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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가복음 4장 강해 6부 광풍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2 00:00:00
조회수 : 5,185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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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4장 강해 6부 광풍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4장 35-마가복음 4장 41
마가복음 4장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오늘 말씀은 광풍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제가 성지순례를 갔을 때 갈릴리 바다에서 선상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날 밤에 마침 비가 내리고 광풍이 불어왔습니다. 우리 배가 크기 때문에 뒤집히지 않았지 만약에 작은 배였다면 위태로웠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광풍을 만나면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다 나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두려움도 나쁜 두려움이 있고 좋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제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는 두려운 것이 없습니다. 뜨거운 물도 두려워하지 않고 잡아 다녀 엎어놓고, 뾰족한 칼도 잡아서 손을 베어버립니다. 두려움이 없으면 큰 사고가 납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워할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강아지는 범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합니다. 범이 오면 도망가고 숨어야지 범 앞에서 큰 소리 치다보면 죽음을 당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는 진정 두려워할 것은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이 가장 무서운 분임을 알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합니다. 잠언 기자는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거짓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광풍이 불 때 바람과 바다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광풍을 잔잔케 하는 사건을 통하여 바람과 바다보다도 예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엇보다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항해)

35,36절을 보십시오.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 예수님은 갈릴리 바닷가에서 배를 타시고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무리를 떠나서 말씀을 가르치시던 예수님을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노를 저어 건너편으로 갔습니다. 갈릴릴 북쪽에서 동쪽에 있는 거라사지방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의 배가 앞장 서고 다른 배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며 따라갔습니다. 제자들은 여러 배들이 따라 오자 마치 해군 함장이라도 된 듯이 기뻤을 것입니다.

(큰 광풍으로 인한 위기)

37절을 보십시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 갈릴리 바다 주위에는 야산이 병풍처럼 쳐저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해면보다 200m나 낮습니다. 북동쪽에는 골란 공원이 있고 북쪽에는 만년설이 덮인 헬몬산이 덮여 있습니다. 높은 헬몬산에서 찬바람이 불어오고 요단강 남쪽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면 두 바람이 만나서 가끔 광풍이 붑니다. 광풍은 말 그대로 미친 바람입니다. 바람이 질서를 잃는 것입니다. 큰 광풍이 불면 큰 물결이 일어나고 삽시간에 배에 물이 덮쳐오게 됩니다. 제자들은 이런 광풍을 만났습니다. 파도가 치고 물결이 배 위로 들어왔습니다. 제자들은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이런 광풍은 우리가 전혀 예기치 못하는 갑작스런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가는 엄청난 힘을 가진 것입니다. 광풍은 사납고 파괴적입니다. 광풍은 무섭습니다. 제자들은 큰 광풍으로 목숨을 잃을 위기를 맞았습니다.

(인생의 광풍들)

우리 인생길에도 이런 광풍이 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IMF의 광풍이 불어와서 실직을 하고 빚더미 위에 올라 앉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게 질병의 광풍이 불어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도 합니다. 최유성 한설 목자 가정에는 아들 예담이가 간혈관종으로 태어나 한 달을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세계 각곳에서는 IS의 테러로 많은 사람이 죽기도합니다. 일본과 같이 화산이 폭발하여 재산과 인명 피해를 당하기도 합니다. 아이티와 같이 지진이 일어나서 수십만의 사람이 죽기도합니다. 천안함 사고나 북한의 연평도 폭격이나 해적의 침입등으로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불구가 되거나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고 떠나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에 조류독감으로 난리입니다. 만약에 조류독감의 재앙이 온 세계에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이 돌 때와 같이 사람들은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일이 어느 날 남의 일이 아니고 나의 일로 다가옵니다. 이런 광풍이 왜 일어날까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광풍)

우리가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서 회개시키기 위해서 주시는 광풍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앗스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가기 위해서 배를 탔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바람이 일어나게 하시자 배가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선원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을 부르며 배의 물건을 던져도 바람은 잔잔하여 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배를 육지에 대고자 하여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결국 제비를 뽑아서 불순종한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하여졌습니다. 이 일을 본 선원들은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고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습니다.(요나서1장) 하나님은 요나를 사랑하여 이 광풍으로 요나를 순종의 사람으로 훈련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나의 죄가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 광풍이 불어올 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일부러 죄수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일행은 미항에 이르렀는데 바울은 선장에게 지금 항해하면 짐에 많은 손실과 생명의 위험이 있으니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장은 탐심으로 바울의 말을 무시하고 항해하다가 유라굴라라는 큰 광풍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 짐과 배의 기구를 다 버렸습니다. 그들은 14일 동안 먹지도 못하고 &#53381 고통을 겪었습니다. 한 사람 선장의 탐심으로 많은 사람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 사도 바울을 통하여 모두를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바울에게 이 광풍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광풍을 통하여 바울이 살아계신 예수님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죄를 지었을지라도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면 우리는 이 광풍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믿음으로 사는 자들도 광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욥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의로운을 인정하고 칭찬하였습니다. 사단은 이런 욥을 시기하여 광풍을 보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신뢰하여 욥에게 광풍을 허용하여주었습니다. 욥은 큰 부자이고 칠남 삼녀를 둔 다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욥은 하루 아침에 재산과 자녀를 다 잃었습니다. 그 다음 날에는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났습니다. 하나님은 왜 욥에게 이런 광풍을 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욥을 사랑하여 욥에게 정금과 같은 믿음의 연단을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론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용광로 속에서 금이 나오듯이 우리는 광풍의 용광로에서 믿음이 형성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에게 가장 귀한 믿음을 주시려고 광풍 훈련을 주십니다. 믿음은 무형의 재산입니다. 믿음은 돈보다 귀합니다. 믿음은 명예보다 귀합니다. 믿음은 사람보다 귀합니다. 물질이나 명예나 사람은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이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이런 귀한 믿음을 주시고자 광풍을 주시는 것입니다. 초대 성도들은 핍박이라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사도베드로는 그들에게 그들이 당하는 시련이 금보다 귀한 믿음의 연단을 가져오므로 크게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가장 귀한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시련을 주십니다. 저에게도 광풍이 불어 온 적이 있습니다. 천안에 와서 첫 번째 광풍은 한 선교사님의 양인 김 자매가 떠나고 그 선교사님이 충격을 받아 귀신이 들렸을 때입니다. 이때는 절대주권자를 믿는 믿음을 배웠습니다. 두번째 광풍은 가정의 갈등을 통하여 교회가 반쪽 났을 때입니다. 이때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배웠습니다. 세번째 광풍은 인턴 목자가 조현병에 걸린 것입니다. 이때는 예수님이 복음의 핵심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배웠습니다. 네번째는 나의 죄로 인하여 가정들이 이사가는 사건입니다. 이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무서운 분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쉽게 생기지 않습니다. 말씀을 공부해도 기도해도 잘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광풍 훈련을 통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믿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광풍을 통하여 나의 믿음을 연단시켜주셨습니다. 이를 볼 때 어떤 원인으로 광풍이 일어나더라도 그 광풍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요 사랑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광풍 중에 평안하신 예수님)

38a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 광풍이 불 때 예수님은 배 뒤편인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 믿음을 갖고 마음에 평안을 누리고 주무시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힘에 지나도록 역사를 섬기시느라 피곤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하루 종일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광풍을 자장가 삼아서 잠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잠은 마음이 평안할 때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풍 중에서도 마음이 평안하셨습니다. 잠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받는 선물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수님에게 단 잠을 주셨습니다. 사도베드로도 감옥에서 잠을 잤습니다. 천사가 자는 베드로를 깨우셨습니다. 요즘에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너무 피곤해도 잠을 못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염려와 불안에 시달려서 잠을 자지 못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분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맡기면 단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달리 생각해보면 이렇게 광풍이 불고 물결이 덮칠 때 예수님이 모르고 계셨을 리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서 지켜보고 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때로 우리의 믿음을 키워주시기 위해서 광풍 중에서 우리에게 무관심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물질 문제로 양들의 문제로 가정 문제로 마음이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직장문제로 건강 문제로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 말씀도 없으실 때가 있습니다. 이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내와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현실 문제 해결보다는 더 귀한 믿음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을 깨우는 제자들)

38b를 보십시오.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기도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이들의 기도 속에는 무심한 예수님께 대한 원망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들의 문제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없어서 주무시는가 원망합니다. 아니면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고 버려두시는가에 대한 원망입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버려두느냐고 탄식합니다. 그들의 내면에는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불평불만이 임했습니다. 그들은 서운함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본토친척 아비집도 떠나고 주님을 위해서 온 인생을 드리고 있는데 우리에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하며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우리도 평소 가까운 사람이 위기의 때에 도와주지 않으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원망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제자들 주위에는 여러 배가 따라 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한 배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죽으면 다른 배들도 침몰하고 예수님도 함께 죽습니다. 그들은 양들이 죽는 것이나 예수님이 죽는 것은 생각지 않고 자기들 죽는 것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공동 운명체입니다. 예수님이 안전하면 그들도 안전합니다. 예수님이 주무시면 그들도 함께 옆에서 잠을 자도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고난을 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와 계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것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합니다 힌편에서 보면 이렇게나마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우리는 원망의 마음이든 절망의 마음이든 그 마음으로 세상 향하여 나가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절망의 때에 술을 마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잊기 위해서 마약을 하고 수면제를 먹고 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남자의 자격에 나왔던 김성민 씨는 애인이 떠나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그는 괴로워서 필로폰 마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의 때에 예수님께 나가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가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십니다.

(바람을 꾸짖으신 예수님)

3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광풍 소리에도 깨지 않던 예수님이 제자들이 부르짖는 소리에 깨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도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일어나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귀신을 꾸짖으시면 귀신이 나갔습니다. 6000마리 떼귀신도 한 말씀으로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의 장모 열병을 꾸짖자 장모의 열병이 떠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바람까지 꾸짖으셨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바람과 바다를 지배하는 권세자임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은 세계의 정복자 나폴레옹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구라파와 러시아와 아시아까지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영국의 월링턴 장군이 이끄는 군대와 바다에서 만났을 때 그는 광풍을 만났습니다. 그도 광풍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도 광풍 앞에서는 무너지는 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광풍을 잔잔케 하시는 권능의 예수님이십니다. 말씀의 권세 앞에 자연의 세계가 순종합니다. 우리도 광풍을 만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꾸짖어야합니다.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광풍을 향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책망해야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질병을 그리고 사단을 꾸짖어야 합니다.

(제자들을 꾸짖으신 예수님)

40절을 보십시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서워한 것을 책망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yet가 있어서 아직도 무서워하느냐는 뜻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많은 병자를 고치신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도 예수님이 계신데 광풍 앞에서 아직도 무서워하느냐는 말입니다. 아직도 나를 믿지 못하느냐 책망하십니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은 엄청난 교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지 않고 한낱 인간적인 선생으로 보고 무시했습니다. 우리도 자신을 무시하면 화가 납니다. 대부분의 싸움은 자신을 무시하는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가장 화가 나는 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교만입니다. 아버지가 뒤에 계시는데 초등학교 아들이 앞에 있는 꼬마를 무서워하여 벌벌 떤다면 뒤에 계신 아버지가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 떨 때 우리의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겸손이란 무엇입니까?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보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사단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가장 먼저 온 것이 두려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 말을 이름은 너희에게 평안을 주려 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사랑과 능력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을 때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나무는 광풍을 만나면서 뿌리가 깊어지고 나무는 더욱 튼튼하게 자랍니다. 예수님은 이런 광풍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의 뿌리 깊은 나무로 키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심히 두려워하는 제자들)

4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그들은 이제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저가 누구이기에 하며 예수님의 인격에 대해서 놀랐습니다. 예수님을 창조주 하나님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제자들이 현실의 문제 해결에 급급해 하지 않고 예수님을 배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성장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배워야합니다. 예수님은 이론적으로 배울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생활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시련이나 역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 환난을 만날 때 끊임없이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처음 한 질문이 주여 누구십니까?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알고자 평생을 몸부림쳤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알고자 몸부림 쳤을때 그는 변화되었고 주님께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광풍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광풍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을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움직이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한마디 말씀으로 온 세계를 지배하는 권세자가 되십니다. 우리는 심히 두려우신 예수님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심히 두려워해야합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를 복주시는 분이 누구입니까?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높여야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자신을 멸시하는 자를 경멸히 여기십니다.

(결론 -세상이 두렵지 않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얻는 은혜는 무엇입니까? 거짓된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히 두려우신 하나님을 알면 세상 사람들이 두렵지 않습니다. 질병도 전쟁도 지진도 사고도 이별도 실패도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람이 두렵고 환경이 두려운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권세가 강합니다. 사람보다 힘이 셉니다. 그래서 사단의 역사를 보면 두렵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사단보다 더 강한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사단도 예수님의 허락 없이는 수족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두려워할 때 사단이 두렵지 않습니다. 실제로 요한웨슬리는 모라비안 교도들과 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광풍이 불어왔습니다. 광풍이 불자 요한웨슬리는 두려워서 얼굴이 백지장같이 하얗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체코의 모라비안 교도들은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를 보고 요한 웨슬리는 자신이 하나님이 누구인지 잘 몰랐음을 깨닫고 회개하고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을 지극히 두려우신 분이요. 모든 만물을 순종케 하시는 분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후 그는 감리교를 창설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안다면 어떤 광풍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줄 안다면 마음에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올해 일년 요절을 하나님을 알자는 말씀으로 잡았습니다. 제가 지난번 광풍을 통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무서우신 분인지 배웠습니다. 제가 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내 내면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알고 회개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을 더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가 올해는 하나님을 심히 두려워함으로 세상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이 친히 광풍을 잔잔케 하는 것을 체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가복음 4장 강해 6부 광풍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4장 35-마가복음 4장 41
마가복음 4장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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