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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태복음 18장 강해 1부 천국에서 큰 자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11-17 00:00:00
조회수 : 3,664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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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8장 강해 1부 천국에서 큰 자

말씀 마태복음 181-마태복음 1810

요절 마태복음 181절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천국이란 어떤 곳입니까? 제자들이 생각하는 천국은 다윗왕국과 같은 나라입니다. 독립이스라엘 왕국이 이루어지고 강대국이 되는 나라입니다. 제자들이 꿈꾸는 하나님 나라는 위계질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다윗과 같은 왕국을 세울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나라에서 총리가 되고 장관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큰 자리를 차지 하고자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우리 마음 속에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서 성령이 다스리는 자유와 평안과 기쁨의 나라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체험하는 나라입니다. 죽은 후에 새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 가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천국을 이 세상에서 누리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천국에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는가? 천국에서 큰 자는 어떤 자인가 말씀하십니다. 아멘!

 

(큰 자가 되고자하는 제자들)

 

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후에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왕권을 갖고 오는 것을 보는 자들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16:28)

그 말씀을 하신 후에 예수님이 세 명의 제자만 데리고 변화산에 가셔서 예수님이 왕권을 갖고 재림하시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지장 메시야 왕국에 서열 경쟁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보기에 분명히 베드로가 가장 큰 자 같았습니다.

수제자 그룹에 있는 요한과 야고보는 연합작전을 썼습니다. 그들은 형제이므로 서로 힘을 합하여 베드로를 넘어뜨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안 되니 예수님의 친척인 어머니까지 동원하여 예수님이 왕이 되면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이들에게 지지 않고자 아홉 명의 제자가 안드레 계보를 만들어 연합하여 경쟁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아홉 명 중에서 한 명의 대표를 내면 투표를 해서도 세 명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들은 서로를 짓밟고 올라가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리를 섬김이 아니라 권력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행복이 없고 시끄러웠습니다. 그들은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하였지만 사실은 사단이 다스리는 지옥에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서열 경쟁)

 

서열 경쟁을 하는 것은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어떤 모임에서든 어디든지 서열이 있습니다.

정치인들과 판검사 사이에도 서열이 있습니다. 군인 사회에서는 서열이 아주 강합니다. 군대에 가면 맨처음에 고참들의 이름을 서열에 따라서 외워야합니다. 서열을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서열을 따라 의사결정권이 다르고 서열을 따라 급여가 달라집니다. 서열을 따라 지급되는 집이 다르고 승용차가 달라집니다.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사회일수록 서열은 중시됩니다. 북한의 제일인자는 김정은입니다. 우리나라도 박정희 독재 때 서열을 아주 중시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서열에 관심이 많습니다. 누구의 이름이 먼저 나오냐 누구의 사진이 나오느냐에 관심을 갖습니다. 아무리 이런 것에 대해 마음을 비웠다 하는 사람도 그렇게 말처럼 쉽게 마음을 비우지 못합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이런 서열을 따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누가 큰 자인가 관심을 갖습니다. 유비에프 세계대표와 한국대표가 바뀌었는데 누가 대표인가 초미의 관심이었습니다. 오요한 목자 다음에 천안의 목자는 누구일까 궁금해 합니다.

이런 서열을 싸우는 것을 높은 자리가 섬기는 자라가 아이나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라는 불신자들의 사고방식이 들어 있습니다.

서열 싸움을 하다보면 다른 사람을 본의 아니게 짓밟고 올라가야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방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을 죽여야 내가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교회에 있어도 교회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어린 아이같이 되어야 천국에 간다)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이런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싸우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자라고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들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간 자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린아이같이 겸손하게 되어야합니다.

예수님 주위에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갑자기 한 어린 아이를 불러서 제자들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돌이켜 어린 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8세기는 민중의 가치를 19세기는 여자의 가치를 20세기에는 어린 아이의 가치를 재발견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어린아이의 가치를 발견하였습니다.

어린아이는 젖을 먹고 편안히 누워있으면 행복해 보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머니가 옆에 있는 것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돌이켜 어린아이같이 되라는 말씀은 어른 같이 된 마음을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야할 어른 같은 마음은 무엇일까요? 어른이 될수록 욕심이 많아집니다. 사람들은 욕망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물질욕도 있고 명예욕도 있고 정욕도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이런 욕심이 지나쳐 탐심이 됩니다.

이런 탐심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탐심을 회개하고 내려놓아야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빈손으로 왔습니다. 사실 그때가 우리는 가장 행복하였습니다. 아이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빈손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어머니가 있기 때문에 그는 행복합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것입니다. 우리도 아이와 같이 모든 탐심을 버려야 행복합니다. 아이는 전쟁이 나도 부모님이 있으면 행복합니다.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지나친 탐심을 버려야합니다. 오직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 한분이 있으므로 행복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으로 행복합니다.

요즘 나의 마음에 잃어버리는 것으로 근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천안에 올 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가진 것을 가져가도 하나님은 나에게 필요한 만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나는 참으로 행복한 자입니다. 우리 지금 여기서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또한 어른의 마음은 교만입니다. 어른은 자신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가르치고자 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하고 남이 옳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배우고자 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지나치게 고집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같이 되라는 것은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나를 끊임없이 부정하고 하나님을 시인한느 사람입니다.

(겸손한 자가 천국에서 큰 자다)

 

4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갈 자를 말씀하시고 천국에서 큰 자를 말씀하십니다. 천국에서도 큰 자가 있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천국의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입니다. 별과 같이 밝게 빛이 나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자입니다.(다니엘 12:3) 그때는 별과 해와 달의 영광이 다르고 별들의 영광이 다르듯이 서로의 영광이 다릅니다.(고린도전서1541)

그러면 어떤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일까요? 제자들은 높아져서 명령하고 지시하고 많이 섬김 받아야 큰 자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세상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같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겸손해야합니다. 다른 사람을 자신보다 높게 보아야합니다.

어린아이 때는 자기가 작아서 운동장도 크게 보입니다. 어렸을 때 큰집에 놀라갔는데 큰 강이 있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가보니 큰 강이 매우 작은 시내였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고등학교 학생만보아도 위대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사십대를 먹은 사람은 하늘의 별처럼 높게 보였습니다. 어린아이는 다른 사람을 우러러보고 존경합니다.

어린이는 항상 겸손히 배우고자 합니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어린이는 15세가 되기까지 50만 번이나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겸손함이란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자라고 하였습니다.(2:3) 다른 성도들을 존경스러운 눈으로 보는 자입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같이 겸손하려면 자신을 낮추어야합니다.(야고보서 410) 자신을 낮추는 자는 다른 사람을 높입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되어 다른 사람이 존경스럽게 보이면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곧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히 낮아지신 예수님을 만유의 그리스도로 높여주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자나 땅 위에 있는 자나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이 모두 예수님께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되었습니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가르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의 가족들은 내가 선생이요 목자라 항상 가르치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직업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직업병이 아니라 교만한 것입니다. 내가 교만하여 다른 사람이 모른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자 하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동역자들의 말을 잘 듣고 배우고자 하여 겸손한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교만한 사울왕)

 

경쟁심으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사울왕입니다. 사울왕이 자신을 높이고 할 때 그는 끊임없이 시기심으로 고통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다윗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염려와 근심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는 왕일지라도 그 마음에는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있었습니다. 그는 시기와 다툼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는 자신보다 훌륭하게 보이는 다윗을 끊임없이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사울의 편을 든다고 자신의 아들도 죽이고자 하고 자신의 딸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천국에서 큰자가 되고자 하였지만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자입니다.

 

(겸손한 다윗왕)

 

그러나 겸손한 자는 다른 사람을 왕으로 높이고 자신은 종이 되어 낮추는 자입니다. 종이 되어 허리를 굽히는 자입니다. 겸손한 사람 주위에는 물이 밑으로 흐르듯이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합니다.

다윗은 어린 아이 같았습니다. 다윗은 왕이지만 겸손히 여호와를 자신의 목자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원수가 목전에 있어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에는 천국이 있었습니다. 다윗 주위에는 환난 당하는자, 고통하는 자, 빚진자, 원통한 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모신 사람들은 행복하였습니다. 다윗은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겸손한 어거스틴)

 

우리는 겸손해야합니다. 어거스틴은 크리스챤은 제일되는 덕목은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하였습니다. 성어거스틴에게 레이나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급한 일이 있어서 옆방의 제자를 불렀습니다. 여보게 레이나! 방에 있는가제자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몇 번 부르다가 화가 나서 신경질적으로 문을 확 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깜짝 놀랐습니다. 제자 레이나는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에 몰두하고 있어서 스승의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어거스틴은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려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나의 목을 밟고 교만한 어거스틴아!“ 하고 세 번만 외쳐주게 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겸손한 자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겸손한 사람을 배는 존경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자가 예수님 영접하는 자다)

 

5절을 보십시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자가 위대하다고 하십니다. 영접한다는 말은 niv성경에 welcome로서 환영한다는 말입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할 때 어린아이는 긍정적인 면을 말합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를 영접하라고 말씀하실 대 어린 아이는 부정적인 면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곳은 서로 싸우고 울고 시끄럽습니다. 어린아이는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곳은 지저분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항상 도와주어야합니다. 똥을 치워주어야하고 밥을 먹여주어야 합니다. 항상 시끄럽게 떠들고 말을 안들으면 짜증나면 웁니다. 자기중심적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릅니다.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이런아이를 영접하는 자는 이런 것을 받아주고 섬기는 자입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아이들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여겨 숫자에도 넣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은 얼마나 무시하는지 툭하면 애들은 가라고 합니다. 아니면 가서 애나 보라고 합니다. 마치 쓸모없는 사람은 애들이나 보면 된다는 식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어른 있는 곳에 아이들이 오면 아이들을 책망해서 쫓아버렸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깊이 인정하거나 영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몸은 어른인데 행동은 어린 아이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는 분명이 어른인데 행동은 꼭 어린 아이 같습니다. 철부지가 따로 없습니다. 배려심이 없습니다. 항상 주위 사람들의 섬김을 받고자 합니다. ‘양말 가져워라.’ ‘물떠와라.’ 시키며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삐칩니다. 서로 간에 큰소리 치고 싸웁니다.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어린 아이처럼 맨날 게임이나 하고 앉아 있습니다. 우리가 어린 아이같은 어른을 영접할 수 있을까요? 이들을 어떻게 판단하지 않고 섬길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생각하며 어린이를 영접해야 한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영접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이 어린아이 모습으로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며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대하듯이 대하는 것입니다.

내가 오요한 주니어를 미국LA에 보내면 그곳에 폴진 선교사님은 요한 주니어를 처음보지만 나를 생각하여 그를 영접하였습니다. 요한이를 함부로 대하면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와 폴진 선교사님은 다음에 관계성이 끊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가 사랑하는 구주 예수님이 보낸 사람으로 생각하여 예수님을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 같은 신자를 함부로 대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목자의 모습으로 양의 모습으로 아내나 남편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우리는 이들을 예수님처럼 대우해야합니다. 우리는 어린어이를 예수님을 대하듯이 대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셨습니다. 이들을 대하면 복을 받습니다. 물그릇이라도 주면 복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을 영접하는 자가 위대한 자다)

 

사람의 위대함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영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태평양 바다는 넓고 커서 각종생물이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크기와 넓이와 높이가 커서 모든 죄인들을 영접하십니다. 회개하는 자는 창녀나 매국노나 데모대장이나 모든 사람을 영접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영접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희생하셨습니다.

자기 남편이나 자기 아내도 영접하지 못하는 자는 종자기 그릇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배로 낳은 딸도 영접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왜소한 자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넓혀야합니다. 마음을 찢어야합니다. 지갑을 찢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을 영접할 수 있어야합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영접지 않자 그들을 불을 내려죽이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변화되어 요한복음을 쓰고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쓴 요한복음이나 요한이 쓴 편지를 볼 때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영접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를 실족시키는 죄는 살인죄다)

 

6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어린 아이를 실족하게 하면 실족하게 한 그 사람은 목에 연자맷돌을 달아서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고 하십니다. 연자맷돌은 100-200 킬로그램이 나가는 큰 돌입니다. 한 사람이 맷돌을 돌리고 다른 사람은 곡식을 넣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에서는 부모님을 살해하거나 국가를 전복한 사람을 그 목에 연자맷돌을 매어 바닷 속에 던져 수장시켜 물고기밥이 되게 했습니다.

실족시키는 것은 교만하여 어린아이같은 자를 무시하여 불신에 빠뜨려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지옥에 가게 하는 것은 영적 살인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입니다. 영적 살인이 육적인 살인보다 더 무섭습니다. 육적인 살인은 육적인 목숨만 빼앗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살인을 하면 살인 당하는 자는 지옥 불에서 영원히 고통합니다. 우리는 살인이 얼마나 무서운 죄라는 것을 압니다. 살인자는 감옥에 가두거나 사형을 시킵니다. 그러나 영적 살인은 더 무서운 죄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영적인 살인을 한 자도 지옥에서 고통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만하여 남을 무시하면 그를 실족시킵니다. 교만한 자는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합니다. 교만한 자가 영적인 살인을 합니다. 우리는 교만의 죄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합니다.

 

(실족시키는 자로 세상에 화가 있다)

 

7절을 보십시오.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이 세상에 실족시키는 일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본질상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실족시킬 수 있습니다.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불신에 빠뜨리면 세상은 점점 불행해집니다. 그러나 겸손하여 섬기면 세상이 행복해집니다.

실족시키는 교만한 사람으로 세상에 화가 있습니다. 실족시키는 그 사람은 더욱 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있습니다.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 겸손해야합니다. 특별히 어린아이같은 초신자를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 죄에 대해서 철저해야 한다)

 

8,9절을 보십시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리는 남을 실족키시는 교만의 죄에 대해서 철저해야 합니다. 손이나 발이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면 도끼로 찍어버려야 합니다. 눈이 범죄케 하면 손가락으로 눈을 빼어버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간음할 때도 이렇게 철저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교만의 죄에 대해서도 이렇게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 교만은 간음과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파괴시키는 죄입니다.

예수님은 자르고 빼라고 하셔서 충격적이고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교회 안에 사람들은 손발이 없고 눈이 빠진 사람으로 가득찰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어디서도 눈을 빼거나 손을 짤랐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실족시키는 죄를 심각하게 다루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떤 희생이 있어도 철저히 다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 철저히 하고 죄의 원인을 제해야합니다. 우리는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 어떤 희생을 치르면서도 회개해야 합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렇게 교만을 철저히 다루어야하는 이유는 교만죄가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심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건전한 몸으로 영원한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하십니다.

실족케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합니다. 사향 들쥐는 덫에 걸리면 자기 입으로 발을 물어뜯어서 한 발을 놓고 도망갑니다. 발을 잃는 것이 생명을 잃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도마뱀은 꼬리가 잡히면 꼬리를 끊고 도망갑니다.

그렇게 우리는 어떤 희생이 있어도 생명을 잃지 말아야합니다. 우리는 눈이나 손발을 잃는 장애를 심각하게 여깁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교만죄를 짓는 것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실족시키는 교만죄를 짓는 것은 손발을 잃는 것보다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불륜의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실족시켜 하나님을 떠나게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륜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 몸에 암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진통제 먹고 참아야합니까? 고통스러워도 참으라고 해야합니까? 아닙니다. 끊어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진정한 의시입니다. 그와 같이 죄도 당장에 끊어내야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는 죄에 대해서 철저히 회개해야합니다. 단호하게 대처해야합니다. 우리의 교만을 잘라내고 우리의 이기심을 잘라내고 우리의 자기 중심성을 잘라내고 우리의 음란을 잘라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삼아야 합니다.

 

(작은 자를 존중히 여겨야 한다)

 

10절을 보십시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를 업신여기지 말아야합니다.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지 말아야합니다. 어린아이같은 자를 예수님과 같이 존중히 여겨야합니다.

우리는 어린아이같은 초신자들의 천사가 하늘에서 하나님을 뵙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작은 자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아뢰고 있습니다. 어린 자를 업신여기면 천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고해 바칩니다. 우리는 작은 자들을 대할 때 천사들처럼 대해야합니다. 사랑하고 존중히 여겨야합니다.

 

(어린 아이같이 자신을 낮추어야 천국에서 큰 자다)

 

이상에서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어린아이같이 탐심을 버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처럼 겸손하여 연약한 자를 영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는 누구입니까? 자리를 가지고 싸우는 자가 아닙니다. 권세와 돈을 소유한 자가 아닙니다. 어린 아이같이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남을 크게 보는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인 됨을 발견하는 자입니다. 겸손히 어린 아이같이 부족한 자라도 영접하고 섬기는 자입니다. 우리 모두 천국에 들어가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태복음 18장 강해 1부 천국에서 큰 자

말씀 마태복음 181-마태복음 1810

요절 마태복음 181절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태복음 18장 일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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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마태복음] 마태복음 20장 강해 이부 종의 리더십 오요한 2008-11-23
57 [마태복음] 마태복음 20장 강해 일부 포도원 품꾼의 은혜 오요한 2008-11-23
56 [마태복음] 마태복음 19장 강해 4부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오요한 2008-11-23
55 [마태복음] 마태복음 19장 강해 3부 영생을 얻는 길 오요한 2008-11-20
54 [마태복음] 마태복음 19장 강해 일이부 결혼의 진리 오요한 2008-11-17
53 [마태복음] 마태복음 18장 강해 3부 용서의 원리 오요한 2008-11-17
52 [마태복음] 마태복음 18장 강해 이부 교회에서 죄문제 처리 오요한 2008-11-17
51 [마태복음] 마태복음 18장 강해 1부 천국에서 큰 자 오요한 2008-11-17
50 [마태복음] 마태복음 17장 강해 3부 기도와 금식외에는 오요한 2008-11-17
49 [마태복음] 바태복음 17장 강해 일이부 왕권을 가지고 오실 예수님 오요한 200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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