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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빌립보서4장 강해 1부( 4:1-7) 어떻게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6 00:00:00
조회수 : 4,31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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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 첫주 천안ubf 주일 메시지 어떻게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빌립보서 4장 강해 1부 어떻게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말씀 빌립보서 41-빌립보서 47

요절 빌립보서 41"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1)

 

천국은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천국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만들 때 교회를 통하여 천국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교만하고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이 개척한 빌립보 교회도 마찬가지여씁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유럽을 전도할 때 개척한 유럽의 첫성입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비단 장수 루디아를 만났고 그녀의 가정을 중심으로 빌립보 교회는 개척되었습니다. 빌립보는 자매들이 중심이 되는 교회입니다.

빌립보 지방도 여자들의 여권이 세기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한 예로 빌립보는 여자들의 성을 따라서 자녀들의 이름을 짓기도 했다고 합니다. 여자들을 위한 공덕비가 지금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빌립보의 자매들인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 시기와 분쟁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분쟁하는 빌립보교회에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도록 권면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형제자매들입니다)

 

1a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성도들 간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성도들 간의 관계를 한 마디로 형제 자매의 관계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자매들은 부모의 같은 피를 물려 받은 뿌리가 같은 사람들입니다. 친구들이나 부부와는 달리 서로 헤어질 수 없는 절대적인 관계입니다. 형제들 사이는 인간적인 이해관계에 의해서 끊어질 수 없는 끈끈한 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또 형제들은 부모의 유산을 함께 물려받는 관계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피를 함께 나눈 한 형제자매들입니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로서 같은 형제자매들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부부 간에도 형제자매요. 아버지와 아들 사이도 형제입니다. 형제는 평등한 관계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아들 요한이나 딸 은혜도 한 형제자매로서 평등한 관계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형제들로서 대하셨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는데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맺어진 형제 관계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제자매는 하나님 나라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관계입니다. 우리는 혈연적인 형제자매들보다 더 우애 있고 친밀한 관계를 맺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은 형제들을 말할 때 나의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형제 자매와 바울과의 인격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체험적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 간에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자매의 관계의 특징을 네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관계)

 

첫째, 형제는 사랑스런 관계입니다. 바라보면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아가페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일반적으로 형제자매들은 부모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으로부터 십자가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하셨으니 형제를 용서하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오래 참아주셨으니 서로를 오래 참아주는 것입니다. 서로가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서로를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스럽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모하는 관계)

 

둘째, 형제는 사모하는 관계입니다. 사모하는 것은 함께 없을 때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지금 빌립보에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마음 속으로 사모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모하는 마음은 시간과 공간이 다를지라도 하나로 묶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몸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마음은 항상 함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육적인 사랑이 아니요. 정신적인 사랑입니다.

 

(기쁨을 주는 관계)

 

셋째, 형제는 기쁨을 주는 관계입니다. 형제를 생각하면 기쁨이 됩니다. 형제가 나에게 기쁨이라는 것은 내가 형제에게 기쁨을 주는 관계입니다. 나를 만나면 내가 그에게 기쁨을 주는 관계입니다. 형제는 서로 간에 기쁨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자랑스런 관계)

 

마지막으로 형제는 자랑스러운 관계입니다. 바울은 형제들이 면류관이라고 말합니다. 면류관은 마라톤에서 우승했을 경우에 일등을 한 사람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것입니다. 면류관은 자랑이요. 영광입니다. 이는 형제의 승리가 나의 승리가 되어 함께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형제를 낮추어서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높여서 내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형제가 잘 되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 그런가요? 솔직히 말해서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살다보면 상처를 받습니다. 나도 상처를 받지만 상대방도 나로 인하여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어떻게 사랑스럽고 보고 싶고 기쁘고 자랑스러울 수 있을까요? 일프로 나의 문제라도 전적으로 나의 문제로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방에서 상처를 받는 것을 인격과 믿음이 성숙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솔직히 나도 상처를 주었겠지만 나도 사람들로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는 기도하면서 그것이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상처가 될 때마다 그것을 회개하고 믿음 성숙의 계기로 삼았습니다. 그 때 성도들이 사랑스럽고 보고싶고 기쁘고 자랑스럽게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이 어떻게 해야 사랑의 공동체를 말들 수 있는가 네 가지로 말합니다.

 

(1) 주 안 서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1b,2 이와같이 주 안에서 서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사도 바울은 이제 직접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두 자매에게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시기하는 자는 시기함을 받는 자나 똑같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시기하는 자는 다른 사람과 비교의식 가운데 자신이 높아지고자 하는 것입니다. 시기당하는 자는 자신의 영광을 상대방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둘은 똑같이 문제이니 서로 옳고 그른 것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둘은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인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같은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하십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 주님과 관계성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도 한 분이고 성령님도 한 분이시고 하나님도 한 분이십니다. 또 우리는 사명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주로 모시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기 위해서는 주 안에 서야 합니다. 주안에 서라는 말은 주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를 맺으라는 말씀입니다. 주안에서 관계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합니다.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이 견고해야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꼭 붙어 있듯이 주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형제의 관계도 견고해집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빌립보 성도들은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사모하고 기뻐하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구심점이 없어져서 이혼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가 되는 것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부부가 가문을 중심으로 하든지 아니면 자녀를 중심으로 하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분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컬튜쇼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남녀가 소개팅으로 만났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별로여서 보자마자 헤어질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좋아하는 bts 이야기를 하자 남자는 여자가 아는 것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멤버의 이름은 물론이고 출생지, 생년월일 취미까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그들이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이 많아도 한 분 예수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둘 다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됩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정적으로 하나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자 그들은 만나자마자 하나되고 영원히 하나가 되었습니다.

 

(2) 멍에를 같이한 형제를 서로 도우라

 

3절을 보십시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를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서로 도우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적극적인 봉사의 자세를 취하라는 말입니다. 대부분 서로가 시기하는 문제가 있으면 서로가 소극적입니다. 나쁜 말로 하면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깨질 테면 깨지고 망할 테면 망하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막가파처럼 둘 다 망하는 막가는 삶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교회 전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기심 문제가 있을 때 한 마음을 품는데서 더 나아가 서로를 도와줘야 합니다. 시기심이 나는 사람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 선물도 주어야 합니다. 그를 사람들이 보지 않는 데서 좋은 점을 보고 적극적으로 칭찬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도움이 필요할 때 가서 도와주어야합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준 사람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위해줄 때 서로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도와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멍에를 같이하는 자)

 

첫째, 멍에를 같이 하던 자, 함께 힘쓰던 자, 동역자이기 때문입니다. 멍에를 같이 한다는 말은 함께 복음역사를 섬기는 자라는 뜻입니다. 멍에를 같이 하여 함께 보조를 맞춰 쟁기를 끄는 것입니다. 멍에를 같이 하는 사람은 한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이요. 같은 걸음으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함께 짐을 지는 사람입니다. 상대방이 아프거나 연약하면 고스란히 그 피해가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도와야 내가 편해지는 것입니다. 마치 레일 바이크를 함께 타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힘을 써야 상대방이 힘을 덜 쓰도록 돕는 것입니다.

 

(함께 유업을 받을 자)

 

둘째,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유업을 받을 자이기 때문에 서로 도와야 합니다. 우리는 죽은 후에도 천국에서 영원히 만나 함께 살 사람입니다. 몇십 년만 지나면 서로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시기하고 싸운다면 우리가 천국에서 어떻게 서로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함께 살 수 있을까요? 서로 싸우면 둘 다 천국에 못 갈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은 싸움을 걸어도 나는 선으로 대해야 적어도 나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상대방이 악해도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3) 항상 기뻐하고 관용하라.

 

4,5절을 보십시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바울은 형제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 기뻐하고 관용하라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것은 나 자신과의 관계성에서 오는 것이요. 관용하는 것은 성도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이요.

바울은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이나 반복하여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기뻐하는 것은 자연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기뻐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느 때든지 기뻐해야 합니다. 조건이 좋을 때든지 나쁠 때든지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 안에 쇠사슬에 매어 있습니다. 햇빛도 들지 않는 축축한 곳에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기뻐합니다. 예수님의 존재 자체로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힘으로 기뻐합니다. 예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기뻐합니다.

우리는 먼저 기뻐하였으면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알게 해야 합니다. 관용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관대하고 용납하는 마음입니다. 넓은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는 옳고 그른 것을 넘어서 그 이상의 것입니다. 좀더 멀리, 좀더 넓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렇지만 내일은 나아지겠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의 내면에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기쁨이 있어야 넓은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쁨이 있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용납하게 됩니다. 우리가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조금 잘못해도 웃고 넘깁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나를 좋게 대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웃는 사람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하는 가운데 서로를 용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관용을 알게 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관용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관용해야 하는 이유는 주께서 오실 날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끝 날이 가깝습니다. 우리가 죽음이 가까이 오면 가장 후회하는 것이 서로 관용하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죽으면 그를 비방하던 많은 사람이 그분에 대해서 관용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죽자 많은 사람이 관용하였습니다. 우리는 그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서로 관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일 죽는다면 우리가 서로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관용해야 주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관용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관용해야 합니다.

요즘 대선을 앞두고 어느 당을 지지 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싸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족 간에도 교회에서도 서로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싸웁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기쁨으로 민주당도 국민의 힘도 서로 인정하고 포용해야합니다. 사람은 숫자만큼 다양합니다. 서로가 다른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포용해야합니다.

 

(4) 평안함으로 하나 되라

 

6,7절을 보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바울은 하나가 되기 위해서 나와의 관계에서 슬픔을 극복하고 다음에 염려를 극복하라고 합니다. 염려를 극복하고 평안해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염려를 극복하기 위해서 기도해야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끊임없는 염려가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자신이 잘못한 것의 나쁜 결과를 염려합니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염려합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염려가 생깁니다. 자신의 명예가 떨어질 때 염려합니다. 맡긴 사람을 믿지 못해서 염려합니다. 자연 발생적인 것, 눈이 오고 비가 오는 것을 염려하고 죽음을 염려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바울은 하나님께 맡기는 표시로 기도와 간구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믿음의 표시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되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란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기도가 응답된 것을 믿고 미리 감사해야 합니다.

이미 이루어졌음을 확신하고 감사하는 것은 것입니다. 설령 우리가 믿는 대로 안 되어도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을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뛰어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믿어드릴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의 응답받은 증거를 주십니다. 기도를 응답받은 확신은 마음에 평강입니다. 이 평강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입니다. 이는 세상이 주는 평강과 다릅니다. 세상이 주는 평강은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영원한 평강입니다. 세상에서 빼앗아 갈 수 없는 평강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이런 평강이 있을 때 우리는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습니다. 관용을 베풀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측량할 수 없고 그 길은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두세 수만 보지만 하나님은 무한한 수를 보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계획 가운데 모든 일을 합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을 때 평안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감옥생활을 할 때 아무도 그곳에서 옥중서신이 써지고 그것이 성경이 될 줄을 바울도 누가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묘한 수로 이를 이루셨습니다. 공자도 궁즉통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여러 어려움이 그를 도통하게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여기서 지켜 주시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적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는 사자같이 우리를 공격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불신과 의심을 심어서 하나 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평강이 있으면 이런 사탄의 공격을 이기고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있을 때 사람들과의 관계도 평화롭게 됩니다.

 

결론 하나 되기 위해서 해야할 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 되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가 되어서 합심하여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하나 될 때 천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 되어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라는 것을 인식하고 예수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돕고, 서로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마음에 평안을 누리며 관용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bts를 좋아했던 두 사람이 결혼하여 하나 된 것처럼 우리는 주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상처를 받을 때 그것을 나의 문제로 생각하고 인격적이고 영적인 성숙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천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 되어 천국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021,12, 첫주 천안ubf 주일 메시지 어떻게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빌립보서 4장 강해 1부 어떻게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까?

말씀 빌립보서 41-빌립보서 47

요절 빌립보서 41"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1)

빌립보서 4장 강해 일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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