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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가복음 5장 강해 일부 광인을 자유케 하신 예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3,90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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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5장 강해 일부 광인을 자유케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5장 1-마가복음 5장 20
요절 마가복음 5장 9절을 보십시오.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클린턴이 대통령 재임 시절에 4500명의 목사님들 앞에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서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내가 남을 용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내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원의원이 나를 탄핵했습니다. 탄핵해서 처음에는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 탄핵으로 인해서 나는 자유롭게 되었고 그래서 저는 그분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저는 온 몸에 휩싸이는 감사를 느낍니다. 내가 철저히 무너지지 않았다면 나는 100% 진실해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숨길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진정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아주 투명하게 아무것도 숨길 것이 없을 때 나는 참다운 자유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숨길 것이 없을 때 인간은 참다운 자유함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거라사 광인에게 빛 앞에서 모든 것을 드러내게 하셔서 참다운 자유함을 주십니다.

(가출한 광인)

1-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예수님께서 바다에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한 후에 거라사 지방(갈릴리에서 56킬로)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거라사인들의 지방이라고 나옵니다. 이곳은 로마의 10개 도시인 데가볼리 중의 하나로 이방 땅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에서 나오자마자 곧 머리가 헝클어지고 상처투성이요 발거벗은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서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무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집도 떠나고, 사회도 떠나고, 문화도 버렸습니다. 그는 가출을 했습니다. 대부분 가출하는 사람이 집안에서 부모님과의 갈등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모님들의 지나친 간섭으로 집에는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부부 싸움을 많이 하는 경우에도 가정이 싫어서 가출합니다. 가정이 행복하지 않은 것이지요. 아마 이 사람도 부모님은 공부해라 오락 좀 그만해라 일찍 일어나라 옳은 말씀을 반복하여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아니면 가정에서 사랑을 느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런 가정이 싫어서 자유를 찾아 사회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러나 사회도 그를 환영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가출한 학생들은 가장 먼저 물질 문제에 부딪힙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래서 가출한 후에 대부분 가장 먼저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자 합니다. 그도 가출한 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는 가정보다 더욱 살벌합니다. 사람들은 일을 밤 늦도록 시키고 돈은 조금 줍니다. 도시는 냉정하고 비정합니다. 돈이 없고 배운 것이 없는 그는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그가 살고 있는 도시는 군사도시였습니다. 군사도시는 전체적이 분위기가 음란하고 강포합니다. 더러운 음란 문화가 난무합니다. 깡패들이 많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그는 죄를 지었고 그에게 더러운 귀신이 들어갔습니다. 죄가 없는 곳에 귀신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는 귀신이 들어가자 옷도 벗어던지고 그는 가정을 떠나고 이제 사회도 떠났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싫어졌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그는 무덤이 편했습니다. 그의 내면이 무덤처럼 더러웠습니다. 현대인 가운데 pc방이나 원룸을 무덤처럼 편히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덤에서 사는 사람)

4,5절을 보십시오.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사회가 그 사람을 어떻게 도왔는지 나옵니다. 가정과 사회는 그를 쇠사슬에 묶어놓고 고랑에 채워놓고자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사회의 질서를 혼란케 한다고 생각하여 그를 차가운 고랑에 채우고 쇠사슬로 묶어 놓았습니다. 사회는 사람들을 법과 제도의 쇠사슬에 묶어놓고자 합니다. 약물의 고랑으로 묶어놓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5천 마리의 떼귀신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괴력을 발휘하여 고랑을 깨뜨리고 쇠사슬을 끊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은 묶을 수 있었으나 더러운 영은 묶을 수 없었습니다. 가정도 사회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도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식을 마음대로 제어하지 못합니다. 아니 자기가 자신을 제어하지도 못합니다. 목자도 요즘 양들을 제어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강한 세력이 양들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이렇게 제어가 되지 않는 사람이 비정상적인 사람입니다. 세포가 제어가 되지 않은 사람은 암이 걸린 사람입니다. 전에 TV에서 어린아이 배에 자란 머리만큼 큰 혹을 떼어내서 보여 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미움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정욕을 제어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혈기를 제어하지 못해서 일을 망칩니다. 부정적인 생각, 슬픔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보고 끼가 있다고 말을 합니다. 아니면 살이 끼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방황하게 내벼려 두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광인은 사회의 구속을 벗어나 이제는 아무도 없는 무덤으로 갔습니다. 유대인들의 무덤은 한국과 같은 곳도 있지만 다른 곳도 있습니다. 그곳은 석회석 동굴로 되어 있었는데 그곳을 무덤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곳은 시체 &#50026는 냄새가 나고 해골바가지가 뒹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무덤이 차라리 편해 무덤을 가정으로 사용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는 집의 간섭도 없었고 사회의 간섭도 없었습니다. 배가 고프면 돼지들이 먹는 꿀꿀이 죽을 돼지들과 함께 먹으며 배를 채웠습니다. 산에 있는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는 매우 자유로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에 진정한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는 욕구불만 때문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의 속에서는 열이 났습니다. 그는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속이 터질 것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데로 다 했지만 자신이 미워 자신을 돌로 짓찧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싫었습니다. 그는 자기파괴 경향성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고 자존감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 같았습니다. 그는 자신도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극에 달하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게 됩니다. 이런 것을 볼 때 그를 괴롭히는 것은 가정도 사회도 자신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뒤에 있는 귀신이었고 내면의 죄였습니다. 이렇게 귀신은 욕구불만에 시달리고 자신을 자학하게 합니다.

(예수님과 만남이 더욱 괴로운 광인)

6-8절을 보십시오.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예수님은 그를 보자마자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님은 그를 보았을 때 더러운 귀신이 그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의 문제의 원인이 가정도 아니고, 사회도 아니고, 바로 내면에 들어온 귀신이 문제인 것을 아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 자체가 문제로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 속에 들어온 귀신이 문제라고 생각하셨습니다. 귀신만 쫓아낸다면 그가 온전한 사람이 될 것을 아셨습니다. 컴퓨터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컴퓨터의 바이러스가 문제입니다. 바이러스를 퇴치해야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속에 있는 귀신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귀신 잡는 해병대라도 잡을 수 없습니다. 그 속에 있는 귀신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사람보다 더욱 지혜롭고 강합니다. 심리학이나 약물로 내어쫓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귀신보다 더욱 강하신 예수님만이 내어쫓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단보다 더욱 강하십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사단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그 후에 사단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고 사흘만에 부활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우편에서 마귀 세력을 쫓아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단의 심장을 꽂으셨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제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내면을 제어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강한 귀신이라도 제어하는 권세가 있으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이 사람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를 괴롭게 말라고 간구했습니다. 말씀이 역사하자 이 사람은 큰 괴로움이 생겼습니다. 마음 속에서 귀신과 말씀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괴로웠습니다. 소리 지르며 돌로 제몸을 &#52255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괴로움을 더욱 심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암이 걸리면 괴롭습니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합니다. 항암치료는 암으로 인해서 아픈 것보다 더욱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이런 괴로움을 겪어야 암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데도 이런 고통이 찾아옵니다. 이런 고통을 이겨야 귀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면 항암치료를 받는 것처럼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참고 견뎌야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2차적인 치료를 하셨습니다.

(죄와 귀신의 정체를 밝히신 예수님)

9절을 보십시오.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예수님은 괴로워하는 그에게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원래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신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을 떠나 귀신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귀신은 거짓말쟁이입니다. 귀신은 자신이 없는 것처럼 속입니다. 이는 간첩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자신의 정체를 속이는 것과 같습니다. 병원균이 우리 몸에 들어와 병원균을 속이는 것과 같습니다. 귀신이 그 사람을 괴롭히면서 그 원인을 가정과 사회에 돌립니다. 교회에 돌립니다. 환경과 조건이 문제라고 합니다. 이런 귀신을 쫓아내려면 정체를 밝혀야 합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정체를 밝히고자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왜 그에게 귀신이 들어갔습니까? 귀신은 반드시 죄가 있는 곳에 역사합니다. 그에게 들어간 귀신은 더러운 귀신입니다. 그에게는 더러운 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군대 귀신이 들어갔습니다. 그에게는 군대의 음란과 반항적인 죄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런 죄를 근거로 해서 귀신이 들어갔습니다. 우리에게도 귀신은 죄가 있을 때 들어갑니다. 특히 자매들이 성폭행을 당한 후에 자신은 잘못이 없는데 죄책감으로 자존심이 망가질 때 들어가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지나쳐 귀신이 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마음이 약하고 교만한 사람들도 귀신이 잘 들어갑니다. 귀신은 들어가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습니다. 이런 귀신은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야 다시 들어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시므로 그 사람의 죄를 드러내시고 죄사함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죄는 드러내야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숨은 것을 다 드러내십니다. 밝은 빛 앞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듯이 빛 되신 예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이 어둠의 세력인 귀신이 빛되신 예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비밀이 있다고 말합니다. 완전 범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고 만천하에 드러내십니다. 실제적으로 다윗은 밧세바를 불러서 은밀한 곳에서 죄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서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를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그의 죄를 드러내셨습니다. 다윗은 은밀한 곳에서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이 일을 다 드러내셨습니다. 실제로 다윗의 죄는 성경에 기록되어서 세계 모든 나라 사람에게 대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셔서 그의 이름이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데서 온 정욕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다윗의 죄를 만천하에 공개하셨습니까? 죄는 공개해서 죄사함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죄는 은밀함의 속성이 있습니다. 죄는 숨기는 속성이 있습니다. 죄는 숨기면 숨길수록 커집니다. 아픔이 있어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죄를 드러내야 합니다. 햇빛을 쬐면 그늘에서 자라는 병원균이 죽듯이 죄도 예수님의 빛 앞에서 공개하면 힘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죄를 드러내 회개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죄사함의 빛을 주시고 치료의 빛을 비추어 주셔서 죄지은 자들을 치료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네 속에 있는 귀신의 정체는 무엇이냐? 네 속에 숨은 죄는 무엇이냐? 고 물으십니다. 우리가 숨은 우리의 죄를 드러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솔직하게 예수님 앞에 자신을 드러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숨긴 것이 없이 드러내서 죄사함을 받아서 참 자유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돼지 떼를 희생시키신 예수님)

10-13절을 보십시오.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그는 예수님께 그 사람에게서 나갈 테니 제발 그 지방에서 내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했습니다. 그 지방이 귀신이 살기에 적합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귀신은 더럽고 음란한 곳에 살기를 원합니다. 귀신은 상처받은 사람이 많은 곳에 살기를 좋아합니다. 귀신은 말씀공부하고 찬송하고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 것을 싫어합니다. 귀신은 마침 그곳에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먹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돼지는 더러운 것을 먹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먹다 남은 찌꺼기를 돼지에게 줍니다. 제주도에서는 똥을 먹는 똥돼지가 있습니다. 또 돼지는 자기 똥을 &#45599고 그곳에서 뒹글기 때문에 온몸이 더럽습니다. 귀신은 이런 더러운 돼지가 좋았습니다. 귀신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고 이 사람의 죄를 회개하자 더 이상 그 사람에게서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돼지에게 들어가기를 원하는 귀신의 요구를 허락했습니다. 그러자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의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서 갈릴리 바다에서 몰사했습니다. 돼지는 수영을 하지 물에 빠진 돼지들은 모두가 맥주병처럼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불결을 제거합니다. 귀신을 그냥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희생을 요구합니다.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돼지를 희생하였지만 후에는 자신이 친히 십자가에서 희생하셨습니다. 돼지는 호수에 빠져 죽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이 깨끗하신 분이십니다. 돼지처럼 더러운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스스로 죄인처럼 되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해주시기 위해서 친히 더러운 사람처럼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친히 죽은 자가 되셨습니다. 돼지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볼 때 더 이상 돼지처럼 더럽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볼 때 우리의 죄가 얼마나 많은 대가를 요구하는지 알게 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나 알게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가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진정한 자유인이 된 사람)

14,15절을 보십시오.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귀신들린 자는 이제 온전하여져서 옷을 입었습니다. 그는 이제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습니다. 돌로 자신을 짓찍지도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헤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후에 보면 가정과 사회로 돌아가서 살게 됩니다. 그는 가정과 사회에서 사는 것이 참으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십니다. 자유란 무엇입니까? 소극적으로 보면 다른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보면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자신의 뜻대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담배를 피울 수도 있고 피울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자유입니다. 그러나 담배에 중독이 되어서 담배를 피우지 않고자 해도 담배를 피운다면 그는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술이나 겜이나 마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에 지배를 받아 원치 않게 이것을 따라 간다면 이는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은 원치 않았지만 탐욕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내가 원하는 선을 행하지 아니하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치 않는 정욕의 죄를 행하고, 자신이 원치 않게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자신이 원치 않게 거짓말을 행하고 자신이 원치 않게 사람을 두려워한다면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자유는 하나님이 주신 질서에서 마음에 자유를 누리고 평화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 교회 사회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그를 지배했을 때 그는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말씀이 우리를 지배할 때 참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왕이 될 때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유의 역설입니다. 우리가 참자유인이 되려면 우리는 예수님께 구속을 받아야 합니다. 물고기가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까? 물고기는 물에 구속을 받을 때 자유롭게 헤엄을 칠 수 있습니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면 자유가 아니라 죽음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떠나면 우리 인간은 끝이 나는 것입니다. 자유가 아니라 노예가 됩니다. 물질의 노예, 사람의 노예, 육신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때 참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교회와 가정과 직장과 사회가 자유롭게 느껴집니다.

(돈을 중시 여기는 거라사 사람들)

14-17절을 다시 보십시오.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사람들은 귀신들렸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진 것을 보았습니다. 돼지치던 자들은 몰려온 사람들에게 돼지가 어떻게 죽었고 귀신들린 자가 어떻게 온전하여 졌는가를 말해 주었습니다. 이를 듣고 그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그들에게서 떠나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들는 귀신들린 자가 온전하여 진 것보다도 돼지 죽은 것이 아까웠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희생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생명보다 돈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거라사 사회는 물질주의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

18-2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은 그들의 요청에 따라서 거라사지방을 떠났습니다. 거라사 지방에서 단 한 사람 귀신들렸던 사람만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청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허락지 아니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친속에게 고하라" 예수님은 그가 과거 가정과 사회와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치료받았으니 가정과 사회와 온전한 관계를 맺도록 도우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보낸 최초의 선교사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베푸신 예수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증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죄를 짓다가 귀신에 들였습니다. 예수님을 그를 불쌍히 여기사 고쳐주셨습니다. 그를 위해서 많은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는 그 크신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해야합니다. 예수님은 그가 사명을 감당하는 가운데 옛생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는 가정과 데가볼리에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증거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모두 놀랐습니다.

(결론-자유를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진정 자유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발가벗은 듯이 자신의 죄를 드러낼 때 우리는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을 믿고 진실하게 죄를 회개할 때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클린턴은 온 세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죄를 진실하게 회개하고 참자유를 누렸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에 온전히 매인 바 될 때 우리는 참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힘써 감당할 때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가복음 5장 강해 일부 광인을 자유케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5장 1-마가복음 5장 20
요절 마가복음 5장 9절을 보십시오.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마가복음 5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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