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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도행전 28장 강해 일이부 로마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의 전파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10-16 00:00:00
조회수 : 3,477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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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8장 강해 일부 멜리데 섬에서 복음 전파

사도행전 281-사도행전 2815

요절 사도행전 28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하나님은 바울에게 로마 선교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찾아오셔서 예루살렘 감옥에 있을 때 그리고 광풍을 만나 표류할 때 두 번이나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는 도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죽이고자 하였고 풍랑을 만나서 절망할 때도 있었고 뱀에게 물리기도 하였습니다. 사탄은 여러모로 하나니의 역사를 방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소망대로 바울을 보호하시고 드디어 바울을 로마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자신의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면서 사도행전은 마치고 있습니다.

 

(멜리데 섬에서의 영접)

 

“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2.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누가와 바울 일행이 도착한 섬은 멜리데 섬이었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육지에 상륙하고 난 후에야 그곳이 멜리데라는 섬인 것을 알았습니다. 멜리데는 오늘날의 말타섬입니다. 이 섬은 시실리 남쪽 약 98Km, 아프리카 북동쪽 약320Km 지점에 위치한 섬으로, 전체 길이가 약 29Km 되고 너비가 15Km 정도 되는 작은 섬입니다. B.C. 1000년경 페니키아인들은 이섬에 이주하여 식민지를 건설하였으나 B.C. 218년 로마가 제 2차 카르타고 전쟁 초기에 이곳을 점령하여 다스려왔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 섬을 관할하는 행정관을 세웠습니다. 행정관의 명칭은 멜리데의 자치에 있어서 모든 일을 관할하는 우두머리라는 뜻의 멜리테시움 프리무스 옴니움이었습니다. 이 섬에 많은 수의 퇴역 군인과 그들의 가족들을 이주시켰기 때문에 이 섬은 상당한 번영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바울 일행이 멜리데섬에 도착함으로 반드시 한 섬에 도착하리라 바울의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27:26).

비가 오고 날이 차자 원주민들은 특별히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서 바울 일행을 영접하였습니다. 원주민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이 바르바로이는 의성어로 멜리데 섬의 토착민들이 사용하는 페니키아어가 바르(Bar) 바르(Bar)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원주민은 토인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이 단어에서 영어의 야만인(Barbarian)이 파생되었습니다. 헬라인들이 원주민이라고 쓸 때는 헬라 민족이 아닌 타민족을 가리킵니다(1:14). NIV에서는 섬 사람들(islanders), RSV에서는 원주민들(natives)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섬에 사는 사람들은 배에서 내린 바울 일행에게 적대 행위를 하지 않고 동정을 베풀어 불을 피워준 뒤 추위에 지친 몸을 녹이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그들은 일상적인 것이 아닌 특별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친절도 한 섬에 가서 구원을 받는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였습니다(27:24, 25). 여기서 우리는 누가와 바울과 함께한 기독교인의 소그룹을 뜻합니다. 276명 전체가 하나의 불을 피워 놓고 둘러앉아 몸을 녹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적당한 규모로 무리를 지어 불을 지폈을 것입니다.

 

(독사에게 물린 바울)

 

“3.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들어서 불에 넣자 나무에서 독사가 나와서 바울을 물었습니다. 계속해서 불을 피우려면 많은 나무가 필요했으므로 사람들은 불을 쬐는 틈틈이 마른 나무를 주워 모아 넣었습니다. 바울은 죄수 신분이며, 그의 성실한 생활 태도 때문에도 열심히 마른 나무들을 주워다 넣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마른 나믓가지를 한아름 주워다 불에 넣고 옆에 앉아 불을 쬐려니까 그 나무 속에 있던 독사 한 마리가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뛰어나와 바울의 손가락을 물었습니다. 여기서 독사는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들에게 사용한 독사라는 단어입니다.(3: 7 3:7), 예수께서도 유대인들에게 독사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12:34 23:33). 독사는 바울을 물고 놓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는 그 섬에 독사가 없는데 독사가 멸종된 것 같습니다.

원주민들은 독사에 물린 바울을 보고 살인자라고 하였습니다. 바다에서는 구원받았으나 신이 바울을 죽인다고 하였습니다. 원주민들은 틀림없이 바울이 독사에게 물린 것을 확인했고 따라서 그가 죽는 것은 자명한 사실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바다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왔으나 끝내 독사에게 물려 죽게 되는 것은 필경 그가 살인자이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들은 공의가 바울에게 진노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공의(디케)라는 표현은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인과응보적 정의의 신을 말합니다. 정의는 멜리데 섬의 토속신의 하나입니다.

 

(독사에게서 구원받은 바울)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그러나 바울이 뱀을 떨어버린 후에도 바울은 죽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조금도 상함이 없었습니다. 바울이 뱀에 물렸을 때 바울은 담대하였습니다. 수많은 고난을 견뎌낸 믿음의 용장입니다. 바울은 당황하지 않고 태연히 손을 흔들어 뱀을 불속에 떨어버렸습니다.

바울은 독사에게 물렸고, 원주민들은 바울이 죽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바울에게는 독사에 물린 증상이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1618의 약속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뱀이 물어도 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뱀에 물렸으므로 당연히 그의 손이 부어오르고 조금 있다가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는데 그들이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그 원주민들에게는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원주민들은 달리 해명할 길이 없게 되자 바울더러 신()이라고 칭하였습니다. 신의 심판을 받은 자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했던 그들이 이제는 정반대로 바울을 정의의 신이라고 말합니다. 멜리데섬의 원주민들은 루스드라에서(14:11-18)와는 달리 바울을 신으로 경배하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신이라는 그들의 말은 바울이 신의 사랑을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뱀에 물렸으나 기적적으로 생명을 잃지 않은 클레오메네스에 대해 신이 사랑하는 자라고 묘사한 풀루타크의 기록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생각에 분노하지 않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고 그분의 은총을 입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를 하나님처럼 높여주십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로마에서 복음 전할 것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바울을 살려주셨습니다.

 

(섬의 책임자 아버지 병을 고친 바울)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섬에 가장 높은 보블리오라는 사람이 바울 일행을 영접하여 사흘이나 대접하였습니다. 제일 높은 사람이 이 이 섬의 최고의 행정책임자입니다. 누가가 석 달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친밀한 관계가 형성 되었으므로 이름을 기록하였습니다. 아무튼 이 사람은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 영접하여 사흘간 친절한 대접을 하였습니다. 아마 이 사람은 꽤 많은 토지를 소유하여 소작인들을 거느릴 만큼 여유가 있었습니다.

보블리오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바울이 그를 위하여 안수 기도하여 주었습니다. 그러자 병이 나았습니다. 열병은 멜리데와 지브랄타의 지중해 해역에 오랫동안 널리 퍼져있던 말라리아와 같은 것입니다. 이 열병에 걸리면 그 고통이 주기적으로 찾아오는데 보통 4개월 이상 고통을 당하였고 긴 경우에는 2-4년간 지속되기도 했고 심하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병이 멜리데의 염소 젖을 먹고 발병한다는 것과 그 병원체가 미생물 마이크로코쿠스 멜리텐시스라는 것이 887년 의학적으로 규명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블리오의 부친이 앓고 있는 또 다른 질병 이질은 곱똥이 나오고 뒤가 잦은 질병입니다. 의사인 누가는 보블리오의 부친이 앓고 있는 질병을 정확하게 진단하였으나 병을 고친 것은 바울의 기도를 통해서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병을 고침으로써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섬의 병자를 고치고 도움을 받음)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하나님은 보블리오 부친의 병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섬에 병든 많은 사람들을 바울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이들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보블리오의 부친을 고친 소문은 멜리데 섬 전체에 금방 퍼져 나갔고 그리하여 다른 병자들도 바울에게 몰려들어 병고침 받기를 원했습니다. 고침을 받았다는 말은 의학적 술어입니다. 예수님의 치유 행위에 대해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6 :18 참조). 누가도 병자의 치료에 참여하였을 것입니다. 바울의 힘을 빌지 않더라도 누가가 가볍게 치유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치유의 중심이 바울이라는 것입니다. 치유를 받았다는 의학적 표현은 바울의 이적적인 치유가 의학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은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도 마가복음 16장 믿는 사람들에게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구원역사는 하나님이 친히 이루십니다.

섬사람들은 병을 고쳐준 것에 감사하여 바울 일행에게 쓸 것을 공급하여 주었습니다. 바울 일행과 섬 사람들 사이에 매우 아름다운 사랑의 행위들이 있었습니다. 후한 예는 고마운 행동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표현입니다. 섬 사람들은 바울 일행이 머물 때 뿐만 아니라 떠날 때에도 항해에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식량과 의복 같은 필수품들을 제공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바울 한 사람에 의해 그와 함께 있던 275명의 사람들도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시고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해 주는 것입니다(27:24). 바울에게 병을 치료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셨습니다. 바울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이 되십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독사의 독을 이기시고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바울을 이스라엘과 이방인에게 증거로 삼고자 하셨습니다. 이제는 가이사에게 증인으로 삼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바울의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바울이 만난 예수님을 만나야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서 당신의 증인이 되는 자를 돌보시고 당신의 증인을 통하여 능력을 행하십니다.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남)

 

“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석 달 후에 겨울을 나고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그들은 로마로 떠났습니다. 당시에는 선박들이 겨울철 3개월 동안 항해를 중단하는 게 일반적인 통례였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로마를 출발하여 가이사랴로 가는 사절들이 겨울철 항해 중지 기간으로 인해 3개월간 중간에 머물러야했습니다.

항해가 재개되는 시기에 대해서는 28일에 서풍이 불면서 시작되었습니다. 310일까지는 먼 항해가 불가능했습니다. 2월 초순경에 항해가 시작된 것으로 볼 때 바울 일행이 탄 배가 태풍을 만나 파선당한 것은 11월 초순경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수라구사 레기온 보디올을 지나서 로마에 도착하였습니다. 바울 일행은 마침 그곳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지낸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 배는 멜리데 섬의 발레타 항구에서 겨울을 지냈을 것입니다. 그 배도 곡물 수송선이었으므로 백부장과 죄인들일 것입니다.

누가는 이 배의 이름을 디오스구로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디오스구로는 제우스와 레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 카스토르와 폴룩스를 가리킵니다. 이들 쌍동이 별자리 제미니는 폭풍 가운데서도 안전하게 해주는 항해의 수호자로 여겨졌습니다. 아마 이 배의 앞 머리 양편에는 이 쌍동이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그 아래 디오스구로라는 명칭이 씌어 있었을 것입니다.

 

(수라구사에서 사흘)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수라구사 도시는 시실과 섬의 수도로 섬의 동해안 남쪽에 있는 중요한 항구입니다. 멜리데로부터 약 150K 떨어져 있고 성의 둘레가 35Km 되는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는 유명한 수학자 아르키메테스의 고향으로도 유명합니다. B.C. 734년 고린도인들이 식민지로 건설하였고, B. C. 212년 이후로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멜리데에서 불어오던 남풍이 멈추었거나 심한 역풍을 만나서 짐을 내리고 새 짐을 싣고 가기 위해서 멈추었을 것입니다.

 

(레기온과 보디올)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레기온에서 하루를 머물렀는데 레기온은 오늘날의 레기오 디카라브리아로 메시나 해협의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있는 항구입니다. 지리적 위치상 중요한 항구로 여겨졌으나 현재는 폐항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남풍이 불기를 기다리며 하루를 묵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남풍이 불어 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레기온에서 340Km 떨어진 보디올까지 이틀만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보디울은 작은 샘이라는 뜻을 가지며 오늘날은 포주올리라고 부릅니다. 보디올은 나폴리 만에 위치한 네압볼리의 외항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수송해온 곡물들은 이곳에서 내려져 내륙으로 운반되었습니다. 보디올에 도착함으로써 바울은 긴 해상 여행을 끝내고 로마를 목전에 두게 되었습니다. 이제 로마까지는 불과 220Km 밖에 안 남았고 그 정도의 거리는 건강한 장정이 아피오도로를 통해 걸어서 오 일이면 갈 수 있었습니다. 보디올에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물렀습니다.

 

사도행전 28장 강해 일부 멜리데 섬에서 복음 전파

사도행전 281-사도행전 2815

요절 사도행전 286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사도행전 28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사도행전 28장 강해 이부 로마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 전파

사도행전 2816-사도행전 2831

요절 사도행전 2830절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바울은 드디어 로마에 도착합니다. 로마에 도착하여 바울이 한 일은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 작은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로마와 세계를 변화시키는 놀라운 일을 이루셨습니다.

 

(로마 형제들의 영접을 받은 바울)

 

“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바울은 그토록 가고자 하였던 로마에 도착하였습니다.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바울을 맞으러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나오자 바울은 이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로마에서 자립적으로 믿음을 지키고 신앙생활하고 있는 그들의 믿음이 너무나 귀하고 감사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담대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낯선 곳에 갈 때 그곳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이 뜨거운 사랑으로 영접하여 줄 때 우리는 위로와 담대함을 얻습니다.

압비우스 광장은 로마로부터 65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압비아 대로상에 있습니다. 이 대로는 B.C. 312년 로마의 감찰관 압비우스 글라우디오가 이 도로의 건설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입니다. 이 도로는 로마로 향하는 길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도로의 하나로 로마의 장군들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의 입성을 할 때, 군중들이 열열한 환영을 하며 맞이하던 길이었습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몸으로 그 길을 걷고 있지만 사실상 그 길은 복음으로 로마를 정복하기 위해 들어가는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바울을 영접한 이들은 바울이 그토록 중보기도하고 편지를 보냈던 그 형제들이었습니다. 우리가 같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만날 때 힘을 얻게 됩니다.

트리온타베르논은 의역하면 삼관(三館) 즉 세 개의 숙소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로마로부터 50Km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두 곳에서 바울을 맞기 위해 기다려고 있었습니다. 바울과 로마 성도들과의 만남은 매우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바울로서도 일찍이 와 보려고 했었던 곳에 왔습니다. 로마는 주님께서도 그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소명과 약속을 주신 곳입니다. 그가 로마에 온 그 기쁨과 감사가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곳 로마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어서 그를 환영해주었으니 마음이 든든했을 것입니다. 맞으러 왔다는 단어는 아판테신으로 어떤 도시의 대표단이나, 왕이나 장군을 맞이할 때 쓰는 말입니다. 로마의 성도들이 바울을 하나님의 위대한 사도로서 얼마나 뜨겁게 환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기독교인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음으로 해서 낯선 곳에 대한 어색함이 없어지고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이 생겼습니다.

 

(로마에서 가택연금)

 

“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자 바울을 지키는 한 명의 군인과 함께 바울을 따로 있게 허락하였습니다. 드디어 바울이 로마애 당도했습니다. 오래된 서방 사본에는 백부장이 죄수들을 시위 대장에게 넘겨주었다는 문구가 첨가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항소를 하였으므로(25:11) 황제 휘하의 부대 책임자에게 넘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누가는 중간 과정에 대한 자세한 언급 없이 바울이 한 군사에 의해 따로 감시를 받게 되었다는 결과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몸센에 의하면 군인에 의해 따로 감시받게 한 것은 감옥에 감금시키는 것보다 가벼운 형벌이었습니다. 아마 거기에는 베스도의 긍정적인 조서(25: 25 26: 32), 그리고 호송 책임자였던 율리오가 바울에 대해 경험한 대로 작성한 긍정적인 보고서 등이 작용했을 것입니다. 로마법에 의해 군인의 한 손과 바울의 한 손이 사슬에 묶인 상태였는지 아니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사람들을 초청하여 대화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자유가 허용된 것을 볼 때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했던 것 같습니다.(17-23).

 

(유대인들에게 로마에 죄수로 온 경위를 설명함)

 

“17.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8.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사흘 후에 바울은 유대인들 가운데 높은 사람을 다 청하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 중 지도자급 되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하나의 통합된 공동체 기구를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초청한 이들은 개별적 공동체들의 장로, 지도자, 회당장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로마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마카비 시대(B.C. 166-63)부터 였고, B.C.63년에는 폼페이가 유대의 독립운동을 진압한 후 많은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오기도 했습니다. 로마에는 제법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실례로 B.C. 6년 유대인들이 헤롯 아켈라오의 폭정을 로마에 고소하기 위하여 50명의 대표를 파견 하였을 때 그곳에 거주하던 유대인이 무려 8,000명이나 동조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바울이 유대인 지도자들을 자기의 숙소에 초청한 것은, 그가 죄수의 신분으로서 활동 공간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을 초청한 목적은 첫째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자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로부터는 자기에 대해 어떤 소식을 전해들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거기에 적절히 대응하면서 자신을 변호하고자 하였습니다. 만일 그들이 바울에 대해 부정적인 소문을 듣고 그것을 사실로 판단하여 황실에 뇌물을 주면서 부정적인 내용의 고소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로서는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둘째는 적극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습니다(23). 바울 자신로서는 개인의 일신 상의 안전을 염려하는 것보다는 무엇보다도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 전파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정중한 태도로 자신이 로마에 재판을 받기 위해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민족이나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먼저 그는 자기가 동족인 유대인을 거스리거나 유대의 관습을 반대한 일이 없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자신에 대한 오해의 여지를 없게 하였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기에게 허위의 누명을 씌워 사형(死刑)에 처하려 했으나 로마 군사들이 구해준 일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무죄하게 로마인의 손에 넘겨졌다고만 진술함으로써 가능한 한 반유대 감정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왜 로마에 재판을 받으러 왔는가 말합니다. 로마인들은 바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여 석방하고자 하였습니다. 로마인이라 함은 천부장 루시아의 총독 벨릭스 및 베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모두 바울의 무죄를 알고 있었습니다(23:29 24: 22-26). 그러나 이들이 바울을 석방하고자 했다는 것은 다소 과장된 표현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무죄를 알고 있었지만 유대인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적극적으로 바울을 놓아주고자 한 일이 없습니다. 베스도 같은 경우에는 도리어 바울을 유대인들에게 내어주려고 했습니다(25:9). 다만 바울은 자기가 지금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에 이송되어 온 것이 궁극적으로 유대인들의 적대감 내지는 오해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인들이 놓아주려는 것과 달리 유대인들은 바울을 로마인에게 고소하였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오는데 유대인들이 원인 제공자입니다. 유대인에 비해 로마인들은 부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인들은 바울을 놓아주려 했으나 유대인들이 방해했기 때문에 석방되지 못하였다는 것은 예수님과 유사합니다.

 

(민족을 고발하려함은 아닙니다)

 

“19.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유대 사람이 석방을 반대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바울은 황제에게 상소한 것입니다. 바울은 절대로 유대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이 유대인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끊임없는 적대 의식 때문에 불가피하게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조금도 동족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반대하여 그로 하여금 가이사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갔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자신을 살해하려한 동족을(23:2-15 25:3) 송사할 의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요구한 동족을 용서하신 사실을 연상시킵니다(23:34) 바울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려고 상소한 것이지 유대인들을 고소하려고 상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20.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이런 연유로, 바울은 유대인들을 뵙고 말씀드리려고, 그들을 오시라고 청한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공의회에서도(23:6), 벨릭스 앞에서도(24:15),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26:6) 이스라엘의 소망을 증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입니다. 바울은 이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성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조상들이 그렇게 소망해오던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주시고 예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온 인류의 소망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한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정치적이며 현세적 메시야를 기다렸으므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독립과 이스라엘이 세계를 다스리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는 헛된 소망입니다. 사람들은 헛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인생의 참소망은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와 부활과 영생입니다. 이 차이 때문에 바울은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전해야하며 이 소망 때문에 고난을 받습니다.

 

(바울의 복음을 듣고자 하는 유대인들)

 

“21.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22.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유대인들은 유대에서 편지를 받은 일도 없고 좋지 않은 것을 전한 것도 듣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편지에 해당하는 혤라어 그람마의 본래적 의미는 그려지거나 씌어진 어떤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산헤드린에서 발송한 바울에 대한 공식 고소장을 가리킵니다. 앞에서는 문서를 통한 연락이 없었음을 말했고 뒤에서는 사람을 통한 정보의 전달도 없었음을 밝힙니다.

본문에서 고하든지는 공식적인 알림을 뜻하고 이야기한다는 말은 사적인 알림을 나타냅니다. 결국 유대인 지도자들의 말은, 공식적인 문서를 통해서나 혹은 공식적인 임무를 띠고온 사람을 통해서나 도무지 바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는 것입니다. 여행객을 통해 사적으로도 들은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대로 하자면 바울은 그들에게 베일에 싸인 인물인 셈입니다. 그들이 연락을 하려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바울의 이송이 거의 마지막 항해 시기였기 때문에(11절 주석 참조) 교통상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글라우디오의 유대인 추방령 이후 다시 로마에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멀리 본국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라 가까운 지역에 흩어져 있다가 돌아오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바울 사건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유죄 증거가 없는 바울의 상소 건에 대하여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자기들에게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판단하여 바울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종교적인 문제로 분란을 일으켜 로마로부터의 추방령을 받았던 쓰라린 경험(18:2)을 그들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파(예수의 복음)이 어디서나 유대인들에게 반대를 받으니 예수의 복음이 어떠한 지 알아 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기독교가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단 그들이 기독교에 대해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가지고 일음을 말해줍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기독교에 대하여 듣고자 했습니다. 로마의 유대인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의 많은 종파 가운데 하나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주님 나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나는 교육자, 돈 버는 것이 소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 나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교회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 나라가 나의 참 소망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 나라를 강론하는 바울)

 

“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유대인들은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왔습니다. 본문의 상황은 22절에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의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왔던 사람들이(17) 바울에게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껴 더 많은 사람들을 데려왔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처음 만났을 때는 상견례만 하고 날짜를 따로 정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로 한 것 같습니다. 하여튼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숙소에 모여왔습니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로마의 유대인에게 처음으로 복음올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숙소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처음부터 많았거니와 점차 더욱 늘어났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바울은 상당히 넓은 집을 얻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나아오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에게 성경에 기초하여 하나님 나라와 예수를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하나님 나라와 예수로 요약하며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핵심적이고 정확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 선포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입니다.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나라이며 그 하나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확증되었으며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바울이 먼저 증거한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지상 사역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이 기대해 왔던 유대 민족주의적이고 정치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통해 보여진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다음으로 바울이 증거한 것은 예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메시야 예언과 약속이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기독교적 메시야관은 유대인들에게 낮선 것이었고 이해하기도 힘든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단지 예수님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해시켜 설득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하더라는 설복하다는 뜻을 갖는 단어라는 점에서 분명해집니다.

 

(유대인의 완악함을 예언한 이사야)

 

“24.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25.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그들 가운데는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행한 바울의 증언을 통해서 몇 사람의 믿는 사람을 얻었습니다. 대체로 학자들은 이때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았을 것이라고 봅니다(26, 27). 유대인 동족에게 복음 증거하여 믿음을 갖게 하려는 바울의 노력이 극히 부분적으로만 성공을 거두었던 경우는 본서에 여러 차례 기록되었습니다.(14:4 17:4 19 :9)

그것에 대해서 바울은 실망하거나 좌절하지도 않았고 동족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서로 대화하다가 맞지 않아서 흩어졌습니다.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로마의 유대인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었습니다. 마침내는 집회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하고 흩어지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2310절에 있었던 유대인들 사이의 분쟁을 연상시키는 장면입니다.

이때 바울은 이사야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이사야 69, 10절의 인용으로, 이곳 외에도 신약에서 무려 여섯 번이나 인용된 말씀입니다(13:14, 15 4:12 8:10 12:40 11:8). 본래 이사야 6:9, 10은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바울은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전하는 핵심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듣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

 

“26.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27.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이사야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들어도 믿지 않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고침을 받지 못하도록 심판하십니다. 70인 역의 사 6:9,10과 내용이 일치하는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실 때 그가 어떠한 말을 하여도 백성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들이 변화되기를 바라는 반어적인 표현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완악하여 회개하지 않아서 이사야의 말을 청종치 아니함으로써 마침내는 바벧론의 포로가 되는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 말씀을 이사야 시대 백성의 후손들에게 적응시키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함과 그에 따른 심판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회개치 않는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의 복음을(24) 거부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망하여 지옥에 갑니다. 그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8).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바 있듯이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에는 유대인들도 이방인의 구원을 통하여 구원에 참여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완악하게 하여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십니다. 완악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알려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합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바울)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바울은 이제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그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시 되었으나 그들이 거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구원은 이방인들에게 보내어졌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는 논리이며(13: 48 18:6), 자신의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을 확인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22:18, 21). 유대인들은 듣지 않을 것이나(22: 18), 이방인들은 들을 것입니다. 그 결과 유대인에게 주어져야 할 구원이 이방인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사도행전서는 복음이 이방인들 사이에 퍼져 나가는 과정과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역하는 것이 평행을 이루면서 기록되고 있습니다. 26-28절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결정적으로 확인되면서 하나의 결론부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떤 서방 사본에는 "저가 이 말을 마칠 때에 유대인들이 서로 큰 논쟁을 하며 물러가더라" 는 구절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후대의 삽입으로 추측됩니다.

 

(셋집에서 이년 동안)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바울은 이년 동안을 셋집에 유하며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였습니다. 누가는 구원이 이방인에게 확산됨을 선언하는 것으로 본서를 종결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에서의 바울의 상황을 간단하고도 대략적인 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25-31). 바울은 만 2년 동안 로마에 머물렀는데, 본문의 2년은 석방되기 이전 연금된 상태로 있었던 기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16). 이것은 바울에 대한 재판이 2년 동안이나 열리지 않고 연기되었거나, 판결이 지연되었음을 뜻합니다.

유대인 고소자들은 재판의 승산이 없고 더구나 재판 과정에서 구체적인 증거 없어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고소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은 그에 대향 응징을 받아야 했던 로마법정의 절차가 두려워 법정 고소 만료일인 18개월이 지나도록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후 결석(缺席) 재판으로 진행되어 바울이 무죄 판결을 받아 석방되었을 것입니다.

이 때는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61년 중순부터 63년까지의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셋집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스도마티)는 삯을 의미하는 미스도스에서 온 말입니다. 바울이 머문 집은 무료 교도소가 아니라, (hire)를 내는 집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집세를 어떻게 부담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돈으로 지불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장막을 만드는 일을 하며 번 돈으로 지불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빌립보교회에서 현금을 보내주어 지불할 수 있었습니다(4:18)

바울은 찾아오는 자들을 다 영접하였습니다. 바울을 찾는 사람들이 그치지 않고 계속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이 때 찾는 사람들은 이방인들이 주종을 이루었으리라고 추측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함)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바울은 찾아오는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에수님에 관한 모든 것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이 전한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마음 속에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되 금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을 영접하여 복음 즉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23).

거침없이는 방해 없이 자유로이 전했다는 말입니다. 로마 당국은 바울의 그러한 선교 행위를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복음이 로마 당국의 방해를 받지않고 계속 전파 될 수 있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하고 방해했던 반면(21 27-36 23:1-15), 로마에서는 복음이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전파되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에게 주어진 소명과 주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22:21 23:11).

당시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에서 복음이 성공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으며, 누가는 본서를 매우 간략하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복음은 로마와 전세계에 퍼져나가게 될 것을 내다보는 원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오늘날 복음 전파에 대한 방해와 반대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전도에 대한 문이 닫히고 캠퍼스 전도도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하나님의 복음전파를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이 구원역사를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바울은 비록 감옥에 있어도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비록 죄수라도 하나님 나라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어도 하나님 나라의 행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성령의 강물이 내 마음 속에 흐르게 하셨습니다. 제가 사도 바울처럼 세계 캠퍼스에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사도행전 28장 강해 이부 로마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 전파

사도행전 2816-사도행전 2831

요절 사도행전 2830절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사도행전 28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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