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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태복음 15장 강해 사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10-19 00:00:00
조회수 : 2,412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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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5장 강해 사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나

말씀 마태복음 1529-마태복음 1539

요절 마태복음 1532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이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인 기적이 나옵니다. 앞에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인 기적과 흡사합니다. 두 사건은 다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면이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어찌하든지 굶주린 무리를 먹이고자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번의 기적은 이방인에게 행한 기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이방인도 사랑하시어 기적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주셔서 오늘 여기에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님의 기적이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데리고 와서 앉히는 믿음)

 

29-30a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의 떠나서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오르셨습니다. 갈릴리 호수의 동남쪽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이 산에 앉으시자 이방인의 큰 무리가 나왔습니다. 무리들은 다리 저는 사람,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러 명의 장애인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장애인들을 예수님의 발 앞에 가까이 앉게 하였습니다. 장애인들을 예수님 가까이 앉힌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경외심을 갖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을 갖고 앉게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025,33절에 고넬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갔을 때 고넬료는 베드로를 하나님처럼 보고 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발 앞에 앉아 경외심을 갖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말씀을 듣는 그들에게 성령이 그 현장에서 임하셨습니다.

우리는 우선 말씀을 듣기 위해서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경외심을 갖고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성경공부나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일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 여름수양회에 양들을 데리고 나와야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을 심어야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일하십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특별한 사랑)

 

30b,31절을 보십시오. “고쳐 주시니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님은 이들 이방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다 고쳐주셨습니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였습니다.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다리 저는 자는 걸었습니다. 맹인은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구속하고 있는 그들을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이들은 가나안 여인과 같이 까다롭게 그들의 믿음을 시험하지도 않았습니다. 가나안 여자를 통해서 이방인의 훌륭한 믿음을 보았습니다. 이들도 다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일방적인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도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이방인에게도 큰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대표로 믿음을 까다롭게 시험하고 나머지 이방인은 전적으로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무리들은 이를 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은 세계만민이 돌아오기를 바라시며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셨습니다. 그래도 아직 많은 이방인이 구원받지 못하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방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그 때 끝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세계에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3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예수님은 무리를 고치주시고 그들을 먹이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불쌍히 여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사흘 동안 있었지만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흘이나 굶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그냥 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굶겨보내지 못하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어머니처럼 이들을 불쌍히 여겨서 어찌하든지 먹이고자 하셨습니다. 사흘 굶주린 자녀를 그냥 보내지 못하고 먹이고자 하시는 어머니의 마음과 같습니다. 사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사흘동안 먹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자신이 먹고자 하지 않고 제자들을 먹이고자 하지 않으시고, 무리를 불쌍히 여겨서 먹이고자 하였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에서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처음 오병이어의 기적에서도 예수님은 나온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번에 예수님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긴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도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사흘 굶은 사람을 너 왜 밥먹지 않았느냐고 비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비판하는 마음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불쌍히 여길 때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십니다.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지금 캠퍼스의 영혼들은 사흘 굶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 배부르게 잘 먹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전혀 불쌍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양들을 찾아다니는 목자가 불쌍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기진하고 있습니다.

아모스서 8“11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요즘의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피곤해 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비틀거리며 말씀을 얻고자 돌아다닙니다. 그들은 말씀을 얻지 못하여 다 갈증으로 쓰러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말씀의 떡을 사흘 굶은 것이 아닙니다. 평생 굶은 사람도 있습니다.

단대 의대에 봄학기 11명의 학생을 전도하였는데 그중에 교회 다니는 학생은 두 명뿐이 안 됩니다. 교회에 다녔던 사람도 몇 명 되지 않습니다. 이십년 동안 한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굶겨서 보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야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고 말씀을 주셨듯이 우리도 이들을 불쌍히 여겨야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굶주리는 이들에게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해야합니다.

요즘에 메르스 때문에 난리입니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각종 집회가 취소됩니다. 결혼식까지도 마스크를 쓴 사진이 풍자적으로 유포되고 있습니다. 한국에 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죄의 바이러스입니다. 음란과 물질과 자아를 신으로 섬기는 바이러스입니다. 세월호에 빠져죽은 학생들을 보면 불쌍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세월호에 타고 지옥으로 빠져들어가는 사람들은 더욱 불쌍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합니다.

 

(역사성 없는 믿음)

 

33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이르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가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무리를 배부르게 먹이고자 하였습니다. 전에는 조금씩 먹이고자 하였지만 이제는 배부르게 먹이고자 하였습니다. 자신은 먹일 수 없으니 예수님이 어떻게 그들을 먹여주시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이것도 엄청난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할 일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광야라는 상황 때문에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다 해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과거 예수님이 오천명을 먹일 때 예수님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오병이어를 예수님께 드렸을 때 예수님은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이를 기억하고 오병이어를 찾아서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을 때 그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찾아드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드리지 않고 예수님이 다 해 주시기를 기대하는 것은 샤머니즘 신앙입니다. 도둑놈 심보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다 하고 주님이 하실 일을 기대해야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체험한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사건을 만나면 우리는 다시 믿음으로 도전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해서 먹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이 없을 때 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주셔서 200만 인구를 먹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고기를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합니다. 이들은 모두 역사성이 없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떡 몇 개를 찾으신 예수님)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큰 일을 하실 때 우리가 가진 떡 몇 개를 찾으십니다. 그들은 떡 일곱 개와 고기 두 마리를 가져다 드렸습니다. 전에는 떡 다섯 개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떡이 일곱 개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떡이 다섯 개나 일곱 개나 그 양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 최선을 다하는 정성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칠병이어와 함께 정성과 순종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우리가 양들을 먹일 많은 목자가 부족합니다. 기도 모임에 참석하여 기도하고 일대일 하는 목자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 숫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군대로 미디안 군대를 진멸할 때 오히려 수가 많은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삼만 이천명이 나오자 이만 이천을 보매시고 만 명만 남게 하셨습니다. 다음에는 만 9700명을 보내시고 300명만 남게 하셨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떡 사천개가 있다고 합시다. 이것은 오히려 예수님이 일하시는데 방해가 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갖다 버리고 떡 일곱 개만 가지고 오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떡 일곱 개로 4000 명을 먹이는 것이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까? 아니면 떡 사천 개로 사천명을 먹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까? 중요한 것은 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고 믿음입니다.

우리 천안 ubf는 목자의 수도 너무 부족합니다. 부족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칠병이어가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내가 있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남은 자들이 칠병이어와 같은 자들입니다. 여기에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통하여 구원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믿고 배경을 만드는 믿음)

 

3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예수님은 무리들을 땅에 앉게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믿음으로 떡이 없지만 떡 먹을 준비를 시켰습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일보다 믿음과 순종이 먼저입니다. 히브리서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그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이미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일하실 배경을 만들어야합니다. 비가 올 것을 믿었으면 우산을 가지고 가야합니다. 예수님은 열명의 문둥병자를 고칠 때 예수님은 치료도 하지 않고 먼저 가서 병이 나은 건강진단서를 받아오라고 하였습니다. 문둥병자는 이미 병이 나은 것을 믿고 건강진단서를 받으러 가다가 병이 나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었으면 믿음대로 행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미 여름수양회를 축복하신 것을 믿고 믿음으로 양들을 초청해야합니다.

 

(먼저 감사를)

 

36a를 보십시오.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예수님은 떡 일곱 개와 생선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번에도 떡 일곱 개와 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축사는 감사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칠병이어를 갖고 그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감사가 기적을 낳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릴 때 먼저 감사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감사 기도를 드리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자 무리가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었습니다. 과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김수성 목자가 임고에 붙으면 그레이트 생큐 떨어지면 브에리 생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경미 사모가 기침에서 나으면 그레이트생큐이고 낫지 않아도 브에리 생큐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임경미 사모의 병을 많이 낫게 하셨습니다.

 

(먼저 주는 것)

 

36절을 보십시오.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어떤 사람이 가지고 온 것을 제자들의 손에 맡겼고 다시 예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제자들은 떡 일곱 개와 고기 두어마리를 예수님께 온전히 가져다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손에 맡겨드렸습니다. 그들도 삼일동안 먹지 못해서 배가 고팠지만 먼저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진 것을 예수님께 맡겨야합니다. 나의 가족, 나의 건강, 나의 결혼, 나의 생명을 하나님께 맡겨드려야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다시 제자들에게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도 사흘 동안 먹지 못해 배가 고픈데 자신들이 먹지 않고 무리에게 먼저 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나의 것을 온전히 주님께 먼저 드려야합니다. 주님의 손에 맡겨드려야합니다. 그리고 양들과 이웃에게 먼저 주어야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크게 능력을 베풀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열왕기상 1711절에서 13절에 보면 사르밧과부는 가루 조금과 기름 조금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으로 떡을 해먹고 자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것을 먼저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너와 아들을 위해서 떡을 만들라고 하였습니다. 사르밧과부가 그것으로 떡을 만들었을 때 하나님은 크신 은혜를 주셨습니다. 가뭄이 끝나기까지 떡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기서 기적을 보려면)

 

37-39절을 보십시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으로 가시니라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여기에 동일하게 살아계십니다. 지금도 병을 고치고 우리를 먹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통하여 캠퍼스 영혼들을 먹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기적을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서 기적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예수님께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경외심을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듯 우리도 서로를 불쌍히 여겨야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떡 몇 개를 찾아서 먼저 예수님께 드려야합니다.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일하신 배경을 만들어야합니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합니다. 내가 먼저 먹지 말고 주님께 드리고 양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자녀나 양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양들에게 말씀을 공급해야합니다.

김 목자는 눈물이 많습니다. 기도할 때도 눈물을 많이 흘립니다. 금요일 반차를 내고 내려와 두 명의 양을 초청하였습니다. 그 두 명의 양이 말씀 공부를 꾸준히 하고 한 명은 지난 주 예배에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목자의 심정을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목자의 심정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찾아드릴 때 주님이 오늘 여기서 우리에게 기적을 행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마태복음 15장 강해 사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나

말씀 마태복음 1529-마태복음 1539

요절 마태복음 1532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마태복음 15장 강해 사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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