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태복음 18장 강해 3부 용서의 원리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11-17 00:00:00
조회수 : 4,488

문제지풀이(2)

    icon1.hwp  (14.50KB)

    icon2.hwp  (17.00KB)

마태복음 18장 강해 삼부 용서의 원리 255

말씀 마태복음 1821-마태복음 1835

요절 마태복음 1835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우리의 죄문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죄는 하나님께 피해를 주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죄로 인하여 고통합니다. 죄로 인하여 사람들과 관계성이 깨어집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죄를 용서하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받았습니다. 용서 받은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도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면 하나님도 우리의 죄 용서하신 것을 취소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마음으로 용서하는 것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무한한 하나님의 용서)

 

21,22절을 보십시오.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베드로는 죄를 회개하면 일곱 번 용서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하였습니다. 나에게 고통과 아픔을 주었습니다 용서하지 않은 사람은 피해를 준 사람에게 미움과 분노가 있습니다. 반면에 용서한 사람은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잘못하면 나 자신을 위해서도 용서해야 합니다.

당시의 유대교 랍비들은 세 번까지 용서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께 칭찬을 받기 위해서 일곱 번까지 용서하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는 랍비들보다 마음이 넓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7번까지 용서하겠다는 자기 의가 있었습니다. 몇 번까지 심방하는가 몇 년까지 기다려야하는가 하는가 하면 양들을 돌볼 수 없습니다.

이런 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충격적입니다.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무한히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회개하였을 때 아홉 번이나 반복하여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조금 회개하는 기미만 보이면 용서하십니다. 그가 반복하여 죄를 지을 것을 알면서도 용서하여주셨습니다.

아합왕은 북한의 김정은 같이 악한 왕입니다. 그는 바알과 아세라 신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종을 죽인 자입니다. 나봇을 죽이고 그 포도원을 빼앗은 자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보내사 아합에게 속한 자는 개들이 먹고 새들이 먹을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합의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아합은 책망을 듣고 옷을 찢고 금식하고 베로 허리를 동이고 회개하였습니다. 풀이 죽어다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왕상 21:29)

저는 예전에 이 말씀을 보며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마음이 약하신가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지금 용서의 말씀을 보니 정말 하나님은 회개한 자에게 마음이 약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한없이 마음이 약하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었을지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은 무한합니다.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기 위해서 어떤 희생도 감수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용서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입니까? 우리는 끊임없이 용서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회개해야합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이해)

 

예수님이 일흔번씩 일곱 번씩 용서하라고 하신데서 우리는 예수님의 인간관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무한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17:9) 하나님은 인간이 완전 부패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십니다. 내가 완전 부패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면 자기의가 없습니다. 절망도 없어집니다. 은혜로 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마치 운전을 잘못하여서 여기저기 찌그러진 차와 같습니다. 이런 차를 끌고 다니면 또 긁힐까봐 걱정하지 않습니다. 잘 글러가는 것으로 감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찌그러진 차를 끌고 다니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운전을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면 찌그러진 차를 새 차로 만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의로워질 수 있다고 소망을 두십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아무 죄없다고 하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이것이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성경에는 회개하고 개과천선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로 두 번이나 속인자요. 첩을 얻은 자입니다. 다윗은 살인과 간음을 한 자입니다. 유다지파의 조상 유다는 며느리와 간음한 자입니다. 성경에 한 명 제대로 된 사람이 없습니다. 의인이라는 노아는 술먹고 발가벗고 아들을 저주한 자입니다. 욥은 병이 들자 하나님을 원망한 자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다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이들을 거룩한 자로 변화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용서하신 하나님)

 

23-2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하니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예수님은 한 비유를 통하여 마음으로 용서해 주어야함을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일만달란트 빚졌습니다. 일만 달란트는 6000만 데나리온입니다. 우리 돈으로 약 6조원으로 그는 빚을 갚을 수 없었습니다. 매장이 500개 정도 되는 홈플러스가 7조 이천 억에 매각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는 모든 홈플러서 다 팔아야 갚을 수 있는 돈입니다. 그는 16만 년을 일을 해서 갚아야합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종이 되어 몸으로 떼워야 합니다. 주인은 죄의 대가가 얼마나 큰가를 가르쳤습니다. 빚진 자는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았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아내와 자식들도 다 종이 되어야 하였습니다. 죄는 엄청난 대가를 요구합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가야 합니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야합니다.

종은 빚을 진 죄를 뉘우쳤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가서 잘못을 인정하고 참아주시면 다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사실은 다 갚을 수 없습니다. 그는 죄값을 갚는 자세로 회개하며 살겠다고 한 것입니다. 주인은 종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주인은 죄인에 대해서 사랑이 불타오릅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불타오르시는 분이십니다. 주인은 회개하는 마음을 받으셨습니다. 그가 빚을 갚을 능력이 없음을 아셨습니다. 주인은 종의 빚을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탕감했다는 것을 완불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값을 십자가에서 완불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며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다 완불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은 그 사람의 죄에 대한 대가를 대신 치러주셨습니다. 500개의 매장을 가진 홈플러스를 그냥 준 것과 같습니다. 종은 빚을 탕감받고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는 기뻐서 껑충껑충 뛰었습니다. 이처럼 죄를 용서받은 것은 큰 기쁨입니다. 그는 이제 빚을 갚아주신 주인에게 감사하며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빚을지지 않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주인이 자신을 긍휼히 여겨준 것처럼 이제는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겨주며 살아야합니다.

여기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종은 죄사함을 받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는 일만 달란트입니다. 16만년을 일해서 갚아야 하는 큰 죄입니다. 우리는 죄의 빚으로 지옥에 갈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머리털보다 더 많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감당하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선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감사하며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살아야합니다.

마태 자신이 세리로서 하나님께 많은 빚을 진자였습니다. 그는 지옥에 가서 영원히 불에 타 죽을 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긍휼을 베풀어서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를 열두제자로 삼아주셨습니다. 마태는 이런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성령의 힘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살았습니다.

 

(무자비한 인간)

 

28-30절을 보십시오.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그 종이 기뻐서 나갈 때 그는 자신에게 백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났습니다. 그 빚은 일만 달란트 빚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60만대 일의 비율입니다. 그는 백데나리온 빚진 동료의 목을 잡았습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그가 친구의 목을 잡고 조였다고 되어있습니다.

동료는 종이 주인에게 한 말과 같이 내게 참으소서 갚으리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동료는 마음으로 죄를 뉘우치고 새 삶을 살고자 하였습니다. 종은 빚진 자가 이렇게 사정하여도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60만원을 주었는데 일원을 상대방에게 주지 않는 겪입니다. 60억 원을 용서받았는데 만원을 용서해주지 않는 격입니다. 그는 주인의 용서를 생각하고 동료에게 그 빚을 탕감해주어야 했습니다. 주인이 용서하신 뜻도 서로 빚을 탕감해주기를 원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의 사랑을 져버렸습니다. 자신이 임금의 위치에 섰습니다. 그를 빚을 갚도록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는 인정사정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민감하였습니다. 그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습니다. 그는 용서받은 것에 대해서 잊었습니다. 그는 빚진 자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자신도 똑같은 죄인인 것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용서치 않는 자를 아신다)

 

“31 그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겨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알리니

 

동료들이 이를 보고 몹시 딱하게 여겼습니다. 동료들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주인에게 아뢰었습니다. 주인은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을 다 들었습니다. 일만달란트를 용서받은 사람이 백데리온을 용서하지 않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을 때 그것은 하나님 귀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용서치 않는 우리의 마음을 아십니다.

 

(용서를 취소하신 하나님)

 

32-34절을 보십시오.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주인은 용서치 않은 자를 악한 종이라고 말합니다. 주인은 그가 뉘우치는 것을 보고 빚을 다 탕감하여 주신 은혜를 져버렸다고 합니다. 그는 불쌍히 여기는 주인의 마음이 없었습니다. 종은 주인이 불쌍히 여김과 같이 동료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노하여 악한 종이 빚을 다 갚도록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미 탕감하였던 빚을 취소하였습니다. 그가 동료를 옥에 가둔 것같이 주인은 종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여기서 동료는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지은 죄는 백데리온처럼 작은 죄입니다. 60만분의 일뿐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이들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합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의 용서를 취소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옥에 갇히는 것입니다. 나의 미움이 나를 감옥에 가둡니다. 분노가 병을 만듭니다. 우리의 분노가 우리를 지옥에 가게 합니다.

 

(형들을 용서한 요셉)

 

우리가 용서를 하지만 회개를 선포하는 것에는 신중해야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것을 기억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죄악을 용서하였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기까지 오래참고 기다렸습니다. 회개하기까지는 형들을 간첩으로 몰고 도둑으로 몰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대한 용서를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회개시키기 위해서 많은 마음 고생을 하였습니다. 골방에 들어가 울기도 여러 번 하였습니다. 그는 용서하였지만 곧바로 용서를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형제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변화되었을 때 용서를 선포하였습니다. 상대방이 회개할 때 용서를 선포하는 사랑이 거룩한 사랑이요. 값비싼 사랑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자에게 용서를 선포하면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용서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릅니다.

북한은 우리나라를 여러 차례 공격하였습니다. 북한은 연평도를 공격하고 서해해상에서 공격하고 아옹산에서 장관들을 죽이고 칼기를 폭파시켰습니다. 그런데 역대 정부들은 이런 북한의 잘못을 알고도 그냥 용서하여주었습니다. 돈을 많이 퍼주었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으레 그래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였습니다. 오히려 그 돈으로 원폭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정부는 이번에 지뢰 폭발사건을 통하여 그들의 사과를 받아냈습니다. 준전시 상황을 선포하는 중에서도 무박 삼일간 회담을 통하여 그들이 유감이라고 표현하는 말을 받아냈습니다 그들이 이전과 같이 또 그런 잘못을 우리에게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상대방이 회개하거든 우리는 용서를 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용서해야하는 이유)

 

3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마음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 아버지도 이와 같이 하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내게 지은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예수님도 이미 용서하신 것을 취소하십니다. 우리가 용서받은 것에 비하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행한 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산술적으로는 60만분의 일이지만 실제는 무한대에 비해 한 자릿수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할 때 어떤 죄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자신을 돌로 치는 자들을 용서할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도 용서해야 하지만 우리의 죄도 용서해야합니다. 우리는 말로만 용서하여서는 안 됩니다. 마음으로 용서하여야 합니다.

용서는 다시는 기억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에 괴롭게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떠난 사람들입니다. 내가 실패한 과거가 나를 답답하게 합니다. 이런 기억이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나를 감옥에 가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죄와 불법을 하나님이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잠을 자고 있을 때 이 말씀이 나의 마음에 기쁨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과 나의 실패한 과거가 지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용서해줄 때 그 사람은 변화되고 이 사회도 변화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죄를 기억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죄를 다 기억하면 참으로 나는 구제불능입니다. 죄를 다 생각만 해도 구토증이 날 것입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해도 부족했습니다. 나도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않고 살겠습니다. 아멘!

 

(3F)

 

기독교의 용서에 3F 가 있습니다. “Forgiven, Forgotten Forever"- 용서받았다. 잊혀졌다. 영원히- 우리가 이렇게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를 용서할 때 ”Forgive, Forget Forever"- 용서하라, 그리고 잊어라, 영원히- 하는 같은 원리로 용서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용서해야합니다. 마음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마음으로 용서하다는 말은 상대방의 잘못을 기억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항상 상대방을 소망 가운데 영접하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마음에 한맺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아직 상대방을 중심으로 용서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용서하면 공의는 어떻게 되나 하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수를 갚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용서해야합니다. 우리에게 용서하는 사랑이 충만키를 기도합니다. 용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내 영혼을 살찌게 하고 교회를 살찌게 하며 성도간의 교제에 깊은 사랑과 신뢰를 더해줍니다.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는 것- 이것은 하나님이 교회에서 주신 사랑의 법입니다. 우리가 받은바 은혜를 기억하고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아멘!

마태복음 18장 강해 삼부 용서의 원리 255

말씀 마태복음 1821-마태복음 1835

요절 마태복음 1835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태복음 18장 강해 삼부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58 [마태복음] 마태복음 20장 강해 이부 종의 리더십 오요한 2008-11-23
57 [마태복음] 마태복음 20장 강해 일부 포도원 품꾼의 은혜 오요한 2008-11-23
56 [마태복음] 마태복음 19장 강해 4부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오요한 2008-11-23
55 [마태복음] 마태복음 19장 강해 3부 영생을 얻는 길 오요한 2008-11-20
54 [마태복음] 마태복음 19장 강해 일이부 결혼의 진리 오요한 2008-11-17
53 [마태복음] 마태복음 18장 강해 3부 용서의 원리 오요한 2008-11-17
52 [마태복음] 마태복음 18장 강해 이부 교회에서 죄문제 처리 오요한 2008-11-17
51 [마태복음] 마태복음 18장 강해 1부 천국에서 큰 자 오요한 2008-11-17
50 [마태복음] 마태복음 17장 강해 3부 기도와 금식외에는 오요한 2008-11-17
49 [마태복음] 바태복음 17장 강해 일이부 왕권을 가지고 오실 예수님 오요한 2008-11-17
1 2 3 4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