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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마태복음 15장 강해 삼부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10-19 00:00:00
조회수 : 3,295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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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5장 강해 삼부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

말씀 마태복음 1521-마태복음 1528

요절 마태복음 1528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께서 믿음이 크다고 칭찬한 두 사람이 나옵니다. 남자 중에는 하인의 병을 고치고자 나온 백부장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상관에게 순종을 배우고 순종을 가르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자 중에 최고의 믿음은 가나안 여인입니다.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네 믿음이 크다고 인정하였습니다. 저는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묵상하면서 정말 그 믿음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부정적인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 초긍정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딸을 사랑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절대 신뢰하고 자존심을 극복하였습니다. 이 시간 예수님이 인정한 가나안 여인의 초긍정의 믿음을 배우고자 합니다.

 

(예수님께 나온 가나안 여인)

 

21,22a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예수님께서 나가셔서 두로와 시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페니키아 지역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유대 지방을 완전히 떠나서 이방 지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가나안 사람은 죄가 가득하여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심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과 결혼도 하지 말고 거래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진멸하도록 하였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이런 죄악된 자신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다만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부르짖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하였습니다.

 

(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22b를 보십시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가나안 여자의 딸이 귀신이 들렸습니다. 귀신이 들려서 헛소리를 하고 강포하여져서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때로는 불과 물이 무서운 줄 모르고 뛰어 들어갔습니다. 딸의 온 몸은 상처투성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귀신 들린 딸을 사람 취급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딸을 볼 때 여인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 예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군대 귀신 들린 자, 더러운 귀신 들린 자, 일곱 귀신 들린 자를 쫓아 내주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그리스도가 긍휼을 베푸실 것을 믿었습니다.

여자는 내 딸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녀는 딸과 자신을 동일시하였습니다. 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었습니다. 여자는 딸의 고통을 가지고 예수님께 긍휼을 구하며 나왔습니다. 사랑은 이처럼 상대방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침묵하신 예수님)

 

23a절을 보십시오.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과 같이 목자의 심정으로 하는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은 야이로가 딸이 병들어 죽어간다고 나왔을 때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한 아비가 아들이 귀신들려 고통하며 나왔을 때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고 하시고 병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사랑으로 데리고 나왔을 때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연히 가나안 여인의 딸을 고쳐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싸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기도에 한 말씀도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여자에게는 침묵이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침묵 속에서 여인의 반응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침묵하심으로 여인이 더욱 간절 나오기를 원하셨습니다.

 

(더욱 소리질러 기도하는 여인)

 

23b를 보십시오.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여자는 계속하여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여자는 더욱 크게 소리질러 기도하였습니다. 여자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번거롭게 하였습니다. 절대 포기치 않고 강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비록 친구됨을 인하여는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셔도 강청함을 인하여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여자의 기도를 듣는 것이 너무 민망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여자를 대신하여 예수님께 간청하여 드렸습니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빨리 여자의 기도를 들어주어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강청하는 기도를 들어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강청하는 기도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 기도를 들어줄 수 없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2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구하러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자가 이방인인 가나안 사람이므로 기도를 들어주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평상시 예수님은 다른 이방인들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방 사람들인 사렙다 과부와 나아만 장군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인내심을 갖고 도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구주뿐 아니라 세상 만민의 구주가 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편협한 유대인처럼 보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편에서 구원의 순서를 가르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유대인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에 대해서 만민구원 역사의 제사장 나라로 쓰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특별한 애정이 있으습니다. 세상의 종말에도 유대인들의 구원에 각별한 관심을 갖습니다. 유대인들이 다 돌아와야 세상의 끝이 오게 됩니다.

사도바울도 로마서에서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이 먼저는 유대인이고 다음이 이방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게만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각별한 목자의 심정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원의 순서를 가르치고자 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이방인을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방인도 이를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가나안 여자도 하나님의 주권을 알아야 합니다. 가나안 여자도 이스라엘을 먼저 도우시고 다음에 이방인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깨닫기를 원하였습니다. 그가 그런 주권을 인정하고 나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여인 편에서 보면 예수님은 편협한 유대주의자 같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그래 당신은 유대인의 구주나 되시오 여기는 이방 땅이요 유대인 고홈!’ 하며 데모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상처받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딸에 대한 간절한 사랑으로 다시 예수님께 나와 기도합니다.

 

(가나안 여인의 간절함)

 

25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상처 받지 않았습니다. 기도를 포기치 않았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나와서 절하였습니다. 그녀는 말로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행동으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녀는 절을 하며 주여, 나를 도우소서다시 간청하였습니다.

여자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보냄을 받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을 그렇게 사랑하시면 그 사랑으로 이방인인 자신도 사랑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먼저 유대인을 도우시고 다음으로 이방인도 도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여인은 평상시에 예수님이 이방인들의 믿음을 축복하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방인도 사랑하시는 긍휼의 주님이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다시 한번 도와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녀는 딸을 살려달라는 간절함으로 나갔습니다. 믿음은 간절함입니다. 간절한 믿음은 딸에 대한 사랑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은 밤낮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들어주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처음에 거절하였다가 두 번째 믿음으로 나오면 그때는 모든 경우에 들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예수님께 나와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직 내 때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믿음을 보시고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가나에 이르자 왕의 신하가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고 신하의 기도를 거절하였습니다. 왕의 신하는 다시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가라 말씀하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여인도 다시 두번째 믿음으로 도와달라고 하였을 때 여인에게도 네 딸아 나았다라고 해야 옳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욱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개 취급하심)

 

26절을 보십시오.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두 번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자녀에 비유하였습니다. 가나안 여인을 개에게 비유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떡에 비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주시지만 개와 같은 가나안 사람에게는 은혜를 주실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개는 퀴나리온으로 작은 개, 강아지를 의미합니다. 애완용 개입니다. 빌립보서 32절에 개를 삼가라는 말씀에 나오는 개는 퀴온으로 더러운 것을 좋아하고 무리를 지어다니는 싸우는 개를 의미합니다. 애완용 개든 아니면 똥개든 예수님은 여인을 개라고 하셨습니다. 어쨌든 개는 최대 모욕적인 말입니다. 히브리어는 쌍소리나 욕이 없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욕을 할 때는 영어를 씁니다. 그들이 욕을 할 때는 사마리아사람이다. 개다 라는 말을 씁니다. 특히 그들은 이방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이방인 개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처럼 가나안 여인을 개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가 개와 같은 본성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구하기 원했습니다. 자기 의를 버리기를 원했습니다. 겸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내면이 변화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이 이 말을 듣고도 불신에 빠지지 않을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시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인을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지금 같으면 인터넷에 수많은 댓글이 올라올 것입니다. 안티 예수 그룹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기도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다가 두 번이나 걸쳐서 부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정도로 말씀하시면 분명한 거절로 보아야합니다.

그래, 나는 개에요. 개맛 좀 볼래요, 당신을 개처럼 물어버릴 거예요.’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감정적인 되지 않았습니다. 자존심의 문턱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여인은 다시 한번 예수님께 은혜를 간구하였습니다.

 

(개로서 자기 발견)

 

27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여자는 주님 옳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긍정하였습니다. 여인은 초긍정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여자는 개와 같은 자신을 인정하였습니다. 이방인은 개와 같습니다. 본능을 따라서 살아갑니다. 개는 더러운 것을 좋아합니다. 부끄러운 것을 공공연히 합니다. 하나님 없는 이방인은 개와 같이 부도덕합니다. 예전에 쇼킹 아시아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들의 추한 모습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여자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죄악을 보았습니다. 전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개라는 말이 옳습니다. 라고 인정하였습니다.

 

(죽은 개 훈련을 받은 다윗)

 

다윗도 하나님에게 죽은 개 훈련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을 죽은 개와 같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무엘상 2414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하나님은 다윗을 죽은 개와 같이 취급하셨습니다. 그는 사울에게 쫓김을 당하며 죽은 개와 같이 되었습니다. 죽은 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채이면 채이는 대로입니다. 다윗은 죄악된 자신을 깊이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낮아짐 가운데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낮아진 다윗을 왕으로 귀하게 높여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개와 같은 자신을 발견하는 이런 겸손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부스러기 은혜라도)

 

그러나 여자는 이방인은 개이므로 떡을 줄 수 없다는 말씀에도 결코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긍정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참으로 여인은 초긍정의 믿음을 가졌습니다. 여자는 개들이 먹는 떡의 부스러기를 구하였습니다. 그녀는 개라도 상에서 자녀와 함께 떡은 먹지 않지만 자녀들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는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숟가락이나 젓가락이 없었습니다. 손으로 떡을 떼어서 먹었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손에 묻은 기름이나 쏘스를 빵으로 닦습니다. 손을 닦은 빵을 개에게 던져 줍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 음식을 먹고 찌꺼기를 모아서 개에게 주었습니다. 먼저 개밥을 푸지는 않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식사 후에 주는 이런 떡 부스러기의 은혜를 구하였습니다. 딸에게 부스러기 은혜로 고쳐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주고 나서 남는 조금의 은혜라도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여인)

 

여인은 이방인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은 개라고 거절해도 본심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버립니다. 우리는 사랑을 신뢰할 때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거절하시는 말씀에서 긍정을 찾았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주지 않는다는 말씀은 분명히 거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예수님이 개에게 은혜를 주실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여인은 초긍정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절대 긍정의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긍정할 때 그녀는 자존심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자존심 극복)

 

여자는 가나안 여자로서 가지고 있는 자존심을 극복하였습니다. 자존심은 깊은 열등감에서 나옵니다. 그녀는 가나안 여자로서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열등감이 있는 사람들이 자아가 비대하게 커져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을 무시하면 발끈합니다. 무시하지 않았는데도 무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예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는 자아로 자신을 생각하고 이런 열등감을 극복하였습니다.

 

(딸에 대한 사랑)

 

여인은 자신의 딸을 사랑하였습니다. 여인이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딸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딸에 대한 사랑으로 어찌하든지 예수님께 나갔습니다. 포기치 않고 나왔습니다. 딸에 대한 사랑으로 세 번의 거절을 극복하고 나왔습니다. 모성애는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힘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초인적인 능력을 가져옵니다. 그녀는 딸에 대한 사랑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나왔습니다. 이 간절함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나 양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이 있을 때 여인과 같이 믿음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결코 포기치 않고 나올 수 있습니다. 자존심을 극복하고 나올 수 있습니다.

 

(여인의 믿음을 축복하신 예수님)

 

28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라예수님은 여인의 믿음 중에 이처럼 칭찬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 여자는 여자 중에 최고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초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딸에 대한 사랑으로 끈질기게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극복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굴릴 때)

 

우리는 양들이나 자녀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때로는 우리에게도 여인처럼 냉담할 때가 있습니다. 반복하여 기도해도 응답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개처럼 자존심을 상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기 쉽습니다. 마음에 쓴뿌리가 생겨서 주님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양들에 대한 간절한 사랑으로 나가야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신뢰하여야합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십자가의 사랑을 보아야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이런 고난을 주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을 아시기 때문에 이렇게 높게 우리를 대우한다는 것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높이 평가하시는 것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욥을 가나안 여자처럼 굴렀습니다. 그는 재산을 잃고 자녀를 잃었습니다. 나중에는 몇 개월 피부병으로 고통하게 하셨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께 욕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였습니다. 욥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함으로 그 시험을 잘 극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욥에게 두 배의 복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강해 삼부 가나안 여인의 큰 믿음

말씀 마태복음 1521-마태복음 1528

요절 마태복음 1528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5장 강해 삼부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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