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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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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66권강해서

빌립보서 2장 강해 2부(2:12-18) 우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03-11 00:00:00
조회수 : 5,695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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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2장 강해 2부 우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

빌립보서 212-빌립보서 218

요절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하나 됨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 됨은 하나님의 신비로운 역사입니다. 하나 될 때 성령님께서 일하십니다. 양들도 성장하고 학과 공부도 승리하고 직장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 될 때 기쁨과 행복이 넘쳐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말로 하나 되자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회를 열고 맹세를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성숙해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내면이 희생적인 내면으로. 교만한 내면이 겸손한 내면으로 변화되어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해서 인격적으로 성숙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하는 것은 내 안에서 계시는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여 인격의 성숙을 이룰 수 있고 그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소원과 능력을 주시고 행하시는 하나님께 복종하여 사는 가운데 하나 되고 기쁨이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성령님께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해야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 성도들은 목자 바울이 함께 있을 때 항상 복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목자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지금 빌립보 성도들은 자신의 육신의 소원을 좇아 살기 쉬웠습니다. 목자가 있을 때는 저녁 기도나 새벽 기도를 열심히 했지만 목자가 없다고 기도 시간에 오락을 하거나 늦잠을 자기가 쉬웠습니다. 심지어 예배에도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信仰生活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인데 이것은 사람을 바라보는 인앙생활人仰生活입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있는 공통되는 문제입니다. 한번은 흰돌산 수양관에서 교회의 직분자 수양회를 했습니다.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은 장로나 집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사 목사님이 점심 때 산에 잠시 바람을 쏘이러 산에 올라갔더니 그곳에서 장로님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있더랍니다. 그들은 목사님이 보지 않는다고 몰래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들은 목사는 두려워하였지만 마음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 사람의 진실을 알려면 아무도 없을 때 하는 모습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집에 가서 기도하는 사람은 진실한 기도의 종입니다. 형제자매들이 없는 군대에서 갈급함으로 성경 말씀을 읽는 사람은 말씀의 종입니다. 아무도 없는 밤에 컴퓨터 앞에 앉아서도 죄악된 것을 보지 않는 사람이 순결한 사람입니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입니다. 이런 분들은 마음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현재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여 우리의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떨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두려워하고 떨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가장 크신 분으로 높여 드려야 합니다.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을 직장 상사나 부모님이나 교수님보다 더 높여 드려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는 두려워하고 떨지만 성령님 앞에서는 두려움이 없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참된 신앙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여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 죄와 사망에서 영혼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심판에서 영생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습니다.

미래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의 몸이 부활하여 새하늘과 새땅에 사는 완전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현재에 혼의 구원을 이루라는 말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이 세상에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 가기까지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단은 연약한 육신을 이용하여 우리를 끊임없이 시험합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님의 소원과 육신의 소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성령님의 생각을 하고 성령으로 육신의 행실을 죽이는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구원을 이루라에서 이룬다는 것은 계속 꾸준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중지하지 말고 계속해서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구원을 이루는 것은 날마다 믿음이 성장하고 인격이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는 담배를 피워야 하는가 술을 먹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갈등합니다. 믿음이 성장하면 주일 예배 참석하는 문제, 헌금을 드리는 문제로 고민합니다.

믿음이 더욱 성장하면 이제는 내면의 죄와 싸우게 됩니다. 혈기를 극복하고 온유하게 살고자 하고 음란을 극복하고 순결하게 살고자 하고 탐욕을 극복하며 자족하며 살고자 합니다.

편히 살고 싶은 소원과 십자가를 지기를 원하는 성령님의 뜻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더욱 성장하면 명예 문제와 갈등합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자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이름만을 드러내고자 하는 성령의 소원에서 갈등합니다.

이런 갈등 속에서 성령님께 복종하면 마음에 생명과 평안이 있습니다. 성령님께 복종하지 않고 육신의 소원을 따라 살면 사망권세인 두려움과 절망과 슬픔이 찾아옵니다.

좀더 자고 싶은 소원에 져서 기도를 하지 않으면 패배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소원에 순종하여 육신의 소욕을 이기고 기도하면 성공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을 드러내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져가십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소원에 복종하여 자신을 감추고 하나님만 드러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열매로 주십니다.

이렇게 내면의 죄와 싸우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죄 문제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 이기심과 교만을 죽이고 성령의 소원에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는 가운데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이 가득한 가정과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사랑이 가득한 교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가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 되고, 사랑이 가득 찰 때 하나님이 친히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룰 때 불신자들이 이곳에 나오고 날마다 구원받는 자의 수를 더하게 하십니다. 아름다운 가정 공동체를 이룰 때 자녀들이 보고 나도 부모님이 믿는 예수님을 믿고 싶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성령님으로 오셔서 행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신다는 것은 강력하게 효과적으로 일한다. 강력한 구원의 에너지를 공급하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계속해서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은 우리 속에서 강력한 힘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부터 두신 고귀한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신 뜻을 발견하고 그 소명에 복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결코 다른 사람의 인생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각자가 나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괴로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고유한 뜻을 영접하고 행하면 됩니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우리 안에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믿고 두렵고 떨림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은 시작과 중간과 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강권적으로 일하십니다.

저는 24년째 절대적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제가 잘나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그렇게 하도록 소원을 두고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항상 괴롭습니다. 현실에서 그런 괴로움을 받느니 차라리 기도의 고난을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담배나 술을 끊도록 우리 속에서 강권적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강권적으로 일하십니다. 주일 예배에 나오도록 강권적으로 일을 하십니다. 한 형제는 예배에 안 나왔을 때 심한 위경련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위경련을 당하고 나서 주일예배에 나오지 않은 것을 회개했습니다.

존경을 받는 성자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겸손한 인품에 감동을 받은 제자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겸손하십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자네가 모르는 한 가지 사건이 있지이는 하나님께 한 번 호되게 맞은 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로 겸손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사단의 가시를 두고 일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서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영접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 자신도 나 자신에 대해서 소원을 포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은 나에게 소원을 거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38년 동안 고질병으로 낫지 못하는 병자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는 자신의 질병치료에 대해서 소원을 상실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에게 병이 나을 것이라는 소원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에수님은 그에게 소원을 불러 일으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소원을 두고 그가 일어나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소원을 두고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소원을 알고 성령님께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에서 이스라엘을 연단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소원에 복종하지 않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한 사람들만이 남은 자가 되어 구원역사에 쓰임 받았습니다. 이번 여름수양회도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루시고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믿고 순종한 사람들만이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께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여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나야 합니다)

 

14-16절을 보십시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이 시대는 반항적인 세대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세상은 선악의 기준을 상실했습니다. 세상은 쾌락과 돈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세상은 삐뚤어져 있습니다. 거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빛들로 좋은 영향력을 나타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물고기는 바다의 짠물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바다 고기는 하루 종일 짠 바닷물만 마시기 때문에 당연히 짤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다 고기는 짜지 않습니다.

또한 흙탕물에 24시간 몸을 담고 사는 연은 마땅히 더러운 꽃을 피워야 옳습니다. 그러나 연꽃이 더럽습니까? 연은 더러운 진흙탕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밤이 어둡다고 별빛조차 어둡습니까?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별빛은 찬란히 빛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비록 시대가 혼탁하고 죄악된 세상이라 할지라도 시대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우리 속에 계신 성령의 소원에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면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나게 됩니다. 선한 영향력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빛들로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성령님께 복종하는 세 가지 삶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먼저는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종속적인 노예근성을 가진 사람이 원망을 많이 합니다. 내가 다스리는 존재로 살아갈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피해 보았다고 할 때 시비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우리는 시비를 따지기보다는 하나님께 판단을 의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판단하시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옳은 자의 편을 들어주시고 상을 주십니다.

다음으로 흠이 없고 순전하게 살아야 합니다. 흠이 없다는 것은 책망 받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비방 받을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뇌물을 받았다든지 스캔들이 있다든지 컨닝을 한다든지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지 말고 하나님만을 순수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런 시대에 생명의 말씀을 밝혀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힌다는 것은 각주에 보면 생명의 말씀을 붙잡는다는 뜻입니다. 신자들이 캄캄한 사회를 밝히는 빛들로 나타나는 방법은 생명의 말씀을 굳게 붙잡는 것입니다. 말씀을 삶의 가치관으로 삼고, 그대로 실천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잡으면 말씀이 우리를 잡아주십니다. 그러면 빛들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빌립보 성도들이 말씀을 밝히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그들이 바울의 자랑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희생해도 빌립보 성도로 기뻐합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바울과 빌립보성도들이 어떻게 성령의 소원에 복종하여 빛들로 나타나게 사는지 간증합니다.

빌립보 교회만이 감옥에 갇히 바울을 피와 같은 물질로 도왔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사랑하여 물질로 바울이 셋집에서 세를 내고 생활비를 쓰도록 도왔습니다. 목자인 에바브로디도를 보내 바울를 섬기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믿음의 삶을 하나님께 드린 희생 제물로 보았습니다.

바울은 거기에 자신의 삶을 술을 붓듯이 전제로 드리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전제로 드려도 기뻐한다고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위해 마음으로 기쁨에 넘쳐 자신의 피흘려 생명까지 희생하고자 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사랑했고 바울도 빌립보 성도를 사랑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온전한 희생입니다. 가장 큰 사랑은 목숨까지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희생하면서도 기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바울은 사랑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면서 기쁨의 극치를 맛보고 있습니다.

이 기쁨이 바로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스스로 원하셔서 기쁨으로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도 바울과 함께 바울의 기쁨에 동참하라고 말합니다. 빌립보 성도들도 바울을 사랑하여 물질을 희생하고 목자를 보냈습니다. 그러니 바울을 인하여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들도 사랑하는 바울과 함께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바울과 빌립보 성도가 서로 희생하고 기뻐하는 것이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 될 때 그들은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의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내면이 성숙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내 안에서 살아계신 성령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나에게 두신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소원에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원망과 시비를 버리고, 흠없고 순전하고, 말씀을 붙잡으며 살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에서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여 기쁨으로 희생할 때 우리는 진정 하나 되고 기쁨이 가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기뻐하고, 우리도 기뻐하고, 우리를 보는 사람들도 기뻐하고 모두가 기뻐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기쁨의 공동체로 나올 것입니다. 아멘!

 

빌립보서 2장 강해 2부 우리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

빌립보서 212-빌립보서 218

요절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빌립보서 2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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