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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태복음 16장 강해 사부 십자가의 길 생명의 길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11-17 00:00:00
조회수 : 3,483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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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장 강해 사부 십자가는 생명의 길

말씀 마태복음 1621-마태복음 1628

요절 마태복음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미국에 사는 수잔 앤더슨(Suzanne Anderson)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에게 어느 날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눈 수술을 받다 실명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의 도움으로 회사에 출퇴근하며 직장 생활을 계속하였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남편이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계속 이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소. 앞으론 혼자 출근하도록 해요" 수잔은 남편의 말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배신감마저 느낀 그녀는 다음날부터 이를 악물고 혼자 출퇴근을 했습니다. 넘어지기도 했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서럽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다 보니,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혼자 출퇴근 하는 것이 익숙해져 가고 있을 무렵입니다.

그 날도 어김없이 혼자 버스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그녀를 향해 무심코 이런 말을 던집니다. "부인은 좋겠어요. 좋은 남편을 두셔서요. 매일 한결같이 부인을 보살펴주시네요." 알고 보니 그녀의 남편은 매일 아내가 버스를 타면 그도 같이 뒷자리에 타 아내의 출퇴근 길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참된 사랑은 고난이 있어도 자립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다른 사람의 일을 다 도와주다보면 그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이 아프지만 참된 사랑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받은 후에 그리스도로서 가야할 십자가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베드로는 인간적인 사랑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예수님을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베드로를 심하게 책망하고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제자들에게도 십자가의 길을 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도록 돕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고 살아나야 하리라)

 

21절을 보십시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후에 처음으로 그리스도로 자신이 하실 일을 가르쳤습니다. 당시에 대부분은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모세와 같이 많은 이적으로 로마 군병들을 물리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로마 정부를 몰아내고 독립된 통일 이스라엘 국가를 세울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뜻밖에 다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종교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로마 군병들에게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must를 사용하여 그리스도로서 반드시 죽임을 당하고 살아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사함의 복음)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것을 통해서 진정한 복음이 무엇인지 배웁니다. 사람들은 복음이 정치적인 독립과 경제적인 번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치적인 메시야, 경제적인 메시야가 오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메시야가 와서 로마식민지에서 정치적으로 독립하고 경제적으로 부국이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메시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이 독립이 되고 경제적인 부국이 되고 건강한 데 있다고 생각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러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반드시 십자가에 죽으셔야합니다.

죄는 교만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불신하는 것입니다. 죄는 내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죄는 생명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사함을 위해서 피를 흘리는 어린양이 되어야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인간의 죽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반드시 부활해야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으로 오실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정치문제나 경제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정치나 경제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죄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성령으로 오셔서 하나님을 믿도록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야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정치 경제문제도 해결해 주십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독립하였고 경제적으로 부국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진정 행복의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야 행복합니다. 우리도 직장 잡고 결혼하고 자녀 낳고 자녀를 결혼시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독립이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부국이 되었지만 사람들이 행복해진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가난하다고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때 진정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죄사함의 복음입니다. 복음은 당면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먼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라고 합니다. 먼저 좋은 대학가고, 직장 문제를 해결하고, 건강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합니다. 먼저 성공하고 번영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먼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성령의 다스림 받기를 원하십니다. 자유와 평화와 기쁨의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항상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믿음으로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누려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주실 것입니다.

 

(베드로의 인간적인 사랑)

 

22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을 책망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예수님이 십자가 형벌을 받고 죽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이런 끔찍한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사랑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을 안다면 말리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자신을 생각해서도 예수님이 죽으시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죽으면 자신의 인생도 처량하게 됩니다. 자신의 꿈이 물거품이 됩니다. 그리고 자신도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야합니다. 고난을 받아야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지지 못하도록 만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적인 사랑은 사람을 죽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지 않으면 모든 인류를 심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역사는 실패로 끝납니다. 하나님도 인간이 없이 성부, 성자, 성령 세 분만이 살아야 하십니다.

사람을 망치게 하려면 그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 다 해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는 무능해져서 도태되고 말 것입니다.

고치에서 나방이 나오는데는 하루가 걸린다고 합니다. 어떤 곤충학자가 그 나오는 것이 안쓰러워서 고치의 입구를 가위로 잘라주었다고 합니다. 큰 은총을 베푼 것이죠. 그러나 나비는 날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잘 대해주는 것이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나비가 하루 동안 발버둥치며 나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감기 들린 사람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침대에 누워있게만 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을 담요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그가 감기에서 낫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사랑은 사람을 망치는 사랑입니다.

 

(인간적인 사랑을 거부함)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정말 고맙구나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은 너뿐이 없구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적인 사랑이 망치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통해서 일하는 사단의 정체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대적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인간적으로 사랑하는 그 속에 사단이 있음을 알고 대적해야합니다. 인간적인 사랑을 거부할 수 있어야합니다. 나는 꿈에서 어떤 사람이 나를 죽이고자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꿈에서 내가 살기 위해서 그 사람을 내어 쫓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꿈을 통해서 나를 인간적으로 사랑하는 자가 나를 죽이는 자임을 깨닫게 도우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서 쓴 소리를 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인 것을 깨닫게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길)

 

예수님은 베드로가 왜 사단의 시험에 들었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 편에서 하는 생각이고 사람의 일은 사람 편에서 하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성령이 주시는 생각이고 사람의 생각은 육신이 주는 생각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 편에서 생각지 않고 사람 편에서 생각하였기 때문에 시험에 들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시험에 들게 됩니다. 사탄은 생각을 통해서 우리 속에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편에서 모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기까지 25년을 기다리는 것은 아브라함의 편에서는 무의미한 일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그 기간이 믿음의 연단을 위해서 꼭 필요하였습니다.

요셉이 노예가 되고 죄수가 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 일을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요셉의 내면이 변화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요셉은 이 사랑을 받고 이 사랑으로 형들을 하나님 편에서 사랑하였습니다. 정을 억제하고 형들을 간첩으로 몰고 도둑으로 몰았습니다. 그를 통하여 형들은 책임감 있는 열두지파의 조상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 편에서 보고 생각할 줄 알아야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법)

 

우리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대하는 것을 통하여 사람을 돕는 법을 배웁니다. 인간적으로 동정하면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십지가를 지도록 돕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연세 중앙교회에 윤석전 목사님이 계십니다. 윤석전 목사의 사모는 복음적으로 윤목사를 도왔습니다. 윤목사는 두 명의 자녀를 가진 가장이었습니다. 대기업 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윤목사가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을 한다고 하였을 때 잘하였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병이 나서 죽게 되었을 때 기도하다 죽으라고 삼각산에 텐트를 쳐주었습니다.

말씀을 전하다가 쓰러졌을 때 장로들은 휴양을 하고 오라고 결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모는 주의 종이 말씀을 전하다가 죽으면 영광이라고 강단에 서게 하였습니다. 사모는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매정하게 남편을 대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더욱 윤목사에게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순교하였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딸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오빠도 죽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가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면 그 길이 손목사에게 꼭 필요한 길임을 영접하였다고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24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가르쳐줍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먼저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부인해야합니다. 나의 욕망을 부인해야합니다. 나의 영광을 부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늘이 땅에서 먼 것처럼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고 깊습니다.

우리는 더워서 불평하고 추워서 불평합니다. 그래서 여름에는 알라스카로 겨울에는 호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사람은 면역력이 떨어지고 일찍 죽는다고 합니다. 여름에는 더워야합니다. 더워야 곡식이 잘 익습니다.

우리는 빨리 출세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대부분 빨리 출세한 사람이 빨리 망합니다. 아무 고난 없이 왕이 된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 받았습니다. 고난을 받은 다윗은 메시야의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 앞에서 우리의 뜻을 부인해야합니다. 자기의 영광, 자기의 이익을 버려야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한 후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서 순종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수치와 모욕을 받고 바보가 되었습니다. 무능하고 어리석은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누구도 질 수 없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도 주님이 주신 나의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졌으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질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을 누리기만 해도 된다고 가르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을 때도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마르지도 피곤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신비화합니다. 이들은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도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합니다. 성령께서 모든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약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사람의 육체를 부정하는 영지주의자입니다. 고난이 없는 기독교는 사단의 기독교입니다. 에수님도 십자가에서 고통스러웠고 바울도 고통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에수님의 십자가에 남은 고난을 몸으로 채웠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의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무엇을 얻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신의 희생하고 헌신하고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감 쓰는 십자가를 지고 기도의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양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여름수양회 후에 기도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주신의 육신의 생각을 죽이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들에게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아멘!

 

(십자가의 길, 생명의 길)

 

25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우리는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라고하면 부담이 느껴집니다. 내가 망할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임을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위해서 죽지 않고 살고자 하면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립니다.

우리의 생명은 한 줌 흙으로 사라집니다. 그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목숨까지 희생하면 예수님은 풍성한 열매를 주십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서 우리는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주와 복음을 위해서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짜피 죽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을 몸을 어찌하든지 살고자 발버둥칩니다. 그런 자는 결국 죽음을 당합니다. 그러나 이왕 죽을 몸 주와 복음을 위해서 죽고자 발버둥치면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우리의 생명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이 귀한 생명을 보존하는 길은 예수님을 위해서 죽는 길입니다.

 

(십자가를 진 에스더, 야곱, 아브라함)

 

페르시아 시대에 왕이 부르지 않으면 누구도 왕에게 갈 수 없습니다. 부르지 않았는데 나갔을 때 왕이 홀을 내밀지 않으면 죽음을 당합니다. 에스더는 동족을 살리기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아하수에르 왕에게 나갔습니다. 그는 죽지 않고 오히려 살았을 뿐 아니라 죽게된 유대민족을 다 살렸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로 있을 때 안이숙 여사는 죽으면 죽으리다는 각오로 일본 국회에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나라의 해방을 통하여 그를 살리시고 부활의 증인으로 귀하게 쓰셨습니다.

야곱은 베나민을 애굽에 보낼 때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잃으면 잃으리다는 각오로 베냐민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요셉도 만나고 시므온도 만나고 베냐민도 돌아왔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죽음을 각오해야 전쟁을 이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전쟁을 하지 않으려면 전쟁을 각오해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만큼은 피해야합니다. 그러나 전쟁을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상대방은 우리를 앝잡아 보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전쟁을 하지 않으려면 힘을 길러야합니다. 전쟁을 각오해야합니다.

예수님은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효도를 하려면 부모님보다 주님을 더 사랑해야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려면 자녀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자녀 이삭을 죽이고자 하는 각오로 이삭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가장 잘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남편이나 아내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나 아내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합니다. 그것이 그 사람을 진정 위하는 길입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홍갈렙선교사님은 무엇을 끊임없이 얻고자 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피곤하고 지쳤습니다.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보고 그날부터는 무엇을 잃을까 고민하였습니다. 무엇을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고 희생할까 고민하였습니다. 제자를 잃을 각오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러자 내면에 생명력이 넘치고 제자 양성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고 간증하였습니다.

올해 들어서 하나님은 나의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잃을 각오로 살게 하셨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천안 ubf 교회입니다. 내가 천안 ubf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진정 천안 ubf를 위하는 길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천하보다 소중한 생명)

 

26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우리의 생명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도 우리의 생명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준다고 하여도 목숨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파우스트는 젊음을 얻기 위해서 영혼을 팔고 고통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준다 해도 생명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런 귀한 목숨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잃을 각오로 살아야합니다.

 

(십자가의 길, 영광의 길)

 

27,28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십니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오십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죽은 자들에게 영생으로 갚아주십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수치를 감당하는 자에게 영광을 주십니다. 그들의 희생을 그대로 갚아주십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희생한 것에 대해서 현세에서도 백배로 갚아주시며 내세에는 영생을 주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 중에는 죽기 전에 권능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보는 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재림할 때 영광스러운 모습을 세 명의 제자에게 잠시 보여주십니다. 더 나아가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성령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도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을 임하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오늘 여기에 임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십자가의 길이 생명의 길)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절대적인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다면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합니다. 나도 십자가를 지고 다른 사람도 십자가를 지도록 도와야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십자가를지지 못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이있을 때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십자가를 짐으로 생명을 얻고 영광스럽게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마태복음 16장 강해 사부 십자가는 생명의 길

말씀 마태복음 1621-마태복음 1628

요절 마태복음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장 강해 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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