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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가복음 7장 강해 일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 바리새인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02-04 00:00:00
조회수 : 4,113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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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7장 강해 일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 바리새인들
마가복음 7장 1-마가복음 13
요절 마가복음 7장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올해가 기독교 개혁 오백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기독교 개혁에는 오대 모토가 있습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예수,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경입니다. 오늘 말씀은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전통보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에 두는 것입니다. 가톨릭이 타락한 것은 성경보다 전통을 위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전통이 성경 위에 있고, 사람이 성경 위에 있으면 결국은 기독교는 타락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에 두어야 합니다. 성경 중에도 특별히 십계명을 최고의 권위에 두어야합니다. 은혜 신앙은 십계명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십계명의 율법을 최고의 권위로 두는 믿음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씻지 않은 제자들을 본 바리새인)

1,2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였다가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몇명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에 있는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배우고자 하는 겸손함이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비판하는 교만한 마음 때문에 이 구원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이단성이 있는가 조사하러 왔습니다. 제자들은 서기관들이 옆에서 감시하고 있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평상시 하던 대로 씻지 않은 손으로 자유롭게 떡을 먹었습니다. 그들은 아마 너무 배가 고파서 손을 씻을 겨를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음식이 너무 맛있는 것이라 그냥 먹었는지 모릅니다. 하여튼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나서 식사 전에 손을 씻는다는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하지말라고 가르치기보다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자유로운 모습은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하는데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고 식사를 하다가 바리새인들의 책망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안식일 날 길을 가면서 밀 이삭을 잘라 먹다가 안식일을 어겼다고 바리새인들의 공격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책망할지라도 제자들을 변호하고 자유를 누리게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이를 따졌습니다.

(유대인들의 씻는 전통)

3-5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은 것은 당시에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먼저는 위생상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더러운 것을 먹지 않기 위해 손을 씻었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광야 생활을 하며 많은 전염병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깨끗하게 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을 판단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깨끗하게 살아서 그들은 페스트가 창궐할 때도 페스트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잘 때 발을 닦고 자는 사람은 발도 안 닦고 양말을 신은 채로 자는 사람을 보면 판단하는 마음이 생기죠? 용번을 본 후에 손을 반드시 닦는 사람은 손을 닦지 않는 사람을 볼 때 판단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밥을 먹고 반드시 이를 세 번 닦는 사람은 이를 닦지 않는 사람을 볼 때 판단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손을 열심히 씻는 이유는 위생상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장로들의 유전 곧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밥을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식사 전에 반드시 팔꿈치까지 손을 씻으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것도 손에서 팔꿈치쪽으로 씻으면 안 되고 팔꿈치에서 손쪽으로 씻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더러운 손으로 먹으면 그것이 음식을 통해서 배로 들어가고 그러면 그로 인해 그 사람까지도 더러워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장에서 이방인들과 몸을 부딪히면 몸이 더러워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시장에서 와서 반드시 샤워를 해서 더러워진 몸을 씻었습니다. 그 외에도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퐁퐁, 유한락스로 부지런히 씻었습니다 장로들은 손을 씻는 것 외에도 618가지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손을 씻는 정결예법은 레위기 말씀에 기초하여 생긴 것입니다. 레위기에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레위기에 보면 시체와 접촉을 하든지, 피를 흘리는 자와 접촉을 하든지, 문둥병자와 접촉을 하든지, 유출병환자와 접촉하면 부정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거하려면 우리도 거룩해야합니다. 우리가 더러우면 더러운 귀신이 우리와 함께 거합니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정결예법을 만들었습니다. 당시에 장로들은 정결을 위하여 여러 가지 인간이 지켜야할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손을 씻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정결예법을 지키는 것을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손을 잘 씻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날카롭게 비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정하다고 비판하는 바리새인들을 두 가지 점에서 책망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었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예수님은 먼저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문제를 지적하십니다. 외식은 원래 무대에서 가면을 쓰고 연출하는 배우를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탈을 쓰고 이중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거룩하고 깨끗한 것 같은 데 속으로는 더럽고 추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전통을 앞세우는 바리새인들은 위선적이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마음 중심은 하나님을 떠나 돈에 가 있었고 자기의 명예에 가 있었고 육적인 쾌락에 가 있었고 여자 사귀는 데 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입술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입술에 거하시는 분이 아니라 마음에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거듭났을 때 누구나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전통을 앞세우면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형식적이 되어버립니다. 어느 신앙 공동체나 개인도 다 처음에는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마음은 상실하고 형식적인 것만 남습니다. 한유대인과 독일인이 기차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독일인이 돼지고기가 든 햄버거를 권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은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다음에 붉은 포도주를 권했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과 함께 있을 때는 포도주를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독일인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느 때든지 포도주를 먹을 수 없습니까?" 그러자 유대인은 생명이 위협에 처했을 때는 예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독일인이 권총을 빼들고 유대인을 향해 겨누더니 먹으라고 했습니다. 유대인은 마지 못한 체 먹었습니다. 다 먹은 후에 독일이 사과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포도주가 너무나 맛이 있어서 함께 먹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러자 유대인이 말했습니다. "왜 햄버거를 먹을 때는 권총을 대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이 위선적인 신앙생활입니다. 어떤 사람은 육적으로 한번도 여자와 잔 적이 없다고 자신을 깨끗하다고 하면 남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에 보면 여러 번 간음한 자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어떤 두 스님이 길을 가는데 개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아리따운 여인이 개울을 건너지 못하고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 스님은 감히 여자를 업을 수 없다고 혼자서 건너갔습니다. 다른 스님이 업어서 건너 주었습니다. 여인은 자기의 길로 가고 두 스님은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십리쯤 가서 먼저 간 스님이 업고 건넌 스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여인을 업어줄 때 기분이 어떠했니? 그러자 다른 스님이 말했습니다. "나는 업어 준 후에 다 잊고 있었는데 자네는 십리를 걸어갈 동안 여자를 생각하고 있으니 십리나 여자를 업고 가고 있는 걸세" 어느 스님이 과연 정욕적인 것입니까? 그냥 먼저 걸어간 스님이 마음으로 더욱 즐기는 위선적인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예수님은 살인한 자도 회개하면 용서하셨습니다. 간음한 자, 다른 사람의 물질을 착취하던 세리도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서 못질하든 로마 군병까지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선자에 대해서는 용서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은 위선적인 자들에게 일곱 가지 화를 선포하셨습니다. 왜냐면 이렇게 이중적인 자는 회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신앙생활 잘 하시고 대표기도도 아주 거룩하게 잘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둘째 부인이 7살된 애기를 데리고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이중적 생활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셨습니다. 겉으로는 회칠을 해서 깨끗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더러운 시체가 썩어서 냄새가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금식도 하고 구제도 하고 기도도 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는 온갖 음란한 행동을 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렇게 위선적이 된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습니다)

7-9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바리새인들이 위선적이 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계명을 지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레위기 말씀에 기초하여 내면에 거룩함을 추구해야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살피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거룩하라는 성경 말씀은 버리고 정결예법만 남았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계명은 십계명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고 절하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그러나 그들은 십계명은 버리고 여러 가지 관습법만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자 위선적이 되었습니다. 겉은 깨끗하였지만 속은 더려웠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겉보다 속을 보십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상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전통만 남으면 이들과 같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예배드리고 헌금을 드리는 것만 남습니다. 나는 예배 참석하고 헌금하였으니까 신앙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새벽기도도 참석하니 나는 최고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마음 없이 행위로만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외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십계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십계명의 말씀은 거울과 같습니다. 십계명에 비추어 우리 내면을 비추어 보아야합니다. 예수님은 가르쳐주신 범위까지 십계명을 지켜야합니다. 십계명을 아시죠? 예수님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족도 돈도 직장도 나 자신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와 절대 타협해서는 안됩니다. 우상숭배는 망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는 아무일도 하지 않고 앉아있지만 말고 생명 살리는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모를 욕하거나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미움을 갖고 욕을 하여도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음욕을 품어도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헛맹세를 하여 거짓말 하지말고 옳은 것은 예라고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십계명 말씀에 기초하여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보고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야합니다. 십계명의 말씀으로 마음의 때를 벗겨야 합니다. 그런 죄를 예수님의 보배피로 깨끗이 씻어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고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우리는 마음에 참다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십계명을 지키는 자로 변화되어야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세 번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나도 그들을 좋아하다가 죄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단이었습니다. 또한 나를 미워하는 몇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나를 훈련하고자 나에게 보내신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이를 통하여 내가 나를 우상숭배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제가 끊임없이 자기 우상을 깨뜨리고자 합니다. 이제 나를 좋아하는 자를 경계하고 나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우상을 회개하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나를 도우소서.

(고르반의 유전)

10-13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십계명을 버리고 전통을 앞세운 예를 하나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을 설명한 출애굽기 21장 17절에 보면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고르반이라는 전통을 만들어 효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레위기 2장 일절에 보면 하나님께 최상의 것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부모님께 드려야 하는 선물도 하나님께 최상의 것을 드리기 위해서 고르반하고 선언하면 하나님께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전통을 만들었습니다.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고르반 전통을 통하여 하나님을 부모님보다 더 사랑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말씀은 떠나고 고르반 전통만 남자 나중에는 하나님께도 예물을 드리지 않고 부모에게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자신이 좋은 것을 먹어버렸습니다. 결국은 고르반 전통이 부모에 대한 공경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고르반 신앙은 차원 높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을 핑계 삼아서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죄악입니다. 물론 우리가 부모나 자식이나 남편이나 아내나 친구나 직장일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드리는 것보다 먼저 하나님께 드러야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공경과 부모 공경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오히려 자신의 의무를 더 열심히 해야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학사들은 하나님을 섬기지만 직장에서 더욱 열심히 일을 해서 좋은 영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학생들은 하나님을 섬기지만 더욱 열심히 학과 공부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해야 합니다. 또 우리 부모들은 자식들을 양육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집안 일이나 식사를 챙기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결정적인 때는 직장보다 하나님을 선택해야 하겠지만 평상시는 세상 사람들이 돌보는 것보다 더욱 힘써 돌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핑계되어서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불신자보다 더욱 악한 자입니다. 하나님을 핑계삼아 학교공부를 하지 않는 것도 죄악입니다.

(결론 십계명으로 돌아가자)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우리는 사람의 전통보다 말씀으로 돌아가야합니다. 특별히 십계명의 율법으로 돌아가야합니다. 우리가 전통만 남고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현대교회도 예전의 가톨릭처럼 부패하게 됩니다. 우리는 십계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은혜 신앙은 은혜속에서 십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 앞에서 우리의 속에 있는 죄를 진실되게 드러내고 회개해야 합니다. 십계명으로 우리의 내면을 깨끗이 씻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해야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무도 해야하지만 국가와 직장과 학교와 가정에 대한 의무도 행해야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도 공경하고 부모도 공경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안과 속이 같아집니다.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여 십계명을 지키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가복음 7장 강해 일부 하나님의 계명을 버린 바리새인들
마가복음 7장 1-마가복음 13
요절 마가복음 7장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마가복음 7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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