식을 공급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살은 참된 양식이요.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을 때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고 영혼의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영혼의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생명의 떡이 되사 영육간에 우리의 먹을 것을 책임져 주시는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만나려면 제자들과 같이 떡 몇 개를 찾아서 드려야&#54689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우리가 할 수 있는 떡 몇 개를 찾아서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한마디 떡 몇 개를 드리자
마가복음 6장 강해 4부 광야의 잔치
마가복음 6장 30-마가복음 6장 44
요절 마가복음 6장 42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마가복음 6장 강해 오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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