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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태복음 14장 강해 이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10-05 00:00:00
조회수 : 3,49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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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장 강해 이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마태복음 1413-마태복음 1421

요절 마태복음 141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오늘 말씀은 제자 훈련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좋은 목자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목자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로 사셨을 뿐 아니라 제자들을 예수님과 같은 목자로 훈련시키십니다. 성인 남자만 오천 명이 되는 사람들이 굶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너희가 먹을 것을 주는 목자가 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을 양무리의 목자로 키우고자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목자로 성장해야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좋은 목자가 될 수 있을까요?

 

(선한 목자 예수님)

 

1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4절은 선한 목자 예수님의 본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이 빈들에 가시자 성인남자만 오천 명쯤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바로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서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든 자를 치료하고 귀신들린 자를 쫓아냈습니다. 그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났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참목자 예수님에 대한 기대를 갖고 나왔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이 세우신 목자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인 목자는 헤롯이었습니다. 헤롯은 음란한 목자였습니다. 종교적인 목자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중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주의자요, 인본주의자였습니다.

무리는 그들의 율법적인 신앙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헤롯과 달리 거룩한 목자였습니다. 에수님은 바리새인과 달리 믿음을 심고 자유를 주는 목자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능력 있는 목자였습니다. 백성들을 진정 사랑하는 목자였습니다. 무리들은 참목자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무리들은 참목자 예수님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공감하는 목자)

 

예수님은 이들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다는 헬라어 스플랑크논에서 유래한 말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을 느꼈다는 뜻입니다.

우리 말에 애타다, 애끓다, 애태우다, 애터지다라는 말이 유사한 말입니다. 애는 창자를 말합니다. 이런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원숭이 암놈을 잡아서 배에 태우고 갔습니다. 그런데 원숭이 수놈이 따라왔습니다. 한참 가다보니 그 원숭이가 따라 오다 죽었습니다. 수놈 원숭이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터져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암놈 원숭이를 불쌍히 여겨서 창자가 터진 것입니다. 여기서 애터지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을 보며 이런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의 고통에 동참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것을 불쌍히 여겼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의 문제가 목자가 없는 것임을 아셨습니다. 헤롯이나 바리새인이 진정한 목자가 아닌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진정한 목자가 되셨습니다. 진정한 목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진정한 목자는 공감하는 목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같이 기뻐하는 목자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요셉의 형들이 목자로 성장하는 과정이 나옵니다. 그들은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히자 아버지와 요셉과 같이 기뻐하지 않고 시기하였습니다. 요셉을 팔고도 아버지나 요셉의 아픔에 동참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장한 후에는 변화되었습니다. 베냐민이 자신들보다 다섯 배나 더 받아도 같이 기뻐합니다. 베냐민이 감옥에 갇히자 같이 고통하고 아버지의 고통에 동참합니다.

이것을 요즘 심리학의 용어로는 거울 목자라고 합니다. 거울 목자는 상대방의 감정이 나에게 비추어 함께 느끼는 목자를 말합니다. 우리는 거울 목자가 되어야합니다.

 

(기도하는 목자)

 

심리학에서는 동정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들의 아픔에 동정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심으로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냅니다.

다 알다시피 우리는 예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양들의 고통으로 같이 고통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양들의 목자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양들의 고통을 가지고 나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하는 자가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이루리라.

안 집사님은 매일 하루에 한번씩 교회에 와서 기도합니다. 그 아들 원이 항공사 파이롯트가 되도록 기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몇 번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우리도 어머니 마음에 동참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드디어 지난 주 제주항공에 취업했다고 합니다. 혹시 제주항공을 탔는데 원이 나오면 아는체 하시기 바랍니다.

정목자는 자녀를 미국에 두고 왔습니다. 어느때는 자전거 고장난 것, 지갑 잃어버린 것, 계산기 잃어버린 것을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어머니는 자녀로 인하여 걱정이 되어 소화가 안 됩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는 양들을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목자는 기도하는 목자가 되어야합니다.

 

(무리를 돌려보내자는 제자들)

 

15절을 보십시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님의 병고치는 사역은 저녁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저녁때가 된 줄도 모르고 양들을 돌보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배가 고팠습니다.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그들은 피곤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참다 못해 모여서 예수님께 긴급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저물었으니 무리를 해산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들을 마을에 보내어 먹을 것을 사먹게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무리를 먹이고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먹을 것을 주고자 해도 돈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각자 사먹게 하여 더치페이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아니면 마을의 재력가에게 맡기자고 하였습니다. 그들의 제안은 매우 합리적입니다. 시간적으로나 장소적으로 볼 때 그들을 해산시켜서 각자 먹을 것을 사먹게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제안 속에는 자신들도 먹고 쉬고 싶다는 이기심도 들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무리에 대한 어머니 마음이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먹을 것이 없다고 어린 자녀들에게 각자 사 먹게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어찌하든지 빌어서라도 먹이고자 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예수님은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리들이 마을로 갈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먹을 것이 없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무리를 먹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먹을 것이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무리들만 배고플 뿐 아니라 제자들도 배가 고픈 것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제자들이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청천벽력 같은 명령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양들의 목자로 키우고자 하셨습니다. 목자는 양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도와주어야합니다. 양들의 결혼문제나 취업문제 건강문제를 도와주어야합니다. 예수님이 왜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너희가 목자가 되라)

 

첫째,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 시대의 목자로 양성하기를 원하십니다.

양은 많지만 목자가 부족하였습니다. 헤롯과 같은 삯군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위선적인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갈 것 없다는 말은 헤롯이나 바리새인같은 목자에게 무리를 보낼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너희가 목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장차 예수님을 이어서 무리들을 돌봐야 할 목자들로 키우기를 원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양을 먹이는 목자로 성장해야합니다. 목자는 먹을 것이 없어도 먹을 것을 양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먹지 말고 먼저 양에게 주어야합니다. 무리들의 먹을 것, 입을 것을 도와주어야합니다. 그들의 영혼을 돌보아야 합니다. 그들의 문제를 알고 어떻게든지 해결해주고자 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목자로 살아야합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감옥에 누명을 쓰고 갇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왕의 신하들이 근심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셉은 내코가 석자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감옥에서 목자가 되어 자기 문제에 매이지 않고 그들의 근심을 해결해주고자 하였습니다. 요셉은 애굽왕이 꿈을 꾸고 번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큰 흉년이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요. 외국인 죄수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애굽의 문제를 해결할 방책을 말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서 아둘람 굴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문제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목자가 되어서 원통한자, 빚진자, 억울한 자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도와주고자 하였습니다.

 

(어머니 마음)

 

둘째는 양들을 먹이고자 하는 목자의 심정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목자는 심정이 있어야합니다. 양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향한 애타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는 먹을 것이 없어도 먼저 양들을 먹이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나는 죽어도 먼저 양들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목자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랑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청년 아들을 잃은 과부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오빠를 잃은 마르다와 마리아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들의 고통에 동참하여 함께 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죄와 사망에 시달리는 인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때문입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양들의 목자였습니다. 그들은 양들에게 긍휼히 여기는 마음보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들은 창녀를 정죄하고 세리를 정죄하였습니다. 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정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리나 창녀에 대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목자는 이런 예수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우리나라 소쩍새에 대한 유래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죽고 큰 누나와 아홉 명의 동생이 살게 되었습니다. 아홉 명의 동생을 가진 누나가 동생을 먼저 먹이다가 자신은 굶어죽었다는 말입니다. 솥이 적어 죽었다고 소쩍새라고 운다는 말입니다. 나는 굶어죽어도 동생을 먼저 먹이는 누나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 마음이 아픈 것은 그들을 구하고자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전에 이 목자의 오빠인 박목자님은 세월호 사건을 통하여 깊이 회개하고 한 달 동안 양들을 생각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선한 목자로 살고자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양들을 끝까지 돌보아야합니다. 우리는 양들을 너무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양들을 돌보아야합니다.

 

(한계 극복)

 

셋째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한계 상황을 극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지도자가 한계를 극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은 합리적으로 오천명의 무리를 먹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능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들을 먹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빈들이라고 하였는데 전능하신 예수님이 함께 있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양들에게 떠 넘기지 말고 예수님께 떠넘겨야합니다. 예수님이 해결해주시도록 부탁해야합니다. 예수님께 나가서 기도해야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킬 때 많은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애굽에서 나오자 홍해 바다가 가로 막았습니다. 홍해를 건너자 광야 생활에서 이백만의 인구를 먹일 양식이 없었습니다. 물이 없었습니다. 고기가 없었습니다. 많은 백성들의 내면에 죄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반역하여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모든 문제를 하나님을 믿음으로 극복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심고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였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절망적이고 한계적인 상황을 극복해야합니다.

 

(있는 것을 가져오라)

 

17,18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예수님이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지만 제자들은 줄 것이 없었습니다. 빌립은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자 하면 이백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여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빌립과 달랐습니다. 안드레와 함께 몇 명의 제자들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자들은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는 매우 자조적인 대답입니다. 도대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 없는데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오천명을 먹이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을 예수님께 가져가야합니다. 가져오라는 것은 예수님의 손에 온전히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하실 것을 믿고 예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것이 아닌 예수님의 소유로 넘겨드리는 것입니다.  떡을 나의 이름을 드러내는데 쓰지 않고 에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데 쓰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예수님께 먼저 드려야합니다.

예수님이 찾으시는 것은 -뿐이라고 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그것뿐이 없다고 하는 것을 가져오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오병이어입니다. 오병이어는 현재 여기에 우리에게 있는 최선의 것입니다.

제자들은 무리를 먹일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이미 먹일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가져오는 오병이어 속에는 제자들의 책임감과 목자의 심정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다 들어 있습니다.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우리의 오병이어를 먼저 예수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서 주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 나의 진심과 사랑과 정성을 담아서 예수님께 가져가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먹일 것이 없어도 물 한 컵만 주어도 그곳에 마음이 들어가 있으면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변화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기도, 양들과 하는 말씀공부 그리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마중물을 드려야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기름하고 가루조금으로 떡을 만들어 먹고 죽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것을 먼저 나에게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먹었으면 그것으로 없어질 것이지만 엘리야에게 먼저 드리자 가뭄이 끝날 때까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한계를 극복하는 비결은 먼저 내가 가진 그것을 하나님께 먼저 드리는 것입니다.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

 

19절을 보십시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제자들이 오병이어를 가지고 예수님께 가져갔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믿고 준비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순종하여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야합니다. 에수님은 제자들이 이것뿐이 없다고 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향하여 감사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정성이 담긴 오병이어로 감사하십니다. 크게 기뻐하십니다. 크게 감동하십니다.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그 떡을 무리들에게 나누어주셨습니다.

 

(다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

 

20,21절을 보십시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예수님이 떡을 떼어서 나누어주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천명의 무리가 다 배불리 먹었습니다.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자 열두 바구니가 찰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뤄질 수 있습니까?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핵분열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주님께 드려야합니다.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

 

결론적으로 그 시대는 지도자가 악하고 음란한 시대였습니다. 이중적이고 형식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시대에 고통하는 백성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이런 무리를 먹이는 목자로 키우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시대 굶주리는 캠퍼스 영혼을 먹이는 목자가 될 수 있습니까?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떡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드려야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을 양들에게 주어야합니다.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와 한팀의 일대일 공부를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어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친히 일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받으시고 크게 일하실 것입니다. 아멘!

마태복음 14장 강해 이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마태복음 1413-마태복음 1421

요절 마태복음 141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마태복음 14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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