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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가복음 5장 강해 3부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3,14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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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장 강해 3부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 마가복음 5장 35-마가복음 5장 43
요절 마가복음 5장 36절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1933년 미국은 대공황에 빠져있었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직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기도를 들으시고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셨습니다. 도중에 혈루병 앓는 여인을 치료하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여인의 소감까지 듣느라 시간을 지체했습니다. 그 사이에 야이로의 딸은 죽었습니다. 야이로의 마음에는 두려움이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이로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을 지속하였을 때 하나님은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부활의 주님이 죽은 자도 살리십니다.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하는 믿음으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어찌하여 선생을 괴롭게 하나이까)

35절을 보십시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예수님이 아직 말씀하실 때였습니다.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야이로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그들은 이미 딸은 죽었으니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가셔도 살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들의 말은 예수님이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된다고 예수님을 배려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그 말은 예수님께서도 죽은 자는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예수님에 대한 불신의 말입니다. 예수님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신으로 예수님을 괴롭히는 말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말을 해야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불신의 말은 예수님을 괴롭힙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야이로의 마음에는 딸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임하였습니다. 불신의 말을 들으면 마음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이제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밝고 은혜롭던 야이로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백지장처럼 하얗게 되었습니다. 눈동자가 커지고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고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습니다. 야이로는 새치기한 혈루병 여인과 지체하신 예수님께 대한 원망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은 묶여 있는 개 앞에서 고양이와 같은 것입니다. 고양이는 용기를 내어 짖어대는 개에게 다가갔고 개가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두려움은 이미 예수님에 의해서 머리를 상한 사단이 심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를 알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3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예수님은 그들이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들은체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가 두려워하지 말고 처음 가졌던 믿음을 지속하기를 원했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말을 통하여 야이로의 마음 속에 두려움을 심습니다. 사단은 두려움을 심어서 야이로에게 꼼짝달짝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어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을 견고하게 갖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칠 뿐 아니라 죽은 자도 살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믿기를 원하였습니다. 다른 일을 하지 못할지라도 믿는 일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서 최고의 일은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의 예수님을 믿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하셨을 뿐아니라 우리도 다시 살리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 26) 부활의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살아있는 자에게 사망권세를 몰아내주십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몰아내고 평안을 주십니다. 부활의 예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십니다. 최악의 조건 가운데서도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소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오직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믿기만 하면 나머지는 예수님이 책임을 지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은 예수님이지 야이로가 아닙니다. 야이로는 믿고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을 따라가면 됩니다. 믿음이란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이 일하시는 것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찌하든지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면 부활의 예수님이 살아계셔서 친히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우리가 사는 삶은 절벽을 암벽 등반하는 것과 같습니다. 항상 두려움의 연속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않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안전하게 걸어가게 하십니다. 아멘!

(두려워말고 믿기만 한 사람들)

성경에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믿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큰 민족을 이루리라는 말씀을 잡고 믿음을 출발했지만 실제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주님을 위해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났습니다. 외국에서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장막생활을 했습니다. 주님의 양을 치고자 물질도 희생했습니다. 믿음으로 살다가 사람들과 원수 관계도 맺었습니다.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한지 25년이 흘러도 하나님은 어떤 약속도 지켜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딸 자식하나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브람은 백세가 되어 생식 능력을 상실하고 죽은 것처럼 되었습니다. 사라는 구십세가 되어 경수가 마르고 죽은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처음에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두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약한 믿음을 강하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에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축복하사 100세에 믿음의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통해서 메시야를 보내시고 뭇별처럼 많은 자손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눈에는 아무 증거 아니 뵈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아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이 없어도 약속의 말씀만을 잡고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좋은 환경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믿음이란 어려운 상황에서 드러납니다. 어둠 속에 빛이 빛나듯이 어려운 환경이 될 때 믿음이 빛납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지 않았는데도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록 가난한 중에 있어도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록 질병가운데 있을지라도 건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록 양이 없을지라도 많은 양을 주실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오라비가 죽었습니다. 이제 썩어서 냄새가 나므로 더 이상 소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절망했습니다. 늦게 오신 예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가운데서도 믿음을 갖고 소망을 잃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의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마르다가 이미 시체가 썩어서 냄새난다고 하자 예수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가 부활의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무덤의 돌을 옮겼을 때 하나님은 썩어서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고 도전할 수 있습니다. 절망의 돌 의심의 돌 불신의 돌을 옮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기적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먼저 믿음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먼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고 돌을 옮겨놓으며 도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영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세 제자만 데리고 가신 예수님)

37-39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예수님은 수제자인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도 세제자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도 세제자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 중에 특별히 믿음있는 세제자만 오도록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 역사를 창조하는 것은 창조적인 소수입니다. 우리는 수제자를 양성하는데 힘을 써야합니다. 야이로의 집에 가셨을 때 사람들은 훤화하며 심히 떠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통곡하며 심히 울고 있었습니다. 야이로의 어머니 목소리가 가장 슬프게 들렸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우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함께 울어 주었습니다. 함께 울어주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는 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아이를 살리실 것을 믿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을 잔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은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잠은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웁니다. 잠자는 자들로 인해서는 울지 않습니다.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님들을 외국에 보낼 때 잠시 슬프지만 심히 울지는 않습니다. 다시 만날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죽음은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잠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을 때 잠시 이별로 인해 슬퍼할 수는 있지만 우리는 절망하고 두려워하고 통곡하지는 않습니다.

(비웃는 자들을 내보내신 후에)

4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예수님이 잔다고 말씀하시자 불신자들은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은 불신하는 자들을 다 내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수제자 세 명을 데리시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불신하는 자들이 있으면 일을 못하십니다. 기드온이 전쟁할 때 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자들을 돌려보냈습니다. 정욕에 무릎을 꿇는 자들도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는 삼백 용사로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사가랴가 불신의 말을 하였을 때 그를 벙어리로 만들어놓고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불신의 말을 하는 이십세 이상을 다 죽게 하신 후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기 위해서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소녀야 일어나라)

41,42절을 보십시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걸어다니며 말했습니다. "아, 잠 잘 잤다. 엄마 배 고파! 아침 줘." 사람들은 이를 보고 크게 놀라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주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마지막 날에도 죽은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죽음이 없고 잠만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많이 경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시고 자신을 자랑하지 않으십니다. 큰 일을 하고나서 사람들의 인기를 구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감추는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은 인류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공표할 때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배고프다고 하는 아이에게 저녁 식사로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었다가 깨어나면 새하늘과 새땅에 갈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 나무 실과를 주실 것입니다.

(결론-오직 믿음만이)

예수님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예수님은 죽음도 이기시는 부활의 권세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능력은 믿는 자만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마태복음 10장2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우리가 진정 부활과 생명의 주님을 두려워할 때 우리는 모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삼주에 걸쳐서 바이블아카데미를 하였습니다. 저는 바이블아카데미를 앞두고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잠을 자지 못하였습니다. 바이블아카데미를 섬길 일꾼이 없었습니다. 나는 너무 늙었습니다. 어떤 학생들도 오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기도하고 선교사들에게 기도부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놀라운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바쁜 중에도 이모세 목자님이 말씀을 섬겨주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한대로 의대생 3명이 참석하였습니다. 의대 일학년 김도헌 형제는 광고지를 보고 두 번 연속으로 참석하였습니다. 단대 신입생 가운데 신은철 형제가 참석하여 형제들과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매번 학생들이 7명이 참석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예수님을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때 지금도 일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마가복음 5장 강해 3부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 마가복음 5장 35-마가복음 5장 43
요절 마가복음 5장 36절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마가복음 5장 강해 3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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