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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태복음 20장 강해 삼부 눈뜨기를 원하나이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06-22 00:00:00
조회수 : 2,93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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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장 강해 삼부 우리의 눈뜨기를 원하나이다.

말씀 마태복음 2029-마태복음 2034

요절 마태복음 20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구약에는 메시야가 오시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겠다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올라가는 도중에 두 명의 소경을 만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영적인 눈을 뜬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육적인 눈도 뜨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적으로 눈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하실 뿐 아니라 영적으로 눈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육적으로는 눈이 떴지만 영적으로 눈먼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인 눈을 떠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주님으로 보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떠서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주인으로 영접할 때 우리가 자유케 되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친히 우리 가운데 구원을 이루십니다.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29 3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예수님과 제자들이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맹인 두 사람이 길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눈을 뜰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은 그리스도입니다.(1:1 15:22,9:27) 그들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육적으로는 눈이 멀었지만 영적으로 눈을 뜬 자들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눈뜬 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알아보는 자들입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메시야가 오시면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신다고 나옵니다.(29:18, 35:5, 42:7, 18) 그들은 그리스도가 그들의 육적인 눈을 뜨게 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소리 질러 기도하였습니다. 사람들들 전혀 의식하지 않고 소리 질렀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그들은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자리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메시야의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불쌍히 여기사 메시야를 보내셨습니다.

메시야는 긍휼이 많으십니다. 우리는 메시야에게 긍휼을 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절박한 문제를 가지고 간절히 소리 질러 긍휼을 구할 수 있습니다. 양들의 변화를 위해서 긍휼을 구할 수 있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둔 자녀를 위해서 긍휼을 구할 수 있습니다.

 

(더욱 소리 지르는 사람들)

 

31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고 하였습니다. 특별히 제자들이 맹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전에 왕이 행차하면 앞서 가는 관리가 ! 왕이 납신다하면 모두가 땅에 납작 엎드려야 합니다. 입을 다물고 조용히 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으로 예루살렘에 가시는데 너희가 왜 시끄럽게 하여 경외심이 없느냐고 핀잔하였습니다.

소경은 부르짖어 기도하였지만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장애물에 그들의 기도를 포기치 않았습니다. 장애를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더욱 소리 지르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그들의 소원은 뜨거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고치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소원이 얼마나 강렬한가는 장애물을 만날 때 나타납니다. 장애물을 만날 때 뜨거운 소원이 있는 사람은 더욱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렇게 말씀에 기초하여 뜨거운 소원을 가진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뜨거운 소원이 있는 사람은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3“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부르짖어 기도해야합니다. 장애물이 있으면 더욱 부르짖어 기도해야합니다.

 

(기도의 장애물을 극복해야)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싫어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사단은 반드시 외적, 내적인 장애물로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기도하려면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졸립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끄럽고 소란하여 기도의 환경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기도의 내적인 장애물도 있습니다. 기도해도 안 된다는 불신이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기도시간에 손발을 움직여 일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기도하기보다 손발을 움직이려고 하는 교만도 장애물입니다. 기도시간에 딴 생각이 들게 합니다. 사단은 우리에게 기도 응답받는 것도 방해합니다. 응답이 더디 오게 합니다. 다니엘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즉시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방해하여 천사가 21일 후에에 도착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장애물을 극복하고 소리질러 기도해야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식 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장애물을 극복하고 기도하면 반드시 주님이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장애물을 극복하는 기도)

 

수로보니게 여인은 딸이 귀신들려서 주님께 나가서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예수님은 여인의 기도에 한 말씀도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계속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이방인이라 고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절하며 나를 도와달라고 다시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는 이스라엘 자녀의 떡을 취하여 이방인 개에게 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상아래 개들도 상에서 떨어지는 떡부스러기를 먹는다고하였습니다. 여자는 메시야의 사랑과 능력을 믿고 끝까지 믿음으로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믿음이 크다고 칭찬하시고 딸의 귀신을 쫓아내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포기치 말고 나가서 기도해야합니다.

천안 캠퍼스 제자양성을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가정과 교회에 하나님 나라가 오게 하기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의치약대를 중심으로 천안 캠퍼스 제자양성을 친히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가정교회를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아멘!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32-3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그들이 처음 부르짖을 때는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더욱 소리질러 부르짖을 때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믿음으로 부르짖은 소리를 들으시고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시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들이 눈뜨기를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분명한 소원을 고백하기를 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은 우리의 구체적인 소원을 주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그들은 소경으로서 눈을 뜨고자 하는 구체적인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소경들은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취업자리를 알선해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집을 한 채 사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을 시켜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가장 절박하고 근본적인 문제인 눈을 뜨기를 원했습니다. 눈을 뜨면 일할 수 있고 집을 살 수도 있고 결혼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에베소 성도들이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의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기업의 영광이 풍성한 것을 알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져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긍휼이 많은 분이십니다. 우리의 고통에 동참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시고 우리의 슬픔을 함께 슬퍼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를 섬겨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손으로 그들의 눈을 만지자 그들은 보게 되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눈을 어루만져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육신의 눈뿐 아니라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십니다.

 

(영적인 눈을 떠야합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눈을 떴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육적인 눈뿐 아니라 영적인 눈도 떴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육신의 눈을 떴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눈먼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불신과 교만의 죄로 인하여 영적인 눈이 멀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불신하면서도 그 불신이 죄인 것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소경인데 소경인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영적으로 눈을 뜨고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알아보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모두 눈을 떠서 예수님을 우리의 그리스도로 알아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영적인 눈을 뜰 수 있을까요?

 

(기도하면 눈이 떠짐)

 

아람 군대가 엘리사가 있는 성을 완전 포위하였습니다. 말과 많은 병거를 보내사 밤에 포위하였습니다. 사환은 적의 말과 병거를 보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환은 엘리사와 함께 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원하건데 그의 눈을 열어보게 하소서”(열왕기하 617) 기도하자 하나님은 그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고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게 됩니다. 지금 여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눈을 뜰 수 있음)

 

히브리서 11장 일절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 같이 하여 40년을 참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생깁니까? 우리의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생깁니다. 우리는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을 보아야합니다. 마태복음 2820에 보면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예수님은 예수님을 영접한 자와 영원토록 항상 함께 해주십니다.

요한복음 1416,17절에서도 함께 하심을 약속하셨습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하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사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성경에 약속하셨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기초로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실재하시는 것을 바라보면 됩니다.

 

(하나님을 볼 때 요동하지 않음)

 

다윗은 항상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도행전 225절입니다.“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윗의 우편에 계심으로 다윗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우리 앞에 항상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영적인 눈을 떠서 부활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항상 바라보아야합니다. 그분이 우리의 주인으로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것을 바라보아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파도를 잔잔케 하십니다.

이사야는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을 앞두고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110절입니다.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가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전쟁을 앞두고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5절입니다. “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므로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을 볼 때 죄를 짓지 않음)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죄를 짓지 않습니다. 잠언 166b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하나님이 보시는데 감히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어떤 목회자 수양회를 하는데 강사 목사님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산에 잠깐 산책 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목회자가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강사 목사님을 만나자 깜짝 놀라서 담배를 감추었습니다. 그는 강사목사는 안 보지만 하나님이 그를 보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다윗이 간음과 살인을 하였습니다. 그는 그 순간 그를 보시고 계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윗의 간음과 살인이 문제가 아니라 그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멸시한 것이 더 큰 죄입니다.

한 늙은 목회자가 중년 목회자를 회칼로 찌른 것이 신문방송에 보도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의 본질은 이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늙은 목사가 물질적인 비리가 많이 있었습니다. 중년 목사가 그것을 덮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늙은 목사는 중년 목사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중년 목사가 그 비리를 총회에 고발하였습니다. 그러자 늙은 목회자가 찾아가 자신의 무죄를 말해 달라고 한 시간 이상 설득하였습니다. 중년 목사가 못한다고 하자 준비해 간 칼로 늙은 목사는 중년 목사를 찌른 것입니다. 그리고 늙은 목사는 자해하였습니다. 너 죽고 나 죽자가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뉴스를 듣고 어떻게 목회자가 그럴 수 있느냐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그들의 도덕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계시고 실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것입니다.

 

(눈뜨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많은 부분 윤리를 강조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의 본질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면 죄를 짓지 않습니다. 예배에 일찍오라고 하지 않아도 일찍 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을 믿을 때 내가 직접 원수를 갚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도덕적인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눈뜨기를 기도해야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영적인 눈을 떠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면 많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미 예수님은 이땅에 오셨다 가셨습니다.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령으로 이 곳에 와계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영적인 눈을 떠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태복음 20장 강해 삼부 우리의 눈뜨기를 원하나이다.

말씀 마태복음 2029-마태복음 2034

요절 마태복음 2033 이르되 주여 우리의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마태복음 20장 강해 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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