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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빌립보서 2장 강해 3부(2:19-30) 이와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6 00:00:00
조회수 : 4,71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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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ubf주일메시지

빌립보서 2장 강해 3부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말씀 빌립보서 219-빌립보서 230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29)

 

정주영 현대 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때입니다. 전 현직 대통령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애도하는 이유는 그분이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주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졍주영씨와 같은 사람을 존중히 여깁니다. 이런 사람들을 존중히 여기는 데는 물질을 중시하는 물질적인 가치관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존중히 여겨야 할까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에게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추천하며 이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바울의 가치관,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교회에서는 어떤 사람을 존귀히 여겨야 할까요?

 

(1) 뜻을 같이 하는 자를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19,20을 보십시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바울은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기를 원합니다.

바울과 빌립보 성도들은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성을 맺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현재 감옥에 있습니다. 감옥에 있으면 답답합니다. 이곳저곳에 있는 사람이 그립습니다. 특히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그립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하였습니다. 사랑이란 가만히 있으면 생각나고 보고 싶은 것입니다.

또한 빌립보 성도들도 바울을 사랑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위하여 물질을 거두어서 자신들의 목자인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에바브로디도에게 얼마 동안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바울을 섬겨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책임목자를 얼마동안 보내서 섬기게 하는 것은 빌립보 교회에 많은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을 사랑해서 이런 희생을 기쁨으로 감당했습니다.

어떤 교회는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무관심했습니다. 어떤 교회는 마음으로는 기도했지만 물질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물질을 조금 보낸 교회도 있었지만 사람을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는 물질과 사람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 만큼 빌립보 교회는 바울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에게 보낸 목자 에바브로디도가 로마 감옥에서 바울을 섬기다가 병이 났습니다. 로마 풍토병인 열병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자신의 몸을 돌아보지 않고 섬기다가 병이 났던 모양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이 소식을 듣고 근심이 되었습니다. 바울도 자신을 섬기러온 에바브로디도가 병이 나자 큰 부담이 되었고 빌립보 성도들도 근심이 되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도 자신으로 인해서 빌립보 성도들과 바울이 근심하는 것을 인해 근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과 빌립보 교회는 에바브로디도를 위해서 일심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긍휼을 베푸사 에바브로디도를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바울은 속히 이 기쁜 소식을 빌립보 성도들에게 전하여 빌립보 성도들을 위로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의 위로 받는 모습을 보고 바울 자신도 위로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 듯이 바울은 현재 감옥에 갇혀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갈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대신하여 빌립보에 디모데를 보내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이 일에 특별히 디모데를 보내고자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도둑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손발이 맞아야 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손발이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바울과 디모데는 뜻을 같이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바울이 열정적이라면 디모데는 사색적이었습니다. 바울이 도전적이고 개척적이라면 디모데는 수습하고 안정되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바울이 주도적이라면 디모데는 협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동역을 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다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동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부부간에, 공동생활 룸메이트 간에 성격이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 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동역을 이룰 수 있습니다.

디모데처럼 동역을 하려면 뜻을 같이 해야 합니다. 어떻게 뜻을 같이 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과 디모데는 삶의 목적과 사명이 같았습니다. 그들은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마음으로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듯이 디모데도 진실히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같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 뜻을 같이 할 수 있습니다.

뜻이 같을 뿐만 아니라 디모데는 충성심도 있었습니다. 감정을 따라 행치 않고 바울이 맡긴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손발과 같았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를 믿고 보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고 충성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성도를 사랑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뜻을 같이 하여 충성스럽게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충성스러운 종이 있었습니다. 아브함의 종은 아브라함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결혼시키는 중차대한 일을 종에게 맡겼습니다. 그 종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아브라함의 종으로 그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더운 여름에 냉수와 같이 시원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 건설에 뜻을 같이 하여 힘쓰는 동역자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2) 고난 중에 함께 하는 자를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21-24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에 수고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구했습니다. 자기중심적이 되어서 자신의 유익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그리스도의 일을 구했습니다. 자신이 손해가 될지라도 그리스도의 유익이 되는 일을 구했습니다. 디모데는 자신의 일보다, 가정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했습니다. 자신의 직장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앞세웠습니다. 디모데는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을 하려면 자기 욕심, 자기 명예, 자기 유익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을 잘하면 칭찬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칭찬을 받기 위해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일을 하고 보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를 받기 위해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디모데는 이런 것을 다 버리고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였기 때문에 바울의 대리자, 협력자, 동역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부지런히 하고 열심히 하면서 자기를 알아달라고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찬송가 355장에 있는 것처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나님의 일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상급만을 바라며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디모데는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바울을 대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영적 아들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1차 전도여행에서 만났습니다. 디모데의 아비는 헬라인이었고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 로이스의 영향을 받아서 믿음이 깊었습니다. 디모데는 이런 외가의 영향을 받아서 신실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디모데를 데려다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형상이 새겨지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했습니다. 세상에는 일만 스승은 있으나 아비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를 가르쳐 주신 분은 많지만 낳아주신 아버지는 한 분입니다. 바울은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디모데를 사랑했습니다. 바울은 편지의 여러 곳에서 디모데를 내 아들아!’라고 부릅니다.

디모데도 이런 바울을 영적인 아버지로 대했습니다. 디모데는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듯이 바울을 모시며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빌립보, 데살로니가에 갔을 때도 동행했고 베뢰아, 고린도, 에베소는 물론 심지어 로마 감옥에까지 동행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부모님을 잘 모시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돈을 갖다 드리고 해외 여행을 시켜 드려도 소용없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있으며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그는 바울이 영광을 얻을 때만 아니라 고난을 받을 때도 함께 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힐 때도 함께 있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평상시에 함께 하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떠났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떠날 때에도 디모데는 바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울과 함께 하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후서, 골로새서, 빌립보서를 대필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훌륭한 비서 역할을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연단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디모데가 훈련과정을 통해서 인정 받았다는 말입니다. 오랜 경험을 통해서 여러 사건을 통해서 디모데의 됨됨이를 경험했습니다. 책망도 하고 칭찬도 해보았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시켜보고 그의 진실함을 알았습니다.

사람을 시험해 보려면 두 가지 시험을 해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돈을 주어서 어떻게 쓰나를 보고, 칭찬을 해주어서 교만해지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시험을 해보니 디모데는 훌륭했습니다. 10여 년 동안 시험을 해 보아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믿고 빌립보에 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현재 디모데를 보낼 수 없었습니다. 일의 형편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바울은 일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아서 디모데를 보내고자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한 마디로 자신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구하는 자요, 목자와 함께 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주의 일을 구하며 함께 하는 자를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현재 디모데도 빌립보에 보낼 수 없고 자신도 갈 수 없자 속히 에바브로디도를 직접 보내고자 합니다. 그러면 에바브로디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25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너희에게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바울의 형제)

 

다음으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먼저 형제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지금 초대 기독교의 대사도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지역 교회의 목자입니다. 나이도 바울이 휠씬 더 많습니다. 바울과 에바브로디도는 많은 나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형제로 대합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누구나 형제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대통령도 예수님을 믿고 수위도 예수님을 믿으면 둘 다 하나님 안에서 형제입니다. 요한이는 나의 아들이고, 나는 요한이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요한이와 나는 하나님 안에서 형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형제 된 자를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함께 수고한 자)

 

다음으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함께 수고한 자라고 합니다. 함께 수고한 자는 함께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무리 훌륭한 자일지라도 혼자서 섬길 수는 없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바울의 부족함을 도와 주었습니다.

 

(함께 군사된 자)

 

또한 함께 군사된 자라고 하였습니다. 군사된 자는 영적인 싸움을 함께 싸우는 자라는 뜻입니다. 특히 전쟁에서 전우애로 만난 사람은 관계가 깊습니다. 함께 목숨을 내놓고 싸웠기 때문입니다. 사단과의 싸움을 싸울 때도 목숨의 위협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이때 바울과 함께 하며 목숨을 내놓고 영적인 싸움을 싸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함께 고난 받은 에바브로디도가 사랑스러웠습니다.

 

(바울의 쓸 것을 돕는 자)

 

다음으로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의 쓸 것을 돕는 자였습니다. 바울은 현재 감옥에서 쇠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바울은 누군가의 섬김이 필요했습니다. 바울에게 음식이나 옷을 차입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바울과 다른 교회와의 연락할 자도 필요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이런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우리가 병들었거나 감옥에 갇힌 한 사람을 섬기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많은 수고와 내면성이 필요합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 년 이상을 섬기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랜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이렇게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섬기듯이 바울을 섬겼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형제된 자로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난 받으며 영적 싸움을 싸우고 우리의 필요를 돕는 자를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자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자, 고난의 때에 고난을 함께 한 자를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룻은 동서가 홀어머니를 떠나도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를 함께 하며 모셨습니다. 자신의 일보다 시어머니의 일을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룻을 귀히 여기고 다윗의 중조할머니로 삼아주셨습니다.

어떤 며느리는 시부모님을 모셨습니다. 시아버지는 자신을 가까이 모신 자식은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가끔 와서 용돈이나 주고 좋은 말해주는 자식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유산도 함께 한 자식에게 주지 않고 멀리 있는 자식에게 주었습니다. 시어비지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니만 남자 시아버지를 모신 며느리에게 냉대를 받고 있습니다.

예전에 사시공부할 때 열심히 뒷바라지 해주니 사시합격하니 다른 사람으로 갈아 타는 이야기들이 흔히 있었습니다.

우리는 미우니 고우니 하여도 우리와 항상 함께 하는 가족들, 지금까지 오랫동안 함께 한 교회의 동역자들을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귀한 사람은 평생을 같이 하는 부부입니다. 부부는 서로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가난하고 힘들 때 옆에 있어준 아내가 있고 남편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조강지처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3)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람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26-28을 보십시오.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하신지라.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성도들을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을 항상 생각하고 흠모했습니다. 이렇게 항상 사모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성도들이 자신이 병든 것을 알고 근심하는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이런 빌립보 성도들을 인해서 심히 근심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의 병 때문에 근심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 때문에 근심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인해서 근심했습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자신보다도 빌립보 성도들을 더욱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천국에는 젓가락이 길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것을 자기가 먹고자 하는 자는 젓가락이 입에 닿지 않기 때문에 먹지 못하고 굶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먼저 먹여 주는 사람은 모두가 배부르게 먹는다고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볏집을 나르는 의좋은 형제 이야기를 도덕책에서 읽은 것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형제는 함께 논밭에서 일을 하고 똑 같이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형 생각에 동생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밤에 몰래 동생 노적가리에 자신의 볏단을 옮겨다 놓았습니다. 그런데 동생 생각은 또 달랐습니다. 형은 자녀들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동생도 밤에 몰래 형의 노적가리로 볏단을 날랐습니다. 형제들 생각에 낮에 자신의 볏단을 보면 분명히 줄어 들어야 하는데 어제와 똑같았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이튿날 밤에 둘은 다시 볏단을 나르다가 서로 논 중간에서 마주쳐서 놀란다는 이야기입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형제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하나님 나라의 마음도 서로가 먼저 서로를 위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서로를 걱정해 주는 아름다운 마음을 보시고 에바브로디도를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서로를 위해 주는 마음이 있을 때 일을 하십니다.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속히 보내서 빌립보 성도들의 근심을 덜어주시기를 원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쁨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바울도 기뻐하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모두가 함께 기뻐하는 방법을 구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형편으로 보면 에바브로디도가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더욱 좋았습니다. 아직도 바울은 에바브로디도의 섬김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편안함보다도 빌립보 성도들의 근심을 덜어주고 기쁨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타인 중심이고 양 중심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을 배려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에바브로디도와 바울과 같이 남을 배려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러면 윌가 있는 그곳이 천국이 될 것입니다.

 

(4)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 자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29,30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존귀히 여겨야 할 좋은 예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한제임스선교사님을 오스트리아에 파송하면서 요절로 주었던 말씀입니다. 그 만큼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질병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던 사람도 자신이 감기에만 걸려도 다른 사람 섬기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섬김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는 달랐습니다. 그는 죽기에 이르렀어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섬겼습니다. 구체적으로 목자 바울을 섬겼습니다. 이런 에바브로디도는 충성심의 본을 보여줍니다.

이런 사람으로 로마서에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나옵니다. 이들은 바울과 함께 천막을 만드는 동업자입니다. 그들은 일을 하다가 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그들인 자신을 위하여 목이라도 내 놓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16) 그들은 물질과 시간을 희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목이라도 내놓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사형을 받을 때 대신 받을 수 있다면 대신 죽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삼하 2315절에는 다윗이 전쟁을 하는데 목이 말랐습니다. 그러나 물은 불레셋 진영에 있었습니다. 물을 떠 오려면 목이라도 내어 놓고 갔다 와야 합니다. 다윗의 세 용사는 이런 위협을 무릅쓰고 물을 떠왔습니다. 다윗은 피와 같은 이 물을 차마 마시지 못하고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이런 목숨을 내 놓은 에바브로디도는 예수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친구인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처절하게 죽을 것을 아셨습니다. 이렇게 죽음을 앞두면 이 때만큼은 다른 사람을 섬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에수님은 이런 때에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날 밤에 다락방에서 제자들을 위해서 밤늦도록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에 이르렀으나 자신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제자들을 섬겨 주셨습니다.

이런 모습은 심룻목자님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는 심룻목자님의 육신의 연약함을 잘 모릅니다. 심룻목자님은 죽음의 위협에서 살아났습니다. 지금도 많은 연약함이 있습니다. 차로 말하면 한번 큰 사고를 난 후에 여러 번 정비를 받은 차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양들을 섬겼습니다.

임마가 목자님은 직장 문제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세 자녀를 두고 물질 문제가 있을 때 얼마나 심적인 고통이 크겠습니까? 그러나 마가목자님은 그런 가운데도 양들을 돌보고 교회의 크고 작은 일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직장 문제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다른 분의 문제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런 분들을 귀히 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을 존중히 여겨야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떤 분을 존귀히 여깁니까? 어떤 분을 존경합니까? 교회는 정주영처럼 돈 잘 벌고 출세하는 사람을 존중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정주영 같은 사람을 존중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양들을 사랑하며 동역하는 사람들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함께 고난을 받고 평생을 함께 하는 자를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성도들의 사정을 먼저 생각해 주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를 존귀히 여겨야합니다.

교회에서 이런 자들을 존귀히 여길 때 교회에서 이런 자를 본받게 됩니다. 섬기는 분위기가 이루어집니다. 그럴 때 공동체가 하나가 됩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한 마디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겨야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에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는 자를 경멸히 여긴다고 하셨습니다. 엘리는 하나님을 경멸히 여겨서 망했습니다. 자식이 죄를 지었는데도 책망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겨서 존중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는 죄를 지은 사울을 책망하고 그가 잡아온 아각을 찍어쪼갰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주의 종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고생하시는 목자와 선교사를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멀리서 와서 예배를 섬기는 자를 귀하게 여겨야합니다. 우리가 힘들어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예배를 섬기고 양들을 섬기는 분들을 귀히 여겨야 합니다. 고난 중에서 우리와 함께 한 분들을 귀히 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한 마디) 하나님은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자

빌립보서 2장 강해 3부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말씀 빌립보서 219-빌립보서 230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29)

빌립보서 2장 강해 삼부 끝입니다.

천안ubf주일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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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빌립보서] 빌립보서 2장 강해 1부( 2:1-11)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오요한 2005-03-11
3 [빌립보서] 빌립보서 1장 강해 3부( 1:22-29)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오요한 2005-03-11
2 [빌립보서] 빌립보서 1장 강해 2부(1:12-21) 그리스도의 이름이 높아진다면 오요한 2005-03-11
1 [빌립보서] 빌립보서 1장 강해 1부(1:1-11) 절대적인 감사와 기쁨 오요한 2005-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