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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태복음 22장 강해 삼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5-09-30 00:00:00
조회수 : 2,06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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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 강해 삼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말씀 마태복음 2223-마태복음 2233

요절 마태복음 2232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가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시고 새벽빛처럼 일정하게 임하여 주십니다.

오늘 말씀에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 나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가 살아있는 자가 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살아있고 말이 살아있고 우리의 삶이 살아있습니다. 우리 편에서는 우리가 살아 있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믿음을 가져야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

 

23절을 보십시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바리새인들은 현실을 떠나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사독의 후예들로 주로 제사장들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최고의결 기관인 산헤드린 구성원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헤롯당원처럼 현실적인 자들입니다. 이들은 헤롯당과 같이 세속주의자입니다. 이들은 현실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현실적인 영광을 취하고 부활도 영도 천사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현실에 만족하므로 부활이 필요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고 현재를 마음껏 즐기며 살고 싶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완패를 당하고 가자 이번에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공통적으로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예수님을 시기하여 예수님을 무너뜨리고자 하였습니다.

 

(수혼법)

 

24절을 보십시오.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사두개인들은 수혼법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하였습니다. 수혼법은 어떤 사람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하여 구원역사가 계승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 양자법과 유사한 제도입니다.

유다의 첫 번째 아들 엘은 다말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없이 죽자 그 동생 오난이 다말과 결혼합니다. 둘째인 오난도 자식이 없이 죽자 유다는 셋째인 셀라를 주어야하는데 셀라가 죽을까봐 주지 않습니다. 그는 결국 시아버지와 잠을 자서 아기를 낳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용인하고 그곳에서 메시야가 태어난 것은 수혼법에 근거한 것입니다.

룻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룻에게는 시동생도 없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 나오미는 내가 언제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그가 너의 남편이 되겠느냐고 말합니다.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행하던 하나님의 법이었습니다. 룻은 남편의 형제가 없자 가까운 친척 가운데서 배우자를 찾아 후손을 잇고자 합니다. 친척 가운데 첫 번째로 가까운 사람은 거절하고, 두 번째로 가까운 보아스가 룻의 남편이 됩니다. 여기서 다윗이 태어나고 메시야가 태어납니다. 이것도 수혼법에 의한 것입니다.

 

(부활이 없는 자들의 어두운 내면)

 

25-28절을 보십시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사두개인은 부활을 부정하기 위하여 한 이야기를 꾸며내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에는 그들의 관심과 가치관이 담겨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칠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장가들었는데 후사가 없이 죽었습니다. 둘째가 형수와 결혼하고 둘째도 죽고 그렇게 여섯이 죽어서 일곱이 모두 한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한 여자가 일곱 형제와 결혼하였습니다. 부활이 있다면 그 여자는 부활시에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고 묻습니다.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서 사두개인들이 만든 이야기입니다.

실제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세 명의 남편만 죽어도 넷째 남편은 여자에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이 꾸며낸 이야기에는 그들의 가치관과 관심이 반영되어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남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지만 그곳에는 자신들의 삶이 들어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만든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여자는 운명적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이들의 내면이 얼마나 운명적인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려서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중년에 돌아가시고, 손자는 늙어서 죽었습니다. 다시 살아나면 그들 가운데 누가 할아버지가 되나요?

그러나 그들은 이런 재미난 이야기보다 기구한 운명을 가진 여인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여인은 마치 남자를 잡아 먹는 귀신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그 가문은 남자들이 아기를 낳지 못하고 죽은 것을 보면 남자들은 다 결혼하자마자 죽었습니다. 그것도 차례로 죽는 운명적인 가정입니다. 그 부모는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그 아내는 얼마나 기가막히겠습니까? 사람들은 이 여자를 남자를 잡아먹는 여자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볼 때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의 내면은 슬프고 운명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부와 권세를 소유하였고, 공부도 많이 하여 박사 학위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내면은 늘 어둡고 부정적이고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며 슬프고 운명적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참된 희망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 내면에는 허무와 절망이 깊이 깔려 있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훌륭한 인간조건을 가졌다 할지라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근본적으로 허무와 운명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 사두개인들의 괌심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데 있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그들의 관심사입니다. 그들의 삶은 현세의 쾌락추구적 삶이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고매한 종교 지도자들처럼 행동했지만 내면은 육체적인 쾌락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장가 들고 시집 가는 일과 부부생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람이 영생에 대한 소망이 없고 사명이 없을 때 자연히 현실에 집착하게 되고 쾌락주의자가 됩니다(고전15:32).

 

(부활을 오해한 자들)

 

29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예수님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의 문제가 성경 말씀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는데서 나온 오해 문제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우리가 부활에 대해서 오해를 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성경을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성경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에 기초하여 부활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 분인지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변화)

 

30절을 보십시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부활 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습니다. 부활은 소생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우리의 몸은 썩고 약하고 욕된 몸입니다. 그러나 그날에는 썩지 않고 강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세계를 지금의 세계가 연장된 것으로 생각하여서는 안 됩니다. 마치 달나라에 가면 지구에서 통용되는 법이 통용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곳에는 중력이 다르므로 몸무게도 지구와 다릅니다. 우리의 몸으로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으로 이런 변화를 이루십니다. 그곳에는 결혼하고 부부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능력으로 새로운 부활의 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런 모습을 샘플로 보여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자유로우셨습니다. 새로운 차원의 몸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도 바로 부활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거듭나면 내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세계는 변화된 것이 없는데 내가 변화됩니다. 내가 사는 곳이 하나님 나라처럼 보입니다. 내 안에 성령의 강물이 흐르면 세계가 아름답게 보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예수님처럼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마음에 죽음의 요소인 두려움과 슬픔과 허무가 사라지게 됩니다. 뿐만아니라 부활을 믿는 자들은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부활이 있고 심판이 있고 영생과 영벌이 있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의 특징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31-32a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예수님은 이어서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출애굽기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백성들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나타났다고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이름은 영원히 기억할 칭호라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시대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죽은지 400년이 넘었지만 하나님과 함께 살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는 현재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지 나사로 이야기에서도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도 모세도 살리셨습니다. 엘리야와 모세는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수님 주위에 강도도 살리셨습니다. 죽어서도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그 후에 새로운 삶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믿은 하나님은 공통적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세 명의 조상에게 항상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로힘 곧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자와 같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100세에 이삭을 얻었습니다. 이삭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20년 만에 야곱과 에서를 낳았습니다. 이삭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흉년의 때에 백배의 축복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벧엘 서원을 드릴 때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며 그에게 많은 자손을 주실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약속대로 야곱의 후손 가운데서 이스라엘의 민족을 하늘의 뭇별처럼 많게 하셨습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서 출애굽역사를 이루셨습니다. 430년의 노예살이에서 구원하시고 40년 광야 생활 동안 200만 인구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죽은 자의 부활도 믿을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32b,3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예수님은 친히 그 말씀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운명적이고 슬픕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그들은 죽은 자가 됩니다. 죽은 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2038절에는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살리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 죽은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장막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을 때 생전에도 살아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들은 항상 불가능에 도전하여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살아서 사망권세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부활신앙을 가져야 하나님을 만난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려면 산 자가 되어야합니다. 부활신앙을 가져야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아브라함은 부활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이삭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숫양을 주셔서 준비하여 주셨습니다. 이삭은 부활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죽기까지 순종하였습니다. 야곱은 부활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잃을 것을 각오하고 베냐민을 애굽에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베냐민도 살고 요셉도 만나고 시므온도 만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하나님을 만나려면 부활신앙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하나님을 만나고자 매일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산자의 하나님을 믿자)

 

결론적으로 우리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죽은 후에 다시 부활할 삶을 소망하며 산자로서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아멘!

 

마태복음 22장 강해 삼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말씀 마태복음 2223-마태복음 2233

요절 마태복음 2232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22장 강해 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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