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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태복음 21장 강해 일부 찬양받기에 합당한 예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11-30 00:00:00
조회수 : 3,71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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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강해 일부 찬양받기에 합당한 예수님

말씀 마태복음 211-마태복음 2111

요절 마태복음 219절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몸으로 이 유대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히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구원하실 하나님으로 알아보고 뜨겁게 찬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찬양을 받으시고 인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여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찬양할 때 주님은 기뻐받으시고 친히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가 이 시간 마음껏 주님을 찬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

 

1-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약 이킬로 떨어진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습니다. 감람산은 해발 약 800m에 위치한 산으로서 예루살렘성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며 왕으로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준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위해서 나귀를 준비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솔로몬처럼 나귀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맞은 편 마을에 나귀와 나귀새끼가 있는 것을 가보지 않으시고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둘을 보내서 맞은 편 마을에서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도둑질을 명령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남의 나귀를 그냥 끌고 오라는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3절을 보십시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나귀와 새끼를 끌고오면 주인은 물을 것입니다. “왜 남의 나귀를 끌고 가는 거요?” 예수님은 주인이 그렇게 물으면 제자들은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십니다.” 라고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주인은 즉시 보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 풀어주십니다. 우리의 질병에서 물질에서 사람에게서 우리를 풀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주인의 마음도 준비시켜놓으십니다. 주인이 나귀를 기쁨으로 내어놓도록 감동시키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주님이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나귀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나귀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나귀 주인은 하나님이 잠시 위탁하신 청지기입니다. 집주인인 전세인에게 때가 되면 방을 돌려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세 살던 사람은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주인에게 나귀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나귀뿐 아닙니다. 나귀 주인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귀 주인도 만드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귀 주인의 마음까지 주관하십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주님께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억지로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게 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과 재산과 시간도 다 주님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염려합니다. 그것은 내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죄는 내가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모든 것을 주인 되신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께 맡기면 염려와 걱정이 사라집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은 주님이 쓰시겠다고 원하시면 주님께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께 드리면 피해의식이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내 소유는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삶에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소유관념을 배워왔습니다. 남의 것을 것을 손대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내것을 빼앗기자 말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소유관념을 새롭게 배워야합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야합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천국으로 부르시면 언제든지 예! 하고 달려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몸은 예수님의 피값으로 산 몸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내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피해의식을 느끼지 말고 오히려 영광스러워해야 합니다. 나귀는 주님께 쓰임 받음으로 영광스러운 나귀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누구에게 쓰임받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든지 죄에게 쓰임 받습니다. 우리가 죄에게 쓰임 받지 않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은 큰 영광입니다. 큰 자랑입니다. 우리의 시간 물질을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면 기쁨으로 내어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총리나 장관으로 대통령에게 부름받아 쓰임 받는 것도 영광인데 창조주 주님이 나를 사용하신다면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께 쓰임 받으면 주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십니다.

 

(겸손의 왕)

 

4.5절을 보십시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마태는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의미를 전합니다. 그것은 500년 전에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스가랴는 99절에서 메시야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이 시내산에 오실 때 불로서 임하십니다. 빽빽한 구름이 임재합니다. 번개가 치고 땅이 진동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면 죽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모세로부터 1500년이 지난 후 하나님이 이 땅에 가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대부분의 세상 왕은 백마나 흑토마를 타고 입성합니다. 총칼로 무장한 많은 경호원의 호의를 받으며 입성합니다. 그들은 왕으로 군림하여 마음대로 권세를 부립니다.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선거운동할 때 유권자에게 절을 하며 머슴처럼 섬기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당선되고 나면 태도가 돌변하여 군림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지만 겸손하게 나귀새끼를 타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러 오신 왕입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여 나귀의 아비나 엄마도 타지 않으셨습니다.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타십니다. 자신이 십자가의 멍에를 메시고 우리를 멍에에서 자유롭게 하십니다. 겸손하여 예수님은 나귀새끼까지 낮아지십니다. 작은 데까지 낮아지십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온유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왕은 사납고 잔인하고 무섭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겸손하고 온유하고 성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밀한 친구가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총장이 양성 평등 상담소 사무실에 삼 초 왔다 가는데 사무실 사람들은 세 시간 동안 청소하고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겸손한 모습으로 오셔서 부담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런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무시하였습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부모의 모습으로, 자녀의 모습으로, 목자의 모습으로, 양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 교회같이 가정집과 같은 작은 교회를 통해서 오십니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하나님과 친밀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담없이 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겸손하게 오시니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만히 보기 쉽습니다. 우리는 겸손히 오시는 하나님을 부담감은 느끼지 않지만 경외심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믿음을 크게 축복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순종한 제자들)

 

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고 말씀하였을 때 예수님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도둑이 되라고 하시나요? 하나님도 성경에 도둑질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이 어기시면 어떡하나요? 라고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나귀 주인의 마음까지도 준비시켜 놓으신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절대로 도둑질 시키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영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나귀와 나귀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주인이 왜 끌고 가냐고 하였을 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주님이 쓰시겠다고 합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순순히 나귀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들이 순종하였을 때 나귀 주인이 정말 순순히 보내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를 통하여 예수님이 창조주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귀의 주인이요 나귀 주인의 주인임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존경하였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제자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위에 얹었습니다. 예수님은 겉옷을 안장으로 하여 그 위에 타셨습니다.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폈습니다.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폈습니다. 그들은 최대한 예수님께 존경심을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시고 겉옷과 나뭇가지 위를 걸어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앞에서 가고 뒤에서 가는 사람들이 소리 높여 찬송하였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축제 분위기로 가득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불렀습니다.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하였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고 예수님을 찬송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오시는 분으로 찬송하였습니다. 가장 높은 곳은 하나님의 보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고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들은 나귀새끼 타신 예수님을 창조주로 영접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므로 찬양받기에 합당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들을 로마에서 구원해주실 분으로 예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죄와 사망권세에서 구원하시는 분으로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경제나 정치 문제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죄와 사망에서 온 것입니다. 진정한 구원은 정치적인 독립이 아니라 죄와 사망에서 해방 받는 것입니다. 구원자는 우리를 죄사함을 주시고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우리를 새로운 사람,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구원자는 우리를 치료하시고 참 안식을 주십니다. 그들은 진정한 구원자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앞으로 구원해주실 것을 믿고 예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찬양을 받으신 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들의 진정한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자일뿐 아니라 구원자로 그들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끊임없이 문제투성입니다. 우리는 이런 문제에서 구원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 받기 전에 예수님이 구원해주실 것을 믿고 찬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고 또 구원을 이루십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옷을 벗기고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쇠사슬이 벗어지고 옥문이 열리게 하셔서 바울과 실라를 구원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나 많은 죄수와 옥을 지키는 간수가 구원받게 일하셨습니다.

남유다의 여호사밧왕은 모압과 암몬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여호사밧은 그 전쟁을 아주 이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찬양대에게 성가대옷을 입혀 군인들 앞세워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찬양이 시작될 때에 구원을 이루셨습니다.(역대하 2021,22,23) 그렇습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을 찬양해야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찬양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 주님이 친히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로 보았습니다)

 

10 1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자 온 성이 소동하였습니다. 이는 누구냐? 하며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선지자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아직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출생지에 따라서 선지자 나사렛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인간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인간적으로 보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하다고 배운 것이 적다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인간적으로 보고 적다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일하실 수 없습니다.

 

(결론 찬양 받기에 합당한 예수님)

 

예수님은 나귀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다. 나귀 주인이 나귀를 보낼 것도 아십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시고 우리의 마음 속에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의 교회에 찾아오셨습니다. 겸손히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보고 찬양해야 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찬양을 드려야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나귀 타고 오신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는 구름을 타고 천군 천사를 대동하고 큰 영광 중에 오실 것입니다. 나귀 타고 오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들이 그날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나귀 타고 오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찬양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태복음 21장 강해 일부 찬양받기에 합당한 예수님

말씀 마태복음 211-마태복음 2111

요절 마태복음 219절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태복음 21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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