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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가복음 4장 강해 이부 풍성한 열매를 맺는 길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3,38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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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장 강해 이부 좋은 풍성한 열매를 맺는 길
말씀 마가복음 4장 13-마가복음 4장 20
요절 마가복음 4장 20절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음, 죄사함의 복음을 설명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듣고 무리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남아서 열두 제자와 더불어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무슨 뜻인가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친히 설명하여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해석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의 해석을 통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는 길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좋은 마음 밭이 되어 영생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말씀에 대한 바른 자세)

13절을 보십시오.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알지 못한다면 다른 비유는 더욱 알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모든 비유의 기초가 되는 매우 중요한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가르쳐주십니다. 우리는 말씀에 대한 자세를 바로 가져야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제자양성의 열매도 많이 맺을 수 있습니다. 로마 백부장 고넬료는 어부 베드로에게 말씀을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요, 무식했고 텁스룩한 수염이 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베드로를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절을 하며 맞이하였습니다. 그는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습니다. 베드로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말씀을 듣는 중에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그는 이방인 중에 최초로 성령 세례를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서 듣는 자세가 다릅니다. 대통령이 말하는 것과 청소부가 하는 말을 듣는 자세가 다릅니다. 대통령의 말은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기울여 듣고 그것을 메모해 놓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주일 말씀을 들을 때나 성경 공부를 할 때 천지를 창조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갖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씨와 같은 말씀의 역사)

14절을 보십시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친히 해석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해석해주시는 해석의 범위를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더 작아도 안 됩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말씀을 전하는 성경선생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의 역사라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와 같습니다. 봉선화씨에는 봉선화 꽃의 모든 유전자의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붕선화 꽃씨 속에는 봉선화 꽃의 색깔과 모양과 크기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하나님 나라의 모든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체험하는 모든 것은 환상이나 직통계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경 말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의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서 역사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해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의 역사라는 것을 가르치고 나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나오는 네 가지 밭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딱딱한 길가 마음밭)

15절을 보십시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농부가 뿌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가 먹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새가 사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지 않을 때 즉시 말씀을 빼앗아 갑니다. 길가와 같은 말씀을 가진 사람은 마음이 딱딱한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은 말씀을 들을 때 반응을 보입니다. 미안하면 쓴 웃음이라도 짓습니다. 그러나 길가밭 사람들은 돌부처처럼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상처가 있으면 피부가 굳어지듯이 상처가 있으면 마음이 딱딱해집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로 인한 상처로 인하여 마음이 딱딱해진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밟고 다니면 땅이 딱딱해집니다. 정보화 사회에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듣다보니 길가처럼 딱딱해진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딱딱합니다. 이성교제나 돈에 관심이 있고 말씀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마음이 딱딱합니다. 자기가 잘 났다고 생각하여 바로왕과 같이 마음이 교만한 사람도 마음이 딱딱합니다. 밭을 묵혀두면 딱딱해지듯이 오랫동안 말씀공부를 못해도 마음이 딱딱해집니다. 이들은 말씀을 들어도 감동도 느끼지 못합니다. 한 귀로 들어서 한귀로 흘려버립니다. 아니면 터널형처럼 그냥 말씀이 빠져 나가는 형입니다. 이들이 마음에 말씀을 영접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옆에서 지키고 있던 사단을 얼씨구나 좋구나 하며 말씀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이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네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고 하였습니다.(호세아 10:12)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회개의 영을 주사 좋은 토양을 주시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안양 센타 이기도 목자님은 마음이 딱딱해진 상태에서 이 말씀을 신년 말씀으로 전하는데 말씀을 읽자마자 마음이 찔려서 메시지를 전하는 내내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는 말씀의 은혜가 임하여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딱딱한 마음을 갈아 엎었습니다.

(돌밭 같은 감정적인 마음밭)

16,17절을 보십시오.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마음은 감정적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받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합니다. 어떤 때는 기뻐서 깔깔 웃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그 말씀이 왜 그런가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특히 TV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보면서 자란 영상 세대들은 생각하기를 &#49894어합니다. 감정적인 사람은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결단도 없습니다. 이들은 소감쓰기를 싫어합니다. 일대일 말씀공부만 하고 순종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말씀이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기쁨으로 말씀을 받으나 핍박이 오면 넘어집니다. 하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핍박을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다 보면 당연히 핍박이 있습니다. 핍박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친구나 가족들에게 따돌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시간의 손해를 볼 때도 있고 수양회에 가기 위해 돈을 쓸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돈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성적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감기에 걸릴 수도 있고 병이 날 수도 있습니다. 가정에 불화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린 사람이라면 이런 시련의 때에 더욱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뿌리가 없는 이들은 예수님 믿고 손해났다고 예수님 믿는 것을 포기해 버립니다. 그들은 즉시 예수님을 믿은 것처럼 즉시 예수님을 버립니다. 예수님은 핍박을 해에 비유하였습니다. 해는 식물의 탄소동화작용에 꼭 필요하듯이 핍박은 우리의 신앙성장에 꼭 필요한 필수요소입니다. 돌밭을 가진 사람은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소감을 쓰고 회개하고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다윗은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뿌리가 깊어서 가뭄에 마르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아서 꽃이 좋고 열매를 풍성하게 맺습니다.

(가시떨기같은 욕심이 많은 마음밭)

18,19절을 보십시오.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가시나무 밭을 가진 사람은 곡식과 함께 가시도 자랍니다. 이런 가시나무가 곡식의 기운을 막아버립니다. 가시나무는 뿌리도 빨리 내리고 깊이 내립니다. 이런 가시나무도 곡식이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합니다. 가시나무 밭에는 곡식이 성장하지 못합니다. 가시떨기 마음 밭을 가진 사람들은 어린 아이 신앙을 가져서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성숙하지 못하여 자신도 슬프고 다른 사람도 고통스럽게 합니다. 가시떨기 밭의 사람은 말씀을 듣고 깨달음이 있습니다. 말씀에 뿌리도 내렸습니다. 말씀에 기초한 인생관과 가치관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가시와 같은 세상의 가치관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어느 때는 말씀대로 살고, 어느 때는 세상 가치관대로 살아갑니다. 교회에서는 신자같은데 나가서는 불신자와 똑 같이 행동합니다. 세상과 하나님과 양다리 걸치며 살아갑니다. 이들은 하나님도 기쁘시게 하고자 하지만 세상에서도 만족을 구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핍박도 받지 않습니다. 이들은 세상적인 것에 의해서 많은 영적 에너지를 빼앗깁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지만 세상적인 돈도 사랑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재산도 잃고 아내도 잃고 사위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에너지를 빼앗아가는 세 가지 종류의 가시나무를 말씀하십니다.

(염려의 가시)

먼저 염려의 가시가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먹고 입고 마실 것인가 끊임없이 염려합니다. 시험을 잘 볼 수 있을까 염려하고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까 염려하고 군대를 잘 갈 수 있을까 염려합니다. 학생들은 고학년이 되면 취직 걱정, 결혼 걱정 때문에 눈에 힘이 없습니다. 직장인들은 자녀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이들을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하나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며 생존 경쟁에서 지는 것이 아닌가 염려합니다. 건강에 대해서 염려하고 노후에 대해서 염려하고 양들에 대해서 염려합니다. 이들의 얼굴은 근심이 가득차 있습니다. 이들은 독수리 오형제처럼 우주의 고뇌를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염려로 인하여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고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음으로 불신을 극복해야합니다. 그들은 하늘 나는 새를 보고 들판의 백합화를 바라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이 친히 입히시고 먹이시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염려하는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이 마음에 평안을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염려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재물에 대한 욕심의 가시)

다음으로 욕심의 가시가 있습니다. 욕심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싸우고 다투게 됩니다. 사람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얻지 못함으로 싸우고 다투게 됩니다. 우리는 욕심의 가시를 빼어내야 합니다. 우선은 세상적인 재물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좋은 집, 좀 더 좋은 차, 좀 더 좋은 옷을 입고자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안에서 감사가 없고 상대적 빈곤감에 시달립니다. 이런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많은 에너지를 빼앗아갑니다. 이들은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사도바울은 부하려 하는 자들에게 가시가 나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해야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으로 만족해야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아야합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8절에서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재물에 대한 욕심에서 자유할 수 있습니다.

(기타 욕심의 가시)

마지막으로 기타 욕심이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는 정욕과 안일욕에 빠지지 말아야합니다. 요즘은 중년 늙은이까지 정욕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의 종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큰 역사를 이루신 분이 정욕에 빠져서 얼굴에 똥칠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여자 친구 남자 친구로 인하여 스피릿을 빼앗깁니다. 마음에 파고드는 육신의 정욕을 타협하지 말고 철저히 잘라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살아야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좀더 편히 살고 싶은 안일욕이 있습니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습니다. 이들은 고난의 십자가를 받아야 합니다. 고난을 받아야 신앙이 성장합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명예욕이 있습니다. 우리는 거짓되고 교만한 죄인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우리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말씀을 듣는 마음밭)

20절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열매 맺는 비결은 단순합니다. 말씀을 듣고 받으면 됩니다. 첫째 이들은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본문에는 들으라는 말이 10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단지 귀를 기울여 듣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듣는 것은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같은 말씀을 듣더라도 어느날 문제의식이 있으면 갑자가 자신의 내면에 깨달음이 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씀을 깨닫습니까?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말씀을 깨닫는다고 하셨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겸손하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양회 때 말씀을 깨닫는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깊은 문제 의식이 있는 사람이 자연과학의 법칙도 깨닫듯이 깊은 문제의식을 갖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말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지만 뉴우튼만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주전자에서 물이 꿇는 것을 보았지만 스티븐슨만이 주전자에 증기가 나가는 것을 보고 증기기관의 원리를 깨달았습니다. 이들은 문제의식을 갖고 보고 들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문제의식을 갖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십니다. 저도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10여개의 말씀을 받았을 뿐입니다. 저는 십자가의 말씀을 두 번 깨달았는데 한번은 어떤 분이 나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를 해 주었을 때 책을 읽다가 깨달았습니다. 한번은 내가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귀에 들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 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귀에 들리게 됩니다.

(좋은 땅과 같은 말씀을 받는 자)

둘째 열매를 맺는자들은 말씀을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은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시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나의 사상, 나의 가치관으로 내면화 시킨 것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그런가 해서 날마다 상고합니다. 이런 자는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립니다. 말씀에 기초하여 말을 하고 말씀에 기초하여 행동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사람은 말씀에 대해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십일조를 낼 필요가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말씀에 순종해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십일조를 드리라는 말씀이 나오고 이를 순종해본 사람은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며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죽되 곧바로 열매 맺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곡식도 일 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습니다. 복숭아나 포도는 삼 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십오 년만에 열매를 맺었고 이삭은 이십 년만에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고 순종했으면 하나님의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런 자는 많은 열매가 맺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자)

결론적으로 또한 우리는 말씀을 받을 때 경외심을 갖고 들어야 말씀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메시지를 전할 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성경책을 읽을 때도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때 뒤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심으로 받아야합니다. 롯의 사위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롯의 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이삭은 흉년이 들어서 가나안 땅을 떠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땅 그랄에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이 순종하여 가나안 땅 그랄에 머물렀을 때 비록 다른 사람들은 기근이 들었을지라도 그 해에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을 받고 순종했을 때 당대에는 비록 이삭 하나뿐이 못 나았을지라도 후에는 하늘의 뭇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경외심을 갖고 말씀을 받아서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가복음 4장 강해 이부 풍성한 열매 맺는 길
마가복음 4장 13-마가복음 4장 20
요절 마가복음 4장 20절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마가복음 4장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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