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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빌립보서 2장 강해 1부( 2:1-11) 너희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1 00:00:00
조회수 : 7,294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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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장 강해 1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21-빌립보서 211

요절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입니다. 흔히 기쁨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빌립보교회는 하나가 되지 못하여 기쁨이 부족하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그리스문화와 헬라문화가 공존하였습니다. 주인과 종들이 교회에 있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있었습니다. 특히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두 자매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공동체가 하나 되지 못할 때 기쁨이 많이 사라집니다. 사도바울은 이들에게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서 공동체가 하나 되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십니다. 우리 안에 행하시는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서 하나 되어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빌립보 성도들 서로 간에는 권면이나 사랑의 위로나 성령의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었습니다.

권면이란 격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실의에 빠져있을 때 예수님을 통하여 격려해야 합니다. 여러 번 실패하여 좌절해 있는 사람에게도 격려가 필요합니다. 피곤하고 지쳐 있을 때 격려를 해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비방으로 풀이 죽어 있는 사람에게도 격려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슬픔에 빠져 있을 때는 위로해야 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떠나거나 죽은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받은 것이 있을 때는 함께 은혜를 나누며 성령의 교제를 해야 합니다.

형제가 먹지 못하거나 헐벗는 등 도움이 필요할 때 예수그리스도의 긍휼이나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에게는 이런 아름다운 신앙의 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행할 때 약간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도울 때는 나는 우월하고 상대방은 열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잘 대해 주려고 교제를 했는데 오히려 상대방은 격려나 위로를 받지 못하고 상처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한번 도와주고 나서 동네방네 선전하고 다니면 도움 받은 사람이 상처를 받습니다.

김유정이 쓴 동백꽃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점순네는 마름 집이고 우리 집은 소작인입니다. 점순이는 나를 좋아합니다. 어느 봄날 초크렛 대신 따끈따끈한 감자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감자를 주면서 "니네 집에 이것 없지?" 생색을 내며 감자를 줍니다. 나는 자존심이 상하여 감자를 받지 않습니다.

과거에 저는 검정고시 학원에서 선생으로 있을 때 어느 아줌마 학생이 오랜만에 나를 찾아왔습니다. 오랜만에 왔기 때문에 반가왔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옛날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걱정하는 말로 "얼굴이 확 달라지셨네요."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아주머니의 안색이 갑자기 확 바뀌셨습니다. 많이 늙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시골에 와서 어렸을 때 보았던 할아버지를 90살 쯤 되어서 만났답니다. 옛날에 도 골골 하셨던 분이라 당연히 돌아가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정정하셔서 반가워서 "아직도 안 돌아가셨네요?"라는 인사가 엉겁결에 나왔습니다. 할아버지는 화가 나셔서 다시는 그 사람을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성도의 교제를 해야 할까요?

 

2절을 보십시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첫째, 같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같은 마음, 같은 사랑을 갖고 같은 뜻으로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서로 여러 가지가 다르지만 또한 같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은 10 개월만에 나오고 발가벗고 나옵니다. 목욕탕에 가면 다 똑 같습니다. 죽을 때 관의 가격이 다를 뿐 돌아가는 곳도 똑 같습니다. 이때는 빈부 신분 성별의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서로가 평등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월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우월의식을 버리고 교제해야합니다.

 

둘째, 감정을 공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같은 마음을 가질 뿐 아니라 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 마음을 갖는 것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마음을 갖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하나 되기 위해 제도를 고치고 형식을 바꾸고 서약서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 되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화 대부에서처럼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마시며 하나가 되자고 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 배신하고 나중에는 둘만 남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한 예수님을 믿고 한 성령을 받아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상대방의 실의와 슬픔과 고통에 동참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감정에 동참해서 위로해야 합니다.

성적이 떨어진 학생에게 가서 나는 믿음으로 해서 성적이 잘 나왔다고 하면 상대방은 더욱 열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도 너와 같이 과거 학사경고를 받았지만 믿음으로 장학생이 되었다고 할 때 너도 할 수 있다고 위로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못하는 사람에게 나는 믿음으로 기도를 잘 한다고 하면 오히려 더욱 비참함을 느낍니다. 나도 과거 3분뿐이 기도를 못했지만 지금은 오래 한다고 할 때 위로를 받습니다.

나는 일년간 실업자의 고통을 맛보았습니다. 11년간 질병으로 고통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한 마음을 품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첫째, 다툼이나 허영심을 버려야 합니다.

 

3a을 보십시오. "아무 일이나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당시에 빌립보에는 다툼과 허영이 있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서로 싸움을 싸웠습니다.

다툼은 이기심과 경쟁심을 의미합니다. 경쟁심은 상대방을 누르고 자신의 이름을 내고자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내고자 하는 이런 마음을 허영심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본성입니다. 그래서 유튜브 조회수에 관심을 갖고 구독자에 관심을 같습니다. 카페 회원수에 관심을 갖습니다.

사무엘서에 나오는 사울 왕은 다윗에 대해서 다툼과 허영이 많았습니다. 사울이 다툼과 허영이 있었을 때 그는 자신의 사위인 다윗을 원수로 여기고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자기도 망하고 결국 이스라엘 전체를 망하게 했습니다.

임진왜란 때의 원균도 이순신 장군을 다툼과 허영으로 대하다가 결국 큰 낭패를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선조도 이순신을 시기했다고 합니다. 역사상 이런 예는 허다합니다.

교회 내에서도 다툼과 허영심이 있으면 파벌이 형성됩니다.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고집하다가 교회의 하나 됨을 깨뜨립니다.

이런 허영심은 그 자신도 진실을 잃고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상실하게 합니다. 허영심은 화류계의 꽃과 같습니다. 웃음을 파는 여자와 같이 비천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에 따라 울고 웃는 삐에로 같은 인생을 살게 됩니다. 꽃이 떨어지면 없어지듯이 사람들의 인정이 사라지면 인생이 허무해집니다. 허영심을 가진 사람은 진실을 잃어버리고 자기를 과장합니다. 없는 것도 있는 척,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기 쉽습니다.

허영심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자기 영광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허영심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심히 기뻐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자기 영광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툼과 허영심은 버리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둘째, 서로를 인격체로 대해야합니다.

 

(3b)절을 보십시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겸손한 마음으로 각자 자신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상대방을 낮게 여기는 것은 교만이지만 낫게 여기는 것은 겸손입니다.

겸손은 비겁이 아닙니다. 비겁은 공포에서 생기는 것이지만 겸손은 자신감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비현실적으로 평가절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자기보다 못 생겼는데도 더 잘 생겼다고 생각하고, 공부도 더 못하고 돈도 더 적고 지위가 더 낮은 데도 공부도 더 잘하고 돈도 더 많고 지위도 더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타락했는데도 나보다 더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거짓된 생각입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은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경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수단으로 보지 않고 목적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덮어주고 좋은 점을 세워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 앞에서 나쁜 것은 상대방을 닮았다고 하고 좋은 것은 자신을 닮았다고 말하는 것도 우월감에서 나온 것입니다. 거꾸로 훌륭한 점은 상대방을 닮았다고 말해야 합니다. 나는 한없이 부족하지만 상대방 때문에 복을 받게 되었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가정도 직장도 교회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일을 돌보아야 합니다.

 

4a을 보십시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일을 돌봅니다. 자신의 일을 돌아보라는 말은 자신의 일을 자신이 하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일을 자신이 할 때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가정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공동 생활하면서 자기 빨래는 자신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식사 당번을 제대로 지켜야 합니다. 자기 일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는 서로 폐를 끼쳐서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나를 돌아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남을 돌아본 아름다운 일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한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이 농부는 산기슭에 논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침 일찍이 일어나 물을 댔습니다. 그런데 바로 밑의 논 주인이 물을 빼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아랫논 주인이 얄밉고 괘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 가운데 한 지혜를 발견했습니다. 먼저 그 집의 논에 물을 대주고 다음에 자기 논에 물을 댔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물도 빼 가지 않고 싸우지도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물을 빼 가던 사람이 회개하고 이웃집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볼 때 우리는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지난 번 성탄에 이어 이번 세계선교보고 대회에서 우리는 코로나로 고통하는 선교사들을 돕고자 헌금하였습니다. 우리는 일억오천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넘치도록 헌금하여 이억이 나왔습니다. 선교사를 돕고 남았습니다. 10월에 3차로 지원하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본국과 선교사들이 하나가 되고 ubf공동체가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 될 때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4b을 보십시오.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하나 되어 바울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기를 원합니다. 바울의 기쁨은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빌립보 성도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기쁨으로 기쁨이 충만해지기를 원합니다. 모두가 기쁨이 충만하려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하나 되게 위해서 기도하는 목적은 예수님의 기쁨이 그들 안에 있어 충만하게 하게 하고자 함이라고 하십니다.(요한복음1713)

 

(겸손하신 예수님을 배워야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가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겉으로는 자신이 심히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속으로는 그래도 내가 너보다는 낫다.’ 라고 생각합니다..

겸손해지는 최고의 비결은 겸손의 대가(大家) 예수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품는 것은 사려 깊게 생각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갖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첫째, 내 권리를 내려놓는 마음입니다.

 

6-8절을 보십시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스도의 마음은 자신의 권리를 내려 놓는 것입니다. 여기서 비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특권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부시보다 더 권세가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빌게이츠보다 더 부요하신 분십니다. 할로맨에 나오는 투명 인간보다 더욱 자유로우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동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이런 권세, 영광, 자유를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힘이 있지만 진심으로 무능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인간을 심판하실 힘이 있으시지만 인간을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버리는 것은 양들을 얻기 위해서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알면서도 모르는 자처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힘이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 사람과 같아지는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같아지는 것입니다. 사람과 같이 되었다는 것은 사람들과 같은 배고픔, 고통, 슬픔, 한계를 똑 같이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과 같이 된 것은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갈릴리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갈릴리 사람으로 히브리어를 쓰고 화장실을 가고 목욕탕을 가셨습니다.

다미안 신부는 몰로카이 문둥이 섬을 지나다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문둥이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문둥병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의 사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미안 신부는 하나님께 문둥이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문둥이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건강한 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문둥이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문둥이들이 감동하여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배사라 선교사님은 미국 미시시피에서 외동딸로 자랐습니다. 그는 당시에 자가용 비행기를 가진 집에서 자라셨습니다. 그런데 풍요로운 미국의 문화 생활을 버리고 60년대 한국 대학생과 하나 되었습니다. 연탄불에 밥을 해먹고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온돌방을 썼습니다. 그를 통하여 많은 대학생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셋째, 죽기까지 복종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한 마디로 죽기까지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복종은 순종과 다릅니다. 순종은 기쁨으로 하는 것이지만 복종은 납득이 가지 않지만 질서를 지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하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것은 목숨을 희생하기까지 절대적인 복종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절대 복종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종의 형체를 가지고 사시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십자가 형은 중죄인들만 받는 형벌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신 의인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 중의 괴수로 여김 받아 십자가에 높이 달리시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비방과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심지어 옆의 십자가에 달린 강도로부터도 무시를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는 모진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절대 순종의 본을 세워주셨습니다.

 

(복종을 통하여 받은 우리의 은혜)

 

이렇게 예수님이 절대 복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들이 받은 은혜는 어떠합니까? 예수님께서 낮아지심으로 우리가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죄인이 되심으로 우리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중죄인이 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슬픔의 사람이 되어 우리는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복종은 우리 인생들에게 가장 큰 축복이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죽기까지 복종할 때 공동체가 하나가 되고 기쁨이 가득해집니다.

 

(복종으로 예수님이 받은 은혜)

 

9-11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겸손하신 예수님을 가장 높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있는 자들과 땅 위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높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만유의 주 그리스도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종할 때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 모임을 지극히 높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복종할 때 하나님이 강하게 역사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려면 복종해야 합니다.

 

(복종의 중요성)

 

우리는 여기서 복종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의 피해는 매우 큽니다. 선악과를 한번 먹지 않은 것인데 인간에게는 상호간에 원망과 갈등이 왔습니다. 가난이 왔고 질병이 왔고 죽음이 왔습니다. 불평등이 오고 자녀를 생산하는 것이 고통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낙원을 상실하였습니다.

이런 인간을 구원하는 길은 순종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순종의 사람으로 키우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친척 아버지 집을 떠났습니다. 다 자란 이스마엘을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여 사랑하는 이삭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메시야를 보내시고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메시야의 탄생도 마리아의 복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처녀였습니다. 하나님은 처녀 마리아에게 임신하여 메시야를 잉태하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로서의 모든 자손심이 무너져야합니다. 심지어는 돌에 맞아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라고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표적을 복종을 통하여 이루셨습니다. 가나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시고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갔다 주라고 하였습니다. 하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것도 순종을 통해서입니다. 그는 밤이 맞도록 그물을 내렸지만 잡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피곤하고 지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게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만났습니다. 제자들의 위대한 점은 순종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순종하여 나아왔습니다.

 

(나 오요한의 복종으로 받은 은혜)

 

나는 천안에 목자로 와서 일년이 지났지만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육개월 동안 만성 설사를 하고 양들은 떠나고 직장도 없었습니다. 나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낫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순종을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28절 말씀을 잡고 순종을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에는 너희를 인도하는 자에게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복종해야할 분은 당시에 나를 인도하는 홍보나 목자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보나목자님을 통해서 나에게 학원에 직장을 알아보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학원에 직장을 알아보고자 이력서를 하나 복사하여 충청도의 모든 학교와 학원에 돌렸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세 곳의 학원에서 연락이 오게 하시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도우셨습니다. 학원에서 크게 높여주셨습니다. 한 사람 아브라함을 세우는 일도 순종하여 도왔을 때 하나님이 친히 세워주셨습니다. 건강도 덤으로 주셨습니다.

 

(조덕삼 이자익이 복종으로 받은 은혜)

 

이자익은 조덕삼씨의 집에 머슴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조덕삼과 이자익이 장로로 추천을 받았는데 이자익 머슴이 먼저 장로가 되었습니다. 조덕삼이 교인들 앞에 나가서 교회와 세상은 다르다고 말합니다. 이자익을 장로로 모시고 순종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자익도 교회에서 나오면 종으로서 주인 조덕삼에게 순종하였습니다. 당시에 교회에 오면 장로가 치리권과 말씀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덕삼은 이자익을 평양으로 보내서 목사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 후에 금산에 초청하여 목사로 세웠고 조덕삼은 장로로 서로 아름다운 순종을 하였습니다. 조덕삼은 국회워원 조세형씨의 할아버지입니다. 이자익은 장로교 총회장을 연임하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순종할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도 사람이고 슬픔과 고통을 주는 것도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쁨이 충만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될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마음이고, 다른 사람과 같아지는 마음이고,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복종하는 마음입니다. 그때 우리의 삶에 기쁨이 충만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이번 대학로와 함께 하는 여름수양회도 저는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일하시는 것을 봅니다. 여름수양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빌립보서 2장 강해 1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21-빌립보서 211

요절 빌립보서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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