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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빌립보서 1장 강해 1부(1:1-11) 절대적인 감사와 기쁨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1 00:00:00
조회수 : 5,62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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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1장 강해 일부 절대적인 감사와 기쁨

말씀 빌립보서 11-빌립보서 111

요절 빌립보서 14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빌립보서는 옥중서신이며 사랑의 서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기쁨의 서신이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에 나오는 복음은 희락喜樂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빌립보서에는 기뻐하라는 말씀이 9번이나 반복하여 나옵니다. 기쁨이라는 말은 5번 나옵니다. 두 가지를 합치면 14번은 나옵니다. 바울은 비록 로마감옥에서 쇠사슬에 매여 있을지라도 기쁨이 넘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자신만 기뻐할 뿐 아니라 이 편지를 받는 빌립보 성도들에게도 함께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이런 기쁨 가운데 감사와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절대적인 기쁨과 감사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울의 절대적인 감사와 기쁨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짧은 인사말에 복음이 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디모데와 함께 감옥에 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좋은 동역자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바울은 과거 율법주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자기 의가 강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판단하고 핍박합니다. 그는 예수 믿는 자들이 율법을 파괴하다고 생각하여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였습니다. 스데판을 죽일 때 가편 투표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빛으로 오신 은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율법적인 생각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 커서 그는 예수님을 주인이요 그리스도로 모시고 예수님의 종이 되어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종이 되지 않고 자유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귀뚫은 종과 같이 스스로 평생 예수님의 종이 되어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종이 되어 사는 것이 자유롭고 행복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았고 자신도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종으로 사는 것이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바울을 책임져주셨습니다. 바울의 생명과 먹고 입는 것을 책임져주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바울이 뱀에 물리고 광풍을 만나고 돌에 맞아도 바울을 지켜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바울을 함께 하시고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세계선교 역사와 기독교 사상의 기초를 세우는데 귀히 쓰셨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빌립보에 있는 성도들과 감독과 집사들에게 편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바울처럼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주인으로 모시고 그를 믿음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빌립보 성도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존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거듭나 새 사림이 된 후부터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은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옷 입는 것이나, 먹는 것도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세상 사람은 권위로 명령하나 우리는 겸손히 섬깁니다. 세상 사람들은 빼앗는 자이지만 우리는 나누어주는 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음란하나 우리는 거룩한 자입니다. 세상 사람은 미워하고 복수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는 사랑으로 미움을 이기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는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 속에서 살게 하시고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안을 선물로 주십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과 함께 감독들과 집사에게 편지합니다. 감독은 빌립보의 목자들입니다. 집사는 말씀 교회의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섬기는 자입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항상 간구합니다.)

 

3,4 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바울의 편지는 감사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빌립보서의 감사는 다른 곳의 감사와 특이한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기쁨으로 감사한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지금 노년에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별로 기뻐할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니 기쁨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황제 시위대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혀서 주옥같은 옥중 서신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갇히자 밖에 있는 사람들이 더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어떤 사람은 시기와 분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쨌든 복음이 전해지는 것으로 바울은 기쁨과 감사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감사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기쁨으로 감사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빌립보 개척을 하면서 깊이 체험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의 귀신을 쫓아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종은 점을 쳐서 주인에게 많은 이익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종은 다른 사람의 과거를 알아맞추는 족집게 점장이였습니다. 사람들은 대학이나 결혼 상대를 선택하거나 사업을 시작할 때에 이 여종을 찾아와서 점을 치고 돈을 냈습니다. 주인은 여종으로 인하여 크게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귀신을 쫓아내자 이제는 점을 칠 수 없게 되고 주인은 그 많던 수입이 딱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이 모든 책임이 바울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은 무리를 선동하여 바울을 잡아가지고 관원들에게 가서 사회소란죄로 고소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옷을 찢어서 벗기고 매를 많이 쳤습니다. 그리고 발에 차꼬를 채워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어김없이 저녁 기도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와 같은 상황을 만났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할까요? "주님, 너무 억울합니다. 저에게 핍박한 저 무리들을 벌하여 주십시오. 평강의 하나님이 속히 사단을 우리 발 아래 상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이 무리들을 속히 벌하여 주십니다. 주님 언제까지 이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주님!!" 이렇게 부르짖다가 잠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바울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했다고 나옵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탄식의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참 기도하다 보니 하나님의 사랑이 다가오고 하나님의 은혜가 다가왔습니다. 마지막에는 바울은 감사와 기쁨으로 찬미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울은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했습니다.

바울과 살리가 무엇을 찬미했을까요? 과거 예수님을 핍박하던 자가 이제는 예수님 때문에 핍박 받는 자가 된 것을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복도 받지만 고난도 받는 것을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감옥에 갇혀서 차꼬에 채인 채 쇠사슬에 매인 손을 들어서 예수님처럼 고난 받게 하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거나 병을 고치면 기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인해서 좋은 학점을 받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하면 기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인하여 축복을 받을 때 뿐 아니라 고난을 받을 때도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홀연히 지진이 일어나고 문이 다 열리고 모든 사람들의 쇠사슬이 다 벗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간수와 그 가족이 예수님을 믿고 빌립보의 조상들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기쁨의 기도를 통해 이런 놀라운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바울은 기쁨으로 감사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기쁨으로 감사 기도를 하면 건강에 좋고 가정이 두루 화평해집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고난 중에 찬양할 때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함께 하여 주십니다. 때로는 터가 움직이고 옥문을 열고 쇠사슬을 벗겨지게 하는 기적도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지금도 로마감옥에 갇혀서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매를 맞고 감옥에 있으면서도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했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됩니다. 물론 로마 감옥에서는 바울이 기쁨으로 감사해도 하나님이 쇠사슬을 벗겨지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기뻐하며 감사하자 감옥도 하나님 나라로 변화되었습니다.

 

(우리는 감사와 기쁨으로 사는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할 뿐 아니라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야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 건수만 있으면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을 합니다. 그들은 물이 없다고, 먹는 것이 박하다고, 길이 험하다고 심지어 마늘과 후추를 먹지 못했다고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그러다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처럼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합니다. 절대 감사하고 절대 기뻐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뜻입니다. 절대 기쁨과 절대 감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복음 안에서 교제함을 감사합니다)

 

5,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개역성경에서는 이것을 복음 안에서 교제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많은 교제가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가족 간의 혈연을 중심으로 한 교제도 있고, 직장에서 일을 중심으로 한 교제도 있습니다. 그리고 낚시나 바둑과 같은 취미를 중심으로 한 교제도 있습니다. 아니면 남녀 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교제, 사업자와 고객 간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 교제 그리고 선생과 학생사이에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교제도 있습니다.

요즘을 sns를 교제가 많습니다. 나라 간에도 교제가 있습니다. 우방이 있고 나라들도 함께 전쟁에 참여한 나라를 혈맹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혈맹도 자기 유익이 되지 않으면 깨어집니다. 러시아와 CIS의 독립국가가 그렇고 미국과 월남이 그렇습니다. 이런 교제는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 교제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익이 될 때는 교제를 하다가 손해다 되면 해어지는 교제입니다. 이런 교제는 일시적이 교제입니다. 순수하지 못한 교제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제는 예수님 안에서의 교제입니다. 이는 예수님 외에 어떤 이해관계도 개입되지 않은 깨끗한 교제요. 영원한 교제입니다. 냄비처럼 팔팔 끓다가 식어버리는 교제가 아니라 뚝배기 같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교제입니다. 이는 남녀 간의 사랑보다 더욱 진한 교제입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교제입니다.

이런 대표적이 교제가 다윗과 요나단의 교제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사랑할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왕권을 사이에 두고 경쟁 관계였습니다. 세상에서라면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버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교제를 했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영원히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이 죽었을 때에 우리의 사랑이 여인의 사랑보다 더 진하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절뚝발이일지라도 끝까지 그를 돌보아 주었습니다.

복음 안에서의 교제가 이렇게 영원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 가운데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한다고 하였습니다. 부활하시고 영원히 살아계시며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교제를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교제는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영원히 지속되는 교제입니다.

 

(빌립보 성도를 사모합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복음 안에서 교제가 영원해야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이차로 투옥되자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떠났습니다. 디모데후서에 보면 다 떠나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독 빌립보교회는 달랐습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복음 전하는 은혜에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서 바울을 섬겼습니다. 바울이 갇혔을 때 돈을 보내 사식을 넣어 드리고 옷을 보내 주었습니다. 바울을 위해서 합심기도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생각할 때 마음에서 깊은 감사가 솟아났습니다. 바울은 이들이 마음에 항상 있었습니다. 바울을 이들은 인하여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빌립보 성도들도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우리도 특히 감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고난 중에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고난에 동참하고 기도에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이런 빌립보 성도들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공동번역에는 그리스도의 지극한 사랑으로 나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죽기까지 사모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영원히 사모하셨습니다. 바울은 그런 마음으로 빌립보 성도들을 사모하였습니다. 사모하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무엇이든지 좋은 것이 있으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하게 보입니다. 사랑하면 마음에 그 사람때문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우리도 고난 중에 나를 도와준 사람들을 생각하면 기쁨과 감사가 가득합니다.

지금까지 감사 기도하던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제목이 무엇입니까?

 

(허물을 알면서도 사랑해야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립보 교회는 사랑이 가득하였습니다. 바울은 그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더욱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은 지식과 총명으로 더욱 풍성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상대방을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뜨겁습니다. 상대방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이런 것을 보고 눈에 콩깍지가 쓰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허물을 알면 알수록 사랑은 식어집니다. 우리가 산을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답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추한 것과 같습니다. 부부 간에도 처음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나 가까이서 오랫동안 살다 보면 그 사람의 약점과 허물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사랑이 식어집니다. 이러한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닙니다. 거짓된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은 지식과 총명으로 더욱 풍성해진 사랑입니다. 그 사람의 약점까지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연약함을 알면 알수록 더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사 그의 허물과 약점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아내를 두 번이나 누이로 속이고 첩을 얻었어도 사랑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택하셔서 그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물고기 잡으러 갔을 때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참친구는 알면 알수록 좋은 친구입니다. 우리는 지식과 총명으로 오래된 친구를 사귈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한 사랑을 해야 합니다)

 

10,11을 보십시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지극히 선한 것은 가장 옳은 것,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바른 가치관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되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랑해야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사랑해야 합니다. 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랑해야합니다. 우리는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사랑해야합니다.

엘리는 자식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성전 안에서 음행의 죄가 있고 헌금을 도적절해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엘리는 그 자식들과 함께 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비누하스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서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동족이 모압여인들과 음행하고 우상을 숭배할 때 분노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진노하여 전염병으로 치시고 계시는데도 모암 여인과 음행하는 시므리를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분노로 사랑하였습니다. 그러자 전염병이 그치고 백성들이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을 그의 가문을 영원한 제사장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죄에 대해서 분노하는 것이 진실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 기초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의는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우리가 진실하게 사랑할 때 의의 열매가 맺힙니다. 열매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아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거룩하게 행함을 통해서 빛과 소금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십계명 말씀을 따라서 정의롭게 살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 속에서 정의가 있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우리가 정의롭게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자랑할 만한 영광과 찬송이 될 수 있습니다. 아들이 바르게 살면 이는 아버지의 자랑입니다. 우리는 정의롭게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쁨과 감사는 절대적이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기쁨과 감사가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뻐하지 못할 상황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환경과 조건이 많습니다. 예수님 믿어도 고난이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 믿는 자에게 더 고난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이런 고난에서도 절대적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고난을 하나님 편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연단하여 소망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십니다. 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이루어가십니다. 이 고난을 통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가십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생각할 때 고난 중에 기쁨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쁨과 감사를 찾으면 비록 광야 같고, 감옥과 같은 세상이라도 천국으로 변화됩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기적도 행하십니다. 면역력이 높아져 건강도 좋아집니다. 우리 모두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기도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빌립보서 1장 강해 일부 절대적인 감사와 기쁨

말씀 빌립보서 11--빌립보서 111

요절 빌립보서 14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빌립보서 1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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