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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가복음 7장 강해 삼부 부스러기 은혜라도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1-02-04 00:00:00
조회수 : 4,07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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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7장 강해 삼부 부스러기 은혜라도
말씀 마가복음 7장 24-마가복음 7장 30
요절 마가복음 7장 28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찬송 중에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양이 있습니다. 이 곡은 영국의 존 뉴튼이라는 유명한 목사가 작곡했습니다. 그가 남긴 얘기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국에 가면 세 가지 사실 때문에 놀란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천국에서 볼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이 천국에 없는 것에 놀라고 둘째는 천국에서 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이 천국에 있는 것에 또 한번 놀라고 세 번째는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에 놀란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이 천국에 간다는 이야기도 더욱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겉으로는 믿는 것 같았는데 실제는 믿지 않았다는 의외성에 놀란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서 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책망을 받고 놀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별 볼일 없는 신앙인 줄 알았는데 천국에서 큰 상을 받는 사람도 생길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의외성은 천국에서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신앙이 매우 좋은 것처럼 보였던 대형교회 목사님이 시련의 때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신학교 교수들 가운데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돌아가실 때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다 돌아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실망을 주는 의외성입니다. 예수님 당시도 실망을 주는 그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믿음이 좋다고 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수제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읽다 보면 제자들이 믿음이 없다고 책망듣는 것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믿음이 없어보이는 이방인 가운데 믿음이 크다고 대표적으로 칭찬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오늘 말씀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과 하인의 병을 고친 백부장입니다. 백부장은 이방인이었지만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크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수로보니게 여인도 네 믿음이 크도다 하며 칭찬하셨습니다. 백부장과 수로보니게 여인. 두 사람 중에 누가 믿음이 더 크냐고 한다면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 수로보니게 여인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여인은 개라고 무시받는 상황에서도 부스러기 은혜를 바라며 나왔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큰 기적이 아니라 부스러기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녀는 작은 은혜라도 구하는 겸손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인으로부터 부스러기를 구하는 큰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두로 지방에 가신 예수님)

2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일어나서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 사건이 발생한 지역은 두로 지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두로 지경으로 가셨습니다. 두로는 해안에 있는 지방으로 이스라엘 지경 밖에 있는 장소였습니다. 이 두로는 알파벳을 만든 페니키아의 수도입니다. 이스라엘과 이웃하고 있어서 영토 분쟁등을 일으키며 아주 사이가 안 좋은 나라였습니다. 두로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해서 적개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니다. 이스라엘 사람도 그곳을 이방 땅, 어둠의 땅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을 최대의 모욕적인 존재인 개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한 집에 들어가서 아무도 모르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소문이 이방 땅에까지 퍼져서 예수님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자기 딸의 귀신을 쫓아내주기를 간구하는 여인)

25,26절을 보십시오. “이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기를 간구하거늘" 그런데 예수님은 뜻밖에 두로 지방에서 예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믿음의 여인을 만났습니다. 전혀 신앙적인 배경이 없지만 큰 믿음이 있는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비판하는 바리새인들로 피곤한 마음에 여인의 믿음으로 큰 위로를 얻으셨습니다. 이 여자는 헬라인이었습니다. 그리스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당대에 최고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그리스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스 사람은 당시에 지혜를 가장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했습니다. 수로보니게는 시리아와 베니게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베니게는 페니키아인입니다. 그는 혈통은 시리아인이었고, 페니키아 국적을 가고 두로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유대인에게 개취급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자였습니다. 당시에 여자는 남자들로부터 무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인을 이런 불리한 조건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크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갖기에 불리한 조건들이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신자 가정에서 핍박받는 것, 불신자가 가득한 직장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 몸의 건강이 안 좋은 것, 불황기가 오는 것이 예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샘터가 될 수 있음을 배웁니다. 여인에게는 한 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이 딸은 더러운 귀신이 들었습니다. 귀신이 들어서 이 무더운 여름에 겨울 파카를 입고 보일러를 틀고 잠을 자겠다고 우겼습니다. 웃을 것도 없는 데 히죽히죽 웃으며 다녔습니다. 청소년기를 지난 성숙한 딸이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녔습니다. 얼마나 엄마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여인은 예수님께 나와서 발 아래 엎드렸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엎드렸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딸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인은 발에 엎드려 딸의 귀신을 쫓아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귀신을 내어 쫓아낼 수 있는 권세자로 믿었습니다.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믿음이란 이렇게 예수님의 주권과 권세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건강, 물질, 취업, 장래, 결혼, 양들과 같은 모든 주권을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심장이 박동하고 뇌파가 움직이는 것까지 예수님이 주관하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믿을 때 예수님께 나가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자녀 때문에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동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학과 공부문제나 질병이나 실패나 가정의 문제나 죄의 문제로 고통하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나오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목자들처럼 양의 문제로 고민하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여간 어떤 문제든 그것을 끌어안고 예수님께 나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인을 개라고 시험하신 예수님)

27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여인을 페니키아 이방인이라고 대놓고 개 취급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자녀는 유대인이고 개는 이방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개는 퀴나리온으로 작은 개 강아지를 의미합니다. 애완용개입니다. 빌립보서 3장 2절에 개를 삼가라는 말씀에 나오는 개는 퀴온으로 더러운 것을 좋아하고 무리를 지어다니는 싸우는 개를 의미합니다. 어쨌든 애완용 개라도 개는 개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자녀인 이스라엘에게 배불리 먹게 하신다는 말씀을 통하여 구원의 순서를 가르쳐주셨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다음에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것이 구원의 순서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여인에게 개와 같은 죄인으로 자신을 발견하게 도우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방인으로 더러운 자신을 발견하도록 하셨습니다. 자존심을 극복하는 겸손 훈련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더 큰 축복을 주시고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듯이 여인을 시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을 합격했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인도 아브라함처럼 축복하시고자 잠시 시험을 하신 것입니다. 그녀를 믿음의 좋은 본보기로 삼고자 시험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어떻게 이런 훈련을 하실 수 있는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여인을 이렇게 개 취급하시는 훈련을 하실 수 있는 것은 예수님도 여인과 같이 개취급받는 훈련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여인과 같이 개 취급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개 취급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전에 따귀를 맞으시고 발길질을 당하시고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옷벗김을 당하시고 갖은 욕설을 얻어 먹었습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양손과 발에는 못이 박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런 개와 같은 모욕을 받으면서도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비방 뒤에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기까지 자신의 혈기를 부리지 않고 참고 인내하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든 고난을 참고 견디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개 취급 당한 예수님을 온 인류의 메시야로 높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인류 구원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때로 우리가 기도해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고 나서 오히려 더욱 모욕과 멸시가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나는 믿음으로 살려고 열심히 기도하는데 예수님은 나를 더욱 심한 환경에 개처럼 굴리실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속 깊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처럼 더 큰 은혜를 주시려고 우리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인처럼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할 때 그 후에 올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 잘못도 없이 애매한 고난을 받을 때 그 후에 하나님이 상 주실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윗은 장인 사울에게 쫓겨다닐 때 스스로 죽은 개와 같다고 말하였습니다 다윗은 아들의 반역으로 피난 갈 때 베냐민 사람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다윗은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 신뢰하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때 다윗은 메시야의 조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내면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왕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대구 동신교회 담임 목사이신 권성수 목사님도 목사의 아들로 밑바닥 인생을 살았습니다. 가난과 질병에 오래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이 테스트를 통과하여 목사가 되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도 이런 모욕과 멸시를 두세 번 있었습니다. 그것을 참았을 때 하나님은 저를 높여 주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개와 같이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훈련을 믿음으로 잘 감당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랑 안에서 자존심의 극복)

28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자는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으니 부스러기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재치있는 말입니까? 여인은 예수님을 주여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리시는 믿음이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삶의 주인, 자기의 메시야로 불렀습니다. 그녀는 "옳소이다" 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하고 개의 위치에서 부스러기 은혜를 구했습니다. 우리는 때로 개취급을 받을 때 그곳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옳소이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주님, 이게 뭡니까?"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주여 싫소이다"라고 말을 해도 안 됩니다. 교만하게 "내가 개라면 당신은 개의 목자요?" 하며 혈기를 부려서도 안 됩니다. 개맛좀 볼래요 하고 달려 들어서는 안 됩니다. 때로 의치약대 아브라함이 서는 것이 늦을지라도 "주여 옳소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시험에 떨어지고 돈을 잃어버렸을지라도 "주여 옳소이다."말해야 합니다. 여인이 이렇게 옳소이다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딸을 키우면서 여자는 사라지고 어머니만 남았습니다. 여인이 주여 옳소이다 말하고 자존심을 극복한 것은 이미 주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주님의 온전한 사랑을 신뢰했습니다. 완전한 주권을 신뢰했습니다. 여인은 자존심은 없었지만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로서 높은 자존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높은 자존감이 있어야 훈련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병든 딸이 있었지만 내면은 건강하였습니다. 마음이 꼬이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여인과 같은 자기 발견이 있었습니다. 그는 종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이 취급받았다고 하였습니다. 매도 많이 맞고 돌로침을 당하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헐벗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무시와 멸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핍박을 주시는 하나님이 옳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핍박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매를 맞으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높은 자존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개와 같은 취급을 받을 때 주여 옳소이다라고 해야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보면 개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개처럼 얼마나 부끄러운 것을 구합니까? 더러운 것을 구합니까? 으르렁 대며 싸우기를 잘합니까? 우리는 이런 자신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예수님께 나가야 합니다. 이 자존심만 극복하면 하나님의 커다란 은혜의 세계가 열립니다.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는 여인)

또하나 여자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거절하셨지만 여인은 그것을 수락의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유대인에게 은혜를 주신 예수님이 이방인에게도 은혜를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자세히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여인은 예수님이 개라고 하신 말씀을 잡고 개에게 주시는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참으로 이것이 지혜입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은 아무리 부정적인 말씀이라도 나를 사랑하여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스라엘에게 떡을 주시고 다음에 자신에게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시도록 간구했습니다. 부스러기 은혜만 받아도 딸이 나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지혜요 겸손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떡이 아니면 먹지 않겠다고 구하는 사람은 참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자신을 깊이 발견하면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게 됩니다. 그러자 주님은 부스러기가 아닌 놀라운 떡 한 덩이를 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녀를 테스트하시고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합격을 인정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개 취급을 받으면서도 항상 부스러기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가 부스러기 은혜를 구했을 때 하나님은 큰 은혜를 주사 기독교의 기초를 세우게 하셨습니다. 세계선교의 놀라운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부수러기와 같은 작은 은혜라도 구해야 합니다. 성동에서 파송한 러시아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다른 피부색을 갖었다는 이유로 죽을 만큼 맞았습니다. 그는 여기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선교사로 대우 받았다는 것에 힘을 얻고 부스러기 은혜를 구하며 선교사로 힘 있게 살았습니다. 오뎃사에 이요한 선교사는 처음 그곳에 갔을 때 납치되어 보쌈을 당하고 두둘겨 맞았습니다. 처음에는 화가 나서 우크라이나를 떠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죄악된 자신이 그렇게 맞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선교사로 살며 부수러기 은혜로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여자의 믿음의 말을 칭찬하신 예수님)

29,3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예수님은 여인이 한 믿음의 말을 근거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녀의 말 속에 믿음과 인격이 담겨 있습니다. 말 속에 깊은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말에 따라서 축복하시기도 하시고 심판하시기도 하십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두령은 부정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귀에 들린 대로 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야고보서에는 말은 불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불은 산을 태우기도 하고 큰 항공모함이 움직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말에 의해서 많은 사람이 죽기도 하고 하고 많은 사람들이 살아나기도 합니다. 또한 말은 배의 키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작은 키에 의해서 큰 항공모함이 미국으로도 가고 한국으로도 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말에 의해서 지옥에 가기도 하고 천국에 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말을 해야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말을 주관하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가나안땅을 여인이 집에 가서 보니 귀신이 나갔고 아이는 침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의 딸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가정의 평안이 임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겉으로는 믿음이 없어보일지라도 속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겉으로는 더러워보일지라도 속으로는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놀라게 하는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우리도 천국에 가서 내가 천국에 왔다는 사실에 놀라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 신뢰해야합니다. 개와 같은 자신을 발견하고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야합니다. 무엇보다 지혜롭게 주님의 부스러기 은혜를 구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마가복음 7장 강해 삼부 부스러기 은혜라도
말씀 마가복음 7장 24-마가복음 7장 30
요절 마가복음 7장 28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가복음 7장 강해 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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