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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사도행전 21장 강해 복음을 위해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01-23 00:00:00
조회수 : 6,821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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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1장 강해 일부 복음을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

사도행전 211-사도행전 2116

요절 사도행전 21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바울이 3차에 걸친 선교 사역을 마친 후 예루살렘을 향해 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고난이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는 많은 만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나갑니다. 그의 모습은 십자가를 향해 예루살렘으로 가신 예수님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가 고난을 향해 나가는 모습은 예수님의 그림자와 같습니다. 고난 받는 바울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을 배우며 우리도 고난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고스, 로도, 바다라)

 

1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바울 일행은 에베소 장로들과 작별하고, 배를 타고 곧장 항해해서 고스에 도착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우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곳은 모두 네 곳인데(16:10-17, 20:5-15, 21:1-18, 27:1-28:16) 21장도 그 중 하나입니다. 우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바울, 누가, 드로비모, 아리스다고입니다. 그리고 부로의 아들 소바더, 세군도, 가이오, 디모데, 두기고, 드로비모, 아리스다고를 언급한 이후 지금까지 그들 중 누구와도 헤어졌다는 언급이 없는 것을 볼 때 이들도 동행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밀레도의 회중들과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가리킵니다(20:17, 18). 작별하다는 말은 찢어놓는다는 의미로서 매우 어렵고도 아쉬운 이별의 장면을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목자로서의 바울과 그로부터 양육을 받는 에베소 성도들 사이가 매우 친밀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고스는 밀레도 남쪽 68km 지점에 있는 작고 비옥한 섬으로 명주, , 고약의 산지로 유명하며 또한 전설적인 의학자인 히포크라테스의 고장으로 규모가 큰 의학교가 있었습니다. 이튿날 로도에 들렀다가, 거기에서 바다라로 갔습니다. 로도는 도데케네스 제도 가운데 가장 큰 섬을 가리키며 더 구체적으로는 이 섬의 북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를 가리킵니다. 이곳은 소아시아 대륙에서 19.2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풍부한 일조량으로 하여 장미가 만발하는 섬입니다. 이곳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태양의 상징 아폴로 신상이 크게 서 있는데 당시에는 넘어져 있었습니다. 바다라는 소아시아의 남서 해안에 위치한 루시아의 도시였습니다. 당시 바다라는 수리아, 팔레스틴 및 애굽 동쪽 연안의 지중해 항구들과 아시아, 마게도냐, 아가야의 항구들을 왕복하던 큰 배들의 정박지로서,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자 거대한 상업 도시였습니다. 한때 이곳에는 델피에 견줄만한 아폴로 신의 신탁소가 있었습니다.

 

(두로에 상륙)

 

2,3절을 보십시오.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바울 일행은 베니게로 가는 배를 만나서, 그것을 타고 떠났습니다. 베니게는 팔레스틴 북쪽 두로나 시돈이 위치한 지역을 포괄하는 지명입니다. 이제는 에게해를 완전히 빠져나와 지중해를 가로질러 두로에 이르는 항로에 접어들었습니다. 아마 이들은 바다라에서 두로로 직항하는 큰 배로 갈아탔을 것입니다. 키프로스 섬이 시야에 나타났을 때에, 그들은 그 섬을 왼쪽에 두고 시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 닿았습니다. 구브로는 바다라와 두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지중 해상의 섬으로 과거에 바울과 바나바가 바보에서 바예수의 훼방을 물리친 적이 있습니다(13:4-12). 바다라에서 두로 방향으로 항해를 하자면 이 구브로섬의 남단을 지나가게 되는데,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라는 표현은 이 항로를 따라 배가 순항하였음을 암시합니다. 수리아는 팔레스틴 서북방의 지중해에 접한 지역으로 이 지역의 남쪽에 두로가 있습니다. 그들은 구보로에 머무르지 않고 수리아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항해하였습니다. 두로 도시는 바로 위에 위치한 시돈과 함께 베니게의 오랜 항구 도시입니다. 대표적 이교 도시로 번영과 부패의 표본이었으며 늘 책망의 대상이었습니다(10:13). 이 두로는 바다라에서 닷새의 항해 거리에 있었습니다.

그 배는 두로에서 짐을 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두로에 배가 정박한 것은 배의 짐을 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마 이 짐은 과일이나 곡물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밀레도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으로 구제헌금을 전해 주러 가다가 두로에 짐을 풀기 위해서 잠시 상륙하였습니다.

 

(두로에서 예루살렘 가는 길을 만류함)

 

4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누가 일행은 두로에서 제자들을 찾아서 만나고, 거기에서 이레를 머물렀습니다. 제자들을 찾은 것을 볼 때 두로에도 기독교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언제 어떤 경로로 이곳에 복음이 전파되었고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후 각지로 흩어진 교인들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을 것입니다.(11:19) 이들 중에는 바울과 실라의 2차 전도 여행시 전한 말씀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도 포함될 것입니다. ‘찾아는 수색하여 발견하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두로에 있던 교인들과 바울 수소문의 결과로 만난 것입니다. 그곳에 있던 교인들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5). 바울 일행이 두로에 머문 것은 일주일 간이었습니다. 바울이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서두른 것에 비하면(20:16) 상당히 여유 있는 행동입니다. 바다라에서 출발한 배가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는 배가 아니라 지중해를 가로질러 가는 배였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많이 단축되었습니다. 두로에 일주일간 머물러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일정에는 별로 차질이 없었습니다. 바울이 다른 배편을 찾지 않고 그냥 머물러 있었습니다. 벤트나 람세이는 바울 일행이 그 배의 짐을 풀고 다시 싣는데 이레가 걸렸기 때문에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두로의 제자들은 성령의 지시를 받아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히 말하였습니다. 성령께서는 두로에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면 많은 환난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만류하였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였고(19:21), 그의 의도와 행동은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었습니다(20:22-24). 그런데 두로의 성도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일견 성령의 역사가 모순된 것으로 보이나 모순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생겨난 결과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고난을 받게 되리라는 내용이지 바울로 하여금 예루살렘 행을 중단토록 만류하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한 것은 바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성도들로서는 당연히 취할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수난 길을 만류했던 일과도 일맥 상통합니다(16:22). 오히려 성령께서는 바울의 예루살렘행이 고난의 길임을 재차 확인시켜준 것이며 바울은 그것에 대해 조금의 동요도 없이 성령의 지시하심을(20:22) 충실히 따를 뿐이었습니다.

 

(두로에서 작별)

 

5,6절을 보십시오.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바울일행은 머물 날이 다 찼을 때에, 그 곳을 떠나 여행 길에 올랐습니다. 모든 제자가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바울 일행을 전송하러 성 밖에까지 따라 나왔습니다. 바닷가에서 바울 일행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배에 올랐고, 그들은 제각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누가는 이별의 장면을 세세한 부분까지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표현에는 배에 정관사가 첨가되어 있어 이 배가 처음 타고 온 배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배임을 말해줍니다. 바울 일행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에 가이샤라로 갔습니다.

 

(돌레마이 가이샤라)

 

7-8절을 보십시오.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바울 일행은 두로에서 출항하여, 항해를 끝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렀습니다. 돌레마이 지역은 두로에서 가이사랴 방향으로 35km 지점에 위치한 소항구로 구약 시대에는 악고(1:31)라는 지명으로 불리었습니다. 돌레마이라는 이름은 아마 톨레미 2세를 기념하기 위하여 붙여진 것입니다. 이 도시는 오늘날 아크레로 불리어집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성도들에게 인사하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지냈습니다. 바울 일행은 돌레마이에서 성도들을 방문하여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4절에서는 제자들이라고 표현한데 비하여 여기서는 형제들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친근감을 더해줍니다. 이곳 돌레마이에 복음이 전해진 것 역시 두로와 같은 시기였으리라고 봅니다.

이튿날 그들은 그 곳을 떠나서, 가이사랴에 이르렀습니다. 가이사랴 도시는 돌레마이에서 남쪽으로 50-60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였는데 로마 치하에서는 유대 지방의 행정 장관이 거주하는 정치적 수도였습니다. 이 도시는 헤롯에 의해 건설되고 아우구스투스를 높이기 위하여 가이사랴로 명명되었습니다. 이곳은 거대한 항구 도시입니다. 바울은 그의 선교 여행 중 이 도시를 세번째로 방문합니다. 한번은 예루살렘에서 다소로 여행하는 중에 방문했고(9:30) 두번째는 2차전도 여행 말기에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길에 방문했습니다.(18:22) 지금이 세번째입니다. 여기에는 돌레마이에서 가이사랴까지 이르는 교통편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학자들은 돌레마이에서 가이사랴까지의 거리가 50-60km에 이르므로 해상으로 이동했을 것으로 봅니다.

일곱 사람 가운데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머물게 되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그곳에서 일곱 집사 빌립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빌립에 대해서는 일곱 집사 중 하나, 전도자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가 일곱 집사 중의 하나입니다.(61-5) 그가 재정을 담당하는 본래의 기능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였습니다. 이 빌립이 스데반 사후 사마리아에서 가이사랴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였다는 기록(8:5-40) 이후 여기에 처음 등장합니다. 브루스는 이 기간을 20년으로 잡기도 하는데, 빌립은 가이사랴에 정착하여 살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아마 이 곳에 기독교 공동체를 건설하였을 것입니다.

 

(예언자 빌립의 딸들)

 

9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딸 넷이 있는데 예언하는 자였습니다. 빌립은 그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는 은총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네 딸이 예언하는 은사를 받는 축복까지 누렸습니다. 여기서 처녀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당시 교회에서 봉사하는 여자들은 대개 과부들이었던 점에 비추어 볼 때(딤전 5:9-15) 이례적입니다. 아무튼 예언하는 은사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빌립의 딸들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중요한 은사를 가지고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히에폴라리스의 감독이었던 파피아스의 말에 의하면, 빌립과 그의 딸들은 몇 년 후에 소아시아의 히에라블리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딸들 가운데 몇은 상당히 늙도록 생존하여 초기 기독교 시대에 있었던 사건이나 인물들에 관한 자료들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여 많은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가보의 만류)

 

10-11절을 보십시오. “사람들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바울 일행이 여러 날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동안에, 아가보라는 예언자가 유대에서 내려왔습니다. 바울은 빌립의 집에서 상당 기간을 머물고 있는데 이는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는 마음에서 여행을 급히 서두른 결과 심신이 피로했으며, 오순절까지는 시간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이사랴에 머물면서 육신의 휴식과 아울러 예루살렘에서 해야 할 일들을 계획하고 고난에 대한 나름대로의 각오를 새로이 하고자 하였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선지자 아가보는 과거에 몇몇 선지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내려와 유대에 기근이 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 예언이 A.D. 46년 글라우디오 때에 성취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11:27, 28). 옛날 유다의 관점이서 유다에서 내려왔다고 서술합니다. 유대로부터라는 표현의 실제 의미는 예루살렘으로부터로 보아야 합니다.

아가보는 그들에게 와서,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과 발을 묶고서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띠는 폭이 약간 넓고 길이가 길어 허리에 여러 번 둘러감는 천을 가리키는 것으로, 가죽이나 비단으로 만들고 은실이나 금실로 수놓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삼상 15:27왕상 11:30). 아가보는 이 띠를 가져다가 자기의 손과 발을 묶는 행위로써 예언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말로써가 아니라 행위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 행위는 구약의 예언자들에게서도 종종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자기의 새 옷을 찢어 솔로몬 왕국의 분열을 예언했던 아히야(왕상 11:29, 30), 벗은 몸과 발로 행하여 애굽인들이 앗수르인들에 포로로 끌려갈 것을 예언한 이사야(20:2)와 같은 인물이 그러한 예에 해당합니다(13:1-1127:24:1-3 참조). 아가보의 예언의 구체적인 내용은 바울의 결박과 투옥을 가리킵니다(30, 33). "유대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허리띠 임자를 이와 같이 묶어서 이방 사람의 손에 넘겨 줄 것이라고, 성령이 말씀하십니다." 바울의 고난을 예언하는 아가보의 예언이 온전히 성령의 감동으로 되어졌음을 말해줍니다. 구약성경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표현과 같습니다.(14:28왕하 9:26). 아가보라는 선지지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바울에게 닥칠 고난은 유대인들에 의해 도발되어 이방인에게 넘겨진다는 점에서 예수의 수난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10:3315:1).

 

(일행의 만류)

 

12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아가야라는 선지자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두로에서와는 달리 이곳 가이사랴에서는 현지의 성도들 뿐만 아니라 바울을 수행했던 누가 일행도 합세하여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하는 것은 결코 성령의 뜻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의 뜻이었습니다(4). 여하튼 여기서는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하는 정도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공동번역에서는 간곡히 전하였다로 옮겨 그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바울 주변에 있던 성도들이 그의 고난에 대한 예언을 듣고 그 행로를 만류하려 했던 점에 대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기 위함이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 또한 예수의 수난에 대해 이와 유사한 행동을 보여준 경우가 있거니와(16:22), 지금의 경우도 바울에 대한 그들의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죽을 것을 각오한 바울)

 

13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그러나 바울은 울어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상하게 하느냐는 두들겨 깨뜨린다의 뜻을 갖는데, 이는 주위 사람들의 애정에 가득찬 눈물의 만류가 마치 바울의 마음을 부수어버릴 정도로 간곡했음을 나타냅니다. 이 표현 속에는 성령의 일을 거역하게 하는 것에 대한 책망보다는 그들의 충정어린 애정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는 모습이 엿보입니다.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의 애정어린 만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결의를 더욱 강하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했던 바로 그 도시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죽임을 당하는 것도 피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바울이 이처럼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예루살렘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이름으로 구제 헌금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이방 교회의 성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는 이방 교회의 성금을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교회의 단합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15:25-32). 또한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이방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의 연합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유대계 신자들과 이방 신자들 사이에 소원(疏遠)한 관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의 원만한 연합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연합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나를 막론하고 모두 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말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3:28), 이 진리를 바르게 깨달은 바울은 바로 이 연합을 위해 죽음까지도 무릅쓰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을 가는 것이 주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살지 않고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라면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믿음대로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예수님이 그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주님 나도 나의 유익을 따라서 움직이지 않고 예수님의 영광을 위하여 움직이는 자들이 되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성령이나 성도의 권함을 듣지 않았습니다.

 

(주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

 

14절을 보십시오.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는 직역하면 저가 설득되지 아니하므로(when he would not be persuaded, KJV)가 됩니다. 아마 그들은 바울의 신변의 안전을 이유로,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수행해야 할 하나님의 일이 많다는 식의 그럴듯한 명분으로 바울을 설득하여 그의 예루살렘 행을 포기시키려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때가 아니라 지금, 다른 곳이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설득을 뿌리쳤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처럼 예루살렘을 향하여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의 가는 길은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그들은 주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고 바울을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을 설득하려던 사람들은 그의 의지를 꺾는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그에게 닥쳐올 불행을 넘어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바울을 설득하려던 사람들이 바울에 대한 잘못된 충정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신앙의 자세로 되돌아와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2:42)를 상기시켜 줍니다.

 

(가이샤라에서 나손을 데리고 감)

 

15,16절을 보십시오.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이렇게 밀레도에서 며칠을 지낸 뒤에, 바울 일행은 행장을 꾸려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드디어 바울의 최종 목적지인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여장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스큐아사메이노는 신약에서 본절에만 나오는 희귀한 단어로 짐을 꾸리다,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할 성금을 챙기다 말의 안장을 꾸리다 등으로 해석됩니다.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는 100km이고 그 길을 도보로 가기에는 너무 피곤합니다. 그렇게 지친 상태로는 예루살렘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바울은 물론이고 특히 의사인 누가가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교통 수단은 말을 이용하였을 것입니다. 가이사랴에 있던 제자 몇 사람도 그들과 함께 갔습니다.

그들은, 바울일행이 묵어야 할 집으로 바울일행을 안내하여, 나손이라는 사람에게 데려다 주었습니다. 그는 키프로스 사람으로, 오래 전에 제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오랜 제자라는 표현은 나손이 기독교의 초기 공동체 즉 오순절의 120명의 제자 가운데(1:15)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바울은 그와 가이사랴의 성도들이 소개로 만났을 것입니다. 나손을 데리고 가니는 나손의 집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공동번역). 나손의 집이 예루살렘에 있었고, 이방 기독교인들을 기꺼이 영접해 줄 것같지 않은 상황에서 거처를 제공해 줄 사람으로 나손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21장 강해 일부 복음을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

사도행전 211-사도행전 2116

요절 사도행전 21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사도행전 21장 강해 일부 끝입니다.

 

 

 

사도행전 21장 강해 이부 예루살렘에서 잡힌 바울

말씀 사도행전 2117-사도행전 1740

요절 사도행전 2133절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바울은 드디어 예루살렘에 옵니다.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로마사람에게 잡힙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로마로 가는 끈이 됩니다. 총독과 왕에게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신비롭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야고보를 만난 바울)

 

17,18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바울은 드디어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형제들이 기꺼이 영접하였습니다. 가이사랴에서 함께 한 성도들을 포함한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그들을 기꺼이 환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형제들이 예루살렘의 기독교 공동체는 아닙니다. 18, 22절에 의하면 실제적으로 예루살렘 교회는 아직까지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온 것을 알고 있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은 교회 전체가 아니라 동료들과 친구들로 이루어진 사적인 모임에서 영접 받은 것입니다. 바울은 거기서서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났습니다. 우리와 함께 라는 표현을 써서 우리와 바울이 구분되어 표현합니다. 바울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기 위함입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먼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하고 할 수 있는 야고보를 방문하였습니다. 여기에 베드로나 요한, 그 밖의 다른 사도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이는 그들이 전도나 다른 일을 위해서 출타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수장(首長)으로서 교회 공동체를 지혜롭게 잘 지도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일반 유대인들로부터도 큰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일반 유대인들은 그에게 의인 야고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고 합니다. 야고보는 수석 장로이며 다른 장로들은 바울을 환영하는 자리에 초청된 야고보의 손님들이라고 봅니다. 아니면 야고보를 제외한 사람들은 단지 입회인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바울의 선교보고)

 

19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바울은 이들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인 가운데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였습니다. 사역은 종 일꾼을 뜻하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사명(20:24), 또는 직분(11:13) 등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뿐만 아니라 교회와 사람들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그의 역할 가운데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헌금 전달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이방 가운데서 사역한 일들을 세세히 증언하고 있는데, 그는 그 모든 일들의 주체가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을 오해를 하는 유대인이 있다)

 

20,2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야고보와 일행은 바울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야고보 및 장로들이 바울의 증언을 매우 호의적으로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으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야고보는 유대인 가운데 예수를 믿는 수만 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율법에 열심히 있는 자라고 합니다. 누가는 야고보의 무리들이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기쁨에 넘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울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눈길들이 많음을 말합니다(22). 수만 명이라는 야고보의 이야기는 교인들의 수가 많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일에 관심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소위 유대적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모세의 율법을 비롯한 각종 규례들을 소중히 여겨 지킨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바울이 깨달은 바, 복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 율법을 폐기하지는 않지만 율법의 매임으로부터 자유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에 매이지 않는 바울의 행위를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바울이 이방에 있는 유대인에게 율법을 어기고 할례를 하지 못하게 하고 관습을 지키지 않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을 비방하는 소문을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이러한 소문의 진원지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유대교적 전통에 철저한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모세를 배반한다는 것은 모세가 전해준 율법을 무시한다는 말이고 이는 곧 하나님에 대한 배반을 뜻한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율법을 배반했다는 것은 악의에 찬 허위 사실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 자체를 부정한 바 없으며 오히려 그는 율법을 신령한 것으로 보았고, 율법의 긍정적인 역할도 인정하였습니다. 다만 바울은 사람들이 율법 자체에 얽매여 스스로 의롭게 되려는 행위들을 배격하였습니다. 율법으로 구원받으려고 하는 자들은 비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바울이 할례를 금하였다는 것도 전혀 터무니없는 허위 사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할례 그 자체에 대해서 어떤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았으나 하는 것도, 안하는 것도 무방하다고 했습니다. 디도는 할례를 받지 못하게 하였지만 디모데에는 할례를 받도록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진실이 이렇다 하더라도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들은 바대로 오해를 하고 있었음에 분명합니다.

이 오해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의 안식일법이나 먹는 율법을 다 지키지 않고 할례를 하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이 은혜의 복음을 가지고 있을 때 율법도 더 잘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형성된 그들의 자존심을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깊이 알고 이해했습니다.

 

(오해를 풀기 위해서 결례를 권면함)

 

22-24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묻습니다. 야고보 및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바울의 신변에 대한 문제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사실은 이제 곧 다른 교인들에게 알려질 것이며 바울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자들이 거센 공격조로 나올 것은 불을 보듯 환한 일이었습니다. 유대인 신자들을 얻기 위해서는 이들에게는 율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야고보는 바울이 이를 위해서 서원한 네 사람과 결례를 행하고 돈을 드려서 머리를 깎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서원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하기 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소원을 넘어 하나님께 대한 일종의 서약이기 때문에 매우 엄숙한 것입니다. 서원은 주로 나실인의 서원과 관계되는데, 부모에 의한 서원이나,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한 서원이 있으며 서원의 기간은 영구적인 것이 있고, 일정한 기간 동안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서원자는 서원한 것에 대해 반드시 신속하게 행해야 하며, 남용하거나 경솔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서원한 기간 동안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으로는 독주를 마시지 말고 머리를 깎지 말며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네 명의 서원은 본인의 자유 의사에 의해 일정한 기간 동안만 하는 서원이라 여겨집니다. 결례를 행하라는 것은 서원한 자들처럼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서원 기간 동안 지켜야 할 규범을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는 것은, 결례 기간이 끝나는 날에 머리를 깎고 희생 예물을 드리는 때에 드는 경비를 부담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드려지는 희생 제물로는, 번제물로 일년 된 수양 하나, 속죄 제물로 일년 된 어린 암양 하나, 화목제로 수양 하나, 그 외에 무교병 과자 등이었으므로 그 비용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비용을 바울에게 부담하라고 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가난한 서원자를 위하여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것은 매우 경건한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실제로 기록에 의하면 아그립바 I세가 가난한 나실인을 위해 이런 비용을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울에게 이런 일을 하라는 것은 그의 재력으로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환심을 사라는 말이 아니라 그가 율법을 부정하지 않고 지키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어 그들의 오해와 노여움을 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 바울도 율법을 행하는 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을 얻기 위해서는 잠시 유대인과 같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공회의 결정을 상기시킴)

 

25절을 보십시오.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야고보는 신도가 된 이방 사람들에게는,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삼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결정해서 써 보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일찍이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방인 신자들의 신앙 생활을 위한 지침으로 결의되었던 것인데, 여기서 다시 한번 반복하여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야고보가 바울의 동료들에게 전달되기 위해서나 누가가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 반복하여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 회의에서의 결정이 이방인 선교에 중심적 역할을 했던 바울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내려진 것이라고 볼 때 이번에는 율법 준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루살렘 신자들을 위하여 바울이 양보해 줄 것을 간접적으로 요청하기 위한 것입니다.

 

(결례를 행한 바울)

 

26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바울은 그 다음날 네 사람을 데리고 가서, 함께 정결예식을 한 다음에, 성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정결 기한이 차는 날짜와 각 사람을 위해서 예물을 바칠 날짜를 신고하였습니다. 바울은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바울 일행이 서원의 절차법에 따라 희생 제물을 바친 후 머리를 깎아 제단 불에 던져 태운 다음, 제사장에게 서원 기간이 끝났음을 공식적으로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바울은 그의 선교 전략 즉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자에게는, 자신은 율법의 지배 아래 있지 아니하지만,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자같이 된다는 원칙을 따라 행동하였습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920절에서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바울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스스로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목표는 어찌하든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생각과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일찍이 예루살렘에 올 때 고난이 있을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말을 존중하여 머리를 깎고 결례를 행하였습니다. 우리가 복음 외에는 어떤 것도 양보하고 하나가 될 수 있어야합니다. 우리가 복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지만 양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만의 틀, 스타일, 생각은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것만 고집하다가 양들에게 상처 주고 교회의 화평을 깨고 구원 역사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성전을 더렵혔다고 바울에게 누명을 씌움)

 

27-28절을 보십시오.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바울이 성전에서 결례를 행하는 칠일이 다 끝나갈 때였습니다. 바울과 네 명의 서원자가 7일 간의 결례를 거의 마감할 무렵입니다. 아시아에서 보았던 유대인들이 무리를 충동질하여 바울에게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모독하는 사람이라고 누명을 씌웠습니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은 에베소에서 올라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왔던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바울을 몰랐을 터인데 이들은 보자마자 바울을 즉시 알아보았고(바울은 3년간 에베소에서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더구나 이들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알고 있었습니다. 충동하는 말은 이방 종교인들이 일으킨 소동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던 말입니다.(19:23-41), 바울을 해하려는 이 무리들이 포악하였습니다. 성전은 성전 영내의 이스라엘의 뜰로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닌 유대인 남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각처에서 유대인과 율법과 성전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에서 올라온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바울을 보자 흥분하여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부르며 바울을 고발하였습니다. 고발 내용은 그가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신성한 율법과 그리고 하나님의 성소인 성전을 거스리는 내용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이스라엘 백성과 율법과 성전의 3요소에 대한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분노를 촉발시키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 성전을 모독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거룩한 곳은 성전을 가리키고, 더럽게 하였다는 평범하게 만들다의 뜻으로, 이방인을 성전의 이스라엘의 뜰에 데리고 들어옴으로써 거룩한 성전을 평범하게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완료형으로 더럽혀진 효과가 이미 시작되어 지속된다는 의미합니다. 성전에는 유대인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과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바깥 뜰(이방인의 뜰)이 구분되어 있어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뜰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로마 당국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종교적 금기였습니다. 만약 이방인이 이 금기를 어기고 이스라엘의 뜰에 들어갈 경우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 양쪽 뜰을 가르는 울타리에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는데, 울타리를 넘어 침입해 들어가는 자는 사형에 처하게 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런 절대 금기의 규율을 바울이 어기게 하였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분노를 분출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오해)

 

29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사실은 바울이 헬라인과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인과 시내에서 함께 있었을 뿐이지 성전에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바울의 적대자들이 선동하기 위해 외친 소리가 사실의 목격에 근거하지 않고 단순한 추측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들은 얼마 전에 바울과 드로비모가 예루살렘 시내에서 함께 있는 것을 목격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성전에서 바울을 보자 지레 짐작하기를 드로비모가 그를 따라 성전에 들어갔다고 본 것입니다. 바울에 대한 적대감 더 나아가 바울을 해치려는 음모가 이런 오해를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순간적이고 단순한 오해를 한 것이 아니라 바울을 죽임으로써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의 사명을 중지시켜 유대인들의 민족적 우월감과 선민 의식을 보존하려는 계획된 행동입니다. 사도로서 바울의 고난은 터무니없는 거짓 증인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예수님의 고난과 비슷합니다.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고감)

 

30절을 보십시오.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유대인들은 바울을 데리고 성전 밖으로 나갔습니다. 드디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흥분하기 시작하였고 적대자들의 의도는 일단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격앙된 감정으로 폭력적인 행동을 하였습니다. 사태는 매우 과격하고도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돌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에게 단 한마디의 자기 변호도 허용하지 않고 성전 밖으로 끌어내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사정없이 끌고 나갔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뜰과 이방인의 뜰 사이에 있는 문을 닫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는 것을 완료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간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분노한 군중들이 성전으로 밀려 들어와 그곳에서 바울을 살해하는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성전에서 살해 사건이 있게 되면 이는 곧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을 준수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들로서는 그런 일을 피하려 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또 하나는 바울이 제단 뿔을 잡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제단 뿔은 제단 가운데서도 가장 거룩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그 뿔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살륙이 행해질 수 없다고 믿어져 왔습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함)

 

31,3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그들은 바울을 쳐서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을 끌어낸 무리들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러 죽음으로 몰고가고 있는 장면입니다. 최소한의 형식적 재판 절차도 없이 바울을 죽이려 하는 것은 그 무리들이 종교적 자존심의 손상에 대한 반발과 군중 심리적 흥분으로 극도로 포악해져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들은 천부장과 백부장이 오는 것을 보고 치는 것을 그쳤습니다. 바울이 연루되어 성전에서 발생한 소요는 민첩한 정보망을 통해 그 지역의 치안 책임자인 천부장에게 즉각 전달되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오순절 기간이었기 때문에 폭동이나 소요를 대비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의 움직임을 철저히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주민의 난동 소식은 매우 신속하게 보고되었을 것입니다.

천부장은 보통 1000여명의 병력을 통솔하는 로마군의 장교를 가리키며 이 부대의 구성은 보병 760명과 마병 240명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23:26에 의하면 이 천부장은 글라우디오 루시아였습니다. 이 군대의 군영은 성전 북서쪽의 언덕 위에 세워진 안토니아 성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언제든지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므로 즉시 사건 현장에 도착하였을 것입니다. 백부장이 대략 100명의 군대를 지휘하였고, 백부장들로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최소한 200명 이상의 군대가 출동한 것이 됩니다. 바울이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던 위기의 상황은 천부장과 그의 부하들의 출동으로 일단 모면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로마 군대가 출동했을 때 바울을 죽이려던 행위를 중단하였던 것은 그들의 행위가 불법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 당국의 재판에 의하지 않고는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습니다. 산헤드린에서 사형 판결을 내린 후에도 빌라도에게 다시 끌고 가 재판을 받게 했던 예수의 경우도 그런 이유에서 였습니다.

 

(바울을 체포함)

 

33,34절을 보십시오.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천부장은 바울을 쇠사슬에 결박하여 영내로 데려가라고 하였습니다. 마치 한 피의자의 양팔에다 두 형사가 자기의 팔목과 피의자의 팔목에 수갑을 채우는 장면처럼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에 군인들은 사건 현장에 출동할 때 체포용 쇠사슬을 가지고 다녔고 죄수의 도주를 막기 위하여 자기와 함께 묶었습니다. 천부장이 폭력을 당하고 있던 바울을 묶으라고 명한 것은 일단 그가 죄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12:6), 군중들로부터 바울을 분리시킨 것은 그가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법의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이렇게 해서 11절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결박하게 한 후 무리들에게 바울의 신상과 그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33). 그런데 무리들이 매우 소란스러운 가운데 여러 가지 말을 했기 때문에 천부장은 그 사건의 실상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군중들은 예수님을 죽인 무리들과 같이 큰 고함소리로 미친듯이 부르짖었습니다. 광적으로 흥분하여 외쳐대는 무리들의 소란으로 천부장은 심문할 수 없었습니다. 천부장은 무리들의 흥분이 가라앉은 후에 심리를 하기 위하여 바울을 일단 영문 안으로 데리고 가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군대의 주둔지인 안토니아 영문으로 바울을 데리고 갔습니다.

 

(바울을 죽이라는 무리들)

 

35,36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폭행으로 말미암아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바울은 층대에 이르렀습니다. 이 층대는 예루살렘 성전 바깥 뜰에서 안토니아 영안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을 가리킵니다. 이 계단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무리들의 난폭함이 극에 달하여 로마군인들이 바울을 손으로 높이 들어올리고 가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무리가 바울을 없이하자 하며 따라가자 군인들은 바울을 들고 갔습니다. 무리들의 포행이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이들은 연행되어 가는 바울을 향하여 그 놈을 죽여라(공동 번역)고 외치며 따라갔습니다. 무리들이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바울을 죽이라고 외쳐댔습니다. 예수의 수난 때에도 그들은 그러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의 조상들 또한 하나님이 보내신 예언자들을 죽였었습니다. 실로 이 백성은 역사를 따라가면서 하나님을 거역하여 그를 죽여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할 기회를 요구하는 바울)

 

37-38절을 보십시오. “바울을 데리고 영내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 이르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그러면 네가 이전에 소요를 일으켜 자객 사천 명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바울은 천부장에게 자신이 길리기아 다소신의 시민으로 말을 하고 싶다고 헬라어로 말하였습니다. 로마 병사가 바울을 연행하여 영문(34)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바울은 천부장에게 자신을 변호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물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헬라어로 이야기한 것으로 보이며, 천부장은 바울이 헬라어 할 줄 아는 것을 의외의 일로 생각하여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당시에 헬라어는 로마 제국권 내에서는 공통 언어였습니다. 이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춘 문화인에 국한되었습니다.

바울이 헬라어로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천부장은 한편 놀라면서 다른 한편, 그렇다면 바울이 과거에 난을 일으켰던 애굽인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였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A.D. 54년경 한 애굽인 거짓 선지자에 의해 예루살렘에 반란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위대한 선지자로 자처한 이 애굽인은 추종자 3만여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와 광야와 감람산 등에 웅거하면서 예루살렘 성벽 파괴 및 로마군의 멸망을 예언하며 때가 되면 반란을 일으키려 했던 자였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천 명은 그 가운데 자객으로 선별된 무리들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음모는, 로마 총독 벧릭스의 군대에 의해 일부는 죽임을 당하고 일부는 생포되고 이 애굽인 거짓 선지자는 감쪽같이 도망감으로 해서 좌절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천부장의 질문은 바울이 바로 이 거짓 선지자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전도할 기회를 얻는 바울)

 

39, 40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이르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 시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

 

바울이 나는 길리기아의 다소 출신의 유대 사람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그 유명한 도시의 시민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천부장이 말한 애굽인이 아니라 혈통은 유대인이며 출생지는 길리기아의 다소 성이라는 사실을 차분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출신지인 길리기아 다소 성이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소는 헬레니즘의 중심지로 훌륭한 대학이 있는 문화적 수준이 높은 도시였습니다. 제롬에 의하면 바울의 부모들은 본래 갈릴리의 기스칼라 출신이었습니다. 주전 1세기 경에 로마군에 의해 북부 팔레스틴이 침탈을 당한 후에 바울의 부모들이 길리기아 다소로 이주해 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여 천부장의 의혹을 해소한 후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그는 사실 그 일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왔던 것입니다(13). 천부장의 허락을 받자 바울은 층대에 올라가서는 히브리 말로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백성들에게 말할 수 있게 해달라는 바울의 요청은 받아들여졌고 바울은 자신과 복음에 대해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영문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계단 맨 윗부분에 쇠사슬로 그의 양팔을 결박한 채 함께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흥분한 무리들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하여 수백 명의 로마 병사들이 서 있고 그 뒤편으로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흥분된 감정을 큰소리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이때 바울은 그의 양손을 들어올려 백성들을 조용히 시킨 다음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시에는 아람어가 팔레스틴의 유대인들이 상용하는 언어였기 때문에 바울이 아람어로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그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죽음의 위험 아래 있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받고 있었지만 그는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하였습니다. 그가 많은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도 예루살렘에 온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사는 동족들에게 목자의 심정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1장 강해 일부 복음을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

사도행전 21장 강해 이부 예루살렘에서 잡힌 바울

말씀 사도행전 2117-사도행전 1740

요절 사도행전 2133절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그가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사도행전 21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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