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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가복음 8장 강해 일부 예수님의 깊은 탄식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03-23 00:00:00
조회수 : 4,50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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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8장 강해 일부 예수님의 깊은 탄식
말씀 마가복음 8장1-마가복음 8장 13
요절 마가복음 8장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여러분은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있는 송명희 시인이 쓴 ‘나’라는 복음 성가를 아실 것입니다. "나 남이 못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상 들었네" 송명희 시인이 보고 들은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고 듣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는 우리 육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영의 눈으로 보았고, 우리가 육의 귀로 듣지 못하는 것을 영의 귀로 들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이전에 정전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었고, 어떤 주유소에는 주유를 하고 돈을 못 받았습니다. 어떤 집은 밤에 전기가 나갔는데 촛불을 켜니 어린 아이가 생일축하 노래를 부른 후 자꾸 촛불을 꺼서 힘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송명희 시인과 달리 다 건강합니다. 그러나 영의 눈과 귀가 막혀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송명희 시인보다 더욱 답답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끊임없이 물질 문제, 질병 문제에, 학점 문제로 근심하고 걱정합니다. 현실에 불만족에 시달립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우리를 보시고 답답해하시고 깊은 탄식을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탄식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고 우리의 영의 눈과 귀가 떠져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만족하고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1-3절을 보십시오.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인 후였습니다. 그 즈음에 또 큰 무리가 사흘 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이제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무리와 함께 굶었습니다. 무리들 가운데서는 먼 곳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을 그냥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쓰리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이전에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왜 사흘 동안이나 이전처럼 능력을 행하여 무리를 먹이지 않았나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예수님이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말씀하시고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말씀하신 것을 볼 때 예수님은 사흘 동안 제자들이 무리를 불쌍히 여겨서 떡 몇 개를 가지고 오기를 기다리셨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이 무리를 먹이고 제자들도 먹이고자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사흘을 기다려도 아무도 떡 몇 개를 찾아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떡 다섯 개와 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렸을 때 오천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를 거둔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떡 몇 개를 찾아서 예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아무도 떡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기다리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제자들을 불러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도 나와 같이 무리를 불쌍히 여겨서 떡 몇 개를 가져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무리를 먹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긍휼의 주님을 배웁니다. 예수님은 굶주린 무리들로 인하여 마음에 깊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과거 사십일 동안 금식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의 배고픔을 체험적으로 아시고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배가 고프셨고, 제자들도 배가 고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배가 고프다고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불쌍히 여긴다고도 하지 않으시고, 무리를 불쌍히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엄마의 마음입니다. 엄마하고 자녀들하고 같이 배가 고프면 엄마는 자식을 불쌍히 여깁니다. 자식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자신을 불쌍히 여겨 자신의 먹을 것만 챙기면 그 사람은 엄마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시는 엄마와 같으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불쌍히 여기사 문둥병자를 치료하셨고 과부를 불쌍히 여기사 죽은 아들을 살렸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어 슬퍼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서 눈물을 흘리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동참하는 선한 목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목자는 무엇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가운데 한 목자는 양들을 생각하면 항상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눈물로 몇 명의 양들이 교회에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캠퍼스 양들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으리이까)

4절을 보십시오. "이 광야에서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불쌍히 여긴다는 말에 제자들은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먹게 하겠느냐고 약간은 신경질적인 어조로 말을 했습니다. 자기들도 배가 고픈데 자기들을 먹일 생각은 안하고 무리만 먹이고자 한다고 화를 냈습니다. 제자들은 엄마가 아니라 아기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광야라는 악조건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돈이 없어 먹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옆에는 그 전능하신 예수님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번에도 떡 몇 개를 예수님께 찾아드리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떡 몇 개를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신경질적인 어조로 우리가 어떻게 이들을 먹이느냐고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그들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무리를 불쌍히 여기기보다는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식사 때가 되어도 돌아갈 줄 모르는 무리들이 짜증났습니다. 피곤한 제자들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무리들이 화가 났습니다. 주위 연약한 사람들을 볼 때 제자들처럼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을 생각해야합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짜증나는 사람들이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떡 몇 개나 있느냐)

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예수님은 짜증내는 제자들에게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일 때처럼 떡 몇 개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떡 몇 개를 찾으셨습니다. 그들이 없는 것을 드리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떡 몇 개를 찾으십니다. 떡 몇 개는 현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부입니다. 앞으로 큰 일을 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떡 몇 개의 가능성을 찾으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떡 몇 개를 찾아서 주님께 드리는 것뿐입니다. 제자들은 떡 일곱을 찾았습니다. 이것은 작은 것이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요 진심이요 순종이었습니다. 우리도 가지고 있는 떡 몇개를 찾아서 주님께 드려야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꼬투리로 일하십니다. 우리는 오월에 떡 몇 개를 찾아서 스프링바이블캠프를 하였습니다. 6월과 7월에는 떡 몇 개를 찾아서 학생회 세례식 공부와 계시록 리트릿을 하였습니다. 주님이 그것을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복음을 분명히 알게 하셨고 의대에 안한경 형제가 거듭나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계시록 말씀을 통해서 고난을 이기고 거룩하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떡 일곱 개를 감사하시고 나누어주신 예수님)

6-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은 떡 일곱 개를 가져 오자 그것을 축복하시고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것이라고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진심을 보시고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과 중심과 순종을 받으시고 하나님께 감사하십니다. 예수님은 떡을 떼어 그것을 제자들에게 주어 제자들이 먼저 먹게 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무리들에게 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선 두어 마리도 축복하셔서 무리에게 먼저 주셨습니다. 기적은 항상 감사하고 먼저 주는 자에게 일어납니다. 우리는 어떤 악조건에서도 믿음을 보고 감사해야합니다. 내 떡 내가 먼저 먹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먼저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주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는 자에게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누르고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칠병이어의 기적)

8,9절을 보십시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떡을 나누어주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와!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의 무리들은 다 배불리 먹었습니다. 먹고 남은 광주리를 거두니 일곱 광주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먹이되 풍성히 먹이시는 풍성한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떡을 주실 뿐 아니라 자신의 살과 피까지도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시는 사랑의 목자이십니다. 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사천 명을 먹이는 큰 일을 하셨습니다. 큰 일을 하려면 떡 몇 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꿈을 구체화하려면 떡 몇 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진 떡 몇 개를 찾아서 드려야합니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의 조상이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뭇별처럼 많은 자손을 낳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드린 떡 몇 개는 바로 이삭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오천 선교사 파송을 하고 백개 지부를 개척하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성경 66권 강해서를 쓰고나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하는 꿈이 있습니다. 이런 꿈을 구체화하고자 하면 먼저 가정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우리가 한 사람에게 말씀공부를 해주어야합니다. 매일 일용할 양식 말씀을 잘 먹어야합니다. 말씀을 잡고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선교사로 가고자하는 자는 아무리 어려워도 파송해야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것을 축복하사 큰 일을 하십니다. 현재 우리에게 오천 선교사를 파송하고 백개 지부를 개척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말도 안 되는 기적을 행하실 것입니다. 아멘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

10,11절을 보십시오.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칠병이어도 사천 명을 먹이고 일곱 바구니를 거두었다는 표적을 듣고도 감사하고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떡을 먹인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을 힐책하고 비난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면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보여달라고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모세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을 먹게 한 것처럼 매일 하늘로서 오는 만나를 내려주기를 구하였습니다. “에그-한두 번 떡을 준 사람이 무슨 메시야람! 모세처럼 매일 떡을 주어야 메시야지” 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한 번의 기적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하여 기적을 주어야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들이 표적을 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표적을 보여주어야 그리스도로 믿겠다는 것이 잘못입니다. 그들은 이미 보여주신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표적을 주지 않아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합니다. 그리스도로 믿고 나서 그 후에 표적을 구해야합니다. 그리스도로 믿고 병의 치료를 기도하고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도록 기도하고 취업을 위해서 기도하고 양들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두지 못하고 물질을 구하는 탐심이 있었습니다. 탐심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더 욕심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탐심으로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표적을 보아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부족함을 느낍니다. 탐욕에 기초한 사람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사람입니다. 탐욕에 기초한 사람은 소금물을 마시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끊임없는 불만족에 시달립니다. 불평합니다. 이들은 지식과 명예와 부와 사랑을 다 얻고도 부족함을 느끼고 또 표적을 구합니다. 탐욕에 기초한 사람은 하나님이 장학생이 되게 해도 더 좋은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과 비교하고 불만을 갖습니다 하나님이 양을 주셔도 왜 이런 양을 주셨느냐고 불평하고 왜 한 명만 주셨냐고 불평합니다 십억원을 주시면 백억 원이 없는 것에 불만을 느낍니다. 백 명의 예배를 이루면 이백 명을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우리나라는 예전에 비해 정말 잘살게 되었습니다. 쌀밥에 쇠고기 국 먹으면 죽어도 소원이 없다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나 쌀밥에 쇠고기국을 먹습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부족함을 느끼고 불평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좋은 차, 좋은 집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이것이 탐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 분깃으로 만족해야합니다.

(깊이 탄식하신 예수님)

12,1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불신앙을 보시며 깊이 탄식하였습니다. 탄식하다의 원형은 아나스테나조인데 이 말 속에는 깊은 슬픔과 실망과 책망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식하신 이유는 그들의 마음에 깊은 불신과 탐심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마음 속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먹는 떡을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탐심은 우상 숭배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불만족에 시달린다면 우리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하는 자를 탄식하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표적을 보여주어야 그리스도로 믿겠다는 사람을 보고 탄식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 표적도 아니 보여주어도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감사하는 사람을 보고는 심히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감사하고 기뻐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더 큰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베를린의 한진우 선교사는 병원에서 연구를 계속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는 연구를 못해서 한국에 돌아가도 감사하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두 시간 이상의 거리를 차를 타고 다니면서 드레스덴 예배에 참석하고 믿음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한진우 선교사가 다시 연구를 할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는 교수가 칭찬하는 이 말을 듣고 두 시간 동안이나 멍멍하였다고 마리아 선교사에게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결론-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송명희 시인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송명희 시인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합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고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바라보아야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시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도 충분히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한분이면 충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한분으로 만족하고 감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야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떡 몇 개를 찾아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여러 표적을 주실 것입니다. 아멘! 한마디 예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인 것을 바라보자

마가복음 8장 강해 일부 예수님의 깊은 탄식
말씀 마가복음 8장1-마가복음 8장 13
요절 마가복음 8장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마가복음 8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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